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 드래곤-7화 (7/150)

007화 - 이중 영창

눈을 뜨고 나니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어어……. 여긴 어디지?”

의아해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오싹함을 느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파충류의 것과 같은 샛노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크크크……. 네가 내가 존재하는 내면으로 올 줄이야……. 그 여자는 나의 존재를 몰랐기에 한 것이겠지만……. 재미있군.”

이 목소리는 바로…….

“카이서스?!”

“그래, 나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거대한 레드 드래곤의 몸체가 나타나며 나를 향해 입을 벌렸다.

“으아아악!”

내가 비명을 지르자 그 모습이 우스웠는지 카이서스가 낄낄대며 웃었다.

“크크, 걱정 마라. 너의 내면에서는 너를 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카이서스는 얌전히 거대한 몸을 앉혔다.

“후우, 다행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건 오랜만이네.”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순순히 알려준 것이 이상했지만 일단은 안전하다니 마음이 놓인 나였다.

“이 몸의 위대한 모습을 보니 감격한 것이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카이서스의 말에 대꾸해 주고는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곳은 나의 내면이라는 것 같은데……. 아마도 스승님이 내게 주신 차 때문에 내면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생각을 둘로 나누라는 거지?”

내가 의아해하며 중얼댔다.

그러자 카이서스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내 중얼거림에 대답했다.

“크크, 너는 참으로 운이 좋은 녀석이다. 나라는 엄청난 존재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앞에 있는 존재는 마법의 종주, 드래곤이 아니던가.

“그래?! 그럼 가르쳐 줘!”

“우선은…….”

카이서스는 책의 내용을 토대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나는 카이서스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훈련을 시작했다.

* * *

“으음…….”

천천히 정신을 차리니 나는 낯선 방 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침대에서는 은은한 장미 향기가 느껴졌다.

스승님에게서 느껴지곤 하던 향기였다.

설마 이 방은 스승님의 침실인 건가?

내가 왜 여기 있나 생각하던 중에 스승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일어났느냐?”

“어……. 스승님, 제가 왜 침대 위에…….”

내 말에 스승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주일 동안 의자에 계속 앉혀둘 수는 없지 않느냐?”

“일주일이요?!”

겨우 일주일밖에 흐르지 않았다고?

내면세계에서 보낸 시간은 못해도 한 달 정도가 아니었던가?

아무래도 내면세계에서는 바깥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 그럼 제가 이 침대를 사용하는 동안 스승님은 어디서 주무신 건가요?”

내 물음에 스승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내 연구실에도 침대가 있으니 걱정 말거라.”

음, 같은 침대를 쓰는 일은 없었나 보다.

어쩐지 아깝…….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스승님은 일흔이 넘으신 분이라고!

분명 겉으로는 서른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시지만…….

“내면에 들어가 본 소감은 어떠하냐?”

“음, 조금만 더 해보면 그 이중 영창이라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니 최소한……. 뭐?”

어려울 거라고 말하던 스승님이 내 말에 깜짝 놀라며 쳐다보았다.

“벌써 감을 잡았단 말이냐?”

“어……. 네.”

믿을 수 없다는 스승님의 반응에 내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허어……. 내 생각보다도 너의 재능이 뛰어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겨우 일주일 만에 감을 잡다니.”

사실 드래곤인 카이서스가 없었더라면 아직도 감을 잡기는커녕 어버버거리고 있었겠지만.

카이서스에 대해서 모르는 스승님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 달이면 어떻게든 익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완숙하게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기대감이 넘치는 스승님의 표정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까지는 대충 감만 잡았을 뿐이지만 카이서스의 도움만 있다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감을 잡았다면 더 이상 내면세계에 들어갈 필요도 없겠구나.”

더 이상 들어갈 필요가 없다니 다행이다.

밖에서 짧은 시간에 비해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좋지만…….

솔직히 카이서스의 얼굴을 보는 게 반갑지는 않거든.

“가사 상태였기는 해도 일주일간 굶었으니 무척이나 배가 고플 것이다. 식당에 말해두었으니 가서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가 이중 영창을 연습하여라.”

확실히 일주일간이나 누워 있었더니 배가 고팠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스승님께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나저나 스승님의 방에 인형 같은 것도 보였었지.

스승님의 의외의 일면을 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평소에는 뭔가 당당하고 오만한, 여왕님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분이신데 사실은 소녀 같은 감성을 지니고 계실지도.

나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다가 뭔가를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잠든 상태라고 하더라도 목이 안 마른 걸 보니 물은 마신 것 같은데.

어떻게 물을 먹이신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일단은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어야겠어.

식당으로 가서 간단한 수프로 허기를 때운 나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펼치려 해보았다.

의지를 두 개로 나누고…….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의 연산을 실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

내가 둘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태프를 쥔 손에는 파이어 애로우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실드를 시전한다.

하늘을 향해 펼친 스태프와 손 위에 마나가 요동치며 두 개의 마법이 시전되려 한다.

그러나 이내 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마법 모두 실패해 버렸다.

마법 실패에 의한 반동으로 잠시 어지러워졌다.

그나마 낮은 서클의 마법이라 어지러운 정도로 끝난 거지, 높은 서클이었다면 피를 토했을 거다.

“후우, 아무래도 꽤나 연습이 필요하겠어.”

<크크, 나의 심장으로 신체가 보통 인간보다 뛰어나졌다고 해도 그것을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으냐?>

하긴, 스승님의 말대로라면 보통 사람은 익히지도 못한다고 했다.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한 달은 넘어야 익힐 수 있고, 완벽하게 사용하려면 몇 년은 걸린다고 했다.

이렇게나마 빠른 시간 내에 시도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만큼 드래곤 하트로 인해 변화한 나의 신체가 대단하단 거겠지.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중얼거렸다.

“더 이상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야. 달라진 나를 보여주겠어.”

나는 재차 이중 영창의 연습에 몰두했다.

* * *

그리고 3주 후.

마탑주의 새로운 제자가 두 명의 수습생과 대결한다는 소식은 안 그래도 사람이 많지 않은 마탑 내에 파다하게 퍼졌다.

마탑 건물들 사이에 대결장까지 만들어질 정도였다.

평소에는 식사 때 외에는 눈썹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

“오! 자네도 구경하러 왔는가?”

“허허, 마탑 생활에 이런 재미난 일이 자주 있는가? 당연히 구경해야지.”

제각기 간식거리와 마실 것까지 들고 와선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무슨 구경거리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구경거리가 맞기는 하지.

“그나저나 이거 왜 하는 거야?”

어떤 마법사의 물음에 다른 마법사가 대답했다.

“수습생 두 놈이 마탑주님의 제자가 재능이 많다는 걸 못 믿겠다고 한 모양이야. 그래서 마탑주님이 대결로 증명하라고 하신게지.”

“끌끌……. 우리 마탑주님이 어떤 분인데 그런 멍청한 짓을……. 그 두 놈, 마탑 생활 완전히 꼬이겠구먼.”

뭐, 일단 이번 대결이 어떻게 되건 그 두 명의 수습생은 고생이 많을 것 같다.

어차피 져줄 생각도 전혀 없지만 말이야.

“양측 선수 입장!”

이번 대결의 진행자 겸 심판으로 자청해서 나선 칸델 씨의 말에 나는 대결장 위로 올라갔다.

맞은편에도 제임스와 카터, 두 수습생이 올라왔다.

“자, 그럼 마탑주님의 한 말씀이 있겠습니다!”

이거야 원, 정말로 무슨 잔치나 다름없는 분위기로군.

마탑 소속 마법사들의 환호 속에 대결장으로 올라온 스승님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어느 쪽이 이기건 내 제자의 재능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크게 다치지 않기를 바라고 비겁한 짓을 하는 자는 내 손에 죽을 줄 알거라.”

“와아-!”

스승님의 말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곧 있을 대결을 기대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라.”

스승님의 말에 칸델 씨가 소리쳤다.

“준비! 시작!”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제임스와 카터 쪽이었다.

그 두 사람은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내 양옆에 섰다.

좌우에서 공격하겠다는 심산인 듯 했다.

주문을 마친 두 사람이 마법을 사용했다.

“파이어 볼!”

“버닝 크로스!”

좌우에서 화염의 구체와 교차하는 불길이 날아왔다.

그들이 마법을 시전하는 동안 나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파이어 실드! 파이어 실드!”

내 주변을 화염이 거세게 휘감으며 좌우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화염과 화염이 부딪치며 작은 폭발이 일어났으나 2겹의 파이어 실드는 그 정도에 부서지지 않았다.

하나의 파이어 실드라면 양옆에서 날아온 공격에 부서졌겠지만 2겹이라면 다르다.

이중으로 펼쳐진 파이어 실드는 하나의 파이어 실드보다 단단하니까.

따로 날아오는 공격에 부서질 리가 없는 것이다.

“무슨?!”

“말도 안 돼!”

제임스와 카터가 놀라 소리쳤다.

자신들의 마법이 허무하게 막힌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마법을 연속으로 두 번 시전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다.

“후후, 그럼 제 차롑니다.”

두 사람이 당황한 틈을 타 나는 재차 이중 영창을 사용했다.

아직까진 이중 영창이 익숙지 않다 보니 느렸지만 아직까지 3서클인 두 사람을 상대하기엔 충분했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

“크윽! 파이어 실드!”

내가 첫 번째로 노린 것은 제임스.

그는 다급히 실드를 사용했으나 두 개의 마법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파이어 애로우가 그의 실드를 뒤흔들고 뒤늦게 날아온 파이어 볼이 폭발하며 실드를 완전히 박살 냈다.

“으악!”

실드가 깨지며 폭발에 휘말린 제임스가 대결장 밖으로 나가떨어지며 뒹굴었다.

“하… 항복!”

그 모습을 본 카터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될 것임을 짐작했는지 올바른 선택을 했다.

“승자, 라엘!”

순식간에 결판이 나자 칸델 씨가 승패를 알리며 내 손을 들어 올렸다.

“오오! 저것이 바로 마탑주님의 장기인 이중 영창인가!”

“마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걸 배웠대?”

“대단하군.”

구경하던 마법사들이 내가 사용한 기술을 알아차리고는 흥미로워하며 말했다.

“잘했다. 벌써 익숙하게 그걸 사용하다니, 대단하구나.”

상석에 앉아서 구경하던 스승님도 내가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그때 대결장 바깥으로 굴러떨어졌던 제임스가 다시 올라오며 소리쳤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저 애송이가 더블 캐스팅을 사용하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지 못한다면 어쩔 겁니까?”

내가 그런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묻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시 아티팩트를 쓴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주위를 향해 둘러보며 소리치는 제임스의 말에 스승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네놈은 지금 여기 모인 마법사들이 모두 동태눈이라고 여기는 것이냐?”

차갑게 가라앉은 스승님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한 말을 깨달은 제임스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아니지만…….”

“재능이 뛰어난 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외면하면 결국 뒤처지기만 할 뿐이다.”

주변의 싸늘한 시선에 제임스는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대답했다.

“네.”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고 물러가거라.”

“네!”

처벌은 내리지 않는 스승님의 자비에 제임스와 카터는 서둘러 대결장을 빠져나갔다.

“끌끌, 저 애송이들. 한동안 혼 좀 나겠어.”

그 모습을 보며 노년의 마법사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이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해도 그를 가르치는 다른 마법사들이 혼을 낼 것이다.

싸늘한 시선으로 제임스와 카터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스승님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그녀의 시선은 봄날의 날씨처럼 따스해져 있다.

“수고했느니라. 차라도 한잔하겠느냐?”

스승님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차라면 환영입니다.”

지난번에 내면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차를 언급하며 말하자 스승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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