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 어디 갔어?!
산속의 오두막에 들어온 지도 한 달째다.
나는 식량을 구하러 도시로 내려갈 때를 제외하면 마법 수련만 했다.
지금까지 1서클에 속하는 마법은 거의 대부분 익혔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 서클로 넘어가는 것.
나는 자리를 잡고 앉은 채로 정신을 집중했다.
오늘에야말로 2서클의 마법사가 되려는 것이다.
고오오-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며 기도를 따라 빨려 들어온다.
몸 안으로 들어온 마나가 몸 이곳저곳을 신기하다는 듯 돌아다니다가 심장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나는 심장으로 모여든 마나를 회전시켰다.
마나는 뒤늦게나마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으나 이미 나의 통제하에 들어온 상태.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고리를 중심으로 마나가 거세게 회전한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 어질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집중한다.
거세게 회전하던 마나가 점차 안정화되며 심장을 감싸는 또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2서클 비기너 마법사가 되었다.
<쥐꼬리만 한 성과지만 축하한다.>
카이서스의 비꼬는 듯한 말에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검술도, 마법도, 학문에도 재능이 없던 내가 어엿한 2서클의 마법사가 된 것이다!
“아싸! 2서클이다!”
고리가 진정되어 천천히 심장 주변을 돌기 시작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따위 수준으로 기뻐하다니, 하여간 이 녀석은…….>
카이서스가 혀를 차며 말하거나 말거나 나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고 빨리 2서클 마법들이나 알려줘! 2서클을 익히고 집으로 돌아갈래!”
<크크, 네 녀석이 강해진다는 건 나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니……. 좋다.>
카이서스는 2서클에 속하는 마법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 * *
그리고 또 한 달 후.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챙기고 산속의 오두막을 나섰다.
2서클 익스퍼트가 된 나는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법사가 되어서 돌아온 나를 보는 가족들의 얼굴이 궁금하군.
나를 무시하고 차별하던 아버지나,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형제들의 표정이 볼 만하겠어.
어머니와 누나도 나를 보면 반가워하겠지.
잔뜩 들뜬 기분으로 나는 산을 내려가 도시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립던 집 앞에 도착한 그 순간…….
“어, 어라?”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은 아니더라도 꽤나 부유했던 우리 집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리델 씨? 아아, 전에 살던 사람들 말이구먼? 그 사람들은 두 달하고도 보름 전에 이사 갔는데?”
가족이 이사를 갔다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 어어, 하는 말만 내뱉었다.
“어, 어어……. 어디로 이사 갔는지는 아세요?!”
한참이나 어어거리다가 내뱉은 말에 참을성 있게 기다려 준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걸. 나도 얼마 전에 이사 온 참이라서 잘 몰라.”
두 달하고 보름 전이라면……. 내가 집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사를 갔다는 소리다.
그 빌어먹을 아버지 같으니, 돌아오지도 못하게 아예 이사를 가버려?!
“크윽, 감사합니다.”
사내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돌아 나왔다.
<푸하하핫! 얼마나 꼴 보기가 싫었으면 아예 이사를 가버린단 거냐?>
오늘따라 카이서스의 비아냥에 더욱 화가 났다.
“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길거리 한복판에서 소리를 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순간 부끄러워져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걸음을 옮겼다.
<크하하하! 이거 정말 재미있구나.>
크윽, 한 대 칠 수만 있다면 쳐줬을 텐데.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녀석을 때릴 수도 없으니 화만 끓어오른다.
옆집은 물론이고 앞집과 뒷집에도 가족이 이사 간 곳을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듣자 하니 내가 집을 나온 이후, 갑자기 재산을 처분하고 짐을 챙겨서는 온 가족이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급했는지 이웃들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저, 정말 내가 돌아오지도 못하게 하려고 이사 간 거야?
나 버림받은 거야?
나는 그렇게 한참을 길거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 * *
해가 질 때쯤에서야 산속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끄응,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미 가족들이 이사를 간 이상 이렇게 마냥 라제스에 남아 있다고 해서 좋은 방도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몰라도 어머니와 누나에게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
그러면 무척이나 기뻐하실 텐데.
한참을 고민에 잠겨 있는 나에게 카이서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찾아 나서면 되지 않느냐. 아니면 유명해져서 찾아오게끔 만들든가.>
뭘 고민하냐는 카이서스의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웬일로 카이서스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한담?
“네 말대로야.”
<음? 찾아 나서려고 하느냐? 아무런 단서도 없느냐.>
“아니, 내가 직접 찾는 것보다 나를 찾아오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흠,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유명해질 테냐?>
끄응, 그게 문제란 말이지.
내가 의자에 앉아 고민하고 있자 카이서스가 재차 말했다.
<적색 마탑에 찾아가 보는 건 어떠냐. 일단은 네 실력이 높아져야 유명해지기가 쉬울 텐데.>
그의 말에 나는 재차 생각에 잠겼다.
적색 마탑이라면 대륙에서 손꼽히는 마탑이니까…….
거기서 두각을 드러내면 금방 유명해질 수 있을지도 몰라.
“좋아, 적색 마탑으로 가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결정했다.
<지금 출발할 셈이냐? 밤인데?>
“당연히 내일 출발하는 거지.”
밤중에 출발하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크크, 적색 마탑이라면 화염계 마법을 주로 익힐 수 있겠군. 내 취향에 딱이야. 너에게도 어울릴 테고.>
“뭐? 그런 건 네가 어떻게 알아?”
마탑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은데.
<크크, 병에 걸리기 전에는 인간으로서 유희도 자주 다녔던 나다. 옛날부터 존재해 온 마탑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하긴, 적색 마탑처럼 오래된 마탑의 역사는 거의 천 년에 가까우니까.
드래곤인 카이서스가 알고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럼 적색 마탑이 어디 있는지도 알아?”
<그것도 모르느냐? 트릭스 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지 않느냐.>
모를 수도 있지!
그걸 모르는 게 죄는 아니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그쪽에 관련된 건 관심도 없던 나라고.
그나저나 트릭스 산이라…….
여기서 대략 보름 정도 걸리던가?
“그런데 말야, 나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지만 길은 전혀 모르는데.”
<쯧쯧, 정말이지 멍청한 놈이군. 네가 길을 모르면 길을 아는 사람과 동행하면 될 것 아니냐?>
아항! 그렇지, 그 부근으로 가는 상인이 있을 테니 그들을 따라가면 되는 일이잖아.
게다가 나는 마법사이니 같이 가겠다고 하면 상대 쪽에서도 환영할 테고 말이야.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라제스의 상인조합으로 찾아갔다.
“응? 트릭스 산으로 가는 상행? 적색 마탑을 찾아가는 모양이구먼?”
그렇게 말한 조합원이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이 도시를 들른 조합 소속의 상인들이 어디로 상행을 떠나는지 적어놓은 서류인 듯하다.
“거기까지 가는 건 없고 때마침 상인 하나가 그 근처로 간다는데, 같이 갈 텐가?”
“네!”
힘차게 대답하는 내 말에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라니 그쪽도 환영할 거야. 뭐, 용병으로 고용을 하는 건 아니라 보수는 없겠지만.”
보수의 유무는 내가 상관할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애초의 내 목적인 길 안내를 해줄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지.
어차피 카이서스의 둥지에서 가져온 보석만 해도 엄청난 금액이니 돈 걱정은 없다.
“좋아요! 언제 출발한대요?”
“음, 아마 내일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일단 [불타는 고기] 여관에서 반스를 찾아봐. 그 친구가 트릭스 산과 가까운 트롬웰시로 간다는 상인이야.”
“네, 감사합니다.”
상인조합의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건물을 나섰다.
[불타는 고기] 여관은 동문 인근에 위치한 작은 여관으로서 스테이크가 일품인 가게다.
내가 길 찾기는 잘 못해도 19년 평생을 살아온 라제스 시내의 지리는 빠삭하다.
“저기요! 트롬웰시로 가는 반스 씨 계신가요?”
여관에 들어서며 소리친 내 말에 한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중년 남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내가 반스네. 젊은이는 무슨 일로 나를 찾는가?”
“트롬웰로 가신다고 들었는데 같이 동행할 수 있을까 해서요.”
“응? 나야 괜찮지만……. 복색을 보아하니 마법사 같은데 추가로 용병을 고용할 돈은 없네.”
“보수는 없어도 괜찮아요. 길 안내만 제대로 해주시면 돼요.”
보수가 필요 없다는 말에 반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법사가 한 명 더 동행한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까.
몬스터나 산적의 습격을 받을 때 마법사의 존재는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된다.
거기다 나는 공짜로 같이 가준다지 않는가?
“잘됐군! 트롬웰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 곳이니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말게!”
“좋아요. 그럼 언제 출발하나요?”
“내일 아침에 여기로 다시 오게. 늦으면 곤란하니 일찍 오게나.”
신신당부하는 그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차피 라제스를 떠나기 위한 짐은 다 챙긴 터라 산속의 오두막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반스 씨와 같은 여관에 방을 빌리고는 이른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 여관 앞으로 가니 커다란 짐마차에 올라탄 반스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 젊은 마법사 양반. 일찍 나왔구먼. 이제 곧 출발할 거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다가가자 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마법사가 공짜로 따라와 준다는데 아무것도 대접 않기는 내 미안해서 마차에 자리를 마련해 뒀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마차 한구석에 비어 있는 공간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짐이 잔뜩 실린 짐마차에서 사람 하나 겨우 앉을 법한 공간이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다.
걸어가는 것보다야 조금 불편해도 앉아 가는 것이 더 편하니까.
“아참, 곧 나와 계약한 용병들도 나올 테니 인사나 해두게. 앞으로 보름 정도는 같이 지내야 하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나?”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관에서 네 명의 남녀가 걸어 나왔다.
“오! 때마침 나오는군. 이보게들, 다들 인사나 나누게. 우리랑 같이 가게 된 라엘이라는 마법사 젊은이네.”
손에 든 닭다리를 우걱우걱 뜯어 먹으며 나오던 여자가 바지에 손을 슥 닦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여! 반가워. 나는 라이라고 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롱소드와 방패를 허리춤과 등에 메고 있었다.
“나는 록스다.”
대검을 등에 메 덩치 큰 사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리로이라고 한다. 잘 부탁하마.”
“나는 메비안. 잘 부탁해.”
뒤를 이어 한 손 철퇴를 허리에 찬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사내와 등에 커다란 활을 멘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반스 씨의 말과 함께 네 명의 용병이 호위하는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