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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4화 (14/150)

014화 - 칼라마쉬의 서

트롬웰에는 커다란 마법 물품 상점이 있다.

적색 마탑이 근처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점으로 들어서자마자 상점 주인은 나의 붉은 로브를 발견하고는 환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적색 마탑주께서 필요하신 물건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메모를 건네자 상점 주인이 깜짝 놀랐다.

“적색 마탑주께서요? 어디 보겠습니다.”

메모를 받아 든 상점 주인이 찬찬히 읽어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다행히 다 있는 것들이로군요. 얼마 전에 입고된 것들도 있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상점 주인이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그가 물건을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게 내부를 둘러보았다.

적색 마탑 인근 도시의 마법 상점이라서인지 각종 희귀한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각종 마법의 강화에 필요한 시약부터 보기 드문 몬스터의 말린 내장과 힘줄 같은 것까지.

마탑 내에도 많긴 하지만 다들 아끼느라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읏챠! 여기 있습니다!”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상점 주인이 창고에서 짐을 한가득 들고 나왔다.

대충 보기에도 꽤나 많은 짐이다.

들고 온 배낭에 다 들어갈지조차 의문인데.

“모두 다 해서 17골드입니다.”

스승님이 직접 사 오라고 한 것이니만큼 꽤나 가격이 많이 나갔다.

대충 4인 평민 가족의 1년 생활비가 10골드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돈이다.

물론 내 마법 주머니 안에는 엄청난 양의 보석이 들어 있지만.

“여기요.”

스승님께 받은 돈이 20골드니 계산에 모자람은 없다.

금화 17개를 내고 물건들을 받았다.

그것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보니 어떻게든 다 들어가긴 했다.

“적색 마탑에는 늘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찾아와 주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상점을 나온 나는 이제 뭘 할까 고민했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마탑과 트롬웰은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하루 만에 왕복하기는 무리였다.

아무래도 여기서 하룻밤 묵고 가야겠지.

근처에서 여관을 찾은 나는 가장 좋은 방을 빌리고는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물건을 사고 남는 돈으로 여비를 하라고 하셨으니까 조금의 사치 정도는 괜찮겠지.

마탑에서의 내 방보다 푹신한 침대에 앉아서 마나 수련을 좀 하다가 그대로 누워서 잠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출발을 서둘렀다.

트롬웰에서 마탑까지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가방이 무거워서 트롬웰로 올 때보다 마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욱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마탑이 있는 트릭스 산까지 가는 상행이 없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나귀라도 한 마리 끌고 올 걸 그랬나? 하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마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길 위에서 미리 준비한 점심을 먹고 또 몇 시간을 걸어 트릭스 산 바로 밑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탑이 있는 산 중턱에서 폭음과 함께 화염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갑작스레 마탑 쪽에서 일어난 폭발에 작은 마을의 사람들은 다들 당황한 표정으로 산 위를 쳐다보았다.

산 아래에서도 보일 정도의 강렬한 화염과 폭발, 이건 스승님의 마법이 분명했다.

나는 잔뜩 긴장했다.

스승님이 마탑 내에서 공격 마법을 사용할 정도라면 분명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거 같은데?>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력을 다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어 올라가니 숨이 턱까지 올라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폭발음과 화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잠시 후 도착한 마탑의 풍경은 내가 트롬웰로 가기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곳곳의 건물이 부서진 것은 물론이고 스승님의 탑조차도 반쯤 부서져 있었다.

마법사들과 수습생들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끄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라엘! 구경만 하지 말고 불 끄는 것 좀 돕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중에 설명해 주겠네!”

마탑에 처음 왔을 때 나를 안내했던 칸델 씨의 다급한 외침에 나도 불을 끄는 데 가세했다.

일단은 다들 마법사인지라 물을 떠 와서 뿌린다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워터 볼!”

“아쿠아 스플래시!”

주력 마법이 화염계 마법이라는 거지 다른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위력이 약하긴 해도 수 계통의 마법으로 불을 끄는 데는 충분했다.

100여 명의 마법사와 수습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각종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불은 오래 지나지 않아 수습되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내가 하루 정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마법을 사용하다가 실수로 불이 난 것이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나도 컸다.

마치 한바탕 마법으로 전투를 치르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내 물음에 칸델 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습격이 있었네.”

“네? 습격요? 대체 어떤 자들이?”

“우리도 모르네……. 자네는 일단 마탑주님께 가보게.”

칸델 씨의 말에 나는 쉬지도 못하고 서둘러 스승님의 탑으로 향했다.

반쯤 탑 앞에서 다른 마법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던 스승님이 나를 발견했다.

“라엘, 돌아왔느냐?”

“스승님!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내 물음에 스승님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너라.”

스승님은 탑 안으로 나를 이끌더니 그나마 멀쩡한 방으로 데려갔다.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스승님이 천천히 말했다.

“우리 마탑에서 보관하던 것들 중에 아주 위험한 것이 하나 있단다.”

대충 말을 들어보니 마탑을 습격한 자들은 그것을 노린 듯했다.

“칼라마쉬의 서라고, 어둠의 마법에 대해 적혀 있는 책이란다.”

<뭣이?! 칼라마쉬의 서?!>

카이서스도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게 뭔데?’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끄응, 설마하니 그게 이곳에 있었을 줄이야…….>

‘대체 그게 뭐냐고.’

<간단하게 말해서 마계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는 마법서다.>

“마, 마계로의 문?!”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어 소리쳤다.

스승님은 내 말에 그걸 어떻게 아냐는 듯 눈을 찡그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

“아……. 얼마 전에 본 책에서 칼라마쉬의 서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런 책이 우리 마탑에 있었던가?”

“글쎄요. 저도 무슨 책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네요.”

나의 빈약한 변명에도 스승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몰라도 어떤 자들이 그 칼라마쉬의 서를 노리고 습격해 왔다.”

창문 너머로 부서진 건물들을 지켜보던 스승님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한눈을 파는 짧은 순간에 빼앗기고 말았다. 마계의 문이 열린다면……. 이 세상은 위험에 빠지고 만다.”

“그, 그럼 위험한 것 아닌가요?”

“다행히도 칼라마쉬의 서는 두 개로 나누어서 보관 중에 있었다. 한 개만으로는 쓸모가 없지.”

두 개로 나누어서 보관하고 있었다고? 그러면 나머지 하나를 보관하고 있을 만한 곳이라면…….

“청색 마탑에서 나머지 한 개를 가지고 있다. 방금 청색 마탑에 연락은 했다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잠시 말을 멈춘 스승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탑을 복구하고 사람들을 추스르느라 바쁜데 보낼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가서 청색 마탑을 도와주련?”

“네, 그러겠습니다.”

“고맙구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곧장 출발하도록 해라.”

나는 스승님이 부탁했던 물건들이 담긴 배낭을 내려놓았다.

갈 때는 가더라도 짐을 줄이는 것이 움직이기에 편했으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중이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 마탑을 습격한 자들이 언제 청색 마탑을 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대로 스승님의 탑을 나서서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했다.

마탑 간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이어져 있지 않지만 수도인 트럼벨은 다르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가동되며 나의 몸을 빛이 휘감았다.

그리고 익숙한 어지러움과 아득함을 느끼고 났을 때 이미 나는 트럼벨에 도착해 있었다.

“우윽……. 정말이지 텔레포트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아무리 텔레포트의 후유증으로 괴롭다고 해도 쉴 수는 없었다.

마탑을 습격해서 마탑주의 물건을 훔쳐 갈 정도라면 분명 놈들도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다음 목표로 이동할 테니까.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방비가 단단해지리라는 것쯤은 예상하겠지.

나는 트럼벨 순간 이동소의 상주 마법사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적색 마탑의 라엘입니다. 급한 용무로 청색 마탑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적색 마탑 소속이라는 신분패를 보이자 순간 이동소의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크라우드 왕국 내에서 적색과 청색 마탑은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순간 이동소와 같은 국가 시설의 무료 이용이다.

마탑의 마법사는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이나 다름없는 존재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청색 마탑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또다시 찾아온 어지러움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말을 걸었다.

청색 마탑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관리하는 당번 마법사겠지.

“이 늦은 시간에 적색 마탑의 마법사가 여긴 무슨 일입니까?”

조금은 당황한 듯한,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해가 진 이후니까.

“으으, 적색 마탑주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청색 마탑주님을 뵙고 싶은데요.”

속이 울렁거려 신음을 흘리며 그렇게 말하자 곤란하다는 듯 쳐다보던 청색 마탑의 마법사가 말했다.

“일단은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죠. 마탑주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네.”

내가 텔레포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것이 안되어 보였는지 자리를 권한 그가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돌아온 그의 곁에는 익숙한 얼굴이 함께 있었다.

“어, 아리안 누나?”

“누가 왔나 했더니……. 너였구나. 따라와, 스승님께서 보자고 하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아리안의 뒤를 따라갔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더니 무심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어째서 나를 구해줬던 거야?”

“…네?”

뜬금없는 소리에 내가 멍하니 되묻자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지난번 전쟁에서 어째서 목숨까지 걸어가며 나를 구해준 거냐고.”

“그건……. 저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인 거라서 뭐라고 대답하기가…….”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살짝 눈을 찌푸린 그녀가 돌아서더니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네가 온 것은 칼라마쉬의 서 때문이겠지?”

“어? 알고 계시네요?”

“나는 마탑주의 제자이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음, 나는 오늘까지만 해도 그런 건 알지도 못했었는데.

적색 마탑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청색 마탑의 중앙에는 마탑주의 탑이 세워져 있었다.

“들어가지. 스승님께서 기다리고 계셔.”

아리안의 뒤를 따라 탑으로 들어가자 지난번에 만났던 청색 마탑주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자네는……. 그렇군, 지난번에는 고마웠네. 덕분에 내 제자가 목숨을 건졌다 들었어. 그보다 이렇게 급하게 온 건……. 역시 적색 마탑이 습격을 받은 그 일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대체 누가 칼라마쉬의 서에 대해서 알아낸 건지는 몰라도……. 그것에 손을 대려 하다니…….”

“스승님께서는 청색 마탑도 습격을 받을까 봐 무척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네를 보낸 거겠지. 걱정하지 말게. 적색 마탑은 아무런 대비도 못 하고 있었기에 습격이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의 청색 마탑은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맙군. 아리안, 이 친구에게 손님방을 하나 내어주어라.”

“예.”

그렇게 나는 한동안 청색 마탑에 머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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