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19화 (19/150)

019화 - 제국의 검은 심장

설마하니 타이런 제국의 수도에서 칼라마쉬의 서가 있는 곳을 알아낼 줄이야.

쥐꼬리만 한 단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오긴 왔는데 정말로 감지기가 반응하는 것을 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러니까……. 칼라마쉬의 서가 타이런 제국의 수도에 있다는 말이로군.”

감지기를 본 스승님이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대제국의 수도에 마계와의 통로를 만드는 끔찍한 물건을 숨겼을 줄이야.

나와 대스승님은 며칠간 하이넨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리고 바늘의 끝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곳을 알아채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이넨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결과 바늘의 끝이 공통적으로 가리킨 곳은……. 타이런 제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황궁이었다.

“허허……. 이런 미친 새끼들, 설마하니 칼라마쉬의 서를 황궁에 숨겨놓다니.”

대스승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보고부터 해야겠죠?”

“뭘 당연한 것을 묻고 있느냐? 설마하니 우리 둘이서 타이런 제국의 황궁에 쳐들어가기라도 할 작정이었느냐?”

내 물음에 대스승님이 타박하며 되물었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스승님께 연락부터 해야겠네요. 우선 여관부터 찾죠.”

길거리에서 연락을 취할 수는 없었다.

이 도시는 타이런 제국의 중심부이자 칼라마쉬의 서를 훔쳐 간 놈들의 본거지일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근처의 여관에 방을 잡았다.

품에서 스승님이 나눠주셨던 통신구를 꺼내 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마탑을 떠나기 전에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을 받기는 받았는데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저, 대스승님. 혹시 통신구의 사용법을 아십니까?”

“응? 카밀라는 그런 것도 알려주지 않았더냐? 에잉! 줘봐라.”

대스승님은 통신구를 빼앗아 들더니 마나를 불어 넣으며 말했다.

“통신구는 마나만 불어 넣으면 연결되어 있는 상대방의 통신구로 연결이 된다. 아마도 카밀라 녀석은 다른 사람들의 통신구가 자신이 가진 통신구에 연결되게 해놓았겠지.”

대스승님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구에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만에 보는 스승님의 얼굴은 각지에 흩어진 마탑원들과 연락하며 지시를 내리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라엘이니? 아니……. 스승님?! 스승님이 어째서?!]

내가 연락한 것인 줄 알고 통신을 받았던 스승님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대스승님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네 제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보다, 내 분명 칼라마쉬의 서를 파기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것이…….]

칼라마쉬의 서에 대하여 추궁하자 스승님은 당황한 듯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대스승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말했다.

“그보다, 네 제자 녀석이 칼라마쉬의 서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네? 정말입니까? 거기가 어디입니까?]

깜짝 놀라 묻는 스승님의 말에 대스승님이 그건 네가 말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긴 하이넨입니다. 믿을 수 없게도……. 타이런 제국의 황궁에서 칼라마쉬의 서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말에 통신구 너머로 보이는 스승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입까지 반쯤 벌린 채 경악하던 스승님은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말했다.

[그, 그들의 배후에 타이런 제국이 있었다는 건가…….]

스승님의 말에 대스승님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시며 대답했다.

“그건 아직까진 모르지. 그래서 어찌할 생각이냐?”

대스승님의 말에 잠시 아무 말 없이 생각하던 스승님이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후우, 아무래도 제가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힘없이 내뱉는 스승님의 말에 대스승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어떻게 할지 정해질 동안 우리는 여기서 머물고 있으마. 그리고……. 칼라마쉬의 서가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네……. 스승님.]

지은 죄가 있는 스승님으로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스승님의 많은 모습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약한 모습은 처음 본다.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자신을 가르친 스승님께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럼 이만 끊으마.”

[네.]

통신을 종료한 후 대스승님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이렇게 됐으니…….”

“?”

말끝을 흐리는 대스승님이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나는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관광이나 하자꾸나. 맛있는 것도 먹고!”

순간적으로 그 말에 어이가 없어졌으나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대스승님은 그런 걸 신경 쓰실 분이 아니니까.

그걸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절실히 깨달은 나다.

대스승님은 이른바 식도락가였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를 들를 때마다 그곳에서 가장 요리를 잘한다는 식당은 반드시 들르곤 했다.

“하아, 그러죠 뭐.”

어차피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대스승님 말대로 관광이나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반쯤 체념한 나의 말에 대스승님은 흡족하게 웃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식사나 하러 가자꾸나. 지난번에 여기에 들렀을 때 괜찮았던 식당이 있거든.”

어느새 칼라마쉬의 서에 관해서는 싹 잊어버렸다는 듯 대스승님은 웃으며 방을 나섰다.

솔직히 대스승님의 추천으로 간 식당들은 모두 마음에 들었던 터다.

칼라마쉬의 서에 관한 걱정은 잠시 잊기로 하고 식사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나였다.

뭐,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

대스승님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은 하이넨에서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었다.

정말 이런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올지 의심이 가긴 했지만 기대에 찬 대스승님의 얼굴을 보고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앞치마를 두르고 우리를 맞이했다.

네 테이블 정도 규모의 작고 허름한 가게 안에는 우리 말고도 손님들이 더 있었다.

테이블 하나에 조금 비좁다 싶을 정도로 앉아 있는 딱딱한 인상의 사내 다섯 명.

그들은 모두 같은 복장에 허리춤에 검을 하나씩 차고 있었다.

그들과는 반대로 혼자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젊은 여자 한 명.

그녀는 수수한 옷차림이었으나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인상이었다.

다섯 사내들의 인상이 그리 편안한 편은 아니었던지라 우리는 자연히 젊은 여자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장! 여기 오늘의 추천 메뉴로 두 개 주게!”

“네!”

대스승님의 주문을 받은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여긴 그날그날 들어오는 재료에 따라 주인이 만드는 음식이 일품이지.”

어째선지 자신이 의기양양해하며 말하는 스승님의 모습에 옆 테이블의 여자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곳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용케도 이 가게를 알고 계시네요.”

그녀의 물음에 대스승님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의 낙이 바로 맛있는 것을 찾아다니는 거라서 말이지.”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래서 이곳은 제가 아끼는 가게지요.”

“허허, 젊은 사람이 안목이 있구먼.”

식도락가끼리 통하는 것이 있는지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대화하던 도중 여자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옆에 계신 분은 손자분이신가요?”

“이 녀석은 내 제자의 제자라네. 어쩌다 보니 함께 여행 중이지.”

“여행이라……. 부럽네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음식은 금방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오늘의 추천 메뉴는 구운 빵을 곁들인 야채 스튜였다.

흔한 메뉴였기에 기대보다는 약간의 실망이 컸다.

“어떠냐? 한번 먹어봐라.”

자신 있게 권하는 대스승님의 말에 빵을 스튜에 찍어 맛을 보았다.

“음?!”

입안 가득 퍼지는 의외의 풍미에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내 반응에 대스승님과 옆 테이블의 여자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맛있죠?”

옆 테이블 여자의 말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맛있어요!”

외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의 음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부하고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이렇게 맛있는데 어째서 이런 외진 곳에 가게가 있는 거죠?”

이 정도 맛이라면 시내 한복판에 크게 식당을 차려도 장사가 잘될 것 같은데.

“그건 주인아주머니가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셔서 그래요. 그 덕에 저는 이렇게 느긋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더 좋지만요.”

흠, 한마디로 혼잡한 것이 싫어서 일부러 외진 곳에다가 식당을 만들었다는 거군.

아는 사람만 아는 끝내주는 식당이라, 이거 괜찮은데.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뭐야, 이런 곳에도 식당이 있었잖아?”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청년 셋이 들어오더니 비어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여기 아무거나 3인분이랑 맥주 3잔 가져와!”

그중 한 청년의 외침에 주인아주머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저희 식당은 술을 팔지 않아요.”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당장 가져와!”

당장에라도 난동을 부릴 듯한 청년들의 모습에 대스승님이 눈을 찌푸렸다.

간만의 흡족한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당장에라도 화를 낼 기세였다.

“이 버릇……!”

대스승님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옆 테이블의 여자가 먼저 움직였다.

촤악-!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가 앉은 채로 컵에 담겨 있던 물을 그들을 향해 끼얹었다.

“으앗?!”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청년들이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씨발, 네년은 뭐야?”

욕을 내뱉는 청년들의 험악한 분위기에도 여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한 소란 피우지 말고 나가주시죠. 민폐입니다.”

“뭐야?!”

여자의 말에 청년들 중 한 명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나와 대스승님이 끼어들려고 일어서려던 때.

더 빨리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어딜 감히!”

테이블 하나에 비좁게 앉아 있던 다섯 사내가 우리보다 먼저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다섯 사내는 여자의 호위였던 모양이다.

청년의 들어 올린 손을 잡아챈 다섯 사내 중 하나가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놈들이구나.”

손목을 움켜잡는 억센 힘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챈 청년이 당황하며 말했다.

“뭐, 뭐?! 그러는 너는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그 말이 오히려 호위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정녕 팔이라도 잘라내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구나.”

정말로 팔을 잘라 버리겠다는 듯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드는 호위의 모습에 청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쯤 해두세요, 알렉스. 이 정도면 말귀를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렇죠?”

그 상황에도 담담하게 식사를 계속하고 있던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에 청년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물론이다.”

팔이 잘릴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청년은 자존심이 있는지 끝까지 반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카리야 님.”

알렉스라 불린 호위가 여자의 말에 대답하고는 청년의 손을 놓아주며 뒤로 밀쳐냈다.

“흥, 카리야 님의 자비에 감사하도록.”

“으억!”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뒤로 나뒹굴어진 청년이 알렉스를 잠시 노려보고는 동료들과 함께 가게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두, 두고 보자!”

우와……. 정말 틀에 박힌 삼류 악당들이나 할 법한 대사를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세 청년이 도망치듯 식당을 나서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여자가 우리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괜한 소란을 피워서 죄송해요.”

“허허, 아니네. 처자와 저 젊은이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서서 혼쭐을 내주려던 참이었으니.”

카리야라는 여자의 사과에 대스승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 싸가지 없는 청년들로서는 운이 좋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군.

8서클의 대마법사라면 죽이지 않더라도 고통을 주는 방법이 넘쳐나니까.

“저는 이만 일어나 봐야겠네요. 즐거운 식사 되시길.”

식사를 마친 카리야가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다섯 명의 호위를 이끌고 식당을 나서는 것을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쳐다보았다.

“뭔가……. 굉장히 엄청난 분위기의 여자분이었네요.”

빵에 스튜를 잔뜩 적셔서 먹던 대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먹기나 해라. 아무래도 우리도 따라가 봐야 할 것 같으니까.”

“네? 따라가다니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하자 대스승님은 웃으면서 식사를 계속하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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