040화 - 자작님
이겼다는 생각에 환호를 내지르는 중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아리안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어보았으나……. 나라고 정답을 알 리가 없었다.
“그, 글쎄요.”
나는 당황하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 마법사가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토벌의 보상 중 하나인 아바툴의 살점을 줍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어차피 아바툴은 죽고 나면 마력이 다 사라져서 평범한 고깃덩이에 불과하지만…….
<라엘, 아바툴의 시체 하나는 챙겨라.>
‘응? 왜? 아바툴은 죽고 나면 아무런 쓸모가 없잖아.’
<잔말 말고 챙겨.>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반쯤 녹은 아바툴의 시체 하나를 챙겼다.
끄응, 더럽게 무겁고……. 기분 나빠.
‘챙겼어. 이제 뭘 하면 돼?’
<마법 하나를 알려줄 테니 아바툴의 시체에다 대고 써봐라.>
그와 동시에 카이서스가 마법의 수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생전 처음 듣는 마법이었다.
‘어, 이렇게 하는 게 맞으려나.’
카이서스가 알려준 대로 마법을 시전해 보았다.
“트레이스!”
마법을 시전하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윽?”
갑작스럽게 정보가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오자 나는 당황했다.
아바툴의 생체 구조, 마력장, 그리고 재료에 대한 것까지도.
‘분명히 아바툴은 죽으면 쓸모없는 고깃덩이가 된다며? 이 정보들은 대체 뭐야?’
<고깃덩이가 되어도 마력이 흐르던 흔적은 남아 있게 마련이지. 흠……. 어째서 이렇게 빨리 부화했나 했더니, 아바툴의 마력 구조에 손을 댄 거로군. 그래서 갑자기 죽은 거고 말이야.>
내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해석한 카이서스가 그렇게 말했다.
‘뭐? 마력 구조를 조작할 수도 있어?’
<뭐, 내게는 간단한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어렵겠지. 아마 칼라마쉬의 서를 이용했을 거다.>
또 칼라마쉬의 서인가.
그보다…….
‘아바툴의 재료……. 이거 진짜야?’
트레이스를 통해 알아낸 아바툴의 재료는 사람의 영혼이었다.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
<그래, 마물이 태어나기 가장 좋은 것은 잔뜩 원한을 가지고 죽어간 영혼이니까.>
미친놈들, 얼마나 더 끔찍한 짓을 할 셈이야?
* * *
타이런 제국의 수도 하이넨의 황궁 아래에 자리 잡은 지하실.
“…해서 실험을 끝마쳤습니다.”
자신의 앞에 부복하며 말하는 검은 옷의 사내가 한 말에 루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툴의 빠른 부화는 성공적이라…….”
“다만 빠른 부화로 인해서인지 아바툴들이 둥지 바깥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죽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거야 ‘재료’를 좀 더 투입하면 해결될 것 같군.”
“네.”
한참이나 보고서를 살펴보던 루리스가 수하에게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고생했다. 황제에게는 내가 보고하도록 하지.”
“예.”
수하가 지하실을 나가자 루리스가 웃음을 지었다.
“후후, 복수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린 그는 그대로 걸음을 옮겨 지하실을 나왔다.
그가 나온 곳은 황궁의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도 황제가 기거하고 정무를 보는 곳인 제1궁이었다.
검은 로브를 걸친 그가 궁전 내를 활보하는데도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현을 청한다고 아뢰어라.”
황제의 집무실 앞에 멈춰 선 그의 말에 근위병이 안에 말을 전했다.
“들어오시랍니다.”
곧이어 허락이 떨어지자 루리스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 루리스. 좋은 소식인가?”
화려한 책상에 앉아 서류를 살피고 있던 타이커스 황제가 그를 맞이했다.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 결과는 어떻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바툴의 마력을 조작하여 부화 속도를 빠르게 함에 성공했습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자원만 조금 더 투자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흐음, 그렇다니 만족스럽군. 다음 실험은?”
“다음 실험은 쉘던 왕국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호오, 그대가 크라우드 왕국이 아닌 다른 왕국을 실험 장소로 삼을 줄은 몰랐군.”
흥미롭다는 황제의 말에 루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굳이 크라우드 왕국만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하, 그렇겠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황제의 반응에 루리스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도록.”
황제의 집무실에서 나온 루리스는 무거운 표정으로 조금 전 보았던 보고서를 떠올렸다.
‘또 그놈인가…….’
아바툴의 둥지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지난번에도 자신의 일을 그르쳤던 라엘이었다.
라엘만 아니었다면 라제스 영지쯤이야 완전히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터였다.
“방해가 되는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 * *
“그게 사실인가?!”
“예, 전하.”
내가 알아낸 바를 보고하자 국왕 전하는 물론이고 대신들도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원한을 품은 영혼들로 마물을 만들어낸다니……. 끔찍하군. 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국왕이 말하는 그들이 제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후우… 라엘이여, 고생 많았다. 이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라.”
조사단이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 외할아버지는 ‘네가 대부분 알아냈으니 네가 보고하도록 해라’라며 보고를 떠넘겼다.
“예, 전하.”
보고를 무사히 끝마친 나는 밖으로 나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힘들었다.”
아버지와 가족을 찾고 돌아오자마자 라제스에 이상한 게 나타나서 그걸 알아보러 가질 않나.
그게 전부 이 주 동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대단하군.
“으음, 그래도 쉬기 전에 왕자님께 인사는 드려야겠지?”
돌아와서 얼굴조차 안 비쳤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면 왕자가 무척이나 삐칠 테니까 말이야.
나는 국왕 전하가 정무를 보는 명예의 궁전을 나와 왕자가 기거하는 봄의 궁전으로 향했다.
“아, 라엘 님. 돌아오셨군요.”
봄의 궁전을 지키는 근위병이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했다.
“네.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보다 왕자님은 안에 계신가요?”
“네. 안 그래도 라엘 님을 찾으셨습니다. 들어가시죠.”
나를 찾았다니, 인사하러 오지 않았다면 단단히 삐쳤겠군.
나는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 왕자의 방으로 향했다.
“왕자님께 제가 왔다 아뢰어주세요.”
문 앞에 서 있는 시녀에게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에 말을 전했다.
“오! 들어오라고 해!”
안에서 왕자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녀가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왕자는 책을 읽고 있던 도중이었던 모양이다.
반쯤 읽은 책을 덮은 왕자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지? 축하하네!”
“하하, 뭐 축하랄 것까지야…….”
고생만 엄청 하고 왔는데 그게 무슨 축하를 받을 일이야?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왕자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직 못 들었어? 선생에게 자작 작위를 수여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네?!”
처음 듣는 말에 당황한 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왕자가 오히려 난감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이런, 정말 몰랐던 거야? 내가 괜한 말을 했군.”
“저, 정말입니까?”
“응, 지금껏 선생이 세운 공이 있으니까. 작위를 내리는 건 당연한 거지. 거기다 솔직히 말해서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다른 나라로 가버리면 곤란하니까 붙잡아두자는 거지.”
내가 귀족이 된다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것도 남작을 건너뛰고 곧바로 자작이라니.
얼떨떨해하는 나를 보며 왕자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라엘 경.”
“경이라뇨, 아직 받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받을 건데 뭘, 그보다 피곤할 텐데 이만 돌아가서 쉬어.”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그대로 왕자의 방을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후우, 드디어 쉴 수 있겠군.”
라제스에서 아바툴 토벌 성공 기념으로 체스터 백작이 연회를 열어주기는 했지만…….
온갖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는 바람에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단 말이지.
침대에 드러누우며 왕자의 말을 떠올렸다.
“흐음, 내가 귀족이 된다고…….”
귀족이라니,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에 나는 떨떠름해졌다.
뭐, 귀족이 된다고 해봐야 별로 바뀌는 건 없겠지만.
* * *
왕궁으로 돌아온 지 사흘 후.
명예의 궁전 안, 많은 대신들이 모인 가운데 국왕 전하가 말했다.
“라엘은 고개를 들라.”
“네.”
국왕 전하가 무릎을 꿇은 나의 어깨에 검을 얹으며 말했다.
“라엘, 그대는 크라우드 왕국을 위해 많은 공을 세워주었다. 그대에게 드리안이라는 성과 함께 계승되는 자작의 작위를 내리겠다. 앞으로도 우리 왕국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하라.”
계승 작위라는 것은 내 대에서 끝나는 작위가 아니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작위다.
나는 이제 드리안이라는 귀족 가문의 가주가 된 것이다.
왕자에게 미리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작위를 받게 되니 밀려드는 흥분을 쉽게 감출 수 없었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진정하려고 애써보았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하, 긴장한 모양이군.”
국왕 전하가 웃음을 터뜨리자 주변에 있던 대신들도 웃음을 지었다.
끄응, 어쩐지 귀엽다는 듯한 반응인데.
어린애도 아닌데 귀엽다는 듯 흐뭇하게 쳐다보면 좋아할 리가 있겠냐!
라고 소리치고 싶은 것은 마음 깊숙이 담아두기로 했다.
작위를 수여받고 밖으로 물러난 나는 지급받은 귀족의 신분패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은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패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위조 방지 마법과 내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도록 도난 방지 마법 등등이 걸려 있는 것이다.
신분패를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축하드립니다.”
근처에 있던 근위기사 하나가 웃으며 축하를 건네 왔다.
내가 작위를 받는다는 건 이미 소문이 나 있었기에 그도 알고 축하를 한 것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 맞다. 왕실 근위기사 중에 루밀리온이라는 분을 아세요?”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근위기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루밀리온 말입니까? 그 친구라면 바로 저 앞에서 근무 중입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그가 가리킨 것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다른 근위기사였다.
짧게 자른 금발에 꽤나 남자다운 외모를 가진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근무를 서고 있었다.
‘흐음, 누나의 약혼자라니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
나는 루밀리온에게 다가갔다.
“루밀리온 씨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갑자기 내가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루밀리온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저는 로라스 저하의 마법 선생이자 이번에 자작이 된 라엘 드리안이라고 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어떻게……. 그보다 지금은 근무 중입니다. 무슨 용건이신지?”
흠, 누나 말로는 상냥한 성격이라 하던데.
직접 만나보니 꽤 무뚝뚝한 성격처럼 보이는데?
“제 누나와 약혼을 했다고 해서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네? 설마 메이엔이 말하던 동생분이 드리안 자작님이셨습니까?!”
호오, 누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약간 발그레해져선 긴장이 풀렸어.
“누나가 제 얘기를 많이 했었나 보네요.”
“네, 네! 동생 중 하나가 행방이 묘연해서 무척이나 걱정된다고 했는데……. 이름은 들었지만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잔뜩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헤에, 평소에는 무뚝뚝한데 누나에 관해서는 사람이 달라지는 모양이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웃으며 쳐다보고 있으려니 횡설수설하고 있던 그가 부끄러운지 말을 멈추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애써 담담한 척하려는 그를 보며 나는 웃어주었다.
“아녜요. 겉보기처럼 무뚝뚝하신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네요.”
내 말에 루밀리온의 얼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붉어졌다.
저게 사랑에 빠진 남자의 얼굴인가?
평소라면 별생각 없었겠지만 그 상대가 나의 친누나이다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뭐, 누나가 선택한 남자니까 괜찮겠지만 첫인상은 마음에 드는군.
“근무 중이신데 방해하면 곤란하겠죠?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다, 다음에 메이엔과 함께 식사라도 함께하시죠.”
아무래도 처남이 될 나와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다.
“네. 그러죠.”
웃으며 대답해 주고는 나는 내 방이 있는 봄의 궁전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