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 가족을 찾아서
다음 날 아침 일찍 편안한 옷차림으로 숙소를 나와 거리로 향했다.
우선은 예전에 살던 집 근처로 향했다.
혹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먼저 전에 살던 집으로 가보았다.
역시나 지난번에 이사 온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일단은 라제스에 오기는 했는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일단은 주변에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어.
근처의 집들을 찾아가서 최근 아버지를 본 적 없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하나같이 못 봤다는 것이었다.
대체 디크론 녀석은 어디서 아버질 본 거야?
어디서 본 건지도 물어볼걸.
<지금도 이곳에 남아 있을 거란 보장도 없지 않느냐. 게다가 그 녀석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카이서스가 불길한 소리를 해댔다.
‘정말 그렇다면 곤란하단 말이야.’
다음에 또 언제 가족에 대한 소식을 들을지 모르니까.
<흠, 그럼 여기서 죽치고 있지 말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들을 돌아다녀 보는 건 어떠냐. 혹시 모르지, 네 부친을 만날 수 있을지도.>
확실히 카이서스의 말대로 옛집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보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으로 가보는 게 좋을지도.
‘좋아, 간만에 네 말을 들어볼까.’
<오늘만 그러지 말고 평소에도 잘 들어라, 멍청아.>
툴툴거리는 카이서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나는 라제스의 시가지로 향했다.
내가 살던 동네는 라제스의 외곽에 위치한 한적한 곳이었다.
일단은 라제스 중앙에 위치한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상인 조합부터 가볼까.
딸랑-
문을 열자 도어벨이 울렸으나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버티렌에 가는 화물 송장은 아직이냐?!”
“빨리빨리 움직여! 조금 있으면 물건이 출발한다고!”
나름 대도시라고 라제스 상인 조합의 아침은 무척이나 바빴다.
“으음, 누구 물어볼 만한 사람은 어디 없나?”
다들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는지라 물어볼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무슨 일이시죠?”
뻘쭘하게 서 있자니 아직 앳된 티가 나는 소년이 다가와 물었다.
가슴께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아하니 조합에서 일하는 사환인 듯하다.
“아, 저기 사람을 찾는 중인데…….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아,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어떤 분을 찾으시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상인 조합에는 그만큼 정보도 많이 있게 마련.
나처럼 사람을 찾는 사람이 드문 것이 아닌지 소년은 능숙하게 물어왔다.
“음, 데스웬이라는 사람인데. 튀타 태생에 1년 전까지 라제스에서 살던 사람이야. 얼마 전에 다시 라제스에 나타났다고 하고. 나이는 46세, 생긴 건 나와 같은 짧은 검은 머리에 170센티 정도, 마른 체격이야.”
“46세의 데스웬 씨…….”
소년 사환은 서류 뭉치를 뒤적이며 아버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상인 조합을 거쳐 간 사람들의 신원이 적혀 있는 서류인 듯하다.
한참 서류를 살피던 소년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저희 조합에는 들르지 않으신 것 같네요. 따로 탐문 의뢰를 하시는 건 어떠세요?”
탐문 의뢰?
그런 것이 따로 있었나?
아마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상인의 특성을 이용해 사람이나 물건을 대신 찾아주는 서비스인 듯하다.
“응, 그럼 그 탐문 의뢰라는 걸 부탁할게.”
“그럼 성함과 찾으시는 분과의 관계, 연락할 곳을 알려주세요.”
“내 이름은 라엘이고 그 사람은 내 아버지야. 연락은……. 음, 혹시 통신기 등록도 가능해?”
“물론이죠!”
내가 목에 차고 있던 통신기를 내밀자 소년은 내 통신기를 상인 조합 내의 통신기에 가져다 댔다.
흐음, 통신기의 등록은 저렇게 하는 건가.
“14502번……. 라엘 씨.”
그러고는 내게 통신기를 돌려주며 말했다.
“통신기 등록 완료했어요. 찾으시는 분을 찾으면 저희가 연락을 드릴 테니 어디든 상인 조합을 찾아오셔서 수수료를 내시고 정보를 들으시면 되요.”
“고마워.”
소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상인 조합을 나왔다.
“에휴, 일단 여기는 허탕이네.”
아무래도 정보가 많이 모이는 곳이라 찾아오긴 했는데.
큰 소득은 없었군.
그래도 일단 탐문 의뢰를 해두었으니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여겨야지.
상인 조합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계속 찾아보는 게 낫겠지.
일단은 경비대 쪽으로 가볼까.
왕자에게 받아 온 협조서가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거봐라, 내가 받아두라고 했지?>
‘그러게, 네가 도움이 되네.’
<이놈! 평소에는 내가 쓸모없다는 듯한 그 태도는 뭐냐!>
‘아니, 솔직히 쓸모없잖아…….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크음……. 지난번에 널 살려준 게 누군데! 게다가 내가 아니었으면 너는 마법도 익히지 못했을 것이지 않느냐!>
뭐, 그건 그렇지.
왕궁을 떠나기 전 카이서스가 하도 받아두라고 해서 받긴 했는데 정말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라제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경비대라면 나보다 빨리 찾을 수 있겠지.
나는 곧장 가까운 경비대 초소로 가서 협조 공문을 내밀어 도움을 구했다.
왕자가 직접 작성하고 직인을 찍은, 소지자에게 협조하라는 문서는 효과가 뛰어났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에 기다렸더니 경비대장이 직접 달려왔다.
왕자의 직인을 확인한 그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의를 보이며 아버지를 찾아주겠노라 약속했다.
경비대원들에게 나눠줄 몽타주를 작성하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금방 저녁이 되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하지 마십쇼. 라제스의 경비대장인 저, 칼조렌이 아버님을 찾아내겠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강조하는 것을 보니 윗선에 말 좀 잘해달라 이거로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경비대 초소를 나섰다.
그는 모든 경비대에게 수색 지시를 내리겠다고 했다.
아직 라제스 내에 있다면 금방 찾을 수 있겠지.
상인들과 경비대가 찾아다닐 테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이나 주점을 돌아다녔다.
언제까지 상인들과 경비대가 찾아내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 * *
라제스에 온 지도 일주일째.
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상인 조합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은 물론 경비대를 찾아가 보았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라제스가 작은 도시가 아니라지만 이렇게까지 못 찾을 수가 있나?
상인들은 물론이고 경비대까지 몽타주를 들고 다니며 찾는데.
덤으로 나도 매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고 말이야.
대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거야?
정말 카이서스의 말대로 라제스를 떠난 건가?
그렇다면 곤란한데…….
디크론이 아버지를 만났다는 게 한 달도 전의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길거리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걸까…….
나름대로 재능도 생기고, 마법도 익히고, 사회적지위와 돈도 그럭저럭 생겨서 자신 있게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조급해한 걸지도…….
“에휴.”
한숨을 길게 내쉬자니 카이서스가 위로라도 하듯 말했다.
<뭐, 언젠가는 찾을 수 있지 않겠냐. 너무 실망하지 마라.>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아냐?’
내가 툴툴거리며 말하자 카이서스는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사과했다.
<클클, 미안하군. 드래곤은 성룡이 되고 나면 혼자서 살아가기에 네가 이렇게 가족에 집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집착이라니, 거참 말 이상하게 하네. 인간은 원래 가족을 소중히 한다고.’
<글쎄, 내가 봐온 인간들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만.>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가족을 만나고 싶어. 정확히는 어머니와 누나를.’
어머니와 누나를 만나려면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모친과 누이는 너를 많이 아껴줬나 보군?>
‘응. 아버지와 형, 남동생이 내가 재능이 없다고 무시할 때도 언제나 따스하게 대해줬어. 바뀐 지금의 나를 보여줘서 두 사람이 안심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
물론 아버지와 형제들에게도 바뀐 내 모습을 보여줘서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기도 하다!
<뭐, 인연이라면 어떻게 되건 다시 만나게 될 거니 너무 다급해하지 마라.>
‘그게 말처럼 쉽냐.’
나름대로 생각해서 해준다는 것이 느껴져 툴툴거리긴 했지만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내면에 존재하는 카이서스가 내 심경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크크,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시끄러.’
카이서스와 투덜대면서도 나는 거리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라제스 서쪽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내 등에 가져다 댔다.
“어?”
내가 깜짝 놀라 돌아보려 하자 등 뒤의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돌아보지 말고 움직여.”
그렇게 말하며 상대는 내 등에 가져다 댄 것을 들이밀며 나를 움직이게 했다.
등에 맞닿은 것은 아무래도 품에 숨길 수 있는 단검 종류인 듯했다.
‘강도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등 뒤의 사람이 미는 대로 인적 드문 골목 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마법사라 하더라도 이렇게 가까이서 등 뒤를 잡히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노리는 거지?
마법 주머니 속의 돈과 보석은 드러낸 적이 없으니 그걸 노린 건 아닐 테고.
설마 내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는 걸 알고 제국에서 보낸 암살자인가?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보려 했으나 주변에는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나와 내 뒤의 사람은 인적 드문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 누구야? 나한테 뭘 하려는 셈이지?”
내가 조심스레 물은 말에 등 뒤의 사람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데스웬 씨를 찾는 이유가 뭐야?”
엥? 거기서 아버지 이름이 왜 나와?!
그보다, 내가 아버지를 찾는다는 건 알면서도 어째서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건 모르는 건데?
“아들이니까. 갑자기 사라져서 소식이 끊어진 가족을 찾는 것뿐이야.”
그 말에 상대는 나를 돌려세우더니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분에게 자식이 있다는 소리는커녕 결혼하셨다는 말도 못 들었어!”
자기가 모르면 거짓말이라니, 무슨 개소리야?
뒤돌아 확인한 상대는 목소리가 중성적이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혹시 동명이인 아니야? 내가 찾는 데스웬이란 사람은 아리따운 부인과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는 남자라고.”
“튀타 태생에 42세, 네가 그린 몽타주를 보았을 때 내가 아는 그분이 확실해!”
계속 그분이라 부르는 걸 보니 아버지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이 인간 집 밖에서는 미혼인 척하고 여자들 꼬시고 다니는 그런 거야?!
“그 인간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내 입에서 아버지란 말 대신 그 인간이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감히 그분에게 무슨 망발이냐! 대체 넌 정체가 뭐야?!”
“그 인간 아들이라니까?!”
“거짓말!”
끄응, 말이 통하지가 않는군.
마음 같아선 제압하고 아버지에 대해서 듣고 싶지만 오히려 내가 목젖 앞에 대어진 칼날에 제압당한 상태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라핌, 칼을 거둬라.”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걸어 나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데스웬 님!”
내 목에 단검을 들이대고 있던 여자가 칼을 거두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이전보다 훨씬 피곤해 보이는 인상의 아버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라엘.”
“데스웬 님, 이자와 아는 사이십니까?”
라핌이라 불린 여자가 당황한 듯 말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내 아들 중 하나다.”
“네?!”
전혀 몰랐다는 듯 라핌이 소리쳤으나 나의 시선은 아버지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아버지…….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갑자기 말도 없이 다른 가족과 함께 사라져 버리질 않나.
가족이 없다느니 그런 말이나 하고 다니고 말이야!
분노와 짜증이 반쯤 섞인 나의 시선에 아버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