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화 - 불청객
왕궁에서의 나날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녀가 가져다주는 아침 식사를 한다.
그리고 9시쯤 준비를 하고 왕자의 교실에 일찍 가서 수업을 준비한다.
수업이 끝나면 왕자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후의 자유 시간엔 수련을 한다.
그것이 하루 일과의 다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왕자가 스스로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오늘.
조만간 첫 번째 서클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아, 오늘도 재미있었다.”
로라스 왕자는 피곤해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말했다.
이럴 때보면 평범한 어린아이인데 왕자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니까.
“평소처럼 같이 식사하지!”
“로라스 저하의 명을 거절할 리가요.”
사실 명령이 아니더라도 왕자와의 식사는 나로서도 환영이다.
대스승님과의 여행으로 입맛이 고급스러워진 내게 있어서 맛있는 식사는 정말 중요했으니까.
아침과 저녁에 내게 지급되는 식사도 충분히 고급스럽고 맛있었지만 왕족과의 식사에서 나오는 음식에는 미치지 못했다.
오늘은 또 무슨 맛있는 식사가 나오려나.
잔뜩 기대하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 앉자마자 내어져 나오는 음식들의 향긋한 향을 즐기던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그런데 로라스 저하, 전부터 궁금했던 겁니다만.”
내 물음에 식사에 포크를 가져다 대던 왕자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았다.
“응? 어떤 것 말이지?”
“로라스 저하의 주변에는 마법을 가르쳐 줄 뛰어난 마법사들도 많은데, 어째서 저를 선택하신 겁니까?”
예를 들면 궁정 마법사인 크란츠 백작이라든가 말이야.
내 말에 왕자는 손으로 포크를 돌리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대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여서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있어 선생은 많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왕실의 아이.
그러니 왕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선생을 그런 이유만으로 정할 리가 없다.
왕자 본인이 그렇게 정했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간섭이 심할 것이다.
내 말뜻을 알아차린 듯 왕자는 포크로 음식을 몇 번 두드리며 말했다.
“왕자란 말이야. 참으로 귀찮은 자리야.”
조금 전까지 보이던 어린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척이나 진지한 왕자의 얼굴에서는 어른과도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누가 저런 왕자의 모습을 보고, 그저 아이일 뿐이라 생각하겠는가?
“내 주변에 둘 사람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지. 마음대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데다 만나더라도 대부분 의도를 지니고 접근하지. 게다가 내가 곁에 두는 사람에 따라 귀족간의 파벌에 영향을 끼치니 말이야.”
내가 알고 있던 철부지 왕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뀐 분위기에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선생들도 엄격한 심사 끝에 정해진 자들로 각 세력의 입김이 들어간 자들이야.”
검술, 예절, 정치 등등 왕자를 가르치는 여러 선생들.
나는 말없이 왕자의 말을 들었다.
“그러던 차에 나타난 그대가 내 귀에 들어왔지.”
“제 어떤 면이 눈에 들어오신 겁니까?”
“일단은 독립적인 붉은 마탑 소속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말한 대로 그대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라는 점 때문이야.”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게 어째서 왕자의 눈에 띄게 된 거지?
여전히 내가 이해 못 한 표정이자 왕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 특별히 설명해 줄게.”
왕자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인심 써서 가르쳐 준다는 듯 에헴, 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우선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는 아무나 손을 대기 힘들다는 점. 귀족이나 부호들의 세력이라도 드래곤의 분노를 받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두 번째,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를 선생으로 두면 아무래도 백성들의 지지도 높아지지 않겠어?”
하긴,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왕자를 가르친다면 백성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가 올라가겠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한데……. 결정적으로 그대가 마음에 들었거든.”
“…네?”
아, 아무리 로라스 저하라지만 저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좋습니다만…….
“무슨 생각 하는지는 몰라도 그건 아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왕자가 조금은 화가 난 기색으로 소리쳤다.
후, 아니라니 다행이다.
“내가 왕자라는 걸 알고도 선생 제안을 거절할까 고민했던 것 말이다.”
“에엑?! 그걸 어떻게?!”
내가 그런 고민을 한 건 스승님과 대스승님밖에 모르는 건데?
깜짝 몰라 물은 내 말에 왕자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대는 얼굴에 생각이 다 드러나거든.”
아……. 그러니까 왕자가 내게 선생 제안을 했을 때의 표정을 보고 알아챘다는 건가.
어린아이에게조차 속마음을 들켰었다는 것이 조금은 쪽팔렸다.
“후후, 나름대로 사람을 대하는 데는 잔뼈가 굵은 나다. 그대 정도야 쉽지.”
으음, 확실히 왕자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속에 능구렁이를 여럿 감춘 자들과 만나봤다는 건가.
“그, 그런데 거절하려 했다는 것이 어째서 마음에 드신 겁니까?”
“뭐, 적어도 나를 이용하려 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서 말이다.”
“그렇군요.”
과연 후에 왕국을 이어받을 왕자.
아직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속은 그렇지 않다 이건가.
“사실 저도 로라스 저하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뭔가? 말해보라.”
왕자는 다시 포크를 집어 들고 식사하며 말했다.
“사실 제 가족과 연락이 끊어져서 말입니다. 찾는 것을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
“아, 가족이라. 분명 자네가 집을 나선 사이 몰래 이사를 갔다고 했던가?”
엥?! 그걸 어떻게?!
내가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왕자가 피식 웃어보였다.
“왕자의 선생을 구할 때 신상 조사는 기본이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혹시 제 가족이 어디 있는지도 아십니까?”
“음, 그건……”
왕자가 무어라 말하려 할 때 바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다!”
그 소리에 나는 물론이고 왕자도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이?! 침입자라고?”
왕궁에 침입자라니, 설마 타이런 제국에서?
침입자를 알리는 외침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으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잉-!
“로라스 저하! 침입자입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근위기사들이 안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나도 들었다. 침입자들은 얼마나 되지?”
긴장한 얼굴로 내뱉는 왕자의 말에 근위기사들은 당혹한 표정이 되었다.
“그, 그것이…….”
“단 한 명입니다.”
앞에 있던 근위기사를 대신해 뒤에 있던 근위기사가 대신 대답했다.
“한 명이라고?! 단 한 명 때문에 왕궁에 비상이 걸렸다는 거야?!”
약간은 화가 난 듯한 왕자의 말에 근위기사들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궁의 근위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나섰지만…….”
“마법은 통하지도 않는 데다 침입자의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서 모든 걸 날려 버리는 바람에 다가설 수조차 없습니다.”
뭐야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그보다 로라스 저하, 어서 자리를 옮기시죠. 처음 상대한 근위병의 말로는 침입자가 로라스 저하를 찾았다고 합니다!”
“나를?”
침입자가 로라스 왕자를 노리고 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시죠.”
근위기사의 말에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렇게 말했다.
비록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왕자는 나의 학생.
침입자의 손에 다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왕자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니, 내가 직접 만나러 가겠다. 침입자는 어디 있나?”
“예?!”
왕자의 말에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라서 한목소리로 말했다.
“로라스 저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대피소라고 안전한 법이 어디 있나. 마법도 통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상대인데.”
누군가의 말에 왕자가 대답하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 말 못 하는 근위기사들과 나를 보며 왕자가 말을 이었다.
“침입자가 적의를 가진 게 아닐지도 모르잖나. 게다가……. 여차하면 내 선생이 지켜주겠지.”
엥? 나?
“그러고 보니……. 로라스 저하의 마법 선생님인 라엘 경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
에엑?!
그거 사실 개소린데!
드래곤인 카이서스가 내 속에 있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놈인데?!
<이 미친 인간 놈이?!>
속에서 카이서스가 뭐라고 떠들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하, 하지만 로라스 저하, 만약이란 게 있으니…….”
“아니, 직접 만나러 간다. 이건 명령이야.”
“으음……. 알겠습니다.”
너무나도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명령이라 말하는 왕자의 말에 근위기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아무리 명령이라 해도 왕자 스스로 위험한 곳에 간다는데 그걸 용납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럼 침입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예!”
젠장, 이렇게 되면 어쩔 수가 없잖아.
당연하다는 듯 근위기사들을 앞장세우고 궁전을 나서는 왕자의 모습에 나도 따라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침입자는 봄의 궁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대연회장 앞에 있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단이 쉴 새 없이 회오리를 향해 마법을 쏘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법은 회오리에 맥없이 삼켜질 뿐이었다.
근위기사단이 다가가려 노력했으나 회오리바람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간신히 가까이 다가간 기사들도 멀리 날아가 버렸다.
<끄응……. 설마 했는데 놈이 올 줄이야.>
‘뭔가 알고 있어?!’
<으음…….>
카이서스는 이야기하기도 싫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내가 녀석을 좀 더 추궁하려던 찰나.
회오리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 어라?”
당황한 것은 마법사단과 근위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만나는군.”
왕자가 온 것을 눈치챈 듯했다.
“나는 로라스 왕자다!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한 거지?”
왕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은 말에 회오리바람 속에서 나타난 파란 머리의 청년은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헛소리야? 난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인간을 만나러 온 건데?”
“…엥?”
“왕자의 선생을 하고 있대서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쫓아내려 하기에 힘을 좀 썼을 뿐이야.”
귀찮다는 듯 목을 매만지는 그의 말에 모두가 어이없어했다.
그러니까, 나 하나 만나자고 이 소란을 일으킨 거라고?
게다가, 근위병이 내가 아니라 왕자를 만나려는 것으로 착각한 탓에 왕궁 전체에 비상이 걸린 거고?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있대서 거짓말이면 박살 내려고 와봤는데. 확실히 익숙한 냄새가 나는군.”
‘카이서스, 설마 저 사람……?’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왕자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푸른 머리 청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놈은 블루 드래곤인 카락스다.>
“브, 블루 드래곤?!”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