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30화 (30/150)

030화 - 카락스

“드, 드래곤?”

“위대한 존재…….”

다들 얼이 빠져서는 카락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에 카락스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엄청난 기세가 폭사되어 나왔다.

“컥!”

“으윽!”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며 무릎 꿇었다.

“감히 내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고도 구경하듯 쳐다보는 것이냐.”

이, 이것이 드래곤 피어?

<멍청하긴, 저 녀석이 진심으로 피어를 발휘했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나는 몸이 좀 무거워진 것을 제외하면 남들처럼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내 안에 있는 카이서스와 드래곤 하트 덕분이겠지.

“카, 카락스 님! 불쾌하신 건 알겠지만 피어를 거두어주시면 안 될까요?”

내 말에 카락스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호오, 내 이름을 알다니. 너를 가호하는 동족이 알려준 것이냐? 한데 주변에서 동족의 냄새는 나는데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지…….”

카락스가 의아해하며 피어를 거두어들이자 모두들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헉, 헉…….”

“죽는 줄 알았어.”

그러거나 말거나 카락스는 흥미로워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너를 가호하는 드래곤은 누구지? 어떻게 가호를 받게 된 거냐?”

그의 물음에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 그게……. 말하기 좀 복잡한데요.”

내 말뜻을 알아차린 듯 카락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이 자리에서 사라져라. 난 이 인간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 있으니.”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회오리가 발생하여 사람들을 멀리 밀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오리는 나만 밀어내지 않았다.

어느새 회오리의 중심에는 나와 카락스만이 남게 되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는 바깥과 안을 차단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사라지자 카락스가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말해보아라. 어째서 인간인 너에게서 동족의 냄새가 나는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카이서스를 만난 일부터 심장을 먹은 일, 카이서스가 내 몸을 빼앗으려다 실패하고 나의 내면에 존재하게 된 것 등을 말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카락스는 내 말이 끝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이서스 녀석이 죽어서 네 안에 있다고?”

“네.”

내 대답에 카락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젠장, 하필이면 이놈이라니.>

대충 보아하니 그리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내가 살아 있을 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녀석이다.>

역시나.

주변이 떠나가라 한참을 웃어대던 카락스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지금 카이서스 녀석과 대화하는 거냐?”

“아, 네.”

“푸하하하하, 인간의 몸을 뺏으려다 실패해서 인간의 안에 갇힌 꼴이라니. 다른 녀석들이 알면 재미있어하겠어!”

<젠장, 이래서 이 녀석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속에서 카이서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야, 카이서스. 인간의 몸속에 있는 소감이 어떠냐?”

<닥치라고 전해다오.>

“어……. 묻지 말아달라는데요.”

그대로 전했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최대한 왜곡해서 전달했다.

“크크, 녀석이 그렇게 온순하게 말했을 리 없지. 보나 마나 놈이라면 닥치라고 했겠지?”

흠, 사이가 나빠도 미운 정이란 게 있어서인지 서로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이다.

“어차피 너도 드래곤 하트를 흡수한 이상 절반은 우리 일족이니까.”

카락스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네?”

“뭘 그리 놀라느냐? 카이서스의 심장을 흡수한 네가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했느냐? 지금의 너는 반은 인간, 반은 드래곤이다.”

반인반룡……. 그럼 난 더 이상 순수한 인간이 아니란 소리구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드래곤인 카락스에게서 확언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찜찜했다.

“그보다, 너 이름이 라엘이라고 했던가?”

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동안 여러모로 조사를 해본 모양이었다.

“네, 네.”

“이번에 듣자 하니 칼라마쉬의 서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실실 웃고 있던 그는 어느새 무척이나 진지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네. 사실입니다.”

“끄응, 그게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군.”

아, 드래곤이라면 각국의 이해관계나 국력에 관계없이 제국을 상대로 칼라마쉬의 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그럼 카락스 님이 타이런 제국에 가서 칼라마쉬의 서를 빼앗아 파괴해 버리면 되지 않나요?”

인간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강함을 지닌 드래곤이라면 아무리 제국이라도 반항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내 말에 카락스는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다. 우리 드래곤은 외부로부터 이 세계를 지킬 뿐. 이 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은 할 수 없다.”

“그, 그런……. 이 세상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칼라마쉬의 서를 파괴하는 것도 세계의 섭리를 거스르는 건가요?”

“그들이 아직 사용하지 않은 이상 그것은 세계의 일부. 우리가 먼저 손을 대는 것은 세계의 섭리에 끼어드는 일이다. 세계를 지키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금기다.”

초월적인 힘을 지녔기에 세계가 그런 제약으로 옭아맨다는 건가.

하지만 저번에 듣기론 분명 카이서스가 왕국을 하나 멸망시킨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건 세계의 섭리에 끼어드는 일이 아닌가?

“카이서스는 왕국 하나를 멸망시킨 적도 있잖아요.”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며 묻자 카락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그 왕국이 먼저 카이서스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상대가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세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일은 할 수 없다.”

끄응, 갑자기 타이런 제국이 미쳐서 드래곤을 공격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는 이상은 힘들단 소리군.

정말이지, 드래곤이란 족속들은 강대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쓸모가 없다니까.

“후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만하군. 네 절반이 나와 같은 동족이 아니었다면 네 녀석은 이 자리에서 얼음 조각이 되었을 거다.”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한 카락스의 말에 움찔했다.

확실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겠지.

“드래곤에게 있어서 세계의 섭리라는 것의 기준은 대체 뭡니까?”

내 물음에 카락스는 흠,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설명하긴 조금 어려운데……. 대충 감이라고 생각하면 돼.”

“감이요?”

예감이나 육감 할 때의 그 감?

“그래. 우리 드래곤들은 세계의 섭리를 어지럽히는 일을 하려고 들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 세계가 우리들에게 제한을 걸어둔 셈이지.”

“본능 같은……. 겁니까.”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카락스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일부는 드래곤이지만 태생이 인간인 너에게도 세계가 섭리를 강요할지 궁금하군.”

“글쎄요, 아직까지 그런 경험은 해보지 못해서…….”

어쩌면 내가 세계의 섭리를 건드릴 만한 일을 아직까지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

“흠, 어쩌면……. 세계의 입장에서도 혼종은 예상치 못한 변수일 테니…….”

뭔가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듯한 카락스의 모습에 카이서스가 투덜거렸다.

<흥, 눈치만 빠른 녀석 같으니.>

엥? 뭔데, 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카이서스가 툴툴거렸다.

<지금의 넌 알 필요 없다.>

꼭 중요할 때만 이러더라.

더 캐물어봐야 대답해 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그동안 함께 지내오며 알게 된 나였기에 투덜거리기만 할 뿐 더 묻지는 않았다.

<그보다, 저놈에게 용건은 이게 다냐고 물어봐라.>

“어……. 카락스 님, 카이서스가 용건은 이제 끝이냐고 물어보라는데요.”

내 말에 카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용건은 이게 끝이다. 온 이유인 드래곤의 가호에 대한 것도 확인했고, 덤으로 카이서스 놈의 현황도 확인했으니까.”

음, 그럼 이제 카락스는 돌아가는 건가.

카이서스야 내 몸 안에 갇힌 신세니 괜찮지만 멀쩡한 드래곤이 주변에 있는 건 골치 아프다고.

“아, 그렇지. 반푼이 동족을 새로 만난 김에……. 선물을 하나 줄까 하는데.”

“선물이요?”

그 말에 호기심이 들기보다는 먼저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뜬금없이 선물을 준다니.

대체 뭘 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내 물음에 카락스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과 같이 샛노랗게 물들며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오면서 듣자니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는 말에 대해 의문을 가진 자들이 꽤 있더라고.”

확실히, 메테오를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은 그 이야기를 쉽게 믿지 않겠지.

게다가 드래곤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니까.

귀찮다는 듯 툴툴거리며 카락스가 말했다.

“반푼이인 데다 카이서스 녀석이 맘에 안 들기는 해도……. 절반은 동족인 녀석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영문 모를 말을 한 그가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어느새 주변을 차단하고 있던 회오리는 사라진 채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왕궁의 높은 담장 너머로도 모습이 보일 정도까지 커다란 덩치가 되었을 때는 커다랗고 새파란 드래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 라엘이여! 나, 카락스의 이름으로 너를 축복한다!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 소리는 나뿐만이 아니라 수도 트럼벨 전체에 울려 퍼졌다고 한다.

<흥, 이번에는 고맙다고 해둬야겠군.>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내가 카이서스에게 물었다.

‘대체 뭐야, 이거?’

<바보냐? 저 녀석이 본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선언한 덕에 네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한마디로 너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이 없어졌단 거다.>

아, 그런 거구나.

내가 카이서스와 대화하는 모습을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카락스가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솔직히 드래곤의 얼굴로 씨익 웃는 것은 조금 무서웠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에엑, 다시 만나기는 좀 싫은데…….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은 편하지가 않잖아.

<동감이다.>

카이서스도 내 생각에 동의하며 중얼거렸다.

표정을 보고 내 생각을 짐작한 듯한 카락스가 웃으며 말했다.

“싫어도 다시 만나게 될 거다.”

그렇게 말한 카락스는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더니 저 멀리 날아갔다.

거대한 동체가 멀리 사라져 가는 모습을 쳐다보던 나에게 로라스 왕자를 비롯한 근위기사들이 다가왔다.

“선생! 괜찮은가?!”

“네, 별일 없었습니다.”

내 대답에 로라스 왕자는 살짝 들뜬 듯한 얼굴로 소리쳤다.

“대단해! 나 드래곤은 처음 봤어! 그 엄청난 기세와 고고한 자태라니!”

드래곤을 직접 보았다는 흥분감으로 떠들어대던 왕자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그 기세만으로 쫄아서 아무것도 못 했는데 멀쩡하게 대화까지 하다니! 역시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야!”

뭐……. 그건 내가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하, 하하……. 일단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으니까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는 카락스가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았다.

싫어도 다시 만나게 될 거라니.

대체 무슨 말이지?.

* * *

“크라우드 왕국의 수도 트럼벨에 드래곤이 출현했다고 하옵니다.”

“드래곤이라……. 그 라엘이라는 놈을 가호하는 드래곤인가?”

타이런 제국의 황제, 타이커스의 물음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루리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치는 않사옵니다만 그자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했다고 하니…….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옵니다.”

드래곤의 가호가 진실인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려두었던 타이커스 황제는 쳇, 하고 혀를 찼다.

“놈이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군.”

귀찮게 되었다는 듯 중얼거린 황제가 말을 이었다.

“드래곤의 가호가 진실인지 알아보러 보냈던 인원들을 모두 그놈에 대해서 알아보고 감시하는 쪽으로 돌리도록.”

그 말에 고개를 숙이는 루리스에게 황제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 중인가?”

“예, 폐하.”

루리스의 담담한 대답에 타이커스 황제는 흡족한 듯 옥좌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대륙 정벌의 꿈이 가까워져 오는군.”

웃음기 섞인 그 목소리에도 후드 아래로 비치는 루리스의 눈동자는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