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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 드래곤-12화 (12/150)

012화 - 후방으로

내가 참전한 첫 전투의 승리 이후로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제국이 괜히 강대국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력한 기사들을 앞세우고, 마법병단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우리 왕국군을 몰아붙였다.

어느 정도의 지원군과 두 마탑의 참전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아군에는 8서클의 대마법사가 둘이었으나 제국 측에도 세 명이나 되는 대마법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적색 마탑주인 스승님과 청색 마탑주가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도 전황을 뒤집지는 못했다.

스승님과 청색 마탑주로서는 제국 측의 8서클 대마법사들의 대규모 마법을 간신히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

“도와줘!”

사방에서 악을 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은 패배로 인해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는 상황.

제국의 기사들이 일렁이는 마나가 휘감긴 검을 휘두르고, 마법병단의 마법 폭격에 사방에서 비명만이 들려온다.

“파이어 볼!”

“디그!”

“워터 캐넌!”

나를 포함한 마법사들도 적의 기사들과 마법사를 저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마법을 사용했으나 숫자에서 역부족이었다.

우리가 사용한 마법은 기사들의 마나가 실린 검에 찢겨 나가거나 마법병단의 마법에 격추, 혹은 방어되었다.

“이런 젠장, 이러다가 죽는 것 아닌가 모르겠군.”

카를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헛소리 말고 마법이나 써! 체인 라이트닝!”

그 모습에 타키온이 버럭 소리치며 적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아리안의 워터 캐넌에 젖은 적들이 감전되며 바르르 떨다가 쓰러졌다.

그 순간 우리 앞을 막고 있던 병사들을 훌쩍 뛰어넘은 제국의 기사 하나가 우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어엇?!”

카를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

촤악-!

“꺽!”

카를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제국 기사가 휘두른 칼날에 가슴을 깊숙이 베이며 쓰러졌다.

“이, 이런 제길! 우리 쪽 기사는 어디 있는 거야?!”

타키온의 악을 쓰는 외침에도 제국의 기사는 고개를 돌려 다음 대상을 찾았다.

투구 아래로 드러나 보이는 그의 눈은 무척이나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음 상대로 정한 것은 아리안이었다.

“시, 실드!”

당황한 아리안이 다급히 실드를 펼쳤으나 제국 기사의 검을 마나가 휘감으며 매섭게 타올랐다.

파지직!

콩 볶는 소리가 나더니 실드가 부서져 버렸다.

실드가 칼날에 휘감긴 마나는 어느 정도 상쇄시켰다고는 해도 검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칼날에 아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 순간.

“위험해요!”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슨 짓이냐, 이 미친놈아!>

카이서스가 당황해서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아리안을 옆으로 밀쳐내자마자 복부 쪽에서 화끈한 느낌과 함께 피가 뿜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라엘!”

아리안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소리.

“이놈!”

뒤늦게 온 아군의 기사가 제국의 기사를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 차려!”

당황한 아리안이 나를 부축하며 소리쳤다.

<죽지 마라!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단 말이다! 정신 차려라!>

정신 차리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의 야전병원이었다.

“정신이 들어요?”

“물…….”

앳된 의무병의 물음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내가 물을 찾았다.

의무병이 가져다준 물을 마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갖 부상을 입은 사람들로 커다란 막사 안이 가득하다.

“여긴 어디죠?”

“야나스 인근의 야전병원이에요.”

전장이었던 칼나란 평야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야나스 근처에 위치한 야전병원.

다행히 죽지는 않고 후방으로 후송되어 온 모양이다.

“전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그건…….”

“으악! 의무병!”

“갑니다!”

내 물음에 대답하려던 의무병은 다른 환자가 비명을 지르자 곧장 달려가 버렸다.

내 물음에 대답해 준 것은 옆 침상에 누워 있던 사내였다.

“계속 밀리고 있어. 전쟁의 명분이던 칼나란 평야를 점령하고도 제국이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더군.”

한쪽 눈과 팔을 잃은 사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놈들은 야나스 코앞까지 다가왔어. 제국 놈들, 마치 우리 왕국을 전부 집어삼키겠다는 기세라고.”

그렇게 말하곤 사내는 잃은 부위가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리며 돌아누웠다.

제국이 왕국을 집어삼킨다고…….

전쟁에 참전한 것도 내가 소속된 곳이 징집되어서일 뿐, 애국심이라는 건 별로 없는 나다.

하지만 제국의 지배를 받는 것은 싫다.

제국의 새로운 황제는 무척이나 포악하고 잔인한 성격이라 들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봐야 여기 자빠져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데… 분명 죽을 줄 알았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서 후송된 거지?

살아남은 것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다가왔다.

“여, 일어났군?”

상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타키온이었다.

“타키온 씨? 타키온 씨도 후송된 거예요?”

“응, 어깨랑 등짝에 화살을 좀 맞아서 말이야. 죽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살아서 후송되었지.”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살아난 거예요?”

내 물음에 타키온이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리안 그녀가 필사적으로 자네를 치료했네. 화살이 날아드는데도 꿋꿋이 자네에게 힐링을 계속해서 사용하더라고.”

아리안이?

죽이지 않으면 죽을 거라느니 그런 무서운 소리만 하던 여자가?

“그 덕에 자네는 살아서 후송 올 수 있었던 거니 다음에 그녀를 만나면 고마워하라고.”

확실히 그 자리에서 즉시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얼마 가지 못해 죽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복부에서부터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아아, 무리하진 말라고. 의료 마법사 말로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동안은 쉬어야 할 거라 했네.”

타키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눕자마자 카이서스의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구하려고 죽음을 무릅쓰다니. 이 무슨 한심한 짓이냐?>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인 걸 어떡해?’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단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내 목적을 이루는 일도…….>

목적?

자신이 사용할 몸을 찾는 것을 말하는 건가?

‘그래도 살았으니 됐잖아. 덤으로 안전한 후방까지 후송까지 되었고 말이야.’

<그건 그렇다만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해라.>

카이서스는 영 불쾌한 기색이다.

<나처럼 위대한 존재를 품고 있는 놈이 그렇게 쉽게 죽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단 말이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끄응, 죽다 살아난 놈이 더 침착하구나.>

이것도 다 드래곤 하트로 개조된 덕분이지.

“그래도 참 신기하단 말이야. 남들 같았으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는데 벌써 깨어나다니.”

타키온이 나를 이리저리 살피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나는 상의를 들추어보았다.

내장이 거의 다 드러날 정도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아물어가는 자국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내 심장이 너의 신체를 강화시키면서 치유력도 늘린 것 같군.>

확실히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것치고는 엄청나게 많이 아물어 있다.

“아무튼 좀 더 쉬게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 부상자도 전장에 나가야 할지도 모르니.”

타키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부상이 욱신거린다는 듯 자신의 병상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정말로 전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 정도 부상이 나으면 곧장 전장으로 다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물론 내가 전장에 돌아간다 해도 바뀔 것은 많이 없겠지만.

“제국군이 보인다!”

야전병원의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외침.

그 말에 거동이 가능한 부상병들이 우르르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움직이지 마세요!”

“환자들은 자리를 지켜욧!”

그들의 행동에 의무병들이 비명 지르듯 소리를 질러댔으나 듣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욱신거리는 배를 움켜잡고는 비틀거리며 야전병원의 막사를 벗어났다.

다른 막사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는지 거동이 가능한 부상병들이 다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기다!”

누군가의 외침에 부상병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야나스 요새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칼나란 평야 방향에서부터 뭔가가 보였다.

후퇴하고 있는 우리 왕국의 군대와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아오고 있는 제국의 군대.

결국은 야나스 요새까지 전장이 밀려나는 모양이다.

“정말로 제국은 칼나란 평야를 다 빼앗을 셈인가?”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웅성임 속에서 울려 퍼졌다.

“설마, 야나스 요새까지 함락당하려고.”

“혹시 모르지, 야나스 요새뿐만이 아니라 왕국 전체를 집어삼키려 들지도.”

야나스 요새가 함락된다면 칼나란 평야를 완전히 빼앗기는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국이 진군을 멈추지 않는다면… 왕국 전체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겠지.

우리는 모두 불안한 시선으로 제국군의 진격을 지켜보았다.

후퇴하는 왕국군 사이에는 스승님도, 아리안도 있겠지.

다들 무사할까?

내가 아직 전장에 남은 아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동안에도 제국군은 점점 야나스 요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갑자기 제국군의 진격이 멈추었다.

아직까지 야나스 요새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남아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국군이 진격을 멈춘 덕분에 쫓기고 있던 우리 왕국군은 무사히 야나스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갑자기 제국군이 진격을 멈추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야전병원의 부상병들이 의아해하며 웅성거렸다.

제국군 사이에서 깃발을 등에 꽂은 전령 하나가 야나스 요새로 향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타이런 제국과 국경을 맞댄 또 다른 제국, 프레첸 제국이 군대를 움직였다고 한다.

프레첸 제국으로서도 타이런 제국이 더 크고 강해지는 것은 원치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제국은 진격을 멈추고 협상을 제의했다.

칼나란 평야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이 조건.

우리 크라우드 왕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크라우드 왕국 입장에서는 타이런 제국이 침략을 멈춰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상태였으니까.

결국 타이런 제국에게 칼나란 평야를 넘기는 것으로 전쟁은 끝이 났다.

나는 야전병원의 침상에 앉아 전해져 들려오는 그 소식들을 들었다.

나의 첫 번째 전쟁은 그렇게 한 달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 * *

짧은 전쟁이 끝나고, 부상이 어느 정도 다 나아갈 때쯤 스승님이 찾아왔다.

“이것저것 하느라 늦었구나. 몸은 괜찮으냐?”

“네. 다행히 염려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스승님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침대맡에 앉으며 말했다.

“청색 마탑주의 제자를 구하다가 죽을 뻔했다 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서 그만… 제가 아니면 그녀는 죽었을 거예요. 다행히 저도 살았으니 된 거잖아요.”

우물쭈물 변명하듯 내뱉은 내 말에 스승님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목숨이니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

엄중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뭐라 변명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스승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리고 덤으로 청색 마탑주에게도 빚을 지웠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구나.”

‘비록 전쟁에서는 우리가 패했지만 말이지’라는 뒷말을 삼키며 말한 스승님이 손을 내밀었다.

“이만 돌아가자꾸나. 전쟁도 끝났으니 더 있을 이유도 없지 않느냐.”

“네.”

나는 스승님의 손을 잡으며 병상에서 일어났다.

대륙력 754년 6월 22일.

여름이 다가오는 가운데 나는 적색 마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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