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9화 잠시간의 이별과 소녀와 미녀 2
* * *
“흐으음...”
자그마한 체구에 비하면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자랑하는 소녀와 그 뒤를 시종처럼 굽신거리면서 따르는 이종족들을 따라서 낯설지 않은 풍경의 방안으로 들어선 한스의 귀에 께느른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데려왔어.”
“그래...”
소녀와는 대조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여인이 한스의 얼굴을 아무 말도 않고 한동안 조용히 지켜봤다, 그 후 여인은 위아래로 한스를 훑어보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힘을 아직 제대로 못쓰지?”
한스는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여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나서야 그것이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의미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한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일 뿐이었다.
“슬슬 해방될 때가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정말 이상해.”
“흠..., 잠깐 기다려봐.”
여인은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다시 드러난 여인의 두 눈은 눈동자의 색이 금색으로 바뀐 것으로 모자라서 넘실거리는 새하얀 기운에 둘러싸여 있었다.
“설마 했더니만...”
“왜그래?”
“나한테 물어보기 보다는 직접 보는게 어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잖아, 직접 확인 해봐.”
“아이 참~, 가르쳐줘도 좋을텐데.”
소녀는 여인의 말과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볼을 부풀렸다, 그러면서도 소녀는 여인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러자 여인의 눈동자와 같은 색이 그녀의 두 눈에 깃들었고, 똑같은 것으로 보이는 새하얀 기운 또한 나타나서 넘실거렸다.
“어?, 이게 뭐야?”
“나도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어, 단 하나 확실한 증거는 발견했지, 좌측 하단을 살펴봐.”
“어디어디..., 아...!”
소녀는 여인이 가리킨 방향에서 무언가를 발견 했는지 탄성을 내면서 입을 가렸다, 한스는 그녀들과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고 눈을 크게 떠봤지만, 그녀들이 보고 놀랄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신병자가 손을 쓴 것 같이 보이네.”
“응,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예상치도 못한 것을 한스에게서 발견한 여인은 께느른함을 떨쳐내 버리고 약간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녀에게 말했다,
“뒤늦게 그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는거 알지?”
“나도 알고 잇었다니까!”
소녀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자 여인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직 이종족들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고 있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저번에 이야기 했던 대로...”
“아니!,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 오늘이야말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어.”
“급하다고 말한거 못 들었어 데이나?”
여인이 데이나라고 불린 소녀를 불쾌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소녀는 변함없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미나스, 더 이상은 나도 참아줄 수 없다는 이야기야.”
“하..., 굳이 필멸자들 앞에서 이런 추태를 보이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거야?”
“이런 때 아니고는 네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리가 없잖아?, 안그래?”
“난...!”
미나스라고 불린 여인이 반박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데이나라고 불린 소녀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깊을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거봐 또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잖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다른 사람, 아니 존재도 아닌 우리 사이인데?”
미나스라고 불린 성숙한 외모의 여인은, 데이나의 따끔한 일침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잘 알게 됐다.“
“무시해서 미안해 데이나.”
“인정했으면 됐어 미나스, 나는 그저 너의 진심어린 태도를 보고 싶었을 뿐이야.”
“그럼 이제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어..., 그런데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하아..., 금방 전에 하던 이야기를 완전히 잊어버리면 어쩌자는거야 데이나.”
데이나가 웅얼거리면서 미안하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미나스라고 불린 여인은, 자신의 파트너인 소녀에게 손바닥을 보이면서 괜찮다고 말한 후에 다시 원래의 주제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눈독 들였던 저 필멸자에게 그 놈이 이미 손을 댔다는 이야기였지.”
두 번이나 반복되는 이야기에 염증을 느낀 미나스는 나른한 얼굴을 하고 설명을 했다, 그녀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는지 데이나라고 불린 소녀는 손바닥을 맞부닺히게 하여 짝하는 소리가 나게 하고는 겨우 기억이 떠올랐는지 탄성을 냈다.
“그래, 그래, 이제야 생각이 났어!”
“하아.., 그것 참 다행스러운 일이네.”
“근데 미나스...?”
“왜 그래 데이나?”
미나스는 데이나의 부름에 또 다시 피곤해지는 질문, 힘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놈은 우리가 이 인간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이런 조치를 해뒀을까?”
불길하고 슬픈 예감은 역시나 빗나가지 않고 이번에도 적중했다, 더욱 더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절실히 느끼면서 미나스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나도 의문이야 데이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계집애 이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를텐데 말이야...”
“설마 그...”
“데이나...?”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미나스의 눈에 생기가 돌아온 것을 데이나는 확인했다, 아니 그녀와 오랜 기간을 함께 해온 데이나는 언뜻 무표정으로 보이는 얼굴과 눈동자 안에 감춰진 감정을 전혀 모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들 마냥 선명하게 감지하고 파악할 수가 있었다,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이글 솟구치는 그녀의 분노를 말이다.
“미, 미안...”
“후우..., 됐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슬슬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설명 해주지 않겠나?, 답답해서 미칠 것 같군.”
미나스는 데이나를 향해서 눈짓을 했다, 아까까지의 어벙한 모습과는 달리 그녀는 미나스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알 수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예의를 갖춰라.”
“고귀하고 위대하신 분의 앞에서 무례한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한스는 자신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는 두 이종족, 오라클맨과 골든 보이에게 잠시 시선을 향했다가 다시 두 여인에게 시선을 움직였다, 냉정한 시선으로 한스를 바라보는 미나스와는 달리, 데이나는 호의가 느껴지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잠깐 기다려 데이나.”
“왜 그래 미나스?”
“내가 설명할게.”
“걱정하지마, 설명 정도야 나도 할 수 있어.”
데이나가 한 말에 미나스는 머리가 슬며시 지끈거리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의 힘으로 인해서 이전과는 확연히 바뀌었고 또한 거리낌 없이 숙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정확히 자신들에 대해서 아는 이종족들과는 달리 한스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점을 미나스는 확연히 인지하고 있었다.
“데이나 아직 전부 설명하면 안돼.”
“아..., 알겠어.”
데이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미나스가 자신을 무시하고 움직이려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여 물러서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서 자신이 이야기를 했다가는 앞으로의 여정에 크나큰 장애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전에 미나스와 나눴던 이야기 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고집을 꺾고 뒤로 물러섰다.
“하나하나 설명 해줄테니까 일단 진정하도록 해, 마리우스 상단의 총괄 한스, 아니 뛰어난 지휘관인 한스라고 해야 좋을까?”
“...”
미나스의 입에서 뱉어진 말을 듣고 한스는 잠깐동안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심장이 격하게 뛰는 소리가 들었다,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로 동요를 했지만 한스는 용케도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도록 신체를 조절했다, 그런 그의 귀에 미나스의 약간 하이톤인 차분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여기는 필멸자들이 오기 힘든, 그래... 잊혀진 사원이야.”
“그..., 크흠...”
한스는 불편하고 또한 불쾌했다,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장소로 온 것으로 모자라서 자세한 설명조차 않으려고 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로 인해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쉴 새 없이 용솟음쳤다.
“잘 생각했어,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본 것 마냥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와 미심쩍은 말, 수상하고 미덥지 못했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겠다고 판단했다, 보내달라고 발광을 한다고 해서 보내줄 그런 어설픈 위인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도 달성해야 하는 목적이 있기에 자신을 이곳에 잡아두고 있는 것이라고 유추한 한스는 요구사항을 말했다.
“그쪽의 용무가 끝나는 대로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주는 건가?”
“물론이야, 우리는 한입으로 두 말하지 않아.”
“음..., 알겠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약간이나마 확실한 것이 보이자 한스는 자신의 요동치던 마음이 서서히 안정되던 것을 느꼈다, 전과는 약간 다른 이질감을 느끼는 한스의 귀에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던 데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을 푸대접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미나스?”
“내키는 대로 해.”
“후후, 알겠어.”
‘따악’
‘터억’
한스는 아무것도 없던 공중에서 갑자기 식탁이 나타난 것으로 모자라서 지면에 살포시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자신이 이제껏 알고 있던 상식이 부정당하는 상황에 한스는 어깨를 움찔거릴 정도로 크게 동요했다.
“오랜만의 손님이니까, 에잇!”
‘휘이익’
‘타다다닥’
데이나가 손가락의 끝에 반짝이는 기운이 맺히게 한 후에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금방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금방 조리된 따끈한 음식들이 나타나 문양이 새겨진 원목 식탁 위에 얹혔다.
“일단 먹어.”
“으음...”
데이나와 미나스 두 사람에 대한 의심이 여전한 한스가, 정신없이 음식을 탐하는 이종족들과는 대조적으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자, 답답한 마음이 든 미나스가 입을 열었다.
“독 안들었으니까 그냥 먹어.”
“아직 너희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안전한지 증명하도록.”
“하아..., 정말 귀찮게 하는 성격이야.”
미나스가 께느른한 얼굴로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숟가락을 들자,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데이나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믿어주면 안되려나...”
“저런 귀찮은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하암, 우물우물.”
한스는 미나스가 음식을 입안에 밀어넣고 삼키는 순간까지 조용히 지켜봤다.
“하아, 이제 만족해?”
“뭐 일단은 말이지.”
‘달각, 달그락’
게걸스럽게 식탁 위의 음식들을 해치워나가는 이종족들과 달리 조용히 한입씩 음식을 섭취하던 한스는 따뜻한 스프를 입안에 넣자마자 몰려오는 맹렬한 공복과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자신을 잠식 해나가는 것을 느꼈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파도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던 한스는 곧 이종족들과 마찬가지로 정신 없이 입안에 음식물을 끌어넣었다.
“마음에 드는 듯해서 다행이야.”
“천천히 먹어, 얼마든지 더 있으니까.”
‘우걱우걱’
한스와 이종족 둘은, 데이나와 미나스 둘의 입이 떡하니 벌어져서 닫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음식을 섭취했다, 셋이서 해치운 음식의 양은 대략 200인분 가까이 됐었다.
“배부르다.”
“훌륭한 음식입니다, 위대하신 분들이여.”
“...확실히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감사한다.”
‘펑’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식탁 위에 놓여있던,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음식들이 담겨 있었던, 지금은 텅 빈 식기들은 자그마한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에 따끈한 차와 함께 다과가 모습을 드러내자 한스는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키고 몸안에 퍼져나가는 다스한 기운을 느끼면서 말했다.
“이제 슬슬 이야기 할 건가?”
“어차피 식사가 끝나면 이야기 해주려고 했었어.”
데이나가 차를 홀짝이면서 다과를 먹는 것을 바라보는 한스에게 미나스가 말했다.
“돌아가는 방법을 물었었지?, 우리 둘이서 네 몸을 확인하고 처리를 끝마치면 어차피 싫다고 해도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니까 안심해.”
“내 추측대로군.”
“흐흥~.”
미나스는 한스의 혼잣말에 긍정한다는 듯이 콧소리를 내고는 차를 홀짝였다, 앞에 놓여있던 과자를 한입 베어물고 오독거리던 미나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적은 네가 즐기고 살아가면서 선행을 베푸는 것이었지.”
“그걸로 너희들에게 무슨 이득이 생기지?”
“뭐, 그런 자잘한 것은 차후에 이야기하고..., 일단은 다시한번 살펴봐야겠어, 아까 놀라서 잘 못봤거든.”
‘끄덕’
목적을 숨기는 것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패가 없었기 때문에 수긍하기로 했다.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움직일 수도 없지.
미나스의 눈이 곧 한스의 전신을 훑었다, 잠시 후 원래의 눈동자 색으로 돌아온 그녀가 한스에게 말했다.
“역시 아까 봤던 대로야.”
“무엇이 말이지?”
“안 좋은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는데 어느쪽부터 들을 셈이지?”
“전자부터 듣도록 하지.”
미나스의 물음에 한스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결정한 후 대답했다, 한스의 행동에 상당히 흥미를 가져버린 미나스의 눈동자가 다시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네게 줬떤 힘이 봉인 됐었어.”
“힘이라면...?”
그 순간 한스의 머릿속에 단 한가지 생각이 유성처럼 스쳐지나갔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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