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 마법사들의 연회
저녁, 마법학회의 모임은 스승님과 아리안의 말대로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었다.
크라우드 왕국에 소속된 두 개의 마탑,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의 주인, 그리고 마탑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이름 높은 마법사들.
그들이 내가 아직까진 알아듣지 못할 새로운 마법 공식을 떠들어대는 것이 다였다.
마법학회의 모임이 마법 발전을 위한 자리라는 것이 허울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학회의 모임은 금방 끝났다.
그리고 마법학회에서 준비한 연회가 열렸다.
실상은 크라우드 왕국 내의 고위 마법사들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자리였던 것이다.
“자자, 그러면 간만에 다들 모였으니 적당히 마시고 즐겁게 놀다 가십시다.”
마법학회장이자 크라우드 왕국의 궁정 마법사인 그랜돌프 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연회가 시작되었다.
여러 마법사들이 스승님을 보고는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하셨군요.”
“가끔씩 얼굴은 내밀어야지요. 게다가 새로운 제자를 얻어서요.”
스승님의 대답에 그들은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새로운 제자라는 말이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엘입니다.”
나의 인사에 머쓱하게 쳐다보는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법학회의 모임에 초대받은 이들이라서인지 다들 하나같이 유명한 마법사들이었다.
“제자분의 재능이 뛰어나 보이는군요.”
누군가의 말에 스승님이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을 익히기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되어 3서클에 도달했답니다. 얼마 전에는 한 달 만에 이중 영창도 익혔지요.”
“호오, 엄청난 재능이군요.”
스승님의 자랑에 다들 놀라워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적색 마탑주의 새로운 제자에 관한 소식은 모두에게 흥미로운 것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다가왔다.
결국 나는 연회장의 각종 음식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후후, 피곤하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관심이 가라앉자 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네, 조금은 피곤하네요.”
스승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연회장 한쪽에 마련된 음식들을 가리켰다.
“가서 식사라도 하려무나.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 않느냐.”
“네.”
확실히 배가 조금 고팠기에 음식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간단하게 먹을 것들을 챙겼다.
카나페와 음료를 먹고 있자니 근처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국경 주변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더군.”
“나도 들었네. 조만간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겠어.”
전쟁이라고?
별생각 없이 듣던 중 전쟁이란 단어에 나는 깜짝 놀라 귀를 기울였다.
“타이런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꽤나 야심이 큰 모양이더군.”
타이런 제국이라면 우리 크라우드 왕국과 국경을 맞댄 거대한 제국이다.
“우리 국경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국경에도 군사를 늘린 모양이야.”
타이런 제국과 국경을 맞댄 나라는 우리 크라우드 왕국과 쉘던 왕국, 파이썬 왕국 등이다.
“제국이 진정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 마법사들도 전장으로 나서야겠군.”
마법사들은 국가의 자원이다 보니 많은 지원을 받지만 치러야 할 의무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병역의 의무.
평시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시에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징집되게 된다.
내가 속해 있는 적색 마탑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이라…….’
아직까진 직접 와닿지 않는 그 단어를 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여간 인간들이란, 틈만 나면 전쟁이로군.>
한동안 조용하나 싶었던 카이서스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전쟁을 원하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뿐이라고.’
모든 인간들을 싸잡아 말하지 말란 뜻으로 한 말에 카이서스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 권력을 원하는 건 어느 인간이나 똑같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타이런 제국의 동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타이런에서 새로운 전쟁 병기도 개발하고 있다던데.”
“이거 정말 전쟁을 벌일 기세인걸.”
전쟁이 터지면 나 역시도 참전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적색 마탑 소속의 마법사이니까.
원래라면 전쟁에 참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겁을 먹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하기는커녕 마음이 잔잔해졌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데 꽤나 담담한 표정이네.”
누군가 싶어서 옆을 돌아보니 청색 마탑주의 제자, 아리안이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누나도 별로 불안해하는 표정이 아니네요.”
내 말에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자신을 증명할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전쟁이지.”
오히려 전쟁을 기대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찡그렸다.
“전쟁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잖아요.”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라면 그걸 이용해야지. 내가 나선다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다.
전쟁이라는 건 힘없는 개인이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어차피 일어날 전쟁이라면 그녀의 말대로 이용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한번 발발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니까.
하지만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도 사람들을 죽여야 하려나…….
고민에 잠긴 내 얼굴을 아리안이 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 * *
적색 마탑으로 돌아가기 위해 게이트 건물로 가던 중.
나는 스승님께 물었다.
“정말로 전쟁이 일어날까요?”
내 말에 스승님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는 정세를 보아하니 전쟁은 피하지 못할 듯하구나. 왜, 걱정되느냐?”
“아뇨, 걱정되는 건 아닌데……. 역시 전쟁에 참전하면 사람을 죽여야 하겠죠?”
내 물음에 스승님은 안쓰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어린 너에게는 꽤나 부담되는 일일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적색 마탑의 일원이 된 이상 피할 수는 없단다.”
스승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대답했다.
“전 어리지 않다니까요.”
툴툴거리는 내 대답에 스승님은 웃어 보였다.
“그래, 미안하구나.”
그러고는 내가 등에 메고 있는 스태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그 스태프는 어디서 구한 것이냐? 보통의 것이 아닌 듯한데.”
“어……. 선물받은 거라 잘 모르겠어요.”
드래곤의 둥지에서 들고 나왔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어디 한번 봐도 되겠니?”
“네.”
내가 건넨 스태프를 살펴보던 스승님이 스태프를 내게 돌려주며 말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꽤 쓸 만한 것이로구나.”
엥? 드래곤의 둥지에서 들고 온 건데 대단한 게 아니라고?
스승님의 말에 내가 의아해하자 카이서스가 비웃듯 말했다.
<네 수준에 걸맞은 물건을 내어준 것이니 당연하지.>
‘더 좋은 걸로 주지!’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자 카이서스는 여전히 비웃듯 말했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란 말도 모르느냐? 실력에 비해 과한 물건은 위험을 자초할 뿐이다.>
으음, 하긴 내가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을지도 모르겠네.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게이트에 들어서자 스승님이 웃어 보였다.
“이번에는 괜찮겠느냐?”
며칠 전 텔레포트의 반작용으로 헛구역질을 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뭐,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한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마탑에 도착하자마자 헛구역질을 해댔다.
* * *
마탑으로 돌아온 이후 나는 늘 그렇듯이 마법 수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법학회에 다녀온 지도 한 달째, 이제 슬슬 3서클 마스터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바보 같긴, 거기서는 마나의 흐름을 섬세하게 조절해야 한다고 네 스승도 그러지 않았느냐.>
‘그게 어디 쉽냐고.’
카이서스의 호통에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말대로 마나를 섬세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다.
심장 인근을 맴도는 마나를 최대한 부드럽게 움직였다.
갓난아기의 피부를 만진다는 느낌으로 심장을 향해 마나를 움직였다.
꿈틀대는 마나가 심장을 가볍게 훑고는 원래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마나의 고리와 뒤엉키기 시작했다.
‘오옷, 드디어!’
내가 속으로 환호를 터뜨림과 동시에 심장 주변을 맴돌던 세 번째 마나의 고리가 완전해졌다.
마법을 익히기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3서클 마스터라니.
아무리 3서클까지는 재능만 있다면 익히기 쉽다지만 이것은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3서클 마스터까지는 2년이 넘게 걸린다고 들었는데.
<크크, 내 심장을 먹고 변화한 육체니 그 정도는 당연하지. 게다가 이 몸이 직접 지도하지 않았더냐.>
드래곤 하트로 인해 변화한 내 몸……. 어쩌면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가 지도하긴 무슨? 잔소리만 했잖아.”
더 이상 내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애써 숨기며 카이서스에게 툴툴거렸다.
<그 잔소리들이 다 너를 위한 것이다.>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기분이 나쁘다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마나를 수련하느라 흘린 땀을 닦고는 방을 나섰다.
<어딜 가려고?>
“3서클 마스터가 되었으니 스승님께 보고해야지.”
<크크, 마법을 배운 지 1년도 안 되어 3서클 마스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녀도 놀라겠지.>
확실히 스승님도 내가 3서클을 마스터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시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방을 나선 나는 스승님이 계시는 탑으로 향했다.
탑으로 들어온 나는 언제나 스승님이 계시는 연구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너라.”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니 스승님은 뭔가를 들여다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3서클 마스터가 되었다는 자랑을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해 보이는 터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내 물음에 스승님은 읽고 있던 것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결국 전쟁이 터진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며 건넨 편지는 마탑의 마법사들에 대한 징집 통지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