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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20화 (20/150)

020화 - 그녀의 정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자마자 대스승님은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뭘 찾으세요?”

“아까 그 처자 말이다.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텐데…….”

“그 여자분은 왜요?”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 도움이라도 주려고 말이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대스승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우리는 대로 한복판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긴 것 같구나.”

찾았다는 듯한 대스승님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뒤따라갔다.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니 두 무리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식당에서 만났던 카리야와 호위들, 그리고 싸가지 없는 청년들이었다.

싸가지 없는 청년들의 뒤에는 이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그사이에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불러온 모양이었다.

“후후후, 네년의 호위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몰라도 이 숫자를 상대로는 안 되겠지!”

조금 전 팔이 날아갈 뻔한 청년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 모습에 카리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 목숨 아까운 줄을 모르는 건가요?”

“웃기지 마!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나 알아?”

“제가 그걸 알아서 뭐 하죠?”

카리야의 한심하다는 시선에 청년은 더욱 열받은 듯했다.

“저 처녀가 누군지는 몰라도 퀼른가의 망나니에게 찍힌 모양이네.”

우리 주변에 있던 누군가가 혀를 차며 내뱉은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사람 유명한가요?”

내 물음에 혀를 차며 중얼거렸던 아주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타지에서 온 모양이구먼? 저 망나니는 카이론 기사단장인 퀼른 백작의 장남인데 어찌나 성격이 더러운지… 게다가 뒷골목 건달들의 우두머리나 다름없어서 문제를 일으켜도 건드릴 수도 없다오.”

흠, 한마디로 집안 좋은 망나니라는 말이로군.

끌고 온 무리들은 아무래도 뒷골목 건달들인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꺼지신다면 용서해 줄 수도 있어요.”

청년이 끌고 온 건달들의 쪽수에도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카리야가 말했다.

그 말에 청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미친년이구나? 그래도 얼굴이랑 몸매는 반반해 보이니… 흐흐흐.”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으나 음흉한 웃음을 통해 그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저 더러운 놈이?!”

카리야의 다섯 호위가 그 말에 검을 뽑았고 청년의 뒤에 있던 건달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어, 어어?!”

그리고 그 순간,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 듣자 듣자 하니 어린놈이 성격이 개판이로구나.”

어느새 스태프를 들고 앞으로 나선 대스승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여, 영감탱이는 아까 그 가게에 있던?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청년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공에서.

청년과 이십여 명의 건달들은 허공에 둥실둥실 떠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뭐긴, 마법 처음 보느냐?”

당황한 청년과 건달들에게 대스승님은 껄껄 웃으며 되물었다.

“말도 안 돼! 이런 마법은 본 적이 없다고! 대체 정체가 뭐야!”

“뭐, 7서클에 속하는 마법이니 흔히 보지는 못했을 게야.”

“7, 7서클?!”

공중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청년이 소리쳤다.

대스승님의 말에 놀란 것은 청년과 건달만이 아니었다.

“7서클? 어르신은 대체 누구시죠?”

“허허, 나는 키린토라고 하네. 얼마 전에 듣자 하니 사람들이 나를 은둔의 대마법사라고 부른다더군.”

“은둔의 대마법사!”

“히익?!”

깜짝 놀라 외치는 그녀의 말에 청년과 건달들도 잔뜩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8서클 마법사는 함부로 하지 못할 엄청난 존재였으니까.

“키린토 님이셨군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스승님의 정체를 알게 된 카리야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허허, 보아하니 괜한 참견이었던 것 같지만 이놈들이 워낙 괘씸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대스승님은 그녀의 호위들을 쳐다보았다.

뽑아 든 검에 눈에 실체화 될 정도의 마나를 휘감고 있던 호위들은 그 말에 조용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마나를 검에 실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들을 호위로 데리고 다니다니, 대체 저 카리야란 여자의 정체는 뭐야?

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제복 차림의 기사들이 몰려왔다.

“모두 멈춰라!”

뒤늦게 온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건달들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흠, 수도 경비 기사단이 왔군요.”

카리야의 호위, 알렉스가 그들을 알아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

기사단의 도착에 대스승님이 헛기침을 한 번 내뱉고는 스태프를 살짝 휘저었다.

그러자 마법이 해제되며 허공에 떠 있던 청년들과 건달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악!”

“으억!”

“아이고!”

공중에 떠 있던 그들이 바닥으로 널브러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기사단 중에서도 직급이 높아 보이는 자가 물어왔다.

“저 버릇없는 젊은이가 저 처자에게 무례하게 굴기에 혼쭐을 내줬을 뿐이네.”

대스승님의 말에 기사단원이 퀼른가의 청년을 보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또 저놈이야?’라는 표정이다.

그러고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모두 체포하겠습니다. 순순히 따라와 주시죠.”

모두 체포하겠다는 말에 대스승님이 눈을 찌푸렸다.

“잘못한 건 저쪽인데 우리까지 연행한다는 겐가?”

“일단은 무슨 상황인지 조사도 해야 하니 따라와 주시죠.”

“끄응…….”

그 말에 대스승님은 귀찮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에잉, 그러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대스승님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리야가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응?”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대스승님이 의아해하며 돌아보았다.

그녀의 말에 기사단원은 가볍게 눈을 찌푸리며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아가씨가 누구신지는 몰라도 아가씨도 같이 가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카리야는 알렉스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더 늦게 돌아가면 오라버니께서 화를 내시겠군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알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이분은 타이커스 프리드리히 타이런 황제 폐하의 하나뿐인 동생이신 카리야 타이런 황녀님이시다. 예의를 갖추어라!”

그렇게 말하며 그는 금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는 패를 꺼내어 들었다.

나는 봐도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경비 기사단의 기사들은 그것이 뭔지 알아본 모양이었다.

“화, 황실 근위 기사단?!”

그가 꺼내어 든 것은 타이런 황실 근위 기사단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알렉스가 황실 근위 기사단원임을 알아본 경비 기사단원들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알렉스가 황실 근위 기사단원임이 사실이라면 그의 말대로 카리야가 황녀라는 것이었으니까.

“화, 황녀님을 뵈옵니다!”

서둘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경비 기사단의 모습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도 황급히 엎드렸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여자가 황녀였다니.

나도 엉거주춤 엎드리려는 차에 카리야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만 궁으로 귀가해야 하니 가봐도 되겠지요?”

“네, 네! 물론입니다!”

카리야의 말에 기사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다급히 소리쳐 대답했다.

“그리고 저분은 저를 도와주신 데다가… 은둔의 대마법사로 알려진 키린토 님이세요. 설마 이분들의 시간을 뺏으려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넵!”

우리까지 잊지 않고 챙겨준 카리야는 이만 가자는 듯 알렉스에게 눈짓했다.

여유롭게 걸어가는 카리야와 근위기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힐끗 퀼른가의 청년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이 희롱하려 했던 여자가 사실 황녀였다는 것에 얼굴이 새하얘져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 시비가 붙은 다른 사람은 대마법사란다.

아무리 귀족가의 자식으로서 제멋대로 살아왔다지만 이번엔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황실 모독죄로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뭐, 그런 건 이제 내가 알 바가 아니지만.

황녀의 등장으로 어수선해진 시내를 벗어난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설마하니 황녀였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네요.”

숙소로 잡은 여관의 방에 들어서며 내가 혀를 내두르자 대스승님이 껄껄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보통 신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 비밀의 황녀일 줄이야.”

“비밀의 황녀요?”

내가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해하며 묻자 대스승님은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그 존재와 이름만 알려졌을 뿐 지금껏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비밀로 가득하다 하여 비밀의 황녀란 별명이 있지 않느냐.”

무식하다는 듯한 분위기의 그 말에 내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얼마 전까진 자기 별명이나 제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셨으면서 용케 그런 건 알고 계시네요.”

나의 지적에 자신도 무안한지 대스승님이 헛기침을 몇 번 하며 말했다.

“흠, 흠… 뭐, 모를 수도 있지! 아무튼 그래서 이름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던 황녀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냈다. 아마 한동안 소란스러울 게야.”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런데도 오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 건 역시…….

“그녀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 건 우리 때문이겠죠?”

내 물음에 대스승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아마 우리가 곤란해질까 봐 일부러 정체를 드러낸 걸 게다. 제 오라비는 성격이 개차반이라 하던데, 동생은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게 말하며 대스승님은 껄껄 웃었다.

제국 수도 한복판에서 황제 뒷담화를 하는 건 제발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다.

심장이 쫄깃해진다고!

“아무튼 식사도 든든히 하고 소화도 시켰으니 낮잠이나 자고 저녁에도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꾸나!”

대스승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정말이지 태평한 분이라니까…….

이분과 같이 있으면 타이런 제국의 수도에 칼라마쉬의 서가 있다는, 아주 중대한 문제조차도 잊어버릴 것 같아.

금세 드르렁 코까지 골며 낮잠에 빠져든 대스승님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뭐, 지금 내가 걱정해 봐야 바뀌는 것도 전혀 없으니…….

대스승님처럼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일지도 모르겠네.

나는 머리를 가볍게 긁적이고는 방의 또 다른 침대에 드러누웠다.

제국의 황녀라… 엄청난 사람과 만나 버렸네.

뭐,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준 것은 대스승님이지만 말이야.

* * *

스승님에게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대스승님과 함께 타이런 제국의 수도 하이넨에 머문 지 사흘째 되던 날.

평소처럼 대스승님이 이끌고 간 식당에서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본 적 있는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자네는?”

그를 먼저 알아본 대스승님이 의아해하며 묻자 카리야 황녀의 호위 중 한 사람, 알렉스가 가볍게 목례했다.

“황녀님께서 은둔의 대마법사 키린토 님과 일행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정중하지만 딱딱한 태도로 자신의 용건을 내뱉는 그의 모습에 대스승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황녀님께서 이 보잘것없는 늙은이를 만나고자 하시는데 거절할 수 있겠나.”

대마법사임에도 자신을 치켜세우지 않는 대스승님의 반응에 알렉스는 그제야 작게 미소를 지었다.

“시간은 저녁 7시, 지난번의 그 식당에서 뵙고자 하십니다.”

황녀가 초대하는 식사 자리치고는 허름한 식당이었으나 대스승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허허, 알겠네. 늦지 않게 가겠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용건을 끝마친 알렉스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여관을 나섰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는 걸까요?”

알렉스가 나간 후 내가 물은 말에 대스승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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