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화 - 아바툴(2)
사람들이 마법사들을 모으고 아바툴을 상대할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어차피 나는 라제스에 나타난 것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까.
“외할아버님,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일단은 조사단의 단장인 외할아버지께 허락을 구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 불편한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이면 각지에서 소집한 마법사들이 모여들 거다. 그 전까진 돌아오도록 해라.”
일단은 나도 5서클의 마법사, 아바툴을 처리하는 데 참여해야 했으니까.
“네.”
담담히 대답하고는 아바툴이 보이는 곳에 차려진 비상대책 본부를 벗어났다.
본부를 벗어난 나는 그대로 라제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아버지는 아직도 라제스에 머물고 있을 터.
일단은 라제스에 대피령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라제스 시내는 갑자기 떨어진 대피령으로 인해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사람들은 귀중품만 챙긴 채로 아바툴의 둥지가 있는 서쪽을 제외한 나머지 문으로 대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저나, 아버지를 어떻게 찾지?
대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길 바깥에 서서 고민했다.
암살자다 보니 대놓고 돌아다니지는 않을 테니……. 일단은 지난번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했던 허름한 집으로 가봐야지.
그 허름한 집은 라제스의 서쪽 구획에 있었기에 나는 대피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갔다.
마침내 인적 드문 골목 안에 위치한 허름한 집에 도착한 나는 문을 열어보았다.
당연하게도 문은 단단히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역시 없나…….”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려는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없다는 거냐?”
“으에엑! 깜짝이야!”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아버지가 무덤덤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인기척 좀 내고 다녀요!”
“암살자가 인기척을 내고 다니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냐.”
음,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나타난 거예요?”
“도시 밖에 나타난 이상한 것을 살펴보다가 널 발견하고 따라왔다만. 장인어른도 보이더군.”
끄응,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를 찾았단 거로군.
“그래서,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냐.”
“아버지를 찾으러 왔죠.”
“나를? 왜?”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아버지는 대피 안 해요?”
“내가? 왜?”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아버지의 말에 나는 이마를 붙잡으며 아바툴의 둥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내 말을 다 들은 아버지는 흠, 하고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보통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마물이라……. 그게 만 마리 이상이 튀어나온다고.”
“네, 그러니까 아버지도 빨리 대피해요.”
“너는?”
“저야 당연히 아바툴의 둥지를 파괴하는 데 힘을 보태야죠.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요.”
내 말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며 쳐다보았다.
“많이 변했구나.”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나온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대피하실 거죠?”
내 물음에 아버지는 돌아서며 대답했다.
“아니, 일단은 상황을 지켜볼 셈이다.”
“위험한데도요?”
“우리는 알아서 몸을 빼낼 재주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너나 조심해라.”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쑥 하고 지면으로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
암살자로서 익히는 기술인 듯했다.
뭐, 확실히 몸을 빼낼 능력은 있어 보이는데…….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쳐다보던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일단 주의는 줬으니 아버지도 알아서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
나는 아바툴 대책 본부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대책 본부 주변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체스터 백작의 병력이 설치해 준 천막에서 고개를 내밀어보니 인근에서 소집한 마법사들로 주변이 가득했다.
국가의 명 때문에 억지로 참여한 마법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소집령에 덧붙인 말 때문에 온 것일 터였다.
[마물을 소탕한 후 마물의 생체 조직을 수집하는 것을 허락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마법사들이라면 침을 흘릴 만한 이유였다.
아직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 마물을 연구하는 것은 돈이 될 만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새로운 지식을 얻기에 충분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마물의 소재는 함부로 유통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카이서스의 말대로라면 아바툴은 죽고 나면 마력이 흩어져서 시체가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에 내가 외할아버지께 말해서 소집령에 특이 사항을 덧붙인 것이다.
아무리 국가에서 소집령을 내린다 해도 얻는 게 없다면 마법사란 족속들이 모여들 이유가 없을 테니까.
물론 아바툴이 죽고 나면 시체의 마력이 사라진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치유 마법을 사용 가능한 마법사 총 752명이 모였소. 대부분 3서클이나 4서클이지만 5서클 이상의 마법사들도 제법 있으니 이 정도라면 아바툴의 둥지를 파괴하기에 충분할 거요.”
외할아버지의 말에 체스터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인근의 군부대에서 보내온 병력과 라제스의 병력 일만으로 만약의 사태 때 마법사들을 보호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체스터 백작의 말에 외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책본부의 커다란 천막에서 나섰다.
“모두 준비들 하시오! 정오가 되기 전에 작전을 실행할 것이니!”
외할아버지가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자 주변의 병사들이 그 말을 복창했다.
그 말에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마법사들이 아바툴의 둥지 인근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만약의 사태 때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병력들이 아바툴의 둥지를 둘러싸고, 마법사들이 그 뒤에 서는 형태였다.
나도 자리를 잡고 긴장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등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응?”
내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역시 너 맞구나?”
“아리안 누나?! 누나가 여기 왜 있어요?”
청색 마탑에 있어야 할 아리안 누나가 어째서 여기에?
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어제 스승님의 부탁으로 칼리고 시에서 뭘 구하러 갔다가 왕실의 공고를 보고 이쪽으로 온 거야. 그러는 너는?”
칼리고 시라면 라제스 영지 바로 옆에 위치한 도시였다.
“저야 저 아바툴의 둥지를 조사하러 온 조사단원 중 한 명이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조금 놀랍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그럴 만도 하지. 그나저나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다들 모르는 사람들뿐이라 조금 긴장했거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쌀쌀맞아 보이는 표정인뎁쇼.
“저도 누나를 만나서 반가워요.”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게 사실이니까.
내 말에 어쩐지 아리안 누나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래? 나도 좋아!”
후, 여전히 표정이라든가 태도가 서툴다니까.
나야 속사정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기뻐한다는 걸 알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싫어하는 줄 알겠어.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해요.”
내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그녀가 내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나도 잘 부탁해.”
나와 아리안 누나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전을 개시하시오!”
외할아버지의 외침에 아바툴의 둥지를 둘러싼 인파들 사이에서 새하얀 치유 마법의 물결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도 가죠!”
“응!”
나와 아리안 누나도 사용할 수 있는 최대의 위력으로 힐링을 사용했다.
칠백이 넘는 마법사들이 동시에 사용하는 치유 마법의 빛이 거대한 아바툴의 둥지를 뒤덮었다.
다른 이를 치유하는 마법들이 아바툴의 둥지에 닿자 표면의 검은 점액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
대체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몰라도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바툴의 둥지에 달린 커다란 눈동자도 고통스러운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저 아바툴의 둥지는 단순한 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무언가인 듯하다.
“효과가 있다!”
“와아!”
누군가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소리쳤다.
아바툴의 둥지는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순탄하게 아바툴의 둥지를 파괴할 수 있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 그 순간.
아바툴의 둥지가 쩌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뭐지?!”
치유 마법에 의해 둥지가 부서지는 것이 아니었다.
-캬아아!
둥지의 부서지는 껍질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수많은 괴성이 들려왔다.
“이런 제길!”
“모두 전투 준비!”
둥지 안에서 아바툴들이 튀어나오려는 것이었다.
<흐음? 이렇게 빨리 부화할 리가 없는데……. 뭔가 수작을 부린 모양이군.>
‘지금 그런 걸 한가롭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에라도 둥지 안에서 튀어나올 듯 아바툴들이 부서져 가는 껍질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려는 놈부터 노려!”
마법사들 중 누군가가 빠르게 판단해서 소리쳤다.
마법사들이 둥지의 깨진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둥지 전체를 뒤덮던 치유 마법이 깨진 부분으로 집중되며 튀어나오려는 아바툴들을 녹였다.
-키에에엑!
수많은 아바툴이 내지르는 비명으로 인해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캬아아아!
첫 번째 아바툴이 둥지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아바툴이 부서지는 둥지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정도 크기에 검은 점액질로 둘러싸인 거미 같은 모습이었다.
아바툴들이 4쌍의 가늘고 긴 다리를 움직여 빠르게 기어왔다.
“저게 뭐야!”
“으아아!”
“물러서지 마라! 놈들은 마법사들이 처리해 줄 테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기만 해!”
둥지를 둘러싸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고함이 마구 터져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마물의 모습에 겁에 질린 병사들에게 지휘관들이 소리쳤다.
병사들의 검과 창으로는 아바툴을 죽일 수는 없다.
하나 막을 수는 있다.
병사들이 막고 있는 사이 마법사들이 치유 마법을 사용해서 아바툴을 죽이면 된다.
“저것들……. 다 해치울 수 있을까?”
곁에 있던 아리안 누나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해봐야죠.”
안 그러면 잡아먹힐 테니까.
나는 뒷말은 삼킨 채로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어제 대피령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라제스 내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터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 사람들도 모두 죽는다.
“물러서지 마라!”
“오른쪽을 지원해!”
병사들과 마법사들이 쉴 새 없이 소리쳤다.
빠르게 기어와 길쭉한 팔을 휘두르는 아바툴을 향해 병사들이 검과 창을 휘둘렀으나 움직임을 잠시 동안 막는 것이 다였다.
찔리고 베인 자리가 그대로 재생해 버렸으니까.
하지만 치유 마법은 달랐다.
-끼에에에!
치유 마법의 하얀 빛이 닿는 순간 치이익 하고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바툴의 몸이 녹아내렸다.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부서진 둥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바툴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마물인 아바툴들은 두려움이라는 것도 없는지 계속해서 몸을 던지듯 달려들었다.
“으악!”
마법사들을 지키는 병사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치유 마법에 맥없이 쓰러진다 해도 마물은 마물, 병사들의 전투력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캬아아!
아바툴들은 녹아내린 동족의 시체를 뛰어넘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수천의 아바툴이 바글거리는 모습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둥지가 품고 있는 아바툴이 만 마리가 넘으니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셈이다.
“라엘! 이거 위험한 것 같은데?”
아리안 누나가 수없이 몰려드는 아바툴의 기세에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겁먹지 마요! 아무리 많다고 해도 언젠가는 끝이 날 테니까.”
“하지만 너무 많은데?”
확실히 그건 그렇지.
“라엘! 조심해!”
몰려드는 아바툴을 응시하며 치유 마법을 쉴 새 없이 사용하던 아리안 누나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아바툴 한 마리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
나는 당황해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급히 힐링을 쏟아부었다.
-키에에에!
내 근처까지 다가왔던 아바툴이 괴성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헉, 헉. 큰일 날 뻔했네.”
<조심해라. 아직 놈들은 한참 남았다.>
알고 있다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바툴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병사들을 뚫고 마법사들에게 달라붙은 것이 조금씩 보였다.
병사들과 아바툴의 숫자는 비슷했지만 워낙 전투력 차이가 많이 났다.
게다가 마법사들도 쉴 새 없이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마나가 부족해.’
내가 마나가 고갈되어가는 느낌을 받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쉴 새 없이 마법을 난사하다 보니 마나가 떨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으악!”
“끄억!”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안 좋아짐에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지려던 그 순간.
-크에에…….
갑자기 아바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치유 마법에 당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을 향해 다가오다가 갑자기 픽, 하고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지?”
나는 영문을 몰라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