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 트롬웰로 가는 길
나는 마차에 쌓인 짐에 등을 기대고 주변의 풍경을 구경했다.
덜컹거리며 천천히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제대로 여행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들뜬 마음이 되었다.
지난번에 집을 떠났을 때는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떠났던 거니 여행이라기엔 좀 그렇지.
“그런데 너는 무슨 일로 트롬웰에 가는 거야?”
마차에 앉아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도중 네 명의 용병 중 라이 누나가 다가와 물었다.
꽤나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그녀는 묵묵히 걷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적색 마탑에 가려는데 그곳까지 가는 사람이 없대서요.”
“거기 들어가려고?”
“음, 지난번에 만난 어떤 누나가 적색 마탑으로 와서 자신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오오, 마탑에서 한자리 하는 사람인가 보네. 누군데? 유명하면 내가 들어봤을지도 모르지.”
“글쎄요, 이름은 모르고…….”
내 말에 라이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이름도 모른다고? 그럼 어떻게 찾으려고?”
“음, 일단 가서 수소문하면 되지 않을까요?”
내 말에 라이 누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흐음, 열심히 찾아봐.”
일단 가서 찾아보기로 하고 출발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찾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어.
꽤나 지루했던지 라이 누나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내뱉었다.
용병인 그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어서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 *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야영을 준비할 때까지도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각기 챙겨 온 식량을 한데 모아 식사를 준비했다.
이것저것 섞어 넣은 수프를 막 떠먹으려 하던 참이었다.
“쉿!”
궁수인 메비안이 웃고 떠들던 다른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의 심각한 표정에 다들 입을 다문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뭔가 온다. 준비해.”
옆에 놓아준 자신의 활과 화살통을 들어 올리는 메비안의 말에 다들 조용히 각자의 무기를 쥐어 들었다.
뭐야, 출발하자마자 첫날부터 문제가 생긴 거야?!
나도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얻은 스태프를 잡아 쥐었다.
메비안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그는 야영지 근처의 나무 위로 올라가더니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북동쪽으로 20미터, 고블린 무리가 접근 중이야.”
그의 낮은 목소리에 모두 마차 주변을 둘러싸며 자리를 잡았다.
전투 능력이 없는 반스 씨는 마차의 짐 사이에 숨었다.
나도 마차 위에 올라서서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내가 지금 쓸 만한 마법은 매직 애로우와 실드.
나머지 마법들은 지금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 보였다.
숙련되지 않았거나, 정말로 쓸모가 없는 마법들이었으니까.
“놈들도 우리가 눈치챈 걸 알았어. 온다!”
메비안의 경고대로 주변의 수풀 사이에서 녹색 피부의 난쟁이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겔겔겔!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의 수는 약 스무 마리 정도.
녹슨 칼과 도끼 등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라이 누나가 눈을 찡그렸다.
“우릴 우습게 보는 건가?”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메비안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럴 때는 선빵 필승이지!”
그의 활에서 쏘아져 나간 화살이 가장 앞에 있던 고블린의 미간을 꿰뚫으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케엑!
크라라락!
동료 하나가 목숨을 잃자 나머지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선 라이 누나가 방패로 달려들던 고블린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녀의 옆을 노리며 고블린 하나가 녹슨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딜!”
그걸 본 리로이 씨가 철퇴를 휘두르며 라이 누나에게 달려들던 고블린의 머리를 후려쳤다.
록스도 대검을 휘두르며 고블린들을 쳐 날리고 있었다.
“셋… 넷…….”
메비안은 숫자를 세며 화살을 날렸는데 그때마다 고블린이 하나씩 쓰러졌다.
네 사람이 워낙 잘 싸우는 터라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매직 애로우로 세 사람을 뚫고 마차로 달려드는 고블린을 죽였다.
피가 튀고 머리통에 구멍이 뚫리는 것이 꽤나 끔찍하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전투 와중에도 내가 그것을 의아해하자 카이서스가 말했다.
<아직도 네가 평범한 인간인 것 같느냐? 내 심장을 흡수한 이후 너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육체는 물론이고 지능과 정신력마저도.>
그래서 이전의 나라면 이해할 수 없었을 마법에 관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재능이 생겨도 예전과 같은 지능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2서클 익스퍼트가 될 수도 없었겠지.
그렇지만 살아 있는 뭔가를 죽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다니.
<크크, 위대한 존재인 이 몸의 심장을 삼킨 너다. 저런 미물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게 당연하지.>
시끄러워, 생각 좀 읽지 마.
<들리는 것을 어찌하느냐?>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니까.
카이서스와 속으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쉴 새 없이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케엑!
최후의 고블린이 라이 누나의 방패에 얻어맞고 비틀대다가 리로이 씨의 철퇴에 머리가 박살 났다.
“후우, 이것들이 미쳤나. 왜 갑자기 습격하고 지랄이야?”
몸 곳곳에 고블린의 피가 묻은 라이 누나가 욕을 내뱉으며 투덜거렸다.
그 말에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메비안이 대답했다.
“수가 적다고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한 사람당 네다섯 마리의 고블린을 해치웠다.
나름대로 나도 열심히 마법을 사용했으나 내가 처리한 것은 두 마리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에 운 좋게 맞힌 녀석을 제외하면 매직 애로우가 대부분 빗나갔으니까.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움직이는 대상에 마법을 맞히는 능력이 부족한 나였다.
죽인 고블린들을 뒷정리하며 혹시나 쓸 만한 것이 있나 살피던 라이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네가 쓴 마법, 매직 애로우 아니었어?”
그녀의 물음에 왜 그러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는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네 매직 애로우로 죽은 녀석들, 파이어 애로우에 당한 것처럼 그을려 있어서.”
나는 그 말에 의아해하며 내가 죽인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내 매직 애로우가 관통한 고블린의 머리가 그을려 있었다.
“엥? 진짜네? 왜 이러지?”
의아해하는 내 물음에 대답한 것은 카이서스였다.
<당연히 나의 심장 때문이지. 레드 드래곤의 심장을 먹었기에 너의 마나도 화염의 기운을 띠게 된 것이다.>
‘엥? 그런 게 가능해?’
<그래서 네게 적색 마탑이 어울릴 거라고 한 거다.>
정말이라면 화염계의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적색 마탑과 어울리겠지.
아주 드물게, 속성을 지닌 마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속성에 맞는 마법을 사용하면 좀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이상하게 내 매직 애로우가 불그스름하더라니.
그런 거라면 빨리 말해주지!
그랬다면 무속성인 매직 애로우보다 화염계인 파이어 애로우를 썼을 텐데.
<무속성보다 속성 마법이 더 어려우니까 말하지 않았던 거다, 멍청아.>
확실히 아무런 속성을 담지 않은 마법보다 속성을 실은 마법이 더 어렵긴 하지.
“그런데 마법을 사용하는 걸 보니 전투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은가 봐?”
“네, 사실 몬스터를 상대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라이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로이 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치고는 꽤나 잘한 거야. 가끔 초짜들은 당황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데 말이지.”
리로이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끝난 건가요?”
짐들 사이에 숨어 있던 반스 씨가 그제야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예,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후, 출발한 첫날부터 몬스터라니.”
불안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반스 씨의 말에 록스가 웃으며 말했다.
“거 액땜한 셈 치십쇼. 거 옛말에 첫날에 운이 없으면 남은 날이 편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응? 그런 말도 있었나? 난 처음 듣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표정이다.
우리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록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내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우. 한마디로 남은 여정은 괜찮을 거란 말이지.”
정말로 그런 말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록스의 말대로 첫날을 제외하면 트롬웰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 * *
“덕분에 잘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인사에 반스 씨는 허허 웃었다.
“나야말로 고맙지. 이제 적색 마탑으로 갈 건가?”
“네.”
“잘되길 바라네.”
반스 씨와 인사를 나누고는 다른 용병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고.”
“몸조심해라, 꼬맹아.”
“잘되길 바랄게.”
나름대로 보름 동안 친해진 터라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중간에 록스가 말한 꼬맹이라는 말이 거슬렸으나 작별하는데 분위기를 망치긴 싫어서 참기로 했다.
“여기라면 적색 마탑으로 가는 상행이 많을 거네.”
“감사합니다.”
적색 마탑의 위치에 대해서 전해 들은 나는 감사를 표하며 그들과 작별했다.
적색 마탑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도시이다 보니 그곳으로 가는 상행은 많았다.
어렵지 않게 적색 마탑으로 향하는 상행에 끼어서 갈 수 있었다.
* * *
트릭스 산 바로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탑으로 인해 존재하는, 마탑의 마법사들에게서 나오는 수익으로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높고 험준한 트릭스 산의 아래에 위치한 마을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적색 마탑이 보인다.
험준한 산세만큼이나 높고 뾰족하게 솟은 첨탑.
산 정상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 지어진, 그다지 높지는 않은 붉은색의 높은 첨탑.
그리고 그 주변을 열 개의 작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첨탑에 새겨진 마법 문자와 주변을 둘러싼 건물들 모두가 어떠한 마법적인 장치로서 존재하는 듯했다.
<클클클, 실제로 오는 건 처음이지만 방어 마법이 꽤나 단단히 펼쳐져 있군. 네 녀석은 보고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을 알아본 카이서스가 웃으며 잘난 척했다.
‘거, 오래 살아서 아는 것이 많아서 좋겠네. 어차피 지금은 내 머릿속에 갇힌 신세지만.’
<끄응…….>
카이서스가 앓는 소리를 내며 조용해지자 나는 마탑과 부속 건물들을 둘러싼 울타리의 입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커다란 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버튼 옆에는 [용건이 있을 시 누르시오]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님이 왔음을 안쪽에 알리는 용도인 듯했다.
잠시 후, 커다란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붉은 로브를 걸친 마법사 하나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이지? 상단과 거래하는 날은 오늘이 아닌데?”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각 마탑의 마법사는 소속 마탑의 색과 로고가 새겨진 로브를 걸친다.
지난번에 만났던 적색 마탑 누나의 새빨간 로브에도 타오르는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실례합니다. 적색 마탑의 로브를 걸친 새빨간 머리의 예쁜 누나가 자신을 찾아오라 했거든요. 그런 사람 있나요?”
내 말에 적색 마탑의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붉은 머리의 여자라……. 그런 사람이 우리 마탑에 있던가? 아니, 있긴 있지만……. 설마…….”
이상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마법사의 뒤로 내가 지난번에 봤던 누나가 나타났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아, 그때 본 누나!”
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 말하는 붉은 머리의 누나를 본 마법사가 깜짝 놀라며 외쳤다.
“마탑주님?!”
…마탑주라고?!
저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