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화 - 마법학회
대결에서 승리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이중 영창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마음먹은 대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평소처럼 마나를 수련하는 중이었다.
이전에 스승님을 놀라게 했던, 마나의 요동도 이제는 거의 없다.
그만큼 마나에 대한 적응이 완전해졌다는 소리겠지.
어차피 마탑에 거주하는 마법사들의 방마다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마나의 요동이 퍼져 나갈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마나 수련을 마치고 땀을 닦고 바람을 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라엘 군, 날세.”
칸델 씨의 목소리였다.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일 때문에 바쁜 분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칸델 씨가 웃으며 말했다.
“마탑주님께서 찾으시네.”
대결 이후 잘 모르는 것이 생기거나 막히는 곳이 있으면 내가 먼저 찾아갔다.
이렇게 스승님이 먼저 나를 부르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이 갑자기 찾으신다는 말에 의아하긴 했으나 부름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수련을 하느라 벗어두었던 마탑의 로브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스승님이 기거하시는 탑으로 들어가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너라.”
내가 탑에 들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스승님이 말했다.
“부르셨어요?”
내 말에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던 스승님이 자리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여전히 시선은 손에 든 무언가에 향해 있었다.
아마도 저게 날 부른 용건인 듯싶다.
마침내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내려놓은 스승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지?”
“음, 대략 네 달 정도가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왜요?”
내가 적색 마탑에 들어온 지도 네 달째, 후덥지근하던 날씨도 어느새 선선해지고 있었다.
“후후, 간만에 바람이나 쐬러 가려는데 같이 가겠느냐?”
뜬금없는 스승님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스승님은 자신이 읽고 있던 편지를 내게 건넸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적색 마탑의 주인이신 카밀라 루드비히 님에게.
이번에 크라우드 왕국 마법학회에서 모임을 갖고자 합니다.
부디 귀한 시간을 내주시어 크라우드 왕국의 마법 발전에 기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일시는 9월 27일이고 장소는 늘 그랬듯이 마법학회 본관입니다.
이번에는 부디 왕림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크라우드 마법학회장 그랜돌프 아델.]
크라우드 왕국이라면 우리 적색 마탑이 속해 있는 왕국이다.
왕국 마법학회의 모임이라…….
내가 편지를 들고 가만히 서 있자 스승님이 웃으며 말했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친목의 장이자… 서로의 능력과 세력을 확인하는 자리지.”
내가 돌려준 편지를 받아 구긴 후 대충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스승님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마법사들이나 마탑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어서 지금까지는 불참해 왔다만……. 이번에 너를 그 자리에서 소개시키려 한다. 괜찮겠느냐?”
왕국 내의 쟁쟁한 마법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적색 마탑주의 제자로 소개되면 아버지의 귀에 내 이름이 들어갈지도.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스승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떠날 준비를 하여라. 내일 아침 일찍 수도로 갈 것이니라.”
“네, 알겠습니다.”
왕국 내에서 뛰어난 마법사들만이 초청받는 마법학회의 모임에 나를 데려가려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제자를 소개함과 동시에 자랑하려는 것.
그만큼 스승님이 나의 재능을 믿고 있다는 소리지만……. 그만큼 긴장도 되었다.
* * *
다음 날.
나와 스승님은 수도인 트럼벨로 이어진 텔레포트 마법진에 올라섰다.
국가의 중요한 전략무기이기도 한 마탑에는 수도와 직접 이어진 텔레포트 마법진이 하나씩은 있었다.
“순간 이동은 처음일 테지? 조금은 어지러울 게다.”
그녀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나는 트럼벨에 도착해 있었다.
“우윽!”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게이트 건물의 벽에 손을 짚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런 나를 스승님이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괜찮으냐? 처음에는 다들 그렇단다.”
잠시 동안은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으나 시간이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후우, 괜찮아졌습니다. 가시죠.”
마법학회의 모임은 내일이지만 일찍 도착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마법학회의 건물 앞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다가왔다.
“호오, 적색 마탑주가 아니신가.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분이 무슨 일로 왕림하셨소?”
청색 마탑의 로고가 새겨진 푸른 로브를 걸친 중년인이 아는 척을 해왔다.
스승님이 가볍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청색 마탑주, 오랜만이구려.”
푸른 로브를 보고 청색 마탑 소속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마탑주일 줄이야.
스승님과 비슷한 나이대라고 들었는데 나이에 비하면 젊은 모습이다.
역시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높은 경지에 올라서 그런 거려나.
“흠, 이 친구는 누굽니까?”
청색 마탑주가 스승님의 곁에 서 있는 나를 보곤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번에 새로 얻은 제자입니다. 꽤나 재능이 많아서 기대하는 중이지요.”
“처음 뵙겠습니다. 라엘이라고 합니다.”
내 인사를 받은 청색 마탑주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다시는 제자를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음, 그렇구려.”
청색 마탑주는 무어라 말을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제자를 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니?
내 이전의 제자, 그러니까 사형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혹시나 싶어 스승님을 쳐다보았으나 스승님은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다.
“아, 그렇지. 내 제자도 소개하리다. 아리안! 이리 오려무나.”
청색 마탑주의 부름에 근처에 있던 갈색 머리의 아가씨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인사드려라. 적색 마탑주와 그녀의 제자다.”
청색 마탑주와 마찬가지로 푸른 로브를 걸치고 있던 아가씨가 옷매무새를 매만지곤 스승님께 고개를 숙였다.
“아리안이라고 합니다. 마법의 길을 걷는 여인들의 우상인 적색 마탑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 나도 이렇게 그럴싸한 인사를 했어야 했나.
“후후, 반갑구나. 이쪽은 내 제자인 라엘이란다.”
스승님의 말에 아리안이 이쪽을 쳐다보았다.
스승님을 향한 선망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는 달리 내게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반갑습니다.”
“아, 네. 라엘입니다.”
너무나도 급격한 온도 차이에 내가 당황하며 대답하자 청색 마탑주가 쓰게 웃었다.
“라엘 군, 자네가 이해하게. 아리안은 원래 성격이 쌀쌀맞다네. 적색 마탑주가 예외일 뿐이지.”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리안이라는 이름의 청색 마탑주의 제자는 나를 관찰이라도 하듯이 훑어보고 있었다.
나도 그런 그녀를 관찰하며 훑어보았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일까.
갈색 머리칼을 어깨 근처까지만 기른, 차가운 인상의 미인이다.
키는 나와 비슷한 정도일까.
아니, 나보다 약간 크다.
사실 그녀가 큰 것이 아니라 내 키가 작은 거지만…….
“뭘 보는 거죠?”
그러던 중 그녀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네? 그쪽이 절 쳐다보기에 저도 쳐다봤을 뿐인데요.”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저쪽도 마탑주의 제자, 나도 마탑주의 제자다.
꿀릴 것이 없기에 당당히 대꾸하자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어허, 실례되는 짓은 하지 말거라.”
청색 마탑주가 아리안을 책망하고는 스승님께 목례를 해 보였다.
“내 제자가 실례가 많았구려. 우린 이만 들어갈 테니 내일 봅시다.”
“그러지요.”
청색 마탑주와 그의 제자가 마법학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이만 들어가자꾸나.”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곤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학회의 건물은 꽤나 크고 화려했다.
왕국 내의 모든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곳답게 크고 높은 천장에는 각종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적색 마탑의 주인, 카밀라 루드비히라네, 이쪽은 내 제자일세.”
들어서는 우리를 맞이하는 마법학회의 사람에게 스승님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 카밀라 님! 숙소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스승님의 명성이 명성인지라 마법학회의 사람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며 스승님과 나를 안내했다.
마법학회의 본 건물과 이어진 통로를 따라 옆 건물로 마법학회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이 카밀라 님이 지내실 방이고 제자분은 옆방을 쓰시면 됩니다.”
2층의 붙어 있는 방 두 개를 내어준 학회원이 더 필요하신 것이 있냐는 듯 쳐다보았다.
“고맙네.”
스승님이 더 필요한 것이 없다는 듯 대답하자 학회원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짐을 풀고 쉬도록 해라. 내일은 이리저리 인사를 다니느라 꽤나 바쁠 게야.”
“네.”
마법학회의 손님방은 내가 마탑에서 사용하는 방보다도 넓고 깔끔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는 문뜩 창밖을 내다보았다.
ㅁ 모양으로 지어진 이 건물의 중앙에 꾸며진 정원이 보였다.
할 것도 없는데 정원이나 둘러볼까.
그렇게 생각한 나는 별생각 없이 방을 나서서 정원으로 내려갔다.
“흐음, 그러고 보니 꽃향기는 오랜만에 맡네.”
정원에 가득 피어 있는 꽃향기를 맡으며 나는 중얼거렸다.
적색 마탑은 화염 계열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꽃은커녕 나무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의 향기를 듬뿍 맡으며 걸음을 옮기던 중에 먼저 와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어라? 저 여자는 분명…….”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본 선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색 마탑주님의 제자로군. 여긴 무슨 일이지?”
청색 마탑주의 제자, 아리안의 말에 나도 눈을 찌푸렸다.
“산책하러 나왔는데요. 혹시 여기 전세 내셨어요?”
내 말에 움찔한 아리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여긴 공공장소이니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지. 내가 말을 잘못했군.”
재빠르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기분을 풀었다.
“라엘이라고 했던가?”
“네.”
“아직 어려 보이는 듯한데 적색 마탑주님의 제자라니, 대단하네.”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재차 기분이 상했다.
“성인입니다. 열아홉 살이라고요.”
그녀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열아홉이라고? 으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스물네 살이야.”
“누나네요.”
“그렇지.”
그러고는 잠시 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오늘 처음 만난 사이다 보니 딱히 대화할 거리가 없었다.
“학회의 모임은 처음이야?”
“네.”
처음 왔다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만 나올 테니까 큰 기대는 하지 마.”
스승님과 비슷한 소리를 하는 그녀였다.
“그러는 누나는 왜 모임에 온 건데요?”
누나라는 말이 익숙지 않은지 그녀는 잠깐 멈칫하고는 말했다.
“그야 스승님이 다른 사람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시니까. 스승이 가는데 제자가 따라가는 건 당연하잖아.”
흐음, 한마디로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왔다 이거구만.
“적색 마탑주님의 제자이니…….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을 거야. 쓸데없는 소리도 많이 들을 거고.”
“쓸데없는 소리요?”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이 할 말은 모두 끝냈다는 듯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정원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