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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단지 쥬지육림을 꾸릴 뿐이다-118화 (118/151)

〈 118화 〉 118화 잠시간의 이별과 소녀와 미녀 ­1­

* * *

“으음...”

한스가 순간 자신을 스쳐간, 지금은 기억을 할 수 없는 강렬한 환상 덕분에 몸을 휘청이자 딸이 다가와서 몸을 붙잡았다, 마침 근처에 있던 테이블로 부축하여 이동케 한 후 의자에 허리를 걸치게 한 한스의 딸이 말했다.

“괜찮아?”

“으으음..., 물론이지.”

“거짓말.”

한스의 딸아이는 손으로 그가 못느끼고 있던 식은땀을 훔쳐내고 말했다.

“괜찮다면서 이렇게 땀을 흘려?”

“후후..., 네 엄마 운동을 도와줬으니까 그렇지...”

‘스윽 스윽’

“그런 것 치고는 얼굴이 새파란데?”

“아니지...”

한스는 한사코 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딸아이가 갑자기 그의 귓가에 입을 갖다대고는 속삭였다.

“괜찮아, 나도 알거 다 아는 나이니까..., 사실대로 말해도 돼 아빠.”

“흐으음...”

한스는 다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설마 딸아이가 자신과 아내의 적나라한 정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을 열려고 했다.

‘터벅터벅’

“하아..., 흣...!, 아!, 메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한스의 딸 메이는 아버지인 그의 이마로 흐르는 땀을 조금 더 닦아 내고는, 가슴부에 있는 옷의 매듭을 허겁지겁 묶는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침부터 무슨 운동을 한다고 그러는거야 엄마?”

“그, 그건 말이지..., 요 근래 아빠가 없어서 운동을 못했잖니... 그래서...!”

밀리는 옷의 매무새를 다듬는 와중에 딸의 거칠 것 없는 물음에 당황했다, 그녀는 슬그머니 한스에게 접근하여 팔꿈치로 꾸욱 누르면서 눈짓을 했다.

‘적당히 좀 둘러대봐요!’

‘으음... 알겠어.’

‘제대로 말 못하면 알죠?’

한스는 상태가 이제 좀 나아진다 싶을 때에 아내가 주는 압박에 머리를 천천히 굴렸다, 그 일련의 과정을 눈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메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당겼다.

“하아... 됐으니까 빨리 가요.”

“아... 그래야지.”

“너무 늦지 말아요.”

‘저벅저벅’

“조심할게.”

“걱정마요, 내가 따라가니까요.”

‘끼이이익’

‘턱’

“정말... 같이 산책하려고 예정을 잡아둬도 이렇게 오래 걸리면 어쩌자는건지...”

“미안하다.”

한스는 진심을 담아서 메이에게 사과했다,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 때문에 놀러가는 것조차 제대로 못하고 집안에 유폐되다 시피한 생활을 영위하는 한창인 딸에게는 힘들고 가혹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조금이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다고 하던 높은 자리를 다 거절하고 수입이 안정적인 직장에 내려왔지만, 한스에게 주어진 것은 군인으로 있을 때와 다를바 없는 생활이었다.

‘하아..., 이럴려고 그만둔 것이 아닌데...’

‘타닥, 탁’

한스는 자신을 제치고 앞서 걸어가던 메이가 걸음을 멈추고는 뒤돌아서 자신을 바라보자 걸음을 늦췄다.

“걱정마, 그런거 하나 몰라주는 나이는 아니니까.”

“알고 있었지.”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어두운데?”

“그랬나?”

한스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별의 별 희한한 표정을 짓다가, 항상 그를 봐왔던 사람이외에는 알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미소를 띄웠다.

“내 앞에서는 거짓말 하지마.”

“애가 어른 걱정하는거 아니다.”

한스가 무뚝뚝하게 말하자 메이는 콧방귀를 끼고 기가 찬다는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어른이고 아버지면서 딸이 걱정하게 하는거 아냐.”

“최선을 다하고 있지, 편히 살 수 있도록...”

‘터덥’

“그...!, 흐아아앗!”

뒤로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려고 하는 메이를 재빨리 붙잡은 한스는 균형을 잡도록 거들었다, 이제는 제대로 앞으로 보면서 걷도록 하고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계속 말해라, 뒷이야기가 궁금해.”

“편히 사는 것보다는 같이 즐기는 것이 좋아!”

“나도 그랬으면 해서...!”

“그럼 왜 제대로 안 봐?”

“메이?”

한 순간에 바뀌어버린 딸아이의 분위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한스를 엄습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강력한 통증과 기억들, 아니 환상을 보고 한스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어쩌다가 이런 곳에...’

“이제는 제대로 할 수 있겠어?”

“뭘...?”

“나하고 엄마, 아니 어머님을 잘 볼 수 있겠냐구.”

어렴풋하게 자신이 대답을 해야할 방향을 깨닫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눈치챈 한스는 메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끄덕’

“그럼 됐어.”

‘타다닥’

메이는 텅빈 거리를 활기차게 달려나갔다, 한스와 어느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그녀는 고개를 슬며시 뒤로 돌리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이제 다 됐네...?”

“메이...”

“오지마!”

‘우뚝’

메이는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미세하게 떨었다, 주기적으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자 한스는 딸아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녀와 자신의 관계, 부녀관계가 여전하다고 생각한 한스는 천천히 걸어가 메이를 위로하려고 했다.

‘척’

“오지마.”

“진짜이건 아니건, 네가 내 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알아, 그래서 더 슬프다는거야, 이대로 헤어져야하는 것을 아니까...”

“나는...!”

메이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면서 고개를 들었다, 밀리를 쏙 빼다박은 수려한 얼굴선을 따라서 눈물이 옥구슬처럼 흘러 떨어졌다.

“가야하잖아...”

“지금은...!”

‘절레절레’

자꾸만 다가오려는 한스에게 메이는 폐부에서 소리를 짜낸 것처럼 큰 목소리를 냈다.

“기다리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

“아...”

한스는 잊고 있었지만 갑자기 지하수처럼 솟구쳐 나오는 기억,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또 만날 수 있으니까...”

“메이!”

‘화아아악’

주변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면서 한스는 더 이상 메이를 바라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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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일어납니다!”

“눈을 뜬다!”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을 감지하면서 한스는 자신의 의식이 심연에서 서서히 부상하는 것을 느꼈다.

“윽...!”

눈을 슬쩍 뜨자 한스의 시야를 덮쳐오는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이 시신경을 자극했다.

‘또각또각또각’

석재 바닥에 울리는 선명한 하이힐이 닿는 소리, 소리로 파악하거니 체중이 가벼운 편이라는 것을 알게된 한스는 다가오는 주체가 어린아이 혹은 여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일어났습니다!”

“신경 썼습니다 위대하신 분이여!”

“흥...!, 말 안해줘도 알고 있으니까 조용히 있어.”

무뚝뚝하고 퉁명한 목소리 앳된 목소리, 서서히 시야가 회복되는 것을 체감한 한스는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꿈은 잘꿨어?”

“꿈이라니, 무슨 소리지?”

“기억이 안나는거야?”

“전혀 안나는군...”“어쩔 수가 없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까...”

‘따악’

소녀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강렬한 감정의 격류와 대화의 편린만이 흐릿하게 떠오르던 한스의 머릿속에 꿈의 내용이 아주 선명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일을 실제로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건...?”

“필멸자에게 설명하기는 좀 어렵지만, 최대한 쉽게 이야기하자면 욕망의 발현이자 미래의 편린이라고 할까?”

“미래의 편린...?”

“어쩌면 이번에는 이뤄질지도 몰라.”

한스는 꿈에서 봤던, 삶을 몇 번이나 반복해도 구할 수도 없고, 자신의 품에 넣을 수도 없었던 공주, 밀리와의 달콤한 부부 생활, 그녀와 쏙 빼닮은 딸아이 메이를 떠올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뭐 대충은 알거야, 그럼 일어나서 따라와.”

‘또각또각’

한스는 자신이 누워있는 자리에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는 소녀의 뒤를 굽신거리면서 따라가는 이종족을 멍하니 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윽...!”

“천천히 와, 꽤나 무리 했었으니까.”

‘터벅터벅’

한스는 이종족들의 모습이 왠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는 달라진 것 같다고 느꼈다, 기존에는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취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에 한 없이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말하는 방식도 달라졌었지.’

인간과는 구강의 구조, 두뇌가 확연히 다른 터라 무엇을 해도 발음이나 문장의 구성이 이상했었지만, 자신이 눈을 뜰 때에 들었던 바로는 사람과 다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원활하게 말을 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저벅저벅’

돌로 이루어진 바닥을 걷고 있음에도 냉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는 포근하다고 느껴질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고, 공기는 청량했다.

‘저번에 내가 왔었던 곳인가...’

니키타를 방에 눕혔을 때에 잠시 이곳을 타의로 방문한 것을 떠올린 한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건물의 양식은 오래 전에 사용된 양식이었다, 지금도 유지 보수 되어 사용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지금의 이곳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느낌이 전혀 없어.’

마치 새로 지어진 것과 다름 없는 건물의 내부,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는 이곳..., 한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세 사람(?)의 뒤를 따르다가 갑자기 소녀가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데리고 왔어.”

“수고했어.”

가정집과 비슷한 양식의 가구들이 비치된, 푸근함이 느껴지는 방안에 약간 드세어보이는 인상의 미녀가 앉아서 한스를 지루한 눈으로 바라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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