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4화 대탈출 2
* * *
“으으으윽..., 제길...”
주위가 소란스러워진 것을 느끼면서 제이드는 다시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그를 엄습하는 격렬한 통증에 제이드는 일단 몸을 뒤집어서 헐떡거렸다.
“이런 썅, 왜 이렇게... 아!”
그는 자신이 정신을 잃은 계기를 만든 한스의 블로를 상기하고는 고개를 돌려서 주위를 살펴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한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절하기 전의 기억이 흐릿한 제이드는 일단 몸을 일으켜 세워 적당한 곳에 기대었다, 그 후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보기 위해서 집중했다.
“으음..., 결국에는 가버린겐가...”
제이드는 젊고 혈기왕성 했던 시절에 일어났던 일과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체감했다, 그 당시에도 절친하고 소중했던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있었다.
“하..., 씨팔, 또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목숨을 건지고 나서부터는 욕지거리를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제이드였지만 벌써 몇 번이나 오랜 세월을 거쳐서 점잖아진 입으로 욕지거리를 했던가..., 후회를 바탕으로 했던 굳건한 맹세는 이미 유명무실하게 됐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혼란스럽고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좀처럼 보기 힘든 청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상기한 제이드는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려고 하는 몸을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여 지금의 은신처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크으윽...!, 푸후우...”
[또 쓰러졌다!, 사람을 더 불러와!]
[씨발 미쳤네!, 저딴 괴물을 붙잡아라고 우리를 고용한거냐! 씹새끼들!]
[어이! 어딜 가는거냐!]
[돈도 안되는 일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지, 나는 갈란다!]
[에이 씨팔!]
은신처를 스쳐 지나가는 몇 명의 발소리, 그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몇십명의 달려가는 소리를 듣고 제이드는 아직 한스가 건재하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유추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구세주라고 불릴 정도의 초월자가 아닌 그가 이 이상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었다.
“끄으으응...!, 은혜를 받았다면 응당 배로 갚아주는 것이 사람으로써의 도리지...”
‘터벅터벅’
제이드는 은신처인 동굴의 벽을 짚으면서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출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는 그의 귀에, 용병들의 것으로 짐작되는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악!]
‘털썩’
[씨발!, 어디서 뭐하다가 나온 놈들...!, 켁!]
[이, 이봐!, 나는 자식과 노모가...!, 끄흐으으으으윽!]
곧 밖이 잠잠해지자 제이드는 숨을 죽이고 미동도 하지 않고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넘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제이드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 역시 있네?”
“이런...”
그렇게 최선을 다했건만 이런 식의 결말이 자신에게 다가온 것이 당황스럽고 원망스러웠지만, 제이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식은 땀만 뻘뻘 흘리며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 이었다.
“기야아아아압!”
‘부웅’
‘퍼억’
“우랴아아아아앗!”
‘뻐어억’
“커허억!”
한스는 자신에게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용병들을 맨몸으로 여유롭게 상대했다, 사람이 주먹질 한번에 붕떠서 날아가는 비상식적인 상황에,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나서며 포획을 성공하고 상금을 받을 생각에 신났던 그들도, 나름 잔뼈가 굵은 용병들이 쪽도 못쓰고 날아가는 장면이 계속해서 연출되자 돈보다는 자신의 몸을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존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주춤거렸다.
‘슬슬 일어났겠군.’
이정도로 소란을 피워서 용병들을 끌어들이고 지휘, 전달체계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약간의 휴식을 취하여 체력을 회복한다면 노인인 제이드라고 한들 충분히 도주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스는 판단했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포획하라는거냐!”
“난 도저히 못해!”
‘타다닥’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전의를 잃은 용병들이 전열에서 이탈하여 도주를 했다,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도망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자신들 또한 그들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상황을 지켜보고 난 후에도 늦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쉬이익’
“끄악!”
‘촤아악’
“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푸욱’
“커어어어억!”
“히이이이이이익!,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타다다다닥’
같이 도망을 치던 동료들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참살 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던 용병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들고있던 무기도 바닥에 내팽겨치고는 허겁지겁 도망쳤다.
‘쐐애애애애액’
“컥!”
‘털썩’
결국 자신이 버리고 간 무기가 몸을 뚫고 나온 상황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을 하고는 목숨을 잃은 용병의 뒤로 천천히 한사람이 걸어나왔다.
“한 놈을 잡는데에 뭐가 이리 오래 걸리나 싶었다만..., 과연 그럴만한 사냥감이었군?”
“대장!”
숲에서 나오는 한 사내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발견한 용병들의 얼굴에서 다시금 희망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놈들이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한스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사내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 사내에게 관록이 있어 보이는 용병이 다가왔다.
“여기저기에 널린 어중이 떠중이가 아닙니다 대장.”
용병의 말에 사내는 눈썹을 들석이면서 바보같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뢰주인 놈들이 경고를 할 정도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두각을 조금이라도 보이던 놈들이 모조리 당했습니다.”
“으음...”
관록이 있어 보이는 용병의 재차 거듭되는 경고에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는 쓰러져 있는 남자들 중에 익숙한 자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비릿한 미소를 띄웠다.
“으음 그래..., 그래 보이는군.”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호승심이, 기나긴 세월을 지나서 다시금 강하게 끓어오르는 것을 즐기면서 천천히 건들건들 이동했다.
“덮칠 준비를 해두면 되겠습니까 대장?”
대장은 관록이 있는 용병에게 금방 전까지 헤실거리면서 웃고 있던 얼굴을 찡그리고 살기를 뿜어내면서 돌아봤다.
“괜한 짓거리는 하지도 마라, 그렇게 해서 압도 가능한 사냥감이 아니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관록이 있는 용병은 대장의 말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충실히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진영을 짜고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용병들이 뒤로 물러나도록 지시했다.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대장의 저런 모습은 정말 오랜만에 본 그는,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저런 얼굴을 한 대장이 나서면 상황이 종료 됐었기에,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건들거리면서 한스를 향해 걸어간 용병단의 대장은 날카로운, 마치 맹수를 떠올리게 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 한스의 시선을 감지했다, 여간내기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그는 일정거리를 남겨둔 채로 멈춰섰다.
“안녕한가?”
“...”
“하나 궁금한게 있어서 그러는데 대답해줄 수 있나?”
“...”
용병단의 대장은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한스의 집중력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교단에서 돈이라도 떼먹었나?, 아니면 빚이라던가?, 꼭 생포해달라고 하더군.”
“글세...”
한스가 무뚝뚝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혹시나 벙어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용병단의 대장은 한숨 돌렸다.
“내가 아니라 그자들이 빚을 졌다고 할 수 있겠지...”
“뭐?”
한스의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아버린 용병단의 대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다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핫!, 교단이 빚을 졌다고 진심으로 말하는건가?, 크하하하하하핫!”
“거짓도 아니지.”
한스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음에 대답하자 사내는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귀기가 서린 얼굴로 한스를 바라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여기저기에 널린 머저리들하고 똑같이 보는거냐?”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그저 사실을 말할 뿐...”
“그래 그쪽이 뭘 말하건 중요치 않지, 그저 너라는 남자를 포박해서 간다면 이 귀찮고 더러운 의뢰도 끝이니까 말이지, 순순히 잡혀준다면 너도 나도 윈윈이지, 어때?”
“무리한 것을 이야기하는군, 이쪽도 나름의 목표가 있다.”
“협상결렬이군, 후회하지마라.”
냉랭했던 주변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지고 피부가 찌릿할 정도의 살기가 공중에 흩뿌려졌다, 한스는 언제든지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전신을 털어주면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 모습을 살기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사내는 허리춤에 있던 단검과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들고는 천천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후우우..., 흡!”
‘타다다다다다닥’
‘쐐애애애애액’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사내의 몸놀림에 한스는 놀랐다, 물론 항상 그러듯이 속으로만 감탄했기에 드러난 한스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함 그 자체였다, 경부를 노리고 들어오는 용병 대장의 공격을, 한스는 손등으로 가볍게 궤도를 틀어줬다.
‘카각’
‘휘이익’
‘응?’
용병단을 통솔하는 지위에 오른 사내는, 자신이 내지르는 찌르기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등으로 쉽게 쳐내는 한스의 행동에 첫째로 놀랐다,
둘째로는 어중간한 실력자라면 대응을 한다는 생각, 혹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엠 목숨을 잃을 정도의 빠르가, 자신이 구현 가능한 최대의 속도로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한스의 무방비 했던 목에 자신의 검이 닿지 못했다는 것에 아주 크게 놀랐다.
‘설마 했었는데..., 우리에게 짬처리를 시키고 전멸한다면 돈을 내지 않고 결과물만 쏙 빼먹으려고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던 참이었다만...’
아무래도 자신의 좋지 않은 예감이 확실히 적중한 것이 맞다고 그는 판단했다, 하지만 이미 시작 해버린 것을 멈추고 뒤로 빠지기에는 너무 멀리 왔었다, 검을 뽑아든 이상 성과를 내고 대가를 치루는 삶을 항상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쉬이익’
‘타악’
첫 번째 공격과 두 번째 공격 간, 찰나의 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사내는 단검을 한스의 흉부, 정확히 심장의 위치를 향해서 휘둘렀다, 흔들림 없는 묵직하고 깔끔한 공격, 아마 보통이라면 이 두 번째 공격에 대응하지 못하고 절명할 것이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터업’
“크윽!”
팔꿈치가 아주 쉽게 붙잡혀버리자 사내는 경악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