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32화 (32/150)

032화 - 바다 손님

다음 날.

“어제 데려온 머메이드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던 도중에 고용인이 알려왔다.

“그래? 그럼 한번 만나봐야겠군.”

왕자가 남아 있던 차를 단숨에 마시며 말했다.

나 역시도 머메이드가 이곳까지 떠밀려 온 까닭이 궁금했으므로 왕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메이드는 손님방 중 하나에 옮겨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바닷물이 담긴 커다란 욕조에 앉아 있던 머메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방 안에 혼자 있던 그녀는 우리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래 봐야 욕조 안이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우리는 그대를 구해준 것이다.”

왕자는 자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보다 머메이드가 우리 말을 알아들을지는 모르겠네.

그 말에 머메이드는 물 위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당신들……. 누구? 여긴……. 어디?”

다행히도 머메이드는 우리 말을 아는 듯 조금은 어눌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크라우드 왕국의 왕자인 로라스 크라우드다. 그리고 이쪽은 내 마법 선생인 라엘. 어제 정신을 잃고 바닷가로 떠밀려 온 그대를 발견해서 데려왔다.”

잠시 말을 멈춘 왕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해도 알지 모르겠지만 여긴 데오른 항구 근처에 있는 내 별장이다.”

먼 바다에서 자기네끼리 살아가는 머메이드가 인간들의 지명을 알까 모르겠군.

“데오른……. 어딘지 몰라.”

역시나 말해줘도 그녀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리를 잔뜩 경계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와 눈이 마주친 왕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그리고 어째서 정신을 잃고 떠밀려 온 거예요?”

곤란해하는 왕자를 대신해 내가 물었다.

내 물음에 그녀는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나는 타밀레, 바다를 헤엄치다가 나쁜 사람을 만나서 도망치다가 정신을 잃었어. 어, 그런데 등이 안 아파?”

말을 하다가 등이 멀쩡한 것을 깨닫고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왕자가 말했다.

“등의 부상이라면 우리가 치료했다.”

혹시나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 데려온 치료 전문 마법사가 치료했기에 등의 부상은 작은 상처만 남았다.

“고마워! 너희, 착한 사람?”

으음, 대화를 나눠보니 이 머메이드는 뭔가 좀 모자라다고 해야 하나, 어린아이 같다고 해야 하나…….

타밀레의 해맑은 말에 나와 왕자는 멋쩍게 웃었다.

“뭐, 나쁜 사람은 아니야.”

왕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인어를 공격했다고……. 분명 인어 사냥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을 터, 밀렵꾼들인가.”

“인어 사냥이요?”

처음 듣는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이서스가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인간들 사이에는 인어의 살점을 먹으면 불로불사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 물론 개소리지만.>

내 말에 왕자가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 인어 사냥. 몰래 노예로 삼거나……. 고기를 먹어서 불로불사를 꾀하는 거지. 물론 오래전에 아무 근거도 없는 거짓이란 게 밝혀졌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곤 잠시 생각하던 왕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종족과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법으로도 인어 사냥은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만……. 인어 사냥을 하다가 잡히면 사형이고 인어의 고기를 먹은 자들도 처벌을 받는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어들을 사냥하는 사람은 있다는 건가.

하긴, 아무리 헛소문이라는 게 밝혀졌어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어의 고기를 찾는 자들이 있고, 한탕 크게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을 지닌 자들이 인어를 사냥한다는 건가.

“사람들의 욕심이란 정말이지 끔찍하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타밀레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하체만 제외하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야.

인어의 고기를 먹는 건 식인 행위나 다름없잖아.

정말이지 끔찍하기 짝이 없군.

자신들에게 인사를 해오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머메이드를 공격하는 사람들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왕자가 말했다.

“자, 그럼 치료도 끝났으니 이제 돌려보내는 일만 남았군. 타밀레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나?”

왕자의 물음에 타밀레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헤엄치면 집으로 갈 수 있어. 그렇지만 나 배고파서 힘이 없어…….”

다행히 집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 모양이군.

배고픈 거야 뭐, 먹을 것을 주면 되는 일이고 말이야.

“뭘 먹고 싶으냐?”

배가 고프다는 타밀레의 말에 왕자가 물었다.

“음, 나는 바다풀이면 괜찮아.”

“바다풀? 해초 말인가. 알았다.”

고개를 끄덕거린 왕자가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인어가 먹을 해초 요리를 가져와라! …그리고 셔츠도 한 장 가져와!”

뜬금없이 셔츠를 가져오라는 왕자의 말에 나는 의아했으나 금세 이해했다.

머메이드인 타밀레는 조개껍질로 중요부위만 가리고 있는 상태.

어린아이인 왕자에겐 자극이 과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차였다.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집으로 찾아간다는 거지?

애써 딴생각을 하는 나에게 대답해 준 것은 이번에도 카이서스였다.

<인어들은 본능적으로 해류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바다에서라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지.>

그거참 정말이지 편리한 능력이로군.

“그런데 인어들은 바다 생물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이야?”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왕자는 인어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응! 우리는 바다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어.”

“오오, 그것 참 대단하군. 그럼 바다의 괴수인 크라켄 같은 것과도 대화가 가능한 것이냐?”

“으음……. 크라켄은 무서워서 싫어.”

“으음, 해양 괴수들과 대화는 할 수 있지만 말이 잘 안 통하는 모양이군.”

그러는 사이 고용인들이 해초로 만든 샐러드와 셔츠를 가져왔다.

“이걸 입고 이걸 먹어라.”

자신의 앞에 놓인 셔츠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타밀레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떻게 입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끄응, 거기 누구 없나?”

결국 여성 고용인을 불러서 입히게 했다.

젖은 셔츠로 상체를 가린 타밀레가 해초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인어들은 포크라든가 하는 것을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주방장의 해초 샐러드를 한 입 먹은 타밀레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우에, 이상한 맛…….”

<크크크, 해초를 그냥 먹는 인어들에게 있어 각종 향신료를 더한 인간의 요리는 낯설겠지.>

그런 건 미리 좀 말하라고.

“아무래도 인어들은 요리한 해초보다 날것을 더 선호하는 모양입니다.”

내 말에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런가? 새로운 것을 알았군. 타밀레여, 그냥 해초를 가져다줄까?”

왕자의 말에 타밀레가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나 어린애 아니야! 편식 안 해!”

타밀레는 그렇게 말하긴 했으나 여전히 찡그린 얼굴로 해초 샐러드를 먹었다.

음, 겉으로 보기에는 성인인데 말투나 하는 행동을 보면 완전히 어린아이 같단 말이지.

혹시…….

“타밀레 양, 혹시 나이가?”

내 물음에 타밀레는 해초를 집어 먹던 손을 펼쳤다 하나씩 접으며 세기 시작했다.

“음……. 10살!”

…에? 여, 열 살?!

나는 물론이고 왕자도 크게 당황한 듯했다.

그냥 정신연령이 좀 낮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냥 어린아이였다니!

<크크, 인어의 성장을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지 마라. 인어의 육체는 10년이면 성장이 끝난다. 물론 제대로 된 성인으로서 인정받으려면 30년이 필요하지만.>

그러니까 한마디로 인어들은 육체의 성장은 빠르지만 정신의 성장은 느리다 이거네.

하아, 맙소사.

겨우 10살짜리 꼬맹이를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니.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보다, 인어 사냥꾼들은 10살짜리 꼬마를 공격했다는 거잖아?

더욱 화가 났다.

“흠, 수도로 돌아가면 아바마마께 말씀드려서 밀렵꾼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겠어.”

왕자도 나와 마찬가지인 생각인 듯 그렇게 말했다.

해초를 손으로 집어 오물거리는 타밀레의 모습을 보며 왕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로라스 저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

다급한 기색으로 달려온 고용인에게 왕자가 물었다.

고용인은 살짝 겁먹은 기색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수백의 머맨들이 해안가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머메이드에 이어 이제는 머맨인가?”

머맨이라면 분명히 인어의 남자 개체일 터였다.

“내 동족이 왔어?”

머맨이 왔다는 이야기에 타밀레가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타밀레를 데리러 온 건가 봅니다.”

“그런가 보군. 그런데 타밀레 하나를 데리러 수백 명이 몰려오다니, 설마 이 녀석 인어 사이에서 중요한 신분인가?”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왕자가 타밀레를 쳐다보았다.

해초를 손으로 집어 먹고 있던 타밀레는 우리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중요한 인어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우선은 타밀레를 데리고 나가보도록 하지. 밖에 누구 없나? 타밀레를 업게!”

왕자의 말에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고용인이 들어와 타밀레를 업었다.

“와아! 동족이 날 데리러 왔어!”

타밀레가 고용인의 등에 업힌 채로 신나서 떠드는 말에 나와 왕자는 피식 웃어 보였다.

겉보기에는 성인이더라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군.

우리는 근위기사들을 대동한 채로 바닷가로 이동했다.

별장 앞 바닷가에는 머맨들로 득시글했다.

머메이드와는 달리 녹색 비늘에 뒤덮인 인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늘을 제외하더라도 물갈퀴와 아가미 등이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수백 명의 벌거벗은 머맨들이 해안을 따라 올라와 있는 모습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살짝 징그러웠다.

“흠,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왕자도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무리의 가장 앞에 서 있던 머맨 하나가 유창한 대륙어로 소리쳤다.

“인간이여! 이곳에 머메이드 하나가 떠내려온 것을 보지 못했나!”

그의 말에 왕자가 눈짓하자 곁에 있던 근위기사가 소리쳤다.

“머메이드라면 우리가 발견해서 보호 중이다!”

그 말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머맨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어쩐지 뭔가 불안한데…….

“그 머메이드를 우리에게 넘겨라!”

그 말에 우리는 고용인의 등에 업혀 있는 타밀레를 보았다.

바닷가에 진을 치고 있는 머맨들을 본 타밀레는 어쩐지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왜 그래?”

왕자가 의아해하며 묻자 타밀레가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동족들은 나쁜 동족들이야. 막 다른 종족들을 해치고 물건을 빼앗고, 동족들도 공격하고 막 그래! 나를 괴롭힌 것도 저 동족들이야!”

한마디로 해적이라 이건가?

아무래도 타밀레를 공격한 건 인어 사냥꾼이 아니라 저들인 듯했다.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붉은 염료로 삼지창이 그려져 있었다.

뒤따라왔던 고용인들 중 하나가 그 표식을 아는지 말했다.

“머맨들로 이루어진 해적단인 패치스 해적단입니다.”

인간이건 인어들이건 할 것 없이 약탈하는 해적들인 모양이다.

그런 해적들이 해안가까지 수많은 인원을 끌고 올 정도라면…….

타밀레가 인어들 사이에서 뭔가 중요한 인물인 모양이다.

“어쩌죠?”

내 물음에 왕자는 근위기사의 등에 업힌 타밀레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는 잔뜩 겁을 먹고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해적단의 우두머리가 재차 소리쳤다.

“알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로 그 패치스다! 그 머메이드만 넘겨준다면 공격하지 않겠다!”

우리 측의 근위기사는 30명, 그에 비해 패치스 해적단의 숫자는 대충 봐도 열 배가 넘어 보인다.

그렇기에 패치스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친 것이다.

“으음…….”

근위기사들 사이에서 침음이 흘러나오며 왕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냥 넘겨주지 그러냐? 너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지 않느냐?>

카이서스가 귀찮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카이서스에게 있어선 인간이든 인어이든 하등한 존재이니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는 거겠지.

‘어떻게 어린아이를 해적들 손에 넘기란 말이야? 난 그렇게 못 해!’

카이서스에게 대답하며 나는 혹시나 해서 들고 나온 스태프를 그러쥐며 언제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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