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3화 상단의 여인들과 낯선 사내
* * *
한스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밀리안느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볼에서 목으로 서서히 손을 미끄 러뜨리면서 부드러운 그녀의 살을 상냥하게 매만졌다.
“으음..”
“...”
간지러운 것일까, 아니면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어느쪽이든 이 이상 그녀를 만지면 잠에서 깨어날 우려도 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제심이 바닥날 것 같았기에 한스는 그 녀의 피부에서 손을 떼고는 몇걸음 물러났다,
니키타를 기점으로 점점 주체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달은 한스는 일단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가만히 있는다면 또 반복할 것 같았기에 그는 서류 작업을 계속했다.
‘쿠당탕, 우지끈’
“갔다왔어 한스님!”
이미 니키타의 손으로 반파에 이르렀던 나무문은 그녀의 거친 손길을 버텨내지 못하고, 결국 파손되고 말았다,
바닥에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내리는, 한 때는 문이었던 것의 흔적을 보고 한스는,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밀리안느에게 설명을 해야 할까하고
약간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쥐고 생각을 했다, 곧 좋은 방법을 떠올린 한스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이 기회에 재단장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문도 튼튼한 것으로 교체하면 두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기는 어렵겠지.’
"음, 잘왔다!“
"헤헤, 별거 아냐.“
한스는 조용히 서있는, 니키타와 비슷한 체구의 엘프(로브의 후드 부분에 미세하게 융기가 있었다) 와 니키타의 허리 보다 조금 높은 곳에 머리가 닿는 하플링,
그리고 니키타의 등에 업혀있는 인간 노예가 보였다, 셋을 천천히 둘러본 한스가 말했다.
“니키타, 저택으로 셋을 데려가도록."
"한스님은?”
“아직 용무가 남았다.”
"알겠어.“
“마차는 우리가 타고 온 것을 타고 가면 문제가 없을테지."
"알았어 한스님, 좀 있다 봐, 가자!"
니키타는 자신의 뒤를 이종족들이 따르게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나가기 직전 엘프가 한순간 한스를 바라보고 고개를 꾸벅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약간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한스가 입을 벌려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엘프는 그의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음..”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스는 눈앞에 보이는 서류 정리에 정신을 집중하기로 했다,
점심 시간이 지났으니 서두르지 않으면 슬슬 뒷감당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상단의 업무가 쌓일 테니까 말이다.
창관 밖으로 나온 한스는 근처를 둘러봤다, 상단까지 타고 갈 마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대충 봐도 몇 대의 마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기에,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마차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아직 앳된 끼가 남아있는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죽고 싶어서 내 앞에 또 나타난 거야 난봉꾼?"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만나다니 대단한 인연입니다, 이사나양."
"흥!, 그딴 사탕발림을 하려고 여기에 온 거야?"
"그럴리가요, 밀리안느를 도우려고 왔을 뿐입니다. "
“잠깐, 지금 뭐라고?”
이사나라고 불린, 금발의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는 미간에 주름을 살짝 만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스에게 다가와,
그녀 자신보다 머리가 몇 개 정도 더 큰 한스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으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흉부의 옷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지금 뭐라고 했지?"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한겁니까?'
"그 입으로 언니를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했던 경고가 기억나지 않나본데..."
마치 상처 입은 야수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이사나의 두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은 한스는, 그녀를 위로 들어올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이사나가 벗어나기 위해서 버둥거렸지만, 체격과 근력의 차가 어마어마했기에 그녀는 벗어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내 여자를 내가 부른다는데, 뭐가 문제지?"
“뭐, 뭐라고?, 너..."
이사나의 고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지만, 한스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나를 적대하는 것은 상관없다만, 앞으로의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 곤란하니 미리 이야기 해두지, 밀리안느의 앞에서 티를 내지 않는게 좋을거야."
"큭!, 네가 뭐라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한스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 하고 거칠게 숨을 내뱉는 이사나에게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실질적인 것은 밀리안느에게 넘겼지만, 창관이 내 소유이니까 말이지."
"뭐..., 라고?”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몸을 돌려서 마차들이 모인 곳으로 향하는 한스의 귀에 멈추라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이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걸을 뿐이었다.
“음…”
한스는 지극히 곤란했다, 자신이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승객을 기다리던 마부들이 그가 접근하자 도망치는 야생동물처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단으로 빨리 가고자 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 있던 마부에게 접근하여 말을 걸어봤지만, 들리지 않는 척을 하거나 외면을 할 뿐이었다,
이대로 걸어가야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한스의 귀에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우스 상단의 한스 총괄님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한스입니다만..., 누구십니까?"
한스가 처음보는 자신을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자 사내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허리를 꾸벅여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저는 마후라반님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자입니다, 제 주인이신 마후라반님께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을 염려하여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기를 명하셨습니다."
“마후라반님께서 말입니까..., 이거 아무래도 마후라반님께 빚만 지고 있는 느낌이 물씬듭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으면 언제 갚을 수나 있을지...”
한스의 넋두리와 다를 바가 없는 말에 마후라반의 밑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한 사내는 잠깐동안 의외의 것을 본 듯한 눈을 하다가 이내 얼굴 표정을 바꿔서 미소를 띄우고는 한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하하하하핫, 걱정 마십시오. 하스 총괄님, 제 주인 마후라반님께서는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쓰지 않는 매우 대범하신 분입니다. "
"그, 그렇습니까?"
“예~, 한스 총괄님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 만족하고 있으니 그리 심려치 않아도 될 듯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목적지는 알고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받으시죠.”
한스는 마부인 사내가 건내는 종이봉투를 받고 이게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안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고는 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제가 이걸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고 사오신겁니까?, 하하."
"이 시장의 명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대충 어림잡아 샀는데 마침 한스 총 괄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운이 좋습니다 하하하하핫!”
사내는 모든 것이 한스를 예의주시하던 주인의 능력으로 인해서 얻은 정보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내어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적당히 둘러댔다.
”슬슬 출발하겠으니 올라타시죠."
"알겠습니다.”
"상단까지 쾌적하게 모시겠으니 식사나 천천히 하십시오, 하하하핫!”
"알겠습니다, 하는 김에 잠도 조금 자겠습니다, 후후후...“
마부가 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목적지인 상단에 도착하기까지 한스는 못 다한 점심 식사를 하고 잠깐 눈이나 부칠까 했다.
“한스 총괄님, 마리우스 상단의 지척까지 왔습니다, 슬슬 일어나주시죠."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 꿈을 꾸던 한스의 정신은 현실로 돌아왔다, 아직 잠기운이 남아 몽롱한 상태로 앉아있는 그에게 마부가 말했다.
“원래 마리우스 상단은 좀 어수선한 편입니까?"
“음... , 오전 오후에 입고, 출고를 할 때는 어수선합니다만..."
"어...,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 벌어진 듯합니다.“
진지한 마부가 이 정도로 이야기를 할 정도면 뭔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스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는 곧 바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출고라고 하기에는 어수선한 분위기, 풍경이 비춰졌다.
"과연, 정말로 이상하군요.”
“행사 날은 아닐텐데,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 것이 사실이라니... , 흠흠.”
“아무래도 좋은 분위기 같이는 안보이니 근처까지 가서 멈춰주시면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허허허, 별말씀을요, 한스 총괄님덕에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다음번에 또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상단의 부지까지 걸어서 5분인 거리까지 접근하자 한스는 마차에서 내려 최대한 걸음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여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음... , 너무 어수선한데?“
‘사박사박’
근처에 있는 풀들과 나무 등걸에 몸을 숨긴 한스는, 여느 때와 많이 다른 부지의 상황에 의아해하면서 안을 천천히 들여다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익숙한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쌍둥이와 잭인가.... 그런데 어째서?”
세사람이 맨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한스는 일순간, 설마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중하여 관찰하니 자신이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가끔씩 몸을 들썩거리거나 뒤척이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도대체 누가 이런 것일까...”
한스가 속해 있는 마리우스 상단은 자체적인 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단이었다, 그렇기에 일반 적인 직원들이 경계 같은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최소한의 무력을 소속 인원에게 요구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왠만한 직업군인과 맞먹을 정도의 수준이 이 마리우스 상단의 직원들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깡, 카가각, 까앙’
금속체와 금속체가 부딪히고 마찰하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게 한 한스는 그곳에서 낯선 자를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가르시아와 상단의 근무자들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장녀인 가르시아의 맞은편에서 여유로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무언가를 말하는 낯선 사내, 그자가 평화로운 목적으로 상단을 방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손에 들린 대검이 말해줬다.
“세사람이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닐 터인데...”
모의전으로 실력을 가늠할 때, 한스조차도 세사람을 동시에 상대할 경우 수월하게 이길 생각을 버리고 진지하게 임해야 승기의 편린이 보일 정도인 저들을 쓰러뜨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길거리에 있는 시정잡배는 아니라는 소리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한스는 이대로 조용히 다가가 저 낯선 사내를 기습하여 제압하기로 마음먹고, 몸을 낮추고 중간 중간에 엄폐물을 거쳐서,
가르시아와 낯선 사내가 서있는 장소의 근처로 접근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그 자를 내놓으면 편하고 빠르게 끝날 것을, 쓸데없이 고집을 부려서 이런 고생을 하고, 시간 낭비를 하려고 하는지... , 이해가 안 가는군."
"하아, 하아... , 갑자기 쳐들어와서 내놔라고 한다면 그 누가 응할까요?“
"내가 맨 처음부터 무력을 쓴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신사적인 것도 아니었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놓으면 군말 없이 물러가도록 하지, 좋은 조건 아닌가?”
"제가 당시의 허술한 협상 조건에 쉽사리 응할 정도로 어눌해 보이던가요?"
“후후, 안될 줄 알고 던져봤을 뿐이지, 그럼 협상 결렬이군, 후회하지 말도록.”
가르시아는 낯선 사내의 말이 가소롭다는 듯 이 콧방귀를 끼고는 손에든 검을 고쳐잡고 상대를 노려봤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녀의 태도와는 달리 그녀의 속마음은 기장과 두려움으로 조마조마, 심장은 터질 듯이 박동을 했다,
아까 몇 번 검을 마주했을 때, 네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협공을 했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하필이면 한스가 없을 때에...’
‘스윽’
사내가 공격을 하기 위한 준비 자세로써 몸을 낮추는 것을 보고 가르시아는 마른 침을 삼키고 근육을 긴장시켰다,
가르시아는 후회했다, 한스가 있을 때 체면 차리지 않고 기술을 단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피했을지도 모른다고,
그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해봤자 늦어버린 것이었다.
"원망하지 말도록...”
“큭”
‘좌아아아악, 쐐액’
사내의 발이 흙과 돌로 가득한 바닥을 미끄러지면서 가르시아에게 다가갔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한 일격이 급소인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을 감지한 가르시아는 용기를 내어 뻣뻣한 팔을 움직였다,
한스가 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이상 자신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녀는 굳은 마음가짐으로 경고를,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흣!”
‘깡, 카가각, 까앙’
“흐읏!”
“계집 주제에 제법이군,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사내가 들뜬 목소리로 가르시아의 실력에 감탄하면서 하는 말에, 그녀는 불안감을 느꼈다, 언제라도 검을 회수하기 쉽게,
어디로든 뻗을 수 있게 근육을 적당히 긴장시키고 매의 눈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곧 사내가 묵직한 일격을, 가르시아의 몸통 한 가운데로 날렸다.
"이익!"
‘카가각’
“크흐흐흐흐흣!”
사내의 광인 같은 웃음소리에 가르시아는 소름이 전신을 달리는 것을 느꼈다, 뭔가 감당 못할 일격이 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그녀의 눈에 머리 위로부터 맹렬한 기세로, 그녀를 반토막 내려는 기세로 접근하는 대검이 보였다.
‘끝인가...’
아직 그 둔한, 하지만 성실하고, 훈훈한 외모의 한스에게 아무 말도 못했거늘, 죽음이라니..., 그 녀는 원통하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통도 자극도 느껴지지 않아 한쪽 눈을 살짝 떠서 상황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말도 안되는 상황이 비춰졌다.
“한스!"
“죄송합니다 가르시아님,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올걸 그랬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