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화 - 마탑을 떠나다
“껄껄껄, 왕자가 네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다지?”
좁은 마탑 안에서 소문은 금방 퍼지게 마련이었다.
대스승님이 내 방으로 찾아와 웃으며 말했다.
간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눈치다.
“웃으실 일이 아니에요. 정말이지 곤란하다니까요.”
내가 투덜거리며 한 말에 대스승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좋은 일이지 않느냐? 왕자의 선생이 되면 부와 명예도 얻을 수 있고 왕궁에서 지낼 수도 있지 않느냐.”
부와 명예……. 란 말에 잠시 흔들린 나였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왕궁에서 지내는 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여러모로 눈치도 많이 봐야 할 테고……. 게다가 저도 아직 배우는 처지인데 선생으로서 자격이 있을지…….”
“크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그런 꼬맹이쯤이야 너라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을 테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왕자를 가르친다는 건 부담되는걸요.”
“그래서, 거절이라도 할 생각이냐?”
“하아, 그게 쉬우면 이런 고민도 안 하고 있겠죠.”
“그러면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
“큭! 대스승님은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시는 것 아녜요?”
“당연히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지!”
대스승님의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깜빡했다…….
힘없이 한숨을 내쉬는 내게 대스승님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번 해봐라.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건 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게다. 게다가 왕궁에서의 생활은 견문을 넓힐 수 있을 테고.”
“그럴까요? 하지만 스승님에게서 더 배울 것도 많은데…….”
“흠, 그렇다면 카밀라와 한번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떠냐.”
“음, 그래야겠어요.”
왕자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듯했다.
나는 방을 나와 스승님의 탑으로 찾아갔다.
스승님은 나를 보자마자 어색하게 웃었다.
“곤란한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그보다……. 스승님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으시겠어요?”
내 말에 스승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나로서는 네가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좋겠구나. 너에게 좋은 기회잖니.”
확실히 내게 좋은 기회인 것은 사실이다.
부와 명예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며 나 자신의 성장도 꾀할 수 있을 테니까.
왕자의 스승으로서 이름이 알려지면 가족의 귀에도 내 소식이 들어갈지 모른다.
아니면 왕자에게 부탁해서 직접 찾을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자신이 없다.
“제가 만약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내 말에 스승님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제자이지 않느냐.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고말고.”
“그렇지만 아직 저도 스승님께 배울 것이 많은데 떠나기는…….”
내 말에 스승님은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라엘, 넌 이미 한 사람의 어엿한 마법사란다. 나도 스승님의 곁을 떠난 것은 너만 할 때였지.”
과거를 생각하는지 아련한 시선으로 먼 곳을 바라보던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모험을 하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한곳에 머무르기만 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왕자를 가르치기 위해 왕궁으로 가는 것도 모험이라 이건가.
그때 뒤따라 들어온 대스승님도 한마디를 보탰다.
“게다가 왕실의 급여는 짜지 않을 테니 돈도 두둑이 모을 수 있을 거다. 일석이조지!”
음, 확실히 급여를 두둑이 줄 테니……. 돈을 모을 수도 있겠군.
뭐, 어차피 카이서스의 레어에서 들고 온 마법 주머니에 들어 있는 보석들만 해도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지만…….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음……. 그러면 왕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내 말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왕자님을 가르치는 건 꽤나 힘든 일일 테니 각오해 두렴.”
“그래 봐야 어린애 아니겠어요?”
내 말에 대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아직 어린아이지 않느냐?”
“전 성인이거든요?!”
뭐, 일단은 내게 있어서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으니……. 왕자의 마법 스승 자리를 수락할까나.
* * *
“오! 그래! 내 선생이 되기로 했다고?”
선생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말하자마자 왕자는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왕자도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다면 크게 벌을 내리려 했는데, 금방 대답이 나와서 다행이구나!”
으음, 빨리 결정한 것이 잘한 일이겠지?
“마탑을 떠나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테니 나흘의 시간을 주마. 난 먼저 왕궁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
자신이 할 말만 하고서 왕자는 동행했던 노인과 수행원들을 데리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수도 트럼벨로 돌아갔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왕자와 동행했던 노인은 왕실의 7서클 마스터이자 궁정 마법단장인 크란츠 마이서스 백작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어째서 나 같은 녀석을 선생으로 삼겠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크란츠 백작은 자신을 두고 나 같은 애송이가 왕자의 선생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이 기분 나쁠 법한데도…….
내가 선생이 되겠다고 대답할 때 기뻐 보이는 표정이었단 말이지.
어쩐지 불안해진 내가 속으로 고민하고 있자니 스승님이 다가왔다.
“앞으로 나흘이구나. 그때까지 더욱 열심히 수련하자꾸나.”
나흘, 나흘이 지나면 한동안 나는 한동안 마탑에 돌아오기 힘들겠지.
그때까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는 스승님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스승님께 모자란 부분을 배우고, 마탑의 서고에서 몇 가지 책을 읽는 동안 사흘이 금방 지나갔다.
“흐음, 내일이면 왕궁으로 가는 날인가.”
내일이 떠나는 날이란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방을 청소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네, 누구세요?”
“라엘 군, 날세.”
칸델 씨의 목소리였다.
방문을 여니 칸델 씨가 빙그레 웃으며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내 물음에 칸델 씨는 방 안의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한창 짐을 챙기던 모양이구먼?”
“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인가요?”
“그래,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도 식당에 안 오기에 찾으러 왔네.”
“칸델 씨가 직접 오시게 하다니, 죄송하네요.”
“하하, 아닐세. 이번이 마지막으로 자네와 함께하는 저녁 식사일지도 모르니까.”
짐을 챙기던 것을 관두고 칸델 씨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어차피 짐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으니 금방 챙길 수 있으니까.
식당에 도착한 내가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왕자님의 마법 선생이 된 것을 축하하네!”
“기다리고 있었네!”
“환송회의 주인공이 왔군!”
화, 환송회?
그러고 보니 식당의 테이블 위에는 평소보다 신경을 쓴 듯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게다가 나를 기다린 것인지 아무도 식사를 하고 있지 않다.
“이건 대체…….”
당황한 내가 말끝을 흐리며 말하자 어느새 곁에 다가온 스승님과 대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의 환송회인 게 당연하지 않니.”
“껄껄, 네 녀석을 다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축해해 준 적이 있었던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하는 나에게 다들 웃으며 다가와 선물을 하나씩 건네기 시작했다.
구하기 어려운 마법 시약이나 책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작년에 나와 대결했었던 제임스와 카터도 있었다.
“흐, 흥! 아직까지 널 인정한 건 아니니까!”
이런 대사는 수염 숭숭 난 남자가 하면 이상한데 말이야.
제임스의 말에 카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래, 얼마 전에 라엘이 대단하다고 떠들었잖아.”
“아, 아니거든?!”
떠드는 두 사람을 보아하니 1년 전에 내게 품었던 악감정은 다 사라진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딱히 악감정이 없었기에 그들이 주는 선물을 감사히 받았다.
“자, 받거라.”
“다들 주는데 우리만 빈손이어선 이상하겠지.”
스승님과 대스승님도 내게 선물을 주었다.
스승님이 주신 것은 목걸이, 대스승님이 주신 것은 팔찌였다.
“이건……?”
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두 분은 웃으며 각자의 선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목걸이는 통신구를 소형화시킨 것이란다. 다른 통신구를 등록만 해두면 언제든지 통신이 가능하지. 일단은 내 통신구를 등록해 두었단다.”
통신구는 작게 만들수록 가격이 비싸다고 하던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이니……. 꽤 귀한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의 통신구가 등록되어 있다니 언제든 난처한 일이 생기면 의견을 구할 수 있겠어.
스승님의 뒤를 이어 대스승님도 자신의 선물에 대해 설명했다.
“내 것은 특별한 마법은 걸려 있지 않다만……. 내가 예전에 우연히 구한 부적이다. 착용자를 위험에서부터 구해준다더구나.”
대스승님이 준 반지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의 위험에서 구해주기는 충분해 보였다.
바로 빈곤이라는 위험에서.
한마디로 꽤 비싸게 보인다는 거다.
“감사합니다!”
나는 두 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물론 선물을 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 그럼 라엘의 취직을 축하하며! 다 같이 마시고 즐기세!”
스승님의 외침에 다들 잔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그다지 술을 마실 일이 드문 마탑에서 누군가의 환송회는 반가운 일이겠지.
어……. 그런데 나, 술 마셔본 적 있던가?
생전 처음으로 마셔본 술은 꽤나 달콤하고 술술 넘어갔다.
* * *
“끄어어……. 죽을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에 괴로워하자 카이서스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끌끌, 숙취라는 거냐? 좋다고 마셔대더니, 꼴좋구나.>
‘시끄러, 안 그래도 힘든데 빈정대기야?’
<크크, 떠날 준비나 해라.>
‘알고 있다고.’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숙취로 괴로워하면서도 짐을 챙겼다.
떠날 시간이 되어 숙소를 나오자 스승님과 대스승님,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나머지 마법사들이야 뭐……. 어젯밤 광란의 술자리로 인한 숙취로 인해 침대에서 뒹굴고 있겠지.
“잘 다녀오거라.”
그렇게 말하는 스승님도 지난밤의 숙취로 꽤나 괴로워 보였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허허.”
배웅을 나온 사람들 중 유일하게 대스승님만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나는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웃었다.
아무래도 떠날 때는 웃으며 떠나는 것이 좋으니까.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크게 외쳤다.
“다녀오겠습니다!”
“머리 아프니까 소리치지 말게.”
배웅을 나왔던 마법사들 중 칸델 씨가 힘겹게 내뱉은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서서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돌아올 때까지 모두 건강하세요!”
그리고 눈앞이 흐릿해지는 감각과 함께 나는 마탑이 아닌 수도 트럼벨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웨에엑!”
숙취로 인한 울렁거림에다 텔레포트로 인한 여파로 트럼벨의 게이트에 도착하자마자 시원하게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으악! 뭐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며 소리치는 게이트 관리 직원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트럼벨에 도착한 이후 첫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