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화 - 가족
나는 아버지와 라핌을 따라 한참이나 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우리 세 사람 사이의 무거운 침묵은 북적북적한 시내를 벗어나 한산한 골목으로 들어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디까지 갈 셈이에요?”
내 물음에 앞장서서 걷던 아버지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다 왔다.”
아버지가 들어선 곳은 허름하고 작은 집이었다.
의자와 책상 같은 몇몇 가구를 제외하면 텅 빈 곳이었다.
“여긴 어디에요?”
<네 머릿속처럼 텅텅 비어 있군.>
‘넌 눈치도 없냐? 지금은 헛소리할 때가 아니야!’
아버지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곳이지. 일단 앉아라.”
의자를 끌어다 앉은 아버지가 맞은편 의자에 손짓하며 앉을 것을 권했다.
“대체 아버지는 뭘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내가 소리친 말에 곁에 서 있던 라핌이 불쾌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 아버지를 존경한다거나 그런 거겠지.
내 말에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라엘……. 세인트혼이라는 단체를 알고 있느냐.”
세인트혼?
“그게……. 대체 뭐죠?”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버지는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술이다. 마실 테냐?”
“술 같은 거 마실 기분 아니거든요?”
내 말에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라핌이 어디선가 가져와 내민 잔에 술을 조금 따라 마신 아버지가 내 물음에 대답했다.
“비밀결사 암살단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의 수장이고.”
…에?!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나는 입을 벌린 채로 할 말을 잃었다.
아, 암살단의 수장이라고?!
무뚝뚝하고 엄하긴 했어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는데!
그보다 우리한테는 평범한 용병이라고 했었잖아!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당연히 용병이란 건 위장이었다.”
“아, 아니. 그보다 암살단이라니. 범죄자라는 말이에요?!”
<아버지가 암살자였다니. 나름대로 놀랍군.>
카이서스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범죄자라니! 우리는 그림자 속에서 세상을 위협하는 악당들을 제거할 뿐이다!”
듣고 있던 라핌이 내 말에 발끈한 듯 소리쳤다.
“라핌, 가만히 있어라.”
씩씩거리던 라핌이 아버지의 말에 움찔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음지의 일인 건 마찬가지네요. 그런데 어째서 제게는 정체를 밝히시는 거죠?”
암살단의 수장이라니, 그런 건 비밀로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눈을 찌푸리며 묻자 아버지는 담담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아들이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여태껏 숨겨오다가 이제야 말해주면서. 게다가 저를 버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라졌잖아요.”
“끝까지 들어라.”
여전히 담담한 아버지의 말에 나는 입술을 비죽이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세인트혼의 일개 단원이던 시절, 네 엄마를 만나서 결혼하고……. 너희 남매들을 낳았다. 세인트혼에 가족을 갖지 말라는 규율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술로 입술을 축인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엄마와 너희들에게는 비밀로 해두고 계속해서 세인트혼의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몇 달에 한 번씩 꽤 오래 집을 비울 때가 많았지.
그게 그 세인트혼의 활동이었단 건가?
“그러다가 네가 집을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세인트혼의 단장이 되게 되었다.”
그거랑 나만 두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사라진 게 무슨 상관이지?
“일개 단원이라면 모를까, 단장이 된 이상 가족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었다. 세인트혼이 비밀리에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적은 있다. 그들에게서 네 엄마와 너희 남매를 지켜야 했어.”
암살단이니 당연히 적대하는 세력도 있겠지.
“그래서, 몰래 자취를 감추었다는 거예요? 나는 버리고?”
“버리다니, 집을 나간 건 너다. 너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어.”
아니, 그건 맞지만…….
“하아, 맙소사. 아버지가 암살단의 두목이라니…….”
“그러니까 우리는 그림자 속에서 사악한 자들을……!”
라핌이 내 말에 재차 발끈해서 소리쳤다.
“시끄럽다, 라핌.”
“넵!”
그래 봐야 아버지의 한마디에 금방 입을 다물었지만.
“그보다, 왜 이분은 아버지가 미혼인 걸로 알고 있는 거예요?”
까딱하면 목이 날아갈 뻔했단 말이야.
“맞아요. 전 수장님이 미혼이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약간은 실망한 듯한 라핌의 말에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 미혼이라 말한 적은 없다.”
흥, 아버지답군.
나는 혀를 차며 다른 것을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요?”
“네 엄마와 누이는 외가로 보냈고, 네 형과 동생은 내 밑에서 일하고 있다.”
“형과 동생이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건 당연히 아버지가 진짜 직업을 말했다는 거고, 어머니와 누나는요?”
“물론, 그 둘도 알고 있다.”
“별말 안했어요?”
“네 엄마야 언제나 내 편이고, 네 누이도 별말 하지 않았다.”
끄응, 남편과 아버지가 암살자라는데 왜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은 건데?!
게다가 형이랑 동생은 같은 암살자의 길이나 걷고 있고 말이야!
“그보다 너……. 마법은 언제 익힌 거냐? 분명 너에게 마법에 대한 재능은 쥐꼬리만큼도 없었을 텐데.”
큭,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오러 능력자였던가.
오러 익스퍼트 정도라고 알고 있었지만 지금 와선 그것도 정말인지 모르겠고…….
아무튼 오러를 다를 수 있다는 건 마법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내가 마법을 익힌 것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끄응, 집을 나온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마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붉은 마탑 소속이에요.”
“붉은 마탑 소속이라고? 설마……. 네가 그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였느냐?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붉은 마탑이라는 내 말에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와 내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암살단은 정보력도 있어야 하니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의 신상 정보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
“네, 그렇게 됐어요.”
“네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였다니…….”
아버지는 꽤나 놀란 듯했다.
“너도 우리 세인트혼에 들어올 생각은 없느냐?”
“암살단 같은 건 싫거든요? 게다가 전 이미 소속된 곳이 있어요.”
붉은 마탑과 왕실 두 군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약 내가 암살단 같은 데 몸을 담기라도 했다간 그 두 곳에 폐를 끼칠 거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암살단의 수장과 단원이라는 것만으로도 알려지면 피해라고.
“흠, 그러냐…….”
아버지는 별로 아쉽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그보다, 나를 찾은 이유는 뭐냐?”
“굳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찾은 게 아니거든요? 어머니와 누나를 만나고 싶어서 찾은 거예요. 그보다, 저희한테 외가가 있었어요?!”
분명히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아 출신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외가라니,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흠, 그러고 보니 너는 외가에 대해서 아직 모르겠구나. 네 엄마의 집안에 대해서는 숨겨왔으니까.”
어머니의 집안에 대해서 숨겨왔다고?
도대체 왜?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네 엄마의 집안에서는 나와 네 엄마의 사이를 허락해 주지 않았지. 그래서 몰래 사랑의 도피를 하고 집안에 대한 것을 숨기기로 했던 거다.”
조금은 뻔한 이야기였다.
사랑의 도피를 한 후 가문을 숨기고 고아 출신인 척해왔다는 것이다.
“으음, 그래서 엄마랑 누나가 있는 외가가 대체 어딘데요?”
“네팔렌 백작가다.”
에엑?!
결혼을 반대하는 것 때문에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것에서 ‘귀족가인 모양이다’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네팔렌 백작가라고?!
네팔렌 백작가라면 권력은 약하지만 학자 집안으로서 이름 높은 가문이잖아!
가주인 프란시스 네팔렌 백작은 거의 은거하다시피 하지만 아직도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면 왕실에 불려 가곤 하는 학자였다.
“제 외가가 네팔렌 백작가였어요?!”
“그래.”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질 정도였다.
그런 대단한 외가를 그냥 지나가는 일처럼 말하다니.
<뭐야, 너 나름대로 좋은 집안의 핏줄이었냐. 늘 멍청하기에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줄 알았더니.>
‘젠장, 좀 가만히 있어봐. 지금은 그렇게 헛소리나 내뱉을 때가 아니야!’
<크크크, 내 맘이다.>
끄응, 그냥 내가 무시하는 게 속 편하겠군.
알고 보니 아버지는 암살단의 수장인 데다가 어머니는 대단한 학자 가문의 딸이었다니.
오만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잠식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는 왕궁에서 왕자의 마법 선생을 하고 있다 들었으니……. 볼일이 생기면 트럼벨의 녹색구름 주점에서 로터스를 찾거라.”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라핌과 함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버지가 나간 후에도 한참이나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대체 뭐야…….”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집안 내력을 갑자기 들은 탓에 머리가 멍했다.
<괜찮느냐?>
평소에는 늘 내 속을 긁기만 하던 카이서스도 눈치라는 게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어머니랑 누나가 보고 싶어.”
나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흠.>
카이서스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트럼벨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느 저택의 대문 앞에 서 있다.
“으음…….”
<뭐 하느냐? 가만히 서서 석상 흉내라도 내려는 거냐?>
‘시끄러, 고민하는 중인 거니까.’
내가 서 있는 곳은 네팔렌 백작가의 저택 앞이었다.
뭐라고 해야 한담?
내가 이 집 외손자인데 어머니랑 누나를 뵈러 왔다고?
끄응, 다짜고짜 찾아와서 그런 말을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 같은데…….
한참이나 서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음……. 무슨 일로 오셨소?”
나름대로 신경 써서 차려입은 청년이 한참이나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신사가 저택에서 나와 대문 너머의 나에게 물었다.
아마도 네팔렌 백작가의 집사겠지.
“아, 저는 라엘이라고 합니다. 마를렌이라는 분을 찾아왔는데요.”
“내 딸을? 그러고 보니 분명 마를렌의 아이 중 하나의 이름이 라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집사가 아니라 프란시스 네팔렌 백작, 그러니까 내 외할아버지였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외할아버지의 깊게 가라앉은 시선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몸이 쪼그라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의 외손자이기도 하지만 딸을 데리고 도망쳤던 남자의 아들이기도 하니까.
미워하지는 않더라도 좋게 생각하기는 힘들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네. 제가 그 라엘입니다.”
내가 그 외손자라는 말에 외할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마를렌과 많이 닮았군. 그 빌어먹을 놈과도 닮긴 했지만 말이다.”
“하하…….”
내가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기만 하자 외할아버지가 대문을 열며 말했다.
“마를렌이라면 메이엔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들어와라.”
메이엔은 우리 누나의 이름이다.
약간은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내치지는 않는군.
외할아버지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간 나는 어머니와 누나가 있다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기다.”
그렇게 말하며 외할아버지가 문을 연 방 안에는…….
“아버지도 차 드실……. 라엘?”
외할아버지에게 차를 권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멍하니 내 이름을 부르는 사십 대 초반의 여인.
까맣고 긴 머리, 조금은 잔주름이 생겼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머니…….”
“라엘!”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기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도 달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 보고 싶었어요.”
“아들, 갑자기 집을 나가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게다가 연락마저 끊겨서 엄마는 네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나와 같은 푸른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죄송해요…….”
어머니의 품에서 울먹이고 있자니 옆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만 보이고 나는 안 보이는 거니?”
반가움이 가득 담긴 상냥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까맣고 긴 머리의 미인.
“누나!”
우리 남매의 첫째이자 올해 스물일곱이 되었을 누나는 예전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