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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24화 (24/150)

024화 - 메테오

“누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나는 칼라마쉬의 서를 찾으러 쉘던 왕국으로 갔었어. 그러고는 네가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탑에 돌아가서 수련을 했었지.”

아직까지는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듣자 하니 네 스승님의 스승님이 키린토 님이셨다면서?”

“벌써 그 이야기가 청색 마탑에까지 퍼졌어요?”

“워낙 엄청난 이야기니까. 게다가 그분도 이번 전쟁에 참전하신다며. 8서클 대마법사가 한 명 더 참전한다는 소식은 금방 퍼지게 마련이야.”

하긴, 8서클 대마법사의 존재감은 그 정도로 크니까.

“두 사람은 적색 마탑주님과 청색 마탑주님의 제자라 들었는데, 사실인가?”

나와 아리안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프랑키가 끼어들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마탑주들의 제자들이 같은 부대라니 든든하군.”

프랑키의 말에 아리안이 손을 내저었다.

“너무 큰 기대를 하시면 불편합니다. 스승님은 대단하신 분이지만 저희는 아직까진 풋내기니까요.”

“허허, 5서클짜리 풋내기가 어디 있나? 자네들 둘이 있으니 든든하군.”

괜히 기대를 받으니 조금은 부담되는걸.

“하하…….”

프랑키의 말에 멋쩍게 웃음을 흘리고 있는데 병사 하나가 우리 막사로 들어왔다.

“마법사님들, 조만간 저희 부대도 전방으로 배치된다고 알아두라고 하십니다.”

병사의 통지에 우리 모두 표정이 진지해졌다.

올 것이 온 모양이다.

병사가 막사를 나서자 프랑키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보다 지휘관이 초짜라서 걱정이로군.”

“크세르스 말인가요?”

내 물음에 아벨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전쟁에 처음 참전하는 주제에 귀족가로서의 자존심과 허영만 잔뜩 있어서…….”

아무래도 수준 미달의 지휘관은 적보다도 무서운 존재이게 마련이니까.

멍청한 지휘를 내려서 아군을 위험에 빠뜨린다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뭐,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멍청한 명령을 내리지 않길 바라며 마법이나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지.”

프랑키의 한숨 섞인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틀 후.

우리도 전방으로 향했다.

피해를 입고 후방으로 이동한 부대를 대신하여 전방으로 배치된 것이다.

우리 부대가 성벽으로 전진 배치 하는 와중에도 전투는 계속해서 치러지고 있었다.

* * *

전투는 치열했다.

야나스 요새의 성벽 위에 자리를 잡은 우리 군을 향해 제국군은 쉴 새 없이 몰려왔다.

마법과 화살이 날아다니고,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디그!”

“체인 라이트닝!”

“파이어 월!”

“아이스 스피어!”

나를 포함한 마법사 넷은 쉴 새 없이 성벽 아래의 적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으억!”

“으아아악!”

땅이 움푹 파이며 적들을 넘어뜨리고, 번개 줄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 어어?!”

“컥!”

내가 사용한 불의 장벽은 적들의 앞길을 막았고 아리안의 얼음 창이 제국의 기사로 보이는 자들을 저격했다.

우리의 활약에 제국의 마법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각종 마법이 성벽 위의 우리 병사들 쪽으로 쏟아지며 엄청난 피해를 만들어냈다.

“으아악!”

“젠장! 화살을 쏘라고!”

백인대장들이 곳곳에서 소리치며 적의 마법사에 대한 공격을 지시했다.

하지만 아군이 쏘아낸 화살은 적의 마법사들을 지키는 방패병들에게 막혀 버렸다.

제국군의 궁수들이 우리를 향해 발사한 화살들도 우리 방패병에 의해 막혀 버렸다.

나를 비롯한 네 명의 마법사는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하며 적병들과 적의 기사들을 공격했으나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과 피와 살점이 튀는 모습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적은 계속해서 사다리와 공성탑을 통해 성벽 위로 올라오고 있었으니까.

“죽어라!”

적의 기사 하나가 사다리를 달려서 올라와 검을 휘둘렀다.

“으악!”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가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우리 측에서도 기사급에 속하는 백인장이 나서서 제국의 기사를 막아섰다.

“젠장! 끝도 없이 밀려오는구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프랑키가 막 성벽을 올라오던 병사를 향해 파이어 볼을 던지며 소리쳤다.

파이어 볼로 인해 사다리가 부서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던 병사들이 우수수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으아아악!”

그 순간 성문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미친! 저건 대체 뭐야?!”

거대한 골렘 하나가 성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여기서도 보였다.

그 크기는 자그마치 성벽의 높이와도 비슷한 크기.

제국이 새로운 전쟁 병기를 개발 중이라는 작년에 들었던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금속 재질로 이루어진 골렘은 어느새 성문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거대한 두 손을 모아 성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

성문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성벽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우왓!”

발밑의 진동에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다.

“저런 건 듣지도 못했어!”

저 정도로 커다란 전쟁 병기를 준비했다면 정찰병이나 스파이가 알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아마도 제국에서도 엄청나게 극비리에 숨겨왔던 것인 모양이다.

“저 거대한 것을 파괴해라!”

“마법을 쏴!”

“투석기, 투석기는 뭐 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투석기에서 돌이 날아가고, 마법사들은 각자가 사용 가능한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다.

나 역시 5서클에 들어서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플레임 캐넌을 시전했다.

내가 쏘아낸 커다란 화염구가 대포알처럼 날아가 거대 골렘의 몸통에 부딪쳤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의 갖가지 마법과 투석기에서 날아온 돌덩어리가 거대 골렘의 전신을 후려갈겼다.

먼지구름이 비산하며 거대 골렘의 몸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해, 해치웠나?”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바보 같은 말이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긴장이 풀릴 만한 말은 하지 말라고.

먼지구름이 걷히며 너무나도 멀쩡한 거대 골렘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 대체 저건 정체가 뭐야?!”

각종 마법과 돌덩이로 후려갈긴 것치고는 멀쩡한 골렘의 모습에 다들 경악하며 소리쳤다.

소설에서 보면 이럴 땐 꼭 누군가가 나타나서 ‘핫핫하!’ 하고 웃으며 설명해 주던데 말이야.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하게 성문을 두드렸다.

강철로 만들고 온갖 마법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성문이라 해도 저런 거대한 주먹으로 후려갈기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땅이 쿵쿵 울려대는 탓에 제대로 골렘을 공격하기도 힘들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이 나섰다.

“스파이럴 마그마!”

“헬 파이어!”

“블리자드!”

성문이 있는 곳의 성벽 위에서 8서클에 속하는 강력한 마법이 골렘을 향해 펼쳐졌다.

회전하는 마그마가 골렘의 몸을 녹이고 지옥의 불길이 골렘의 몸을 태워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펼쳐진 얼음의 폭풍이 뜨겁게 달아오른 골렘의 몸을 갑자기 식히며 곳곳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 주변에 있던 제국군의 병력이 몰살당한 것은 덤이었다.

“대마법사님들이다!”

누군가가 마법의 근원지를 쳐다보며 외쳤다.

스승님과 대스승님, 그리고 청색 마탑주님이 성벽 위에서 의연하게 서 있었다.

그 세 명의 모습에 사기가 오른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쿠웅!

몸 곳곳이 녹아내리고 깨져 나간 골렘이 한쪽 무릎을 꿇자 환호가 더 커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골렘은 다시 일어났다.

오히려 골렘의 분노를 돋울 뿐이었던 모양이다.

“헛! 실드! 실드!”

“실드! 실드!”

“프리징 실드!”

난폭하게 거대한 팔을 휘둘러 오는 골렘의 모습에 세 명의 대마법사는 깜짝 놀라 마나를 잔뜩 집어넣은 보호막을 시전했다.

쾅!

세 명의 대마법사가 펼친 보호막과 거대 골렘의 주먹이 부딪치며 귀가 아플 정도로 커다란 소리를 냈다.

세 분의 대마법사는 무사했지만 꽤나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것으로 거대 골렘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통과 왼쪽 어깨 일부가 날아간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마구 팔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쾅! 쾅! 쾅!

점점 성문에 균열이 생기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성벽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제대로 서 있기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으아아!”

성벽 끄트머리에 서 있던 병사들이 진동에 주저앉거나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중에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성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으아아악!”

“라엘!”

깜짝 놀라 비명 지르듯 소리치는 아리안의 외침이 들려왔다.

높디높은 성벽 위에서 그대로 추락했다간 즉사다.

전투 중에 성벽 아래로 추락한 다른 병사들처럼.

“페더 폴!”

빠르게 추락하는 와중에 카이서스의 심장으로 변화된 몸은 평정을 되찾았다.

낙하 속도를 줄이는 마법을 사용하자 떨어지는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카이서스의 심장 덕에 침착해진 것이 아니었다면 덜덜 떠느라 제대로 시전조차 못 했을 것이다.

아무리 페더 폴을 시전했다지만 워낙 추락 속도가 빨랐던 탓에 땅에 떨어지며 둔중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큭!”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어질거렸다.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리는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곳은 성벽 아래.

적들이 바글거리는 곳.

그 생각이 듦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굴렸다.

내가 있던 자리에 창날이 푹! 하고 틀어박혔다.

사방이 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성벽 위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마법사를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죽어라!”

“파이어 볼트!”

나는 다급히 마법을 사용하여 내게 달려드는 병사 하나의 가슴을 꿰뚫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달려오는 병사의 창을 피할 수는 없었다.

푸욱!

복부에 창날이 박히며 화끈한 감각이 들었다.

“컥!”

적병이 창을 뽑음과 동시에 내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눈앞에 비산하는 핏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지난번에는 아군 사이였던 데다가 아리안이 곁에 있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적들로 가득 찬 곳.

‘여기서 죽는 건가…….’

<함부로 죽지 마라, 이 망할 놈아!>

카이서스가 버럭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죽으면 카이서스도 죽던가.

‘미안해, 카이서스. 난 아무래도 여기까진 것 같아…….’

바닥으로 천천히 쓰러지며 나는 카이서스에게 사과했다.

드래곤 하트에 삼켜져서 죽기도 전에 이렇게 죽을 줄이야.

그 순간.

<쳇, 어쩔 수 없군.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갑자기 몸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쓰러지고 있던 몸이 갑자기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내 몸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았다.

피가 뿜어져 나오던 복부가 빠르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뭐, 뭐야?!”

당황한 적병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어온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이 주변을 뒤덮더니 모든 것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주변에 있던 수십, 수백 명의 적병이 화염에 휩싸이며 재가 되어버렸다.

“뭐지?! …라엘?!”

들릴 리가 없는데, 멀리서 이쪽을 쳐다본 스승님의 당황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리고 입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

나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의 주문.

하늘이 어두워지며 엄청난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

“우, 운석? 서, 설마……. 메테오?!”

누군가가 깜짝 놀라서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뭐야, 설마 메테오……. 저걸 내가 사용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거대한 운석은 제국군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으, 으악!”

“도망쳐!”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운석 낙하라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마법에 제국군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로 도망치려고 밀고 넘어뜨리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하지만 아무리 도망치려 해봐야 운석이라는 거대한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운석은 지면과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뿜어내었다.

콰과과과과광!

운석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돌덩이와 화염, 그리고 먼지를 퍼뜨렸다.

그에 휩싸인 적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9서클 마법이라는 메테오?! 서, 설마 저 꼬맹이가 쓴 건가!”

누군가가 공중에 떠 있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나도 몰라! 그리고 꼬맹이 아니라고!’

몸은 물론이고 입도 움직여지지 않았기에 나는 속으로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허공에 떠서 무심한 눈으로 적진을 바라보던 나의 몸이 공중을 날아 성벽 위에 안착했다.

“라, 라엘! 괜찮아?!”

나에게서 풍기는 정체 모를 분위기에 겁에 질린 시선으로 물러나는 병사들 사이로 아리안이 다급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전쟁에서 정신을 잃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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