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화 - 아바툴
“괴생물체는 거대한 알처럼 생겼다 하네. 검은 점액질과 같은 것에 뒤덮여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눈이 달려 있다더군.”
국왕님의 설명에 외할아버지는 턱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말만 들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접 가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사옵니다.”
‘카이서스, 너도 모르겠어?’
<글쎄다. 아무래도 마수와 관련된 것 같긴 한데……. 나도 직접 봐야 알 것 같다.>
마수라면 마계의 몬스터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외할아버지의 말에 국왕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팔렌 백작, 그럼 부탁하겠네.”
“예, 전하.”
순식간에 외할아버지가 라제스로 직접 가는 것이 결정되었다.
“전하! 저도 라제스로 가겠습니다.”
“자네가?”
갑자기 내가 끼어들며 말하자 국왕님이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예. 저를 돕는 드래곤의 지식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흐음……. 그것도 그렇겠군.”
잠시 생각하던 국왕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라제스로의 동행을 허락했다.
“그러면 조사단으로 네팔렌 백작과 라엘 군을 보내는 것으로 하겠다. 보조할 인원들은 네팔렌 백작이 알아서 뽑아 가게.”
“예, 전하.”
이만 물러가서 준비하라는 듯한 국왕님의 손짓에 나와 외할아버지는 회의실을 나섰다.
“네가 따라온다는 건 드래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냐?”
“실질적인 도움은 안 되겠지만……. 드래곤의 지식은 빌릴 수 있을 거예요.”
그때 갑자기 뒤에서 왕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
“아, 저하.”
왕자는 씨익 웃더니 외할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팔렌 백작도 오랜만이야. 그나저나, 내 선생이 백작의 외손자일 줄은 정말 몰랐는걸.”
왕자가 짓궂게 웃으며 한 말에 외할아버지는 끙, 하는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저도 몰랐습니다.”
골치 아프다는 외할아버지의 반응에 왕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이 가족을 찾아서 다행이야. 네팔렌 백작과도 앞으로 좀 더 친해질 수 있겠어.”
왕자의 말에 외할아버지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색이었다.
“이 늙은이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질색한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왕실에서 꽤나 큰 신뢰를 받으면서도 어째서 권력이 약한가 했더니, 외할아버지는 남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왕자님도 안에 계셨던 겁니까?”
“물론이지. 나도 왕가의 사람이니 이런 중요한 자리에는 참석해야지. 그보다 아쉬운데?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떠난다니.”
그래서 내가 돌아온 것이나 나와 외할아버지의 관계를 알고 있던 거군.
“죄송합니다, 왕자님. 아무래도 저를 가호하는 드래곤도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요.”
“오, 그럼 이번에 자네를 가호하는 드래곤이 출현하는 건가?”
“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와 그는 영혼으로 이어져 있기에 제가 보는 것을 그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직접 가보려는 것이고요.”
사실은 영혼으로 이어진 끈끈한 사이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내 몸 안에 불법 주거를 하고 있는 거지만.
“흠, 그런 것인가.”
약간은 아쉽다는 듯 말한 왕자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라제스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무사히 잘 해결하고 오게!”
“아하하……. 네.”
외할아버지를 내버려 두고 나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한 왕자의 모습은 약간 부담스러웠다.
뭐, 외할아버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 * *
바로 그다음 날.
외할아버지가 불러 모은 학자들로 이루어진 조사단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라제스로 이동했다.
라제스를 떠났다 돌아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살벌하네요.”
텔레포트 이동소를 나오며 주변을 살핀 내 말에 외할아버지가 대꾸했다.
“아마도 어제 아침에 발견된, 눈알이 달린 거대한 알 때문이겠지.”
듣자 하니 내가 라제스를 떠난 다음 날 갑자기 나타난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너무도 크고 음산한 분위기의 그것에 놀란 라제스의 영주가 곧장 왕실에 보고를 했고, 그래서 우리가 오게 된 것이다.
“일단은 우리도 그것을 보러 가지.”
조사단의 단장인 외할아버지의 말에 10명의 조사단은 그 거대한 알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거대한 알이 위치한 곳은 라제스 성에서 눈에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그레메인 평야였다.
눈에 보이는 거리라고 해도 걸어서 가면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말과 마차를 타고 거대한 알이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에 마차에서 내린 내가 본 것은…….
“맙소사. 이게 대체 뭐야?!”
거대한 저택 세 개 정도를 합쳐놓은 크기의 알을 가까이서 보자니 더욱 커 보였다.
“흐음, 이 늙은이도 생전 처음 보는 것이로군. 꽤나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어.”
외할아버지의 말에 다른 학자들도 한마디씩 보탰다.
“이런 거대한 마물의 알이라면 혹시 타다노스의 알이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타다노스의 알에 눈알이 있다는 기록은 없어요.”
“으음, 어느 문헌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는 소리군요.”
“일단은 표면을 덮고 있는 점액을 체취해서…….”
학자들이 이리저리 떠들어대는 사이 나는 거대한 알을 쳐다보았다.
‘카이서스, 이게 대체 뭔지 알겠어?’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잠시 침묵했다.
<끄응, 이거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 같은데.>
‘뭔지 알고 있어?’
<알다마다. 이런 커다란 알에 눈알이 달린 건 하나뿐이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알에 달려 있는 눈알은 뒤룩뒤룩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이건 아바툴의 둥지다.>
“아바툴의 둥지?”
처음 듣는 말에 내가 속으로 말하는 걸 깜빡하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고 말았다.
“뭣이? 아바툴의 둥지라고?!”
그 말에 곁에 있던 외할아버지가 깜짝 놀란 듯 소리치며 나를 돌아보았다.
“네? 아, 네. 저를 가호하는 드래곤 말로는 아바툴의 둥지라 하는데……. 뭔지 아세요?”
내 물음에 외할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문헌에서 이름과 간략한 설명만 보았을 뿐 자세히는 모른다. 문헌에 언급된 바로는 만 마리가 넘는 아바툴이라는 마물을 품고 있는 것이라 하더구나.”
만 마리가 넘는 마물이라니!
“대체 아바툴이라는 마물이 뭐죠?”
“끄응, 그건 내가 본 문헌에서도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너의 드래곤에게 한번 물어봐라.”
‘카이서스! 대체 무슨 마물이 나오는 거야?’
<엄청나게 귀찮은 놈들이지. 먼 과거, 마계와의 전쟁 말에 마족 놈들이 만들어낸 마물이다. 무기도 통하지 않고, 마법에 대한 내성도 강해서 상대하기가 귀찮은 주제에 숫자도 더럽게 많아! 인간들로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놈들이었지.>
뭐야, 그거,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는다는 거잖아.
‘그런 걸 대체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뭐,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 버리면 끝이었다.>
‘그건 드래곤이나 가능한 일이잖아.’
<그래서 옛날에 꽤나 고생했었지. 그러다 결국은 해치울 방법을 찾아냈지만.>
‘방법? 그게 뭔데?’
<치유 마법.>
“엥?!”
믿기 힘든 말에 내가 괴상한 소리를 내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외할아버지와 학자들이 의아하단 표정이 되었다.
혼자서 가만히 있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니 이상하게 보일 만도 하지.
<말 그대로다. 아바툴이란 마물은 죽음의 기운을 뭉쳐 만들어낸 언데드. 생명력으로 가득한 치유 마법에는 쥐약이더라고.>
“치유 마법으로 해치울 수 있다니…….”
내 말에 외할아버지가 깜짝 놀란 듯 물어왔다.
“치유 마법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드래곤의 말로는 아바툴이라는 마물을 상대하는 데는 치유 마법이 효과적이라고 하네요.”
“놀라운 이야기로군.”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깁니다. 마물들 중에는 치유 마법에 피해를 입는 것도 있다고 했으니까요.”
학자들끼리 자신이 아는 바를 떠들어대는 것을 지켜보던 외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지금 그러고들 있을 땐가! 서둘러 라엘이 알아낸 바를 보고해야 할 것 아닌가!”
외할아버지의 말에 그제야 다른 학자들이 바삐 움직이며 이곳저곳에 연락을 취했다.
“그나저나 치유 마법만이 통한다면……. 꽤나 많은 수의 마법사가 필요할 텐데.”
엄청나게 커다란 아바툴의 둥지에 치유 마법을 퍼부으려면 마법사 한둘 가지고는 안 될 듯했다.
게다가 만약 둥지 안에서 아바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라제스에 나타난 것이 아바툴의 둥지라는 것, 그리고 처리 방법은 오로지 치유 마법뿐이라는 것을 학자들은 왕궁은 물론 근처의 군부대에도 전달했다.
아마 인근의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소집되겠지.
마계의 존재인 마물이 만 마리나 뛰쳐나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런데 이 정도의 심각한 일이라면 드래곤이 나서도 되는 것 아니야?’
보통 몬스터도 아니고 마계의 마물이 나타난 일인데 말이야.
<무리다. 마계와 문이 직접적으로 열린 정도가 아닌 이상 이 정도 일로는 드래곤은 움직이지 않는다. 세계의 규칙에 어긋나니까.>
그놈의 세계의 규칙.
‘어디서 나온 건지, 누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는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그 빌어먹을 세계의 규칙이야?’
<세계의 규칙을 어겼다간 이 세상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담담하면서도 서늘한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세상이 붕괴한다니, 대체 뭐야.
“그런데 대체 이 아바툴의 둥지가 어떻게 라제스 영지 앞마당에 나타난 것일까요.”
그때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아마도 칼라마쉬의 서를 가진 자들이겠지.”
외할아버지의 대답에 나는 타이런 제국을 떠올렸다.
칼라마쉬의 서를 가져간 것은 제국이다.
하지만 아무런 물증이 없는 데다 그들의 위세가 강력하여 아무런 손을 쓰지도 못한다.
그러는 사이 타이런 제국은 아바툴의 둥지를 우리 왕국, 그것도 내 고향의 앞마당에 만들어 버렸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지금 분노에 사로잡혀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분노하는 나에게 카이서스가 충고했다.
확실히 그건 그렇지.
지금 아무리 내가 화를 낸다고 해봐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단은 아바툴의 둥지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었다.
“왕궁에서 통신이 왔습니다. 인근의 마법사들을 모아서 이곳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마침 왕궁에서도 우리의 연락에 답신이 왔다.
그때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누군가가 우리들에게로 다가왔다.
“왕궁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그렇소. 조사단의 단장을 맡은 프란시스 네팔렌 백작이오.”
외할아버지의 말에 다가온 사내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라제스의 영주인 제리안 체스터 백작입니다. 빠르게 와주셨군요. 저 괴상한 것의 정체는 알아내신 겁니까?”
음, 어릴 때부터 라제스에서 살았지만 영주님을 보는 건 처음이네.
그의 물음에 외할아버지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아바툴의 둥지라고……. 굉장히 위험한 것이오. 저 안에는 만 마리가 넘는 수의 마물이 들어 있소.”
“만이라고요?!”
만이라는 단위에 체스터 백작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검도, 마법도 통하지 않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체스터 백작의 말에 외할아버지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알아낸 바로는 치유 마법이 저것에게 독이라고 하오. 지금 왕실의 명으로 인근에 치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들을 모으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렇습니까. 자고 일어나니 저 이상한 것이 영지 바로 앞에 생겼을 때 어찌나 당황했는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식은땀을 닦으며 말하는 체스터 백작의 모습에 외할아버지는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마법사들을 모아서 저 둥지를 파괴하기 전에 안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라오.”
외할아버지의 말에 체스터 백작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마법사들을 모아서 저 둥지를 치유 마법으로 녹여 버리느냐, 아니면 그 전에 아바툴의 떼가 튀어나오느냐.
그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