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화 - 감지기
결국 칼라마쉬의 서 나머지 부분도 정체불명의 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청색 마탑의 피해는 적색 마탑보다도 심각했다.
오리아 수정으로 인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살해당한 사람도 꽤 있었다.
놈들은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순식간에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리아 수정의 효과가 사라졌다.
오리아 수정의 효과가 사라지자마자 청색 마탑의 순간 이동소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익숙한 얼굴들, 붉은 로브를 걸친 스승님과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청색 마탑주, 어떻게 된 거요?”
“크윽, 면목 없소이다. 미리 경고까지 해주었건만……. 칼라마쉬의 서의 나머지 부분을 빼앗기고 말았소.”
“그럴 수가…….”
믿을 수 없다는 스승님의 말에 세르바인 님이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사이에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과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오리아 수정?! 어쩐지, 연락을 받자마자 이쪽으로 이동이 안 되더니…….”
오리아 수정의 영향은 텔레포트 마법진도 정지시켰던 모양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칼라마쉬의 서를 모두 빼앗겼으니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세르바인 님을 진정시키며 스승님이 말했다.
“우선은 이렇게 된 이상 칼라마쉬의 서에 대해서 알려야겠지요. 우리끼리 대응하기보다는 각 마탑, 각 국가의 협력을 구해야 합니다.”
칼라마쉬의 서에 대해서 숨기고 있을 때라면 몰라도 도난당한 이상은 다른 곳에도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칼라마쉬의 서는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으음, 적색 마탑주의 말이 옳소. 그렇게 합시다.”
“그 전에 우리도 놈들을 쫓아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이오? 우린 놈들의 정체도 모르고 칼라마쉬의 서를 어디로 옮길지도 모르지 않소.”
세르바인 님의 말대로 우리에게는 어떠한 단서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놈들을 쫓을 방안이라면 있습니다.”
스승님의 말에 세르바인 님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실은 칼라마쉬의 서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감지하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아마 놈들도 그 기운을 통해 숨겨둔 칼라마쉬의 서를 금방 찾아낸 것일 테지요.”
“정말이시오?”
“네, 칼라마쉬의 서를 보관하고 있던 세월이 있으니까요. 틈틈이 연구를 해두었습니다.”
“나도 틈틈이 연구를 하며 칼라마쉬의 서에 봉인을 걸어두었소이다. 놈들도 금방 사용하지는 못할 거요.”
어느 정도 진정한 세르바인 님이 자신이 했던 봉인을 떠올리곤 말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시간은 번 셈이로군요.”
스승님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마탑의 마법사들이 협력한 덕에 피해 수습은 어느 정도 끝난 상태였다.
“우선은 마탑으로 돌아가서 칼라마쉬의 서를 찾을 도구를 만들겠습니다.”
“부탁드리오.”
스승님은 세르바인 님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만 돌아가자꾸나.”
“네.”
기껏 청색 마탑까지 와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놈들이 오리아 수정을 쓸 줄은 나도 몰랐으니.”
그런 나에게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한 스승님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놈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반드시 칼라마쉬의 서를 되찾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확인하듯 말하는 스승님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후, 스승님은 칼라마쉬의 서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의 기운을 추적할 수 있는 마법 도구를 만들어냈다.
“이게 바로 그 장치요?”
소식을 듣자마자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달려온 세르바인 님의 물음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내민 것은 나침반처럼 생긴 무언가다.
“제 예상이 맞는다면……. 가까이에 칼라마쉬의 서가 있다면 바늘이 가리킬 겁니다.”
장치의 바늘은 아직까지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었다.
“찾을 수 있는 범위는 어느 정도요?”
세르바인 님의 물음에 스승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 1킬로 정도 될 겁니다.”
“1킬로라……. 몇 개나 만드셨소이까?”
“대략 200개……. 적색과 청색 마탑의 모든 인원에게 나눠주기는 충분합니다.”
“모두 그 감지기를 가지고 흩어져서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봐야겠구려.”
“그래야겠지요.”
두 마탑의 모든 인원이 대륙 각지에 흩어져 칼라마쉬의 서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 * *
몇 주 후, 나는 타이런 제국의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나고 있다.
얼마 전에 전쟁을 치렀던 국가의 땅을 돌아다니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모두 제비뽑기로 갈 지역을 정한 것이니 어쩔 수 없지.
타이런 제국 내에서 적색 마탑의 로브를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기에 나는 지금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얻었던 로브를 걸친 상태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돌아다니기만 해서야 어느 세월에 칼라마쉬의 서를 찾을 수 있담?
방법이 이것뿐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나에게 배정받은 감지기를 꺼내어 보았다.
계속 쳐다봐도 바늘은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한곳을 가리키지 않는다.
뭐, 어쩔 수 없지. 이리저리 계속 돌아다녀 보는 수밖에.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막막해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칼라마쉬의 서를 찾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너무 막막하잖아!
이런 사람을 못 봤습니까? 하고 탐문할 수도 없고.
그러는 사이 해가 지고 있었다.
일단은 하룻밤 지낼 곳을 찾기로 했다.
나는 [죽은 송아지]라는 이름의 여관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슈. 뭐가 필요하시우?”
무뚝뚝한 주인장의 인사를 받으며 방과 식사를 달라고 했다.
내 말에 열쇠를 건네며 여관 주인이 물었다.
“2층 끝 방이우. 그보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타지에서 온 것 같은데. 어디서 왔수?”
내가 말하는 억양을 듣고 내가 다른 곳에서 온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우리 크라우드 왕국이 속한 서부보다도 타이런 제국이 속한 중부는 억양이 훨씬 강하고 억셌다.
“서부에서 왔어요. 여행 겸 타이런 제국의 발전된 문물을 접해보려고요.”
크라우드 왕국에서 칼라마쉬의 서를 찾으러 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그렇게 속였다.
“서부라……. 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요즘 이 나라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그리 반기지 않으니까.”
아마도 새로운 황제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장이 그런 걸 알려주자 고마워졌다.
“고맙습니다. 유의하도록 하죠.”
여관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곤 자리에 앉아 식사를 기다리려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을 걸었다.
로브를 걸친 노인은 짧게 자른 백발에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쪽도 외지인인가 보군?”
대륙 동부의 느긋한 억양이었다.
“그렇습니다만?”
“끌끌, 여관 주인 말대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의 황제 성격이 개차반이라 아랫것들도 개차반이거든!”
그 말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여관 안에는 나와 노인, 주방에 있는 여관 주인밖에 없었다.
여관 주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솔직히 그 말로 인해 저 노인이 잡혀가서 고초를 치르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다.
하지만 재수 없게 나까지 엮이게 되는 건 곤란하다고.
“클클, 들으려면 들으라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노인의 태도에 오히려 나는 의아해졌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엄청난 뭔가가 있어서 그런 건지.
“그보다 꼬맹아, 너도 마법사냐?”
순간 걱정하던 것이 그 말에 깡그리 잊혔다.
“꼬맹이 아니거든요? 성인이거든요?!”
“끌끌……. 어리게 보는 말에 화를 내는 걸 보니 역시 꼬맹이로구나. 나이를 먹은 놈들은 어리게 봐주면 오히려 좋아하던데 말이다.”
<크크크, 보통은 그렇지.>
‘시끄러워!’
“화염의 마나를 지닌 녀석이라……. 간만에 옛 생각이 나는군.”
꼬맹이라는 말 때문에 발끈하다가도 내 마나의 성질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그걸……?”
높은 수준의 마법사여야 보는 것만으로 그걸 알 수 있을 텐데.
혹시 눈앞의 이 미친 영감님도 마법사인가?
“클클, 애송이가 갈무리하지도 않고 흘려대는 마나의 기운을 읽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이 동네에서는 식은 죽이라는 게 팔팔 끓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건가?
그게 쉬운 일일 리가 없잖아.
“예전에 너처럼 화염의 마나를 지닌 녀석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내가 어이없어하거나 말거나 노인은 멋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이 카밀라 루드비히였던가, 꽤나 성격이 드센 여자아이였지.”
…엥? 그 이름은……. 우리 스승님 이름인데?!
“예쁘긴 예쁜데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질 않나……. 꽤나 고생했었지.”
“어……. 혹시 그분 붉은 머리에 눈가에 점이 하나 있지 않나요?”
“응, 그런데? 넌 그걸 어찌 아느냐?”
“그분……. 그 카밀라 루드비히라면 크라우드 왕국의 적색 마탑주잖아요.”
대놓고 나의 스승님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 돌려서 말했다.
내 말에 노인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에엥?! 그 녀석이 마탑주가 되었다고?!”
“네. 대륙에서 10명뿐인 8서클 마법사 중 한 명이잖아요.”
“허어, 그 녀석이 8서클까지 도달해서 마탑주까지 되었을 줄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저, 정말 이 영감님이 스승님의 스승님인 건가?!
“요즘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았더니 제자가 뭐 하는지도 몰랐구먼, 끌끌…….”
“정말 그분의 스승님이세요?”
“뭐, 고작 6서클까지긴 해도 내가 가르쳤으니 스승이라 해도 되겠지.”
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정체를 밝히고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 하나?
아니,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르잖아.
이름과 외모를 안다고 해서 어떻게 믿어?
내가 고민하는 사이 영감님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내가 긴장하는 순간.
“음식 나왔수다.”
무뚝뚝한 여관 주인이 스튜와 빵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따끈따끈한 스튜와 구운 빵이다.
일단은 내 정체에 대한 것은 숨기기로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노인은 뭔가 신경 쓰인다는 듯 나를 계속 응시했다.
나는 그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이곳은 타이런 제국의 땅.
정체를 드러내 봐야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 * *
다음 날.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칼라마쉬의 서를 찾으려면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했으니까.
마을을 떠나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와중에 자꾸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누구냐! 숨어 있지 말고 나와라!”
아무도 없다면 무척이나 부끄러웠을 테지만 다행히도 누군가가 수풀 속에서 걸어 나왔다.
“클클, 눈치가 영 없지는 않구나.”
그렇게 말하며 걸어 나온 이는 어젯밤 여관에서 자신이 내 스승님의 스승이라고 주장했던 노인이었다.
“어르신은……? 왜 날 미행한 겁니까?”
“미행은 무슨, 그냥 가는 길을 따라온 것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보통 그걸 미행이라고 부르는뎁쇼.
“아무튼 왜 따라온 겁니까?”
내 물음에 노인은 히죽 웃더니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일단은 실력 좀 보자꾸나!”
노인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