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 전쟁 발발
다음 날 저녁 식사 자리에 모인 마탑 마법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다들 이번 전쟁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다.
나흘 전, 타이런 제국의 대군이 우리 크라우드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와 함께 진격을 개시했다.
명분은 오래전부터 분쟁의 대상이었던 칼나란 평야를 되찾겠다는 것.
그에 우리 크라우드 왕국은 다급히 군대를 모음과 동시에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에 징집을 통지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에 전쟁이 발발했다. 나라의 지원을 받는 우리 마탑도 그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바, 다들 각오를 단단히 해둬야 할 것이다.”
참전을 확실시하는 마탑주의 말에 소속 마법사들이 웅성거렸다.
그들 중에는 전쟁에 참전해 본 경험 많은 마법사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전쟁 경험이 없었다.
“사흘 뒤에 마탑을 지킬 마법사들만 남기고 모두 전장으로 떠날 것이다. 다들 준비를 해두도록.”
“예!”
마탑에서 마탑주의 명령은 절대적.
식당에 모인 모든 마법사들이 크게 대답했다.
마탑주인 스승님과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이 상의한 끝에 정해진 출정 명단에는 내 이름도 올라가 있었다.
드래곤 하트로 인해 몸과 정신이 진화되어서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중에 스승님이 나를 불렀다.
“내 밑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전쟁에 참전시키게 되어 미안하구나.”
미안해하는 스승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스승님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잖아요.”
나의 대답에 스승님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전쟁은 많은 사람에게 좋지 않으나 우리 같은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단다.”
“기회요?”
아리안과 비슷한 말을 하는 스승님의 말에 내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스승님은 그런 내 표정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불꽃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해서는 타오르지 않는단다. 실전을 거치고, 한계까지 몰아붙일 때 더욱 거세게 타오르지. 마법 또한 마찬가지다.”
뭔가 심오한 말인 듯했으나 한마디로 실전을 통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그런 말인 듯하다.
“게다가 너는 유명해져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느냐?”
스승님은 가족을 찾는다는 내 사정을 알고 있다.
“네.”
“마법사가 유명해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전쟁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란다.”
확실히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면 이름이 널리 퍼질 테니까.
그렇게 되면 가족들의 귀에도 내 이야기가 들어갈지 모른다.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단다. 그것을 이용할지, 아니면 피해자가 될지는 선택에 달려 있단다.”
<기왕 하는 김에 마법도 팍팍 써서 마법 이해도나 잔뜩 높여 버려라.>
스승님의 말에 카이서스도 속에서 말을 보탰다.
“하지만 불이 너를 집어삼키지 않게 조심하거라. 너에게는 기대가 크단다.”
“네!”
나의 대답에 미소를 지어 보인 스승님이 재차 말했다.
“마법을 배운 지 1년도 안 되어 3서클 마스터에 도달한 천재 마법사의 등장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무대로구나.”
“네? 그걸 어떻게?”
어제 스승님의 탑을 찾아갔다가 징집 통지서를 보고 때가 아닌 듯하여 말하지 않았었는데.
내가 3서클 마스터가 되었단 사실을 알고 있는 스승님의 말에 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후후, 스승으로서 그런 것도 눈치채지 못할 듯싶으냐?”
마탑의 주인이 될 정도의 능력을 지닌 마법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서클을 알아볼 수 있는 모양이다.
막 몸속을 꿰뚫어 봐서 심장에 있는 마나의 고리를 알아보고 그러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로 엄청나구나. 어쩌면 너는 나의 성취를 뛰어넘을지도 모르겠어.”
적색 마탑주인 스승님은 인간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는 8서클의 대마법사였다.
대륙에 10명밖에 없는 대마법사.
그런 스승님께서 그렇게 말하시니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4서클부터는 재능만으로는 올라갈 수 없는 영역.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라.”
“네!”
힘차게 대답하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던 스승님이 이만 물러가 보라는 듯 손짓했다.
“가서 준비를 하여라. 전장은 멀고도 험하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어차피 내가 챙길 짐이라 해봐야 스태프와 로브가 다였기에 따로 짐을 챙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전쟁에 참전하는 이상 누군가를 죽여야 하겠지.
그런데……. 아무렇지 않다면 어떡하지?
‘지난번에 고블린을 죽일 때처럼 아무렇지 않다면……. 정말로 난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걸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좋은 것 아니더냐. 인간을 뛰어넘은 새로운 존재가 된 것이니 말이다.>
내 생각을 읽은 카이서스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좋지 않거든? 난 사람이고 싶지 이상한 괴물이 되긴 싫어.’
<싫었다면 내게 몸을 순순히 넘겼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건 더 싫거든?’
애초에 어떻게 내 몸을 빼앗기지 않은 건지는 모르지만 그건 싫다.
<그렇다면 징징대지 마라.>
카이서스의 말에 나는 입을 배죽 내밀었다.
확실히 이렇게 된 이상 고민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스승님께서도 전쟁을 이용할지, 피해자가 될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고 했잖아.
“후우, 일단 난 자야겠어.”
머리가 복잡할 때는 자는 것이 최고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곧 잠에 빠져들었다.
* * *
우리는 걸어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전장에서 가까운 도시로 향했다.
국경에서 이틀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요새 도시 야나스.
전쟁이 발발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각지에서 몰려든 군대로 가득했다.
현재 국경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국경을 수비하는 1군단이 제국의 군대를 맞이하여 싸우고는 있으나 수에서 밀리는 탓에 무척 불리한 형세라 했다.
우리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야나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크라우드 왕국의 총사령관, 마일렌 공작이 사람을 보내왔다.
“총사령관께서 적색 마탑주께 빠른 참전을 감사드린다고 전하셨습니다.”
딱 봐도 군인으로 보이는 복장의 젊은 사내가 스승님께 군례를 취해 보이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총사령관께서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을 전선에 투입해 주실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젊은 군인의 말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알겠네. 오늘 안에 전선으로 향하겠네.”
“알겠습니다.”
젊은 군인이 다시 군례를 취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번 전쟁에는 적색 마탑의 112명 중에서 80명이 참전했다.
우리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총사령관인 마일렌 공작이 이끄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다들 무사히 살아남아 마탑에서 보도록 하세.”
스승님의 말에 우리 모두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야나스에서 출발하는 행렬에 섞여 전선으로 향했다.
적색 마탑이라는 명성 때문인지 군에서 마차를 내어준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전선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록 고급 마차가 아닌 짐마차였으나 전쟁 중에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덜컹거리는 마차 위에서 스승님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긴장되느냐?”
전장이 가까워져 올수록 긴장되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긴장한 것을 눈치챈 스승님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력을 믿으렴.”
내가 겁먹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 듯 스승님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긴장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아무렇지도 않을까 봐.
그것 때문에 긴장하는 것이었다.
전장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야나스로 후송되는 병사들과 간간이 마주쳤다.
신체 일부분이 잘렸다거나 피로 물든 붕대로 머리나 전신을 감싼 자들이 들것에 실린 채로, 혹은 비척대는 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에 구역질이 날 법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정말로 나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걸까.
* * *
멀리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폭발음이 들려와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났느냐. 곧 있으면 전장에 도착한단다.”
스승님의 말에 몸을 일으켜 전장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가운데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꽤나 치열하게 전투 중이구나.”
스승님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전장의 상황이 짐작 간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전장에 도착하자마자 실력 행사를 해야 할 것 같으니 준비해 두어라.”
아무리 경험이 많은 스승님이라도 전장이 가까워지자 긴장한 기색이었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의 짐칸에서 내린 우리는 병사들에게 물어 왕국 사령부가 위치한 곳으로 이동했다.
후방에 위치한 커다란 막사가 바로 왕국 사령부였다.
나름 후방에 위치해 있음에도 사령부에까지 전선의 고함 소리와 금속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정지, 신원을 밝히십시오.”
스승님이 사령부 앞으로 다가가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가 멈춰 세웠다.
“나는 적색 마탑주, 적색 마탑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왔다. 사령관께 전입신고를 하러 왔네.”
스승님이 로브의 옷깃에 새겨진 적색 마탑의 로고를 내보이며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기사는 그렇게 말하더니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며 다시 말했다.
“들어오시랍니다.”
나 혼자만을 대동한 스승님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내부의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많은 사람이 작전을 회의 중이었다.
“오, 적색 마탑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중에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스승님을 맞이했다.
“마일렌 공작님, 오랜만입니다.”
마탑주라는 자리 덕분에 마일렌 공작과도 친분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인사를 나누고는 마일렌 공작이 권한 자리에 앉은 스승님이 물었다.
“현재 전장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흐음, 좋지 않습니다.”
침중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마일렌 공작이 옆을 힐끗 보자 곁에 있던 부관이 전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국군의 숫자도 숫자지만 마법전투에서도 밀리는 실정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부관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인근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특히나 제국 마법병단이 전선 곳곳에서 범위 마법을 사용하여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습니다. 아군의 마법사 부대로는 대응이 힘든 상황입니다.”
마탑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제국에는 그들을 대신할 존재인 군대에 소속된 마법병단이 있었다.
부관의 설명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일렌 공작이 말했다.
“청색 마탑도 곧 도착할 예정이라 하니 두 마탑에서 제국의 마법병단을 상대해 주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전에 했던 대로 청색 마탑이 방어를, 저희가 공격을 맡으면 되겠지요.”
화염 계열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적색 마탑은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그에 반해 물과 얼음 마법을 주로 쓰는 청색 마탑은 방어와 공격에 모두 능하다.
그렇기에 지난 전쟁에서도 청색 마탑이 방어를 맡고 우리 적색 마탑이 공격을 담당했던 모양이다.
적색 마탑의 마법사 한 명과 청색 마탑의 마법사 한 명이 한 조가 되어 담당 부대를 지키며 공격한다.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을 보유한 크라우드 왕국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그로 인해 적색 마탑의 마법사 80명은 각자 흩어져 담당 부대로 파견되었다.
적색 마탑주인 스승님은 당연히 청색 마탑주와 한 조가 되어 사령관인 마일렌 공작의 부대에 배치되었다.
내가 배치된 부대는 메비우스 부대라 불리는 오백인대로서 전선의 오른쪽을 맡고 있는 부대 중 하나였다.
크라우드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여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