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화 - 15살 왕자님
드디어 마탑으로 돌아왔다.
“후우.”
나는 방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함에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어찌어찌 전쟁도 끝났고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카이서스 녀석은 어떻게 된 거지?
불러도 대답조차 없고…….
혹시나 메테오를 쓴 영향으로 사라져 버린 건가?
<날 걱정하는 게냐?>
바로 그 순간 내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 카이서스?!’
<뭘 그리 놀라느냐?>
낄낄 웃으며 대답하는 카이서스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걱정할 수밖에 없잖아! 부르지 않아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놈이 갑자기 불러도 대답조차 없으면!’
<호오, 걱정이라…….>
내가 걱정했다는 말이 놀라웠는지 카이서스는 말꼬리를 흐렸다.
<나는 네 몸을 뺏으려 했었다만?>
아, 그랬지.
‘그, 그건 그렇지만……. 아무튼! 어째서 그동안 아무 말도 없었던 거야?’
<흠, 죽어가는 너의 몸을 일시적으로 빼앗았던 것은 성공했지만 꽤나 무리가 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 탓에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다.>
그건 드래곤의 영혼조차도 힘들어하는 일이었구나.
‘아무튼 깨어나서 다행이야. 영영 사라진 줄 알았다고.’
<크크크, 네 녀석이 걱정해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만……. 아무튼, 내가 잠든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느냐?>
나는 카이서스에게 그동안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전쟁이 끝난 것, 그리고 내가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가 된 것을.
<뭣이?! 나에 대해서 말했단 말이냐?>
‘그럼 어떻게 해? 내 몸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메테오를 사용한 걸 무엇으로 설명하느냔 말이야?’
<음, 확실히 그건 그렇군. 하지만 나는 다른 인간들과 대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그렇게 알아둬라.>
그렇게 못 박고 나오는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더 귀찮아질 것 같은데……. 으,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어.
‘그런데 말이야, 네가 내 몸으로 메테오를 썼다면 나도 메테오를 쓸 수 있는 것 아니야?’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코웃음 쳤다.
<아무리 내 심장으로 몸과 정신이 진화했다고 한들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꿈 깨라.>
음, 한마디로 지금의 나로서는 엄청나게 어렵다는 이야기로군.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다시 깨어나서……. 그대로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고.’
나의 말에 카이서스는 잠시 침묵했다.
<하, 하하! 그딴 말을 듣고 내가 기뻐할 것 같으냐!>
‘딱히 기뻐하라고 한 말은 아닌데.’
생각보다 격한 녀석의 반응에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 * *
타이런 제국과 크라우드 왕국의 휴전 협상이 체결되고 두 달 후.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에 대한 소문은 대륙 곳곳에 퍼졌다.
대륙 남쪽 끝에 위치한 쉘던 왕국의 작은 마을에도 그 소문은 퍼졌다.
“들었어?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나타났대.”
“드래곤? 수백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드래곤이 무슨 일이래?”
“나야 모르지.”
“옛날에는 드래곤이 열받으면 나라도 멸망시키고 그랬다던데, 그런 일은 없으면 좋겠군.”
“인간을 수호하는 드래곤이라잖아. 그런 일은 없겠지.”
작은 식당 안에서도 그 이야기가 한창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어느 사내들이 식사를 하며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누군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흐음, 드래곤이라……. 누구지?’
구석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던 편안한 복장의 젊은이가 고개를 갸웃거려 보였다.
‘인간을 수호해 줄 정도로 애정을 가진 녀석이라면 델람이나 카자크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젊은이의 눈동자가 일순간 변한 듯했다.
파충류의 것과 같은, 샛노랗고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동자였다.
“심심한데 누구인지 구경이라도 가보도록 할까?”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 * *
카이서스가 돌아온 이후 나는 별다른 일 없이 지냈다.
카이서스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전하자 스승님과 대스승님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드래곤이니까’라며 이내 납득하셨다.
가끔 드래곤을 만나게 해달라며 다짜고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마탑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있잖아. 너 말고 다른 드래곤들도 있어?’
문뜩 생각난 것을 묻자 카이서스는 뜬금없이 그건 왜 묻냐는 듯 대답했다.
<물론이다. 나를 제외하면 일곱 녀석 정도가 있지.>
일곱이라…….
‘그런데 어째서 칼라마쉬의 서가 등장했는데 다들 가만히 있는 거야?’
<아직 칼라마쉬의 서를 써서 마계의 문을 열지 않았으니까.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우리 드래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킬 뿐이다.>
한마디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로군.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해결하면 좋을 텐데, 드래곤이란 정말로 이상한 존재들이야.’
<클클,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려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냐.>
하긴, 드래곤은 인간과 생각 자체가 다른 종족이니까.
아, 그런데 동족인 네가 인간인 나의 몸 안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혹시나 동족을 구하기 위해 나를 잡아가서 실험한다거나 내 몸의 주도권을 카이서스에게 넘긴다거나 그럴지도!
하지만 카이서스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뭐, 나의 내면에서 영혼으로만 존재하는 카이서스에게 찰 수 있는 혀가 있지는 않지만.
<바보 같은 소리. 해츨링이 아닌 성체 드래곤끼리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설령 죽더라도.>
동족이 죽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엄청나게 개인주의적이네.
‘그건 꽤 슬프네. 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다는 거잖아.’
내 말에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카이서스는 잠시 침묵했다.
<…흠, 인간의 기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드래곤이란 우리와 얼마나 다른 생각을 지니고 사는 걸까.
‘그럼 친구도 없었어?’
<친구? 하, 위대한 이 몸에게 친구가 있었을까 보냐.>
‘우와, 진짜 불쌍하다.’
<네놈! 무슨 생각이냐! 감히 내가 불쌍하다니!>
‘그렇지만 걱정해 줄 친구도 없고 지금은 내 몸에 갇혀 있는 신세잖아.’
<끄, 끄으응…….>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켜 주자 무거운 침음을 흘리는 카이서스였다.
‘그래도 걱정 마. 지금은 내가 있잖아.’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친구 없다며. 내가 친구가 되어준다는 말이지.’
<뭐? 친……. 구?>
사실 카이서스와는 계속해서 붙어 다녔고, 앞으로도 같이 붙어 다닐 사이니까.
카이서스는 약간의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머리통이 울리다 못해 터질 정도로 엄청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하! 너 따위가 친구? 정신이 나간 것 아니냐?!>
‘뭐, 뭣?!’
<애초에 친구가 없는 건 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아, 그런가?
그, 그러고 보니 어릴 적부터 친구라고 부를 만한 녀석은 딱히 없었지!
카이서스를 만난 이후에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만난 적 없고…….
<크크크크! 재미있어, 넌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야.>
‘시, 시끄러워!’
<푸하하하핫!>
나의 내면의 외침에도 한참이나 웃어대던 카이서스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되어주마.>
‘응?’
<친구도 하나 없는 데다 인간인 주제에 감히 드래곤의 친구가 되어주겠다 말하는, 네 녀석의 친구가 되어주겠단 말이다.>
뭐, 뭔가 입장이 뒤바뀐 것 같은데?!
<뭐야, 싫으냐? 싫으면 말고.>
‘아, 아니야! 친구 해! 친구 하자고!’
그렇게 나는 내 몸을 차지하려 들었던 드래곤과 친구를 하기로 했다.
미우나 고우나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녀석이기도 하고……. 미운 정도 정이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친구.’
<크크크, 지난번처럼 위험해지지나 마라. 곤란하니까.>
‘알았어.’
카이서스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지?”
나는 의아해하며 숙소를 나섰다.
“칸델 씨, 무슨 일이에요?”
때마침 숙소 쪽으로 다가오던 칸델 씨를 불러서 물었다.
“응? 라엘! 마침 잘 만났어. 크라우드 왕실에서 중요한 손님이 왔다는군.”
왕실의 손님?!
“그런데 왜 저를 마침 잘 만났다고 한 건가요?”
“당연히 그 손님이 자네를 찾아왔기 때문이지.”
엥?!
<크크크, 귀찮은 냄새가 풀풀 풍기는군.>
나는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잡아끄는 칸델 씨를 따라 스승님의 탑으로 향했다.
탑 앞에는 왕실의 손님을 수행하는 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마탑주님! 라엘을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칸델 씨는 나를 마탑주 님의 방으로 밀어 넣었다.
“어어?”
영문도 모르고 방으로 들어선 나는 주변부터 살폈다.
방 안에는 스승님과 처음 보는 노인, 그리고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오, 자네가 ‘그’ 라엘인가.”
감색 로브에 각양각색의 장식품으로 치장한 노인이 나를 보고는 반가운 듯 말했다.
저 노인이 왕실에서 왔다는 손님인가?
“네, 제가 라엘입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지…….”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더니 대답이 들려온 것은 어린 남자아이 쪽이었다.
“너!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다는 게 사실이냐!”
뭐야, 설마하니 저 꼬맹이가 중요한 손님인가?
“그, 그렇습니다.”
어쩐지 꼬맹이에게서 ‘나 높은 신분이다’라는 아우라가 풀풀 풍기는 탓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하고 말았다.
내 대답에 꼬맹이는 두 손을 허리춤에 짚으며 가슴을 편 채로 말했다.
“이 몸은 크라우드 왕가의 장남인 로라스 크라우드다!”
역시 높은 신분이었구먼!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라엘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스승님은 뭔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
왕자와 함께 온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내 스승이 되라!”
“…네?!”
당황한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후에야 되물었다.
뭐지 이 대사는?
마치 엄청난 보물을 찾으러 가는 강도가 다른 사람에게 동료가 되라고 할 때가 더 어울리지 않나?
“그 말 그대로다! 내 마법 선생이 되라는 말이다!”
“하, 하지만 왕궁에는 저보다 뛰어난 마법사도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여기까지 오실 정도라면 제 스승님처럼 대단한 마법사를 스승으로 모시는 게 나을 텐데요.”
내 말에 왕자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평범한 마법사에게는 관심 없다! 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자 정도는 되어야 내 선생으로 삼을 만하지!”
뭐야, 그 평범한 사람은 관심 없고 이계인, 전생자, 미래인이 있다면 내게 오라! 같은 대사는?!
15세병이냐?!
15살이 되면 왼손의 다크 플레임 스피릿이 꿈틀댄다든가 하는, 그런 거냐?!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호칭을 지닌 나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건데?!
“왕자님, 실례지만 나이가 어찌 되시는지……?”
“음, 올해로 15살이 되었도다!”
역시였냐?!
내가 곤란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스승님이 나서며 말했다.
“왕자님, 라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많이 당황했을 겁니다. 왕자님의 선생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사실은 저 꼬맹이의 말 자체가 황당한 거지만 말이야.
스승님의 말에 왕자 꼬맹이는 입술을 배죽 내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겠군. 내 선생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야. 나도 이곳에서 머물며 잠시 기다리도록 하지.”
에엑, 이곳에서 머물면서 기다리겠다고?
어쩐지 앞날이 굉장히 불편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