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화 - 노인의 정체
“파이어 볼!”
아무런 대비도 못 한 상황에서 갑자기 날아온 화염구에 나는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던졌다.
쾅!
내가 있던 자리에서 화염구가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말했지 않느냐, 실력 좀 보자고.”
히죽히죽 웃으며 말한 노인이 재차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피하기만 해서야 실력을 볼 수 없지. 파이어 월!”
그렇게 말하며 그가 펼친 불의 장벽이 내 뒤를 가로막았다.
이러다 산불 나겠… 이 아니라, 이러다 내 목숨이 위험할 것 같은데?!
노인의 여흥에 어울려 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만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
가장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이중 영창으로 사용하여 노인의 좌우를 노렸다.
“호오? 이중 영창이라? 꽤 쓸 만한 기술을 쓰는구나.”
나의 이중 영창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쓰면 그만이지. 실드! 실드!”
노인은 좌우에 실드를 펼치며 내가 사용한 두 발의 파이어 애로우를 손쉽게 막아냈다.
이중 영창이 언제부터 누구나 다 쓰는 기술이 된 거야?!
지난번 청색 마탑을 습격했던 자들의 우두머리도 사용했고 말이야.
“어떻게? 이중 영창을?!”
“끌끌, 이중 영창이 배우기 어렵긴 해도 비전의 기술은 아니잖나?”
확실히 미구엘이라는 마법사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기에 그의 이중 영창도 곳곳에 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그 이후에 익히는 것이 어려워서 거의 사장되었다고 들었는데.
당황하는 나에게 노인은 계속해서 웃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어디, 이거나 한번 막아보아라! 버닝 스파이럴!”
맹렬하게 회전하는 화염의 창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기겁하며 서둘러 방어 마법을 시전했다.
화염 계열의 실드로 막아서는 곤란하다.
마법을 같은 계열의 실드로 막을 때 좋은 점도 있지만 상대의 마법이 한층 위라면 오히려 잡아먹히니까.
“워터 실드! 워터 실드!”
적색 마탑의 마법사라고 화염 외의 다른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숙련도가 조금 떨어질 뿐.
청색 마탑에 머무는 동안 나라고 놀고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르바인 님과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물 계열 마법의 요령에 대해서 조금 배워두었기에 다행이다.
그럼에도 노인의 마법은 무척이나 강해 보였기에 이중 영창으로 워터 실드를 시전했다.
치이이익-!
두 겹으로 펼쳐진 물의 방패와 맹렬하게 회전하는 화염의 창이 부딪치자 귀가 따가울 정도의 소음이 발생했다.
“크윽!”
두 겹으로 워터 실드를 펼쳤음에도 화염의 창이 짓누르는 압박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어떠냐? 이 늙은이의 재주가 견딜 만하냐?”
장난치듯 말하는 노인의 말에 나는 대답도 못 하고 워터 실드에 마나를 더욱 불어 넣었다.
“으아아!”
악을 쓰며 워터 실드에 마나를 불어 넣은 끝에 간신히 화염의 창을 막아냈다.
“헉, 헉!”
내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자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고작 그거 하나 막았다고 엄살인 게냐? 쯧쯧.”
“고작 그거라뇨! 고작 4서클인 제가 6서클의 마법을 막아낸 것만 해도 대단한 거란 말입니다! 그보다 대체 왜 다짜고짜 공격하는 겁니까?”
노인이 사용한 버닝 스파이럴은 최소 6서클 이상의 것이었다.
이중 영창이 아니었다면 절대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끌끌, 앓는 소리 하기는……. 카밀라 녀석과 연관이 있는 듯해서 건드려 봤더니…….”
“적색 마탑주님과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신 거죠?”
나와 스승님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단 그의 말에 내가 추궁하듯 말했다.
“허허, 그야 당연하지. 네가 차고 있는 목걸이. 그거 내가 그 녀석에게 준 것이니까.”
“네?”
나는 당황하며 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분명히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 흩어지기 전에 스승님이 내게 주신 목걸이다.
분명 위험할 때는 마나를 불어 넣으며 ‘케이나다!’라고 외치라고 말씀하시면서 주셨지.
“내가 그 녀석과 헤어지기 전에 줬던 건데, 시전어만 외치면 무작위 지점으로 텔레포트시켜 주는 목걸이지.”
무언가 마법이 걸린 거라는 건 알겠는데 무슨 마법이 걸린 건지는 말해주지 않으셔서 몰랐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케이나……!”
“어허! 어딜 도망가려고? 네 녀석이 내 제자와 무슨 관계인지 설명해 줘야겠다. 설마, 훔친 것은 아닐 테지?”
그렇게 말하며 째려보는 그의 주름진 눈매가 무척이나 매서웠다.
“훔쳤으면 제가 어떻게 시전어를 알고 있겠어요? 그보다 그분이 어르신의 제자라는 걸 어떻게 믿죠?”
오히려 내가 의심하며 묻자 그는 껄껄 웃으며 엄지를 입가에, 새끼손가락을 이마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하마. 카밀라 그 아이는 내가 가르친 아이다.”
헉! 마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다니, 정말인가?
마나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어길 시에는 평생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계약이다.
“저, 정말 스승님의 스승님이신 거예요?!”
“고럼, 고럼. 내가 그 녀석의 스승……. 응? 뭐라고? 네가 그 녀석의 제자란 말이냐?!”
“네. 제가 바로 카밀라 님의 제자인데요.”
“허어, 그 녀석이 벌써 제자를 다 키운다니……. 잉? 그런데 네 녀석은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온 거냐?”
“그건……. 말하기 곤란합니다.”
아무리 스승님의 스승님이라도 칼라마쉬의 서에 관한 것을 함부로 말하긴 힘들었다.
아직까진 비밀로 해두고 있는데 소문이 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내 말에 그는 눈을 찌푸리더니 투덜거렸다.
“뭐야, 나에게도 말해주기 어렵다는 건 무척 심각한 것이냐? 혹시 소문이 날까 염려하는 거라면 걱정 마라, 마나의 이름으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할 테니.”
재차 마나에 대한 맹세를 하려는 그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대답했다.
“그게 사실은…….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이 습격당해서 보관 중이던 칼라마쉬의 서가 도난을 당했거든요. 그래서 모두 흩어져 찾아다니던 중이에요.”
“뭣이?! 칼라마쉬의 서?!”
스승님의 스승님, 일단은 대스승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대스승님도 칼라마쉬의 서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흉악한 것이 아직도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더냐?!”
진작 사라졌을 거라 생각하는 듯한 그의 반응에 나는 되레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 그런데요?”
“끄응, 카밀라 이 바보 같은 녀석이. 분명히 내가 분명히 파기하라고 일렀거늘.”
듣자 하니 스승님은 대스승님에게 비밀로 하고 칼라마쉬의 서를 청색 마탑과 나눠서 비밀리에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자리에는 없는 스승님을 향해 혼자서 투덜거리던 대스승님이 다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칼라마쉬의 서는 어떻게 찾고 있느냐?”
“스승님이 만드신 칼라마쉬의 서 감지기를 통해서요.”
그렇게 말하며 감지기를 꺼내 보이자 대스승님이 홱 낚아채 가선 살폈다.
“흐음, 어디 보자……. 대충 보아하니 칼라마쉬의 서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을 감지하도록 만들었군.”
한 번 보고 단번에 알아차리는 대스승님의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과연 스승님의 스승님.
역시 한 번에 알아보는구나…….
아, 그런데 스승님의 스승님이라면 대체 몇 서클이신 거지?!
“저, 죄송한데 지금 몇 서클이나 되시나요?”
“8서클이다.”
…8서클이라고?
8서클은 대륙에서 10명밖에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뭐냐? 그 못 미더운 듯한 표정은? 설마하니 내가 제자보다 못할 것 같으냐? 내가 너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줘야 믿으련?”
그에게서 일순간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스승님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강하면 강했지 전혀 약하지 않았다.
“아, 아뇨. 8서클은 10명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혹시 대스승님의 성함이 키린토이신가요?”
이름밖에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대마법사 키린토.
추측할 수 있는 정체는 그것뿐이었다.
“내 이름이 키린토 마그나이저가 맞다만. 어떻게 아는 거냐?”
맙소사, 어떻게 은둔의 대마법사의 제자가 적색 마탑주라는 엄청난 사실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거지?
자신이 은둔의 대마법사로 알려진 사실도 모른다는 눈치였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해주자 대스승님은 입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거 시답잖은 별명이나 붙이고 말이야……. 쯧.”
가볍게 혀를 차며 투덜거리던 그가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나저나, 제자 녀석이 나와 같은 8서클에 오른 것도 모자라 밑에 제자까지 두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구먼.”
흐뭇하다는 듯 웃어 보인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서 계속 돌아다니는 게냐?”
내가 자신의 제자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키린토 대스승님의 태도는 꽤나 부드러워졌다.
마치 손자를 대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태도였다.
음, 그런데 마법의 서클이 높으면 노화가 느려지는데도 노인의 모습이라면……. 대체 몇 살이신 거야?
“네. 일단은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칼라마쉬의 서가 흘리는 기운을 찾아내기를 빌어야죠.”
내 대답에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결정했다.”
“네? 뭘요?”
뜬금없는 말에 내가 의아해하며 되묻자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요즘 들어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던 차이니 너와 함께 다니겠단 거다.”
“네에?”
“왜? 불만이냐?”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8서클 대마법사가 내 곁에서 함께해 준다면 든든하기 짝이 없지.
위험할 때 분명히 도움이 될 테니까.
“좋아, 너와 다니다 보면 언젠간 카밀라 그 아이와도 만날 수 있을 터. 칼라마쉬의 서를 폐기하지 않은 것을 혼낼 수도 있겠지.”
으음, 괜히 동행해서 스승님께 폐가 되는 건 아닐까.
“아무튼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
대스승님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내가 대답했다.
“음, 이 근처에 있는 대도시인 프레트 시로 가려고요.”
프레트 시에는 타이런 제국의 세 마법 병단 중 제3마법병단이 주둔하는 곳이다.
스승님께서는 이번 일이 타이런 제국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셨다.
그렇기에 타이런 제국에 파견된 자들은 마법병단과 제국의 곳곳에 위치한 연구시설 주변을 탐문하도록 시키셨다.
“음, 프레트 시라. 거기는 크림 브륄레가 맛있지.”
마법사라면 보통 거기에 주둔 중인 마법병단부터 떠올리지 않나.
아무리 봐도 대스승님은 좀 특이하신 분인 것 같다.
“갈 곳이 정해져 있다면 어서 가자꾸나. 간만에 그곳의 크림 브륄레가 먹고 싶구나!”
“어……. 그럼 출발하죠.”
보통은 크림 브륄레보다는 칼라마쉬의 서를 찾는 걸 더 우선하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은 괴짜인 것 같은 냄새가 난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스승님의 스승님이자 은둔의 대마법사로 알려진 키린토 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 * *
프레트 시에 도착했음에도 스승님의 감지기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실망해서 한숨을 작게 내쉬고 있자니 대스승님이 나를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자자, 그건 잠시 접어두고 식사부터 하자꾸나.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더니 입안이 깔깔하구나.”
…프레트에 오는 동안 식사를 담당한 사람은 나였다.
나름대로 길 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정성 들여 준비했더니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니!
약간은 기분이 상했지만 티를 낼 수도 없었다.
티를 낸다 해도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는 대스승님은 눈치도 못 챘겠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다가 황급히 대스승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스승님이 소개해서 들어간 식당의 크림 브륄레는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