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화 - 청색 마탑의 습격자
청색 마탑으로 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온 것이 무의미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라고는 손님용 방에서 수련을 하거나 청색 마탑주인 세르바인 님과 아리안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였다.
“흠, 이상하군. 적색 마탑을 습격한 놈들이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세르바인 님의 근심 어린 말에 맞은편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아리안이 눈을 살짝 찡그렸다.
“혹시 놈들이 포기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두 권 중 한 권으로 만족한 걸지도…….”
그녀의 말에 세르바인 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적색 마탑을 습격하고, 칼라마쉬의 서 반쪽을 훔쳐 갈 정도의 자들이라면 쉽게 포기할 리가 없어. 게다가 칼라마쉬의 서는 반쪽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반드시 탈취를 시도할 것이다.”
세르바인 님의 말에 아리안은 으음, 하는 침음을 흘렸다.
“혹시 모르니까 왕국에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떨까요? 기사들이라도 몇 명 불러온다면 도움이 될 텐데요.”
내 말에 세르바인 님이 무겁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곤란하네. 칼라마쉬의 서에 대한 것은 왕실에도 비밀이라네.”
왕실에도 비밀이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는 건가…….
그 말에 아리안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저 아이는 계속 머물게 하실 셈입니까? 마탑 내에 외부인이 계속 머무르면 오히려 칼라마쉬의 서를 지키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릅니다만.”
바로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아리안의 말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저도 성인이라니까요.”
왜 자꾸 나를 어린아이 취급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화를 내는 부분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지 아리안은 잠시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리안,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그 무슨 실례냐? 게다가 저 친구는 네 목숨도 구해주지 않았더냐.”
세르바인 님의 꾸지람에 아리안은 가볍게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 내가 목숨을 구해줬다는 말이 듣기 싫은 기색이다.
“후우, 마탑을 노리는 적이 있다는 것 때문에 예민해져 있다는 것은 알겠다만 손님께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
“…네.”
여전히 불편한 기색으로 대답한 아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계속하겠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녀가 세르바인 님의 방을 나서자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제자의 무례를 용서하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웃으며 세르바인 님에게 대답하고 방을 나서서 아리안의 모습을 찾았다.
개의치 않는다고 대답은 했다지만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리안은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잠깐만요, 아리안 누나.”
“뭐지?”
복도를 걸어가던 그녀가 내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며 돌아보았다.
“저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죠?”
그녀와 대화할 때면 왠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나름대로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니 섭섭한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물음에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말을 더듬었다.
“시, 싫어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네? 그렇지만 저를 볼 때마다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짓지를 않나 조금 전에도 저를 적색 마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었잖아요.”
“그, 그건…….”
당황한 듯한 그녀의 반응에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티를 낼 때는 언제고 그걸 물으니까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잠시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말했다.
“잠시 따라와.”
다짜고짜 따라오라는 그녀의 말에 의아했으나 워낙 분위기가 진지했기에 군말 없이 따라갔다.
그녀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자신의 방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저기……. 여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리안의 뒤를 따라 들어선 내가 방 안의 모습을 살피며 물었다.
“내 방이야.”
아니, 그건 대충 짐작 가는데…….
언제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는 다르게 방 내부는 소녀 감성이 물씬 풍겼다.
연분홍색으로 꾸며진 것이나 곳곳에 놓인 봉제 인형들까지.
딱 봐도 쌀쌀맞은 분위기가 풍기는 그녀의 방이 이런 분위기라니.
아니, 그보다 왜 자신의 방에 나를 데려온 거지?
무슨 속셈인지를 몰라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녀가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예요?”
눈치를 살피며 물은 내 말에 그녀는 심호흡을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에엑?!”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내게 그녀가 말했다.
“오해하게 했다면 미안해. 나는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
“에엥?!”
하지만 지금까지 내게 보인 행동들은 누가 봐도 내가 싫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내가 놀라거나 말거나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인상이 나쁜 데다가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툴러서 네가 오해한 거야. 너를 돌려보내려 한 것도 우리 마탑의 일로 내 은인인 네가 다칠까 봐 그런 거야.”
음, 솔직히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투른 사람들은 많으니까.
“그럼 저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물론이야.”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그 대화를 끝으로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니 다행이긴 한데, 더 나눌 만한 이야기가 없군.
“어,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용건은 마쳤으니 이만 손님방으로 돌아가려는데 그녀가 날 붙잡았다.
“아, 차라도 한잔…….”
“차는 조금 전에도 마셨잖아요.”
“아, 그랬지…….”
눈을 찡그리는 것은 기분이 상해서 그러는 걸까 머쓱해서 그러는 걸까.
정말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툰 표정이로군.
둘 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멀뚱멀뚱 서 있을 때였다.
부우우웅-!
뿔피리 소리와 비슷한 무언가의 소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이건 무슨 소리죠?”
듣자마자 불길해지는 소리에 내가 당황하며 묻자 아리안은 잔뜩 흔들리는 눈으로 대답했다.
저건 다른 뜻이 아니라 정말 심각하다는 표정이다.
“마탑이 침략받았을 때 울리는 경보음이야.”
나와 아리안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와 나는 곧장 각자의 스태프를 움켜쥐고는 방을 뛰쳐나갔다.
콰앙!
그와 동시에 청색 마탑 곳곳에서 폭음이 들리며 동시다발적으로 화염이 치솟았다.
“적이다!”
청색 마탑 마법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마탑 곳곳을 누비는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런 표식도 특색도 없는 검은 옷을 걸친 자들.
얼굴에는 복면까지 한 것이 결코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검을 든 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드문드문 스태프를 쥐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마탑주님의 탑 쪽으로 간다! 막아!”
마탑의 마법사 하나가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침입자들은 청색 마탑의 중심에 위치한 마탑주의 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필드!”
“워터 캐넌!”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사용한 물과 얼음 계열의 마법들이 쉴 새 없이 검은 옷의 사내들에게 쏟아졌다.
얼음의 화살이 날아가고 바닥이 미끄러운 얼음으로 뒤덮이고 물대포가 쏟아졌다.
그러나 검은 옷의 침입자들은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날랜 몸놀림으로 마법들을 피하거나 검을 휘둘러 얼음 화살을 쳐냈다.
그들은 전혀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과 싸우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칼라마쉬의 서 나머지 반쪽이 있을 것이 분명한 청색 마탑주의 탑을 향해 서슴없이 달려갔다.
“어딜 감히!”
자신의 탑으로 달려오는 검은 사내들을 본 세르바인 님이 마법을 펼쳤다.
“아이스 레인!”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검은 사내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넓은 범위에 쏟아지는 것이라 피하기 힘들기에 검은 사내들은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 쳐내거나 실드를 사용해 얼음의 비를 막아냈다.
그들이 멈칫한 틈을 타서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포위하듯 둘러쌌다.
“네놈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감히 청색 마탑을 습격하다니! 성히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세르바인 님의 싸늘한 목소리에도 검은 사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두 붙잡아라!”
세르바인 님의 말에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 전원이 검은 사내들을 향해 마법을 쏟아부었다.
나 역시도 마법을 시전하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검은 사내들 중 앞에 있던 누군가가 갑자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깨뜨렸다.
“크윽?!”
수정과 같은 그것이 깨짐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려던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두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마나가 일순간 흩어지며 어지러움이 온몸을 뒤덮었다.
“이, 이게 무슨?!”
유일하게 멀쩡한 세르바인 님의 당황한 외침에 수정을 깨뜨렸던 이가 낮게 웃었다.
아마도 그가 침입자들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후후, 우리가 올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청색 마탑을 상대로 이 정도 준비를 하는 건 당연하지.”
그의 말과 휘하 마법사들의 반응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는지 세르바인 님이 소리쳤다.
“설마, 오리아 수정?!”
그건 또 뭐지?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카이서스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깨뜨리면 잠시 동안 주변의 마나를 흐트러뜨리는 수정이다. 6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리지.>
끄응, 그래서 준비 중이던 마법이 실패하며 어지러워진 것이로군.
6서클 이하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니.
세르바인 님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한순간 쓸모없게 되어버렸다는 거잖아?!
거기다 침입자를 대비해서 설치해 둔 마법함정들도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소리다.
“흥! 그렇다 해도 나를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스 허리케인!”
세르바인 님이 그렇게 외치며 침입자들을 향해 스태프를 내밀었다.
스태프에서 얼음 조각의 폭풍이 뿜어져 나오며 그들을 덮쳤다.
오리아 수정이란 것은 아마도 피아를 구분하는 능력은 없을 터.
그들의 마법도 봉인되었을 테니까.
“후후, 아무 생각 없이 오리아 수정을 사용한 줄 아시오?”
오리아 수정의 깨뜨렸던 사내가 피식 웃으며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파이어 실드! 파이어 실드!”
이중 영창?!
그보다 오리아 수정으로 인해 마나가 흐트러진 상태에서 어떻게 마법을?!
설마 7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건가?
이중으로 펼쳐진 화염의 실드가 얼음 조각들을 녹이며 얼음의 폭풍을 막아냈다.
“대체 네놈은?!”
세르바인 님의 경악에 습격자의 우두머리가 웃었다.
“하하, 그걸 말해줄 거라면 복면은 왜 썼겠소? 물건을 찾아라! 방해가 되는 놈들은 모조리 죽여도 좋다!”
“네!”
그의 외침에 검을 들고 있던 침입자들이 대답하며 세르바인 님의 탑으로 향했다.
“이놈들! 내가 두고만 볼 것 같으냐!”
세르바인 님이 소리치며 검을 든 침입자들에게 마법을 사용하려 했으나 우두머리 사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딜! 익스플로전!”
“블링크!”
그 말에 황급히 세르바인 님이 주문을 외치는 것과 동시에 발밑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번쩍임과 함께 다시 나타난 세르바인 님은 다친 것 같지는 않았으나 당황하고 있었다.
다수의 마법사들이 오리아 수정으로 인해 마법이 묶인 상태.
마탑 내에 둘밖에 안 되는 7서클 마법사들은 검은 사내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8서클인 자신은 우두머리 사내와 검을 든 사내들에게 발이 묶인 상태.
나와 청색 마탑의 마법사 대부분은 어쩌지도 못하고 물러서서 구경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오리아 수정이라는 것의 효과는 얼마나 지속되지?’
<적어도 30분 정도는 지속될 거다.>
젠장, 30분이라니.
그 시간이라면 칼라마쉬의 서를 빼앗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크윽!”
그 순간 청색 마탑의 7서클 마법사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으나 크게 다친 듯했다.
그 틈을 타서 검은 옷의 사내들이 길을 막는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을 베어 넘어뜨리며 탑 안으로 진입했다.
“안 돼!”
세르바인 님이 소리치며 막으려 했으나 우두머리 사내와 검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시 우리와 놀아주어야겠소!”
“크윽!”
세르바인 님의 얼굴이 무척이나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