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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3화 (13/150)

013화 - 아득한 경지

우리는 요새 도시 야나스에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마탑으로 돌아왔다.

80명의 적색 마탑 마법사 중에서 돌아온 것은 63명.

아무리 후방에 위치하는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워낙 불리한 전쟁이었다.

17명이나 되는 동료를 잃고 돌아온 마법사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와 마찬가지로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마법사들도 스무 명이나 되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다들 고생이 많았네. 돌아오지 못한 이도, 다친 이도 있지만 오늘은 푹 쉬도록 하지.”

돌아온 첫날의 저녁 식사 자리.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이는 식탁을 씁쓸한 시선으로 훑으며 스승님이 말했다.

다들 말없이 잔을 들어 올려 전사한 동료들을 추모하고는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도 오랜만에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직까지는 복부가 조금 욱신거리기는 하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전쟁에 참전하고도 살아 돌아오다니.

솔직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잠시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스승이 쉬라 하지 않았더냐?>

카이서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마나 수련을 할 자세를 취했다.

‘가만히 누워서 잠이나 자기에는 내가 너무 약한 것 같아서.’

제국의 기사에게 배가 베였을 때 내가 더 능력이 있었더라면 오히려 역으로 그를 제압할 수도 있었겠지.

고서클로 갈수록 저서클의 마법은 순식간에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하루빨리 강해져서 그런 무서운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이라면 가까이 다가온 기사를 상대로도 태연하게 대응했을 텐데.

아직까지 내가 실력이나 경험 모두 모자라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아, 드래곤은 좋겠다. 누구보다 강하니까.”

마나 수련을 하기 전 실없이 내뱉은 나의 말에 카이서스가 불편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드래곤이라고 최강은 아니다.>

“응? 그럼 드래곤보다 강한 존재가 있다는 거야?”

내 물음에 카이서스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마계의 존재, 마족들 중에서 마왕이라 불리는 놈들은 우리 드래곤과 비슷할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지금껏 우리 드래곤이 그들에게서 이 세상을 지켜온 것이고.>

“마왕… 이라고? 그런 건 동화 속에나 나오는 것 아니야?”

<흥, 수백 년간 조용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하지만 놈들은 실존하고, 호시탐탐 이 세계를 노리고 있다.>

“음, 마왕이라……. 드래곤만큼이나 강하다면 9서클 대마법사 정도 되는 건가?”

인간이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

9서클이라는 감도 안 잡히는 영역을 언급하며 물었다.

내 말에 오히려 카이서스는 화를 내며 말했다.

<감히 드래곤을 뭐로 보고?! 겨우 9서클 수준일 리가 없지 않느냐!>

엥? 겨우라고?! 마법의 끝은 9서클이 아니었나?

내가 의아해하는 생각을 읽은 카이서스가 혀를 쯧쯧 찼다.

<이래서 어리석은 인간들이란……. 9서클 이후의 경지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아니, 내 상식상으로는 안 당연한 일이거든?!

9서클 이후의 경지가 있다니.

9서클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아득한 내게 있어서는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드래곤과 마왕들 같은 존재들에게 있어선 9서클은 마법을 갓 뗀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이후가…….>

잠시 말을 끊은 카이서스가 여느 때보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클을 부수는 경지……. 즉, 서클 브레이커는 되어야 하나의 드래곤과 마왕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서클 브레이커…….”

서클 브레이커라면 지난번에 카이서스가 처음으로 마법을 가르쳐 줄 때 지나가듯 말했던 이름 아닌가?

서클을 부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에 내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카이서스가 잠시 침묵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가장 대표적인 서클 브레이커의 능력으로 우리 드래곤의 브레스를 꼽을 수 있겠군.>

“엥?! 그거 그냥 입에서 뿜는 거 아니었어?”

<멍청한 녀석. 우리 드래곤의 브레스도 마법이다. 체내에서 생성하는 가장 순수한 파괴의 브레이크지.>

어어……. 드래곤의 브레스가 마법이라고?

그럼 나도 서클 브레이커가 되면 입에서 브레스를 쏠 수 있는 건가?

“그 서클 브레이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 말에 카이서스가 피식거리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일단은 9서클이 되어야지.>

당연히 9서클 이후의 경지니까 9서클이 되는 게 우선이겠지.

“9서클이라……. 내가 9서클까지 올라갈 수는 있을까?”

현재 대륙의 마법사들 중에서 최고가 8서클.

그것도 10명밖에 없다.

우리 크라우드 왕국의 적색 마탑주와 청색 마탑주.

파이썬 왕국의 회색 마탑주.

쉘던 왕국의 백색 마탑주.

타이런 제국 마법병단에 소속된 3명의 병단장.

프레첸 제국의 녹색 마탑주와 자색 마탑주, 황색 마탑주.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키린토라는 이름만 알려진 은둔의 대마법사까지.

위의 10명이 대륙에서 확인된 8서클 대마법사들이다.

9서클에 오른 사람이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데……. 내가 과연 서클 브레이커는커녕 9서클이 될 수나 있을까?

<크크, 그거야 네가 하기에 달렸지.>

“혹시나 9서클에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다면 알려줘.”

<너는 숨 쉬는 방법을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9서클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서 가르치기 힘들다니.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스승으로서는 정말 빵점이로군.

“쳇, 하여간 잘나셨어.”

내가 혀를 차며 툴툴거린 말에 카이서스는 껄껄 웃었다.

<드래곤의 위대함을 이제 알았느냐? 아무튼 지금의 너는 내 심장으로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몸이 되었다. 게으름만 피우지 않는다면 9서클쯤이야 금방 도달할 것이다.>

9서클을 동네 애 이름처럼 말하는군.

“그럼 내가 9서클에 도달한다면 그 서클 브레이커라는 것도 될 수 있을까?”

<그거야 당연하지. 아무리 이전까지는 멍청한 인간이었다고 해도 내 심장으로 인해 너는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이놈의 드래곤은 꼭 좋게 말하는 법이 없다니까.

“아무튼 내가 노력만 한다면 9서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로군.”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 자꾸 신경 쓰인다.

“일단은 수련해 볼까.”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듯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마나 수련을 할 준비를 했다.

내가 보통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든가, 그렇지 않다든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강해져서 이름을 날리는 거다.

그리고 가족들을 다시 만나는 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카이서스가 말했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서클 브레이커에 빨리 도달하지 못하면 처참하게 죽을 테니까. 뭐, 네가 죽으면 나도 죽겠군.>

별일 아니라는 듯 지나가듯 말하는 카이서스의 말을 흘려들으려 했었다.

하지만 도중에 나온 말은 도저히 흘려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엥? 뭐라고?! 처참하게 죽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당황하며 묻자 카이서스가 오히려 의아해하며 말했다.

<응? 내가 말해주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뭐냐고?!”

<뭐, 내 심장으로 인해 네 몸이 급격하게 바뀌었다는 건 말했었지. 간단하게 말해서…… 평범한 인간의 몸은 드래곤의 심장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독과도 같지. 내 심장이 점점 네 몸을 잠식해 나가다가 결국 임계점을 지나면 죽음을 맞게 될 거다.>

“뭐야?! 그, 그럼 갑자기 죽게 된다는 거야?!”

<뭐, 그렇게 갑자기는 아닐 거다. 전조가 나타나며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다가 고통이 심해지며 죽어가겠지.>

“결국 죽는다는 건 변함없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서클 브레이커를 언급하면서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뭔가 문제가 생긴다는 식으로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 지나가듯 말했던 게 목숨과도 직결된 문제였어?!

내가 당황해서 소리친 말에 카이서스는 귀찮다는 듯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멍청한 놈. 평범한 인간이던 네 몸을 내 몸으로 쓰려던 거다. 아무런 방법이 없을 리가 없지.>

“그, 그래? 그 방법이 대체 뭔데?!”

<말했지 않느냐. 서클 브레이커에 서둘러 올라가야 한다고. 드래곤의 심장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네 육체와 정신이 성장하는 것이다.>

미친, 그러니까 지금 살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다는 9서클로도 모자라 그 경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거야?!

“말이 돼?”

<왜 안 되겠느냐? 내 심장을 삼킨 놈이 그것도 못 하면 나가 죽어야지!>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아니, 네 말대로라면 못 하면 죽는 게 맞긴 하지만…….”

<그러니까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죽기 싫으면.>

“끄응…….”

강해지지 못하면 죽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나 수련을 시작했다.

뒤지기는 싫으니까.

* * *

벌써 세 달이 흘렀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었다.

적색 마탑에 결원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찾아온 수많은 유망주들이 찾아와 수습생이 되었다.

그 덕에 비었던 방도 다시 차서 마탑에는 사람의 활기로 넘쳐났다.

그리고 또 하나, 나도 4서클이 되어 수습생이 아니라 마탑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드래곤 하트로 변화한 나의 심장이 다른 사람들의 몇 배에 달하는 마나를 끌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탑은 스승과 제자로서 마법을 전수해 나간다.

나도 마탑의 마법사로서 이름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아직 제자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나도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마탑에 새로 들어온 수습생들이 각자의 스승을 따라 마탑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오, 라엘! 오늘따라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평소엔 저녁 식사 때 외에는 방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하더니.”

내가 간만에 숙소를 나서자 제자를 데리고 지나가던 마법사 하나가 놀라며 말했다.

“하하, 누가 들으면 제가 매일 방에만 있는 줄 알겠네요.”

“사실이잖나.”

확실히 지난번에 들었던 서클 브레이커의 존재 때문에 수련에만 집중하긴 했었지.

그 덕에 4서클이 되었고 말이야.

“그나저나 자네,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마법을 배운 지 1년 만에 4서클이라니.”

그의 물음에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 하트를 먹고 몸이 변화하면 마법을 빠르게 익힐 수 있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빨리 강해지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니까.

“그냥 열심히 수련하다 보니…….”

“허허, 그야말로 재능이 넘치는 자들의 틀에 박힌 말이로군.”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한 그는 제자를 데리고 가던 길을 갔다.

그의 제자가 선망에 찬 시선으로 힐끗힐끗 돌아보는 것이 솔직히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나도 1년 전까지는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이었는데 말이야.

<크크, 내 심장을 받아들이고, 내게 몸을 빼앗기지 않은 것도 재능일지 모르지.>

그런가?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스승님의 탑으로 향했다.

“요즘은 저녁 식사 때 외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더니, 무슨 일이냐?”

스승님도 내가 간만에 찾아오자 놀란 듯, 그러면서도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하하……. 간만에 스승님이랑 차나 한잔하려고요.”

“그러고 보니 함께 차를 마신 지도 오래되었구나.”

스승님이 웃으며 자리를 권하고는 직접 차를 끓여주시던 도중 말했다.

“그나저나, 차만 마시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수련 중 뭔가 막히는 것이라도 있느냐?”

역시 스승님을 속일 수는 없다니까.

나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서클에 오른 후부터 마나가 제대로 모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내 말에 스승님은 차를 따라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너무 욕심내지 말거라. 지금 네가 4서클이 된 것도 엄청난 성취이니라.”

그렇게 말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신 스승님은 자신이 끓인 차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남들에 비해 엄청나게 빠르게 4서클에 오른 탓에 아직 서클이 안정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 게다.”

<흠, 제법이군.>

스승님이 정답을 말했다는 듯한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놀랐다.

‘뭐야? 이유를 알고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이 몸이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

‘그런데 어째서 알려주지 않은 거야?’

<물어본 적도 없잖느냐!>

끄응, 내가 며칠간 고민하는 걸 보면서도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고작 그거였어?

나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하여간 카이서스는 성격이 안 좋단 말이야.

“라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몰히 하느냐?”

내가 카이서스와 내면의 대화를 하는 것이 다른 생각을 하는 걸로 보였던 모양이다.

“아, 서클을 안정화시키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어요.”

카이서스와 같이 지내기 시작한 이후 거짓말만 느는 것 같다.

“후후, 다른 방법이 따로 있겠느냐? 평소처럼 열심히 수련하면서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최고란다.”

딱히 끝내주는 해결책은 없단 말이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어?’

<흥, 드래곤이라면 겪지도 않았을 문젠데 내가 알까 보냐.>

카이서스도 그렇게 대답하는 걸 보니 스승님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서둘러 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어차피 내게는 시간도 많지 않은가.

오늘은 느긋하게 스승님과 차나 마시면서 잡담이나 나누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두던 도중 스승님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렇지. 너의 서클이 안정될 동안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느냐?”

“어디요?”

“내가 자주 들르는 트롬웰의 상점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다더구나. 대신 가서 사다 줄 수 있겠니?”

그렇게 말한 스승님은 눈을 살짝 찡그려 보이더니 말했다.

“내가 직접 가면 좋겠지만 아직 전후 처리 문제로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말이다.”

“스승님이 부탁하신 건데 당연히 가야죠. 어떤 걸 사 오면 될까요?”

내 말에 스승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리 적어둔 메모를 내게 건넸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렴.”

“네.”

메모에 적힌 물품은……. 꽤나 많았다.

아무래도 들고 올 때 고생 좀 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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