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94화 네미아와 노예 소녀
* * *
뒤로 벌러덩 넘어가 죽음을 맞이해버린 기습자들의 수장을 보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병사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여기저기에 흩어진 시신들을 한군데에 모아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장 한 놈 남았는데 어쩝니까?”
“남은 처리는 한스 총괄님에게 맡긴다,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예이예이, 알겠습니다요.”
자신에게 다가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 사내의 얼굴을 보면서 수월하게 기상한 한스는 왠지 낯익은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봤었나?”
“아..., 후후, 기억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당신이 말을 끌고 갈 때에 잠깐 스치고 지나갔으니 말이요.”
“...응?, 아아...”
사내의 말에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오른 한스는 그를 직시했다, 덥수룩한 수염,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 것이 보이지만 여전히 꾀죄죄했다,
투구를 쓰고 모습이 전과 달라지니 구분을 못했지만, 슬릿 사이로 드러난 눈빛을 보니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이 두필의 말을 끌고 가고 있을 때에 보았던 강렬한 시선을 말이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당신을 도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있을지는 모르는 법이니 부디 조심하십시오.”
“음...”
사내는 주위의 정리를 끝낸 동료들과 함께, 나타났을 때처럼 신속하게 한스의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던 습격자 한명의 모습을 확인한 한스는, 일부러 남겨둔 것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포박을 한 후 데려가려고 했다.
‘땡그랑’
“음?”
포박된 신체를 들어올리자마자 바닥에 떨어진 문양이 새겨진 장식품을 발견한 한스는, 어디선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떠올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모래사장을 헤매며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오리무중인 상태가 됐기에, 일단 마차의 객실에 단단히 묶어서 던져놓은 후, 니키타에게 다가갔다.
“으으...”
“괜찮나 니키타?”
“아!, 괜찮..., 읏!, 한스님은?”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무기에 당한 상처가 있는 니키타는 한스를 걱정했다, 그 마음에 감동한 한스는 고개를 끄덕여 자신이 무탈함을 알려주고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앗!, 한스님 나 괜찮아.”
“오늘은 좀 쉬도록.”
웅얼거리듯이 대답한 니키타는 한스의 품에 안겨서 객실의 의자에 몸을 기댔다, 짐마차를 능숙하게 몰던 실력으로 한스는 조금 빠른 퇴근을 하는 것을 길가던 사람에게 심부름비를 맡겨서 전하게 하고는 귀가길로 향했다.
“어머, 오늘은 좀 빠르시옵니다 주인님.”
“아직 업무가 좀 남았지만 일이 생겨서 도저히 상단으로 돌아갈 수가 없더군.”
“일이라고 하면...?”
‘끼이익’
“아!”
“하으음..., 읏!”
문을 열자마자 몸에 상처가 새겨진 니키타의 모습이 보이자 마릴린은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옵니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냈더군...”
“그렇사옵니까...”
마릴린은 그 이상 한스에게 묻지 않고 니키타를 안아든 그를 따랐다, 응접실의 근처를 지나치게 된 한스에게 마릴린은 안에서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오래 기다리셨사옵니다.”
“빠르군.”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 했을 뿐이옵니다.”
마릴린은 니키타의 상처부위를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랐다, 간단한 조치가 끝난 부위는 붕대를 감아뒀다.
“상처가 깊지 않아서 다행이옵니다, 주인님 제가 처리할테니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시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음, 그게 좋겠군.”
한스는 고개를 주억거린 후 욕실로 향했다, 피가 맺혔던 흔적 빼고는 깔끔한 상태로 욕탕 안으로 들어선 그는 온수를 몸에 끼얹고 긴장으로 인해서 팽팽히 당겨진 실처럼 되어 있던 마음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길!, 망할 상인놈!”
비싼 가구들로 이루어진 어느 저택의 방에서 한 남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것만으로는 불충분 했는지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거나 발로 걷어차면서 씩씩거렸다.
“귀족인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다니, 천한 평민이!”
‘쾅’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고도 여전히 분이 가라앉지 않는지, 귀족 남자는 콧김을 뿜어내면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하필이면 그 상단에 관련된 놈이라니, 제기랄!”
갑자기 거울 앞에서 멈춰선 남자는 엉망이 된 자신의 얼굴, 손이 살짝만 스쳐도 격렬한 통증이 오는 타격부위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여자를 건들건 말건 끼어든 건방진 평민놈을, 어떻게 하면 이 도시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상단과 관계없이 처리할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똑똑’
방을 서성거리던 시장은 약간 분이 사그라든 것을 느끼면서 방 밖에서 입실을 허가하기를 기다리는 자에게 말했다.
“누구냐!”
“게든입니다 주인어른.”
“들어와라.”
‘끼이이’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단정한 복장으로 실내에 입실한 중년의 사내, 자신을 게든이라고 밝힌 집사는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품에서 봉투를 꺼내 시장에게 건냈다.
“이게 뭐지?”
“심부름꾼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내용은 함부로 확인할 수 없도록 봉인되어 있었습니다.”
“음, 알겠다, 나가봐라.”
‘꾸벅’
게든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집사는, 축객령에 가까웠지만 불만을 가지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실내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시장은 봉인을 풀고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으으으응?, 이이이이이! 말도 안돼!”
‘화르르르륵’
시장은 손에 들린 편지를 촛대에 갔다대 불태우고는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
훈련된 30명의 암살자를 보냈는데도 놈의 팔이나, 다리 하나를 자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는 말인가!, 시장은 돈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방안을 서성거렸다.
“제길, 제길, 제길, 젠장!”
지금 당장에 드는 생각으로는 그럴싸한 죄목을 대고 놈을 끌고 와서는 실컷 고문을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광장에서 약식 재판을 하고 목을 대롱대롱 걸어두고 놈 앞에서 여자를 실컷 범해주는 것이 최고라고 시장은 생각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시장은 곧, 그 계획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떠올리고는 혀를 찼다.
‘그런 식으로 방만하게 운영하면 내가 대롱대롱 매달린다는 말이지.’
지금만 하더라도 왕도에서 파견된 감시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느라,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데, 그렇게 대놓고 움직인다면 이번에야 말로 정말 끝장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단의 일개 총괄 따위가 자신을 건든 것을 잠자코 넘어갈 생각은 시장에게는 전혀 없었다.
‘똑똑똑’
“게든이냐!, 저녁은 됐다!”
‘똑똑똑’
“저녁은 됐다고 하지 않았느냐!”
“친우를 이렇게 홀대하는 법이요, 시장?”
“으, 응?,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거지?!”
시장은 방의 끝에서 입구까지 무언가에 쫓기듯이 내달려 도착한 후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브를 뒤집어 쓰고, 보고 있기만 해도 흉흉한 기운이 풍겨 나오는 가면을 쓴 자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시장의 두 눈에 비춰졌다.
“후후후, 친우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움직이는 것이 내 신조요.”
“누, 누가 본 것은 아니겠지?”
“걱정마시오, 조용히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있소.”
“흐, 흠...”
시장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모임에서 자신의 모습도 정체도 드러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다가 지원을 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름을 언급해서는 안되는 교단의 간부..., 라고 자칭했던 자다, 껄끄럽지만, 이 이상으로 자신에게 강력한 원군은 없었기에 시장은 입실을 허락한다는 듯이 방안을 향해서 우아하게 손을 뻗었다.
“후후, 고맙소.”
“크흠...”
곧 시장의 서재로 통하는 문이 닫혔고, 두 사람은 천천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우...”
욕탕에서 피로와 오물을 깔끔하게 씻어낸 후 서재에 도착한 한스는, 가운만을 걸친 상태로 소파에 걸터앉아 독서를 하고 있었다.
‘똑똑’
“들어오도록.”
‘끼이이’
“주인님~, 헤헤헤.”
자신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짓는 네미아, 엘프가 아니라 강아지처럼 자신을 따르는 그녀의 모습에 한스 또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들어오고 나서도 문을 닫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한스는 곧 그 의미를 알게됐다.
‘꾸벅’
‘찰칵’
그녀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 한 아이, 아니 소녀, 그녀는 며칠 전에 자신이 니키타와 네미아를 인수하러 갔을 때에 엉겁결에 같이 인수된 소녀였다, 건강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을 보고, 한스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책을 덮고 둘을 직시했다.
“무슨 일이지 네미아?”
“아..., 저..., 안아주셨으면 해서요 주인님.”
“아침에 있었던 것으로는 부족한가?”
“하읏!,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아니에요.”
네미아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소녀에게 곁눈질을 하여 한스에게 그녀라고 말하는 듯이 몸짓을 했다.
“괜찮겠나?,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면 힘들텐데?”
“저에게 해주신 것처럼 하면 안 되나요?”
“그 아이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이 필요해 보이는군...”
한스가 그녀에게 어떤 방식을 할지 고민하고 있던 사이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서있는 것조차 힘에 겨워, 휘청거리던 소녀가 앞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머리칼이 거의 다 빠져버린 상태, 안쓰러운 상태의 그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하아...,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전보다 더 마른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하아..., 정확하십니다, 아마..., 후우..., 주인님이 아니면 어려울..., 흐으..., 것입니다..., 후우...”
고작 엎드려 절하는 것만으로도 구슬 같은 땀을 쏟아내는 소녀에게 이 이상 무언가를 바라는 파렴치한이 아니었던 한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텁’
“아플 수도 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좋다, 네미아 그녀를 잘 잡도록.”
“네?, 아, 네!”
네미아는 그녀의 팔을 뒤에서 잡았다, 한스는 자신의 가운을 찢어서 돌돌 말고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물고 있으면 이가 상할 일은 없을거다.”
“네.”
두려움과 기대가 섞은 눈빛, 자신이라면 가능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눈, 부담스러웠지만 한스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꾸욱’
‘푸우우욱’
‘주르르륵’
‘콸콸콸콸’
“흐크으으으으으윽!”
자신이 데려왔던 말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스는 그녀의 사지에, 심장부에, 관자놀이와 정수리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말에게 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새카만 피가 솟구쳐나왔고, 얼마지나지 않아 피는 멈췄다, 그것을 본 한스는 준비돼 있던 옷을 대충 걸치고는 벗은 가운을 그녀의 몸에 감싸고 네미아에게 말했다.
“데리고 가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해줘라.”
“아, 알겠어요 주인님!”
네미아가 서재의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한스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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