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단지 쥬지육림을 꾸릴 뿐이다-8화 (8/151)

〈 8화 〉 8화 상단의 주인

* * *

서서히 열기가 식어,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을 체감케 하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한스는 소녀,

루시의 뒤를 따랐다, 본의는 아니지만, 뒤에서 따라가니 뭐랄까, 탁하니 터놓고 말 할 수 없는 음란한 마음이 샘 솟았다,

옷가지로는 도저히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그녀의 폭력적이라고 할만큼 큰 가슴,

그리고 코르셋을 장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으로 잘록한 허리, 마지막으로 바지의 내구성을 한계까지 시험하려는 마냥,

압도적으로, 그 형태를, 존재를 과시 중인 그녀의 커다란 둔부에, 남자이자,

인간이라는 종의 수컷인 한스는 점점 강해지는 본능을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의 강인한 의지를 한참 전부터 발휘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스.”

“네, 아가씨.”

순풍을 받아 나아가던 배처럼, 잘만 걸어가던 그녀가, 무슨 이유에선지 돌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묵묵히 따라오고 있던 한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루시의 시선이 갑자기 자신에게 향하자, 한스는 본능을 억누르고,

제어하지 못한 탓에, 참타 못한 그녀가 질타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좌불안석인 심정이 됐다.

“우리 둘이서 있을 때는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얼마 전에 말했었는데, 잊어버렸나요?”

잊어버렸냐는 루시의 물음에, 한스는 습기를 머금은 강한 돌풍이 한 순간 자신에게 불어 닥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몸에 달라붙어 있던 뭔가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 들자, 불과 며칠 전에 그녀와 나눴던 호칭에 관한 대화 내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루시님.”

“존칭은 생략해도 돼요.”

“알겠습니다, 루시.”

“생략하는 것을 허락한다구요!”

“그 마음씀씀이는 정말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곤란해지는 것은 접니다.”

의, 식, 주가 결여 돼, 언제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자신을 거두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지금의 상단주였다,

경외심을 갖는 것은 물론이요,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가장인 그에 대한 마음가짐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그의 가족이라고 다를까, 아니 청년 한스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닥친 상황은 정말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뭣 때문에 곤란해진다는 건가요, 혹시 다른 여자라도 있나요?”

“하, 루시님, 고아에 출신도 알 수 없는 남자를 좋아하는 별난 여자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답변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명인 마냥, 루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그와 반대로 한스는 루시의 물음이 지난 날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상기 시키는 촉발제가 된 것인지 착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헌데, 주인님께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실텐데,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시님.”

루시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 후, 다시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한스는 울적하다는 것이었다.

드넓은 상단 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다른 건물과는 달리 절제된 미학을 추구한 건물의 내부에 들어선 두 사람은,

곧 윗층으로 올라가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한 루시는 손등으로 문짝을 2회 두들겼다.

“누구지?”

“저예요 아버지.”

“들어오거라.”

곧, 투박한 문짝에서 갖은 쇳소리가 나고, 그 후 경첩에 연결된 두터운 문이 열렸다,

그러자 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한, 촛불 몇 개를 제외하면 광원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풍경이 펼쳐진 방의 중앙에 한 남자가 서류 작업에 열심히인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비춰졌다,

둘은 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향했다, 어두운 실내에 적응이 덜 된 루시와 한스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옮겼다.

“찾으셨습니까, 주인님.”

“이번 납품에 관해서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네.”

사내는 자신도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듯이 한스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자신의 딸, 루시를 보고는 두통이 이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시아, 나가서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쉬거라.”

“저도 이 상단의 중역인데, 알아둬서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또 시작 됐군.’

평상시에는 나이 대에 맞지 않는 배려심과 사려로, 자신이 상단을 운영해 나감에 있어,

크나 큰 도움을 주는 큰 딸이지만, 지금과 같이 한스가 관련된 일이라면 매서운 감으로 죽기 살기로 물고 늘어지니 아버지로써,

상단주로써 사내는 지극히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늘, 일찍 입하 되는 물건도 있고, 보급을 하러 오는 행상도 있는데, 네가 나가서 감독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그 사람들도 곤란해 하지 않겠느냐.”

“저나 한스가 없어도 우리 상단의 사람들이라면 잘 해낼거라구요, 걱정 마세요.”

“크흠.”

아무래도, 맨 입으로 딸이 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라는 것은 도무지 어려운 사항이라고 사내는 판단했다,

추후에 어떻게 될 지는 인간인 자신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훗날에 있을 일을 걱정하기 보다는 당면에 닥친 현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한 사내는 결심을 굳혔다.

“후우, 좋다, 뭔가 필요한 게로구나, 지금부터 한스와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네가 약간의 보상으로 자리를 비켜 준다면 필시 싸게 먹히는 것이지.”

“뭐라도 상관 없나요?”

“그래, 뭐라도 상관 없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면 말이다, 그러니 원하는 바를 말해보거라.”

“상관 없다고 하신다면…”

루시는 검지를 자신의 아랫턱에 갖다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내였지만,

어째서인지 크나 큰 잘못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의 불안한 예감이 정확히 적중 했는지,

곧 장녀인 루시의 매력적인 새빨간 입술이 열렸다.

“다음번에 제가 원하는 때에 말해도 상관 없겠죠?”

배시시 웃는 딸의 모습을 보며, 사내는 차마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딸 아이에게 가혹했던 지난 날을 떠올리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버지, 사랑해요.”

사내는 루시에게 힘 없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자리를 비켜 달라는 손짓을 하여 그녀를 내보냈다,

장녀가 방 안에서 모습을 감추자, 상단주는 한 차례 홍역을 치룬 것 같이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주인님께서 거둬주지 않았다면 의미 없는 몸이니, 이정도야 얼마든지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그리 마음 쓰지 말아주십쇼.”

사내는 자신의 눈 앞에 서있는 건장한 체격과 훤칠한 키의 소유자인 청년이, 15년 동안 상단을 위해 헌신한 것, 자신의 자식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혹독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그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만약 한스가 고아가 아니었다면 이런 대단한 인재를 과연 상단에 영입 할 수가 있었을까 하고 사내는 골똘히 생각했다.

‘불가능하겠지.’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디를 가도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과 고아 투성이라지만,

그 안에서 한스와 같은 인재를 찾아내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만큼 귀중한 인재이기에좋은 환경을 제공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상단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기에, 그 생각은 꿈 속의 꿈일 뿐이었다.

“주인님?”

사내가 잠시동안의 상념에서 빠져나오자, 한스가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도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이보게 한스, 자네가 이 상단, 내 밑에서 일 한지 15년이 됐지 않은가.”

“이제 몇 개월이 지나면 16년이 됩니다, 주인님.”

“음,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구만, 오늘까지 나를 도와서 일 하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네.”

사내가 말을 내뱉은 그 순간, 한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말의 폭포가 쏟아져내렸다.

“저는, 주인님께서, 그 날 거둬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살아는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는 놈입니다,

그런 말씀 않으셔도, 이 상단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이 곳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십쇼.”

“응?”

‘아차.’

한 박자 늦게, 자신의 발언이 무엇을 불러왔는지를 파악한 사내는, 손사래를 치며 오해를 극력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아닐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냐.”

“정말입니까?”

“아무렴,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우리 상단의 중역을 쳐내고 잘 굴러 가기를 바랄 정도로 내가 멍청한 것은 아니니 안심하게, 그리고 자네를 부른 것은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한 포상을 주고 싶어서라네.”

“포상이라니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하시는겁니까, 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크나 큰 포상입니다.”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하고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욕심이 없고 바보 같을 정도로 욕심이 없을 줄이야,

이 청년과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지금부터라도 지식을 습득 시켜두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내는 포상과 더불어 몇 가지를 준비 해두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건 자네의 생각일 뿐이고, 상단 주인인 내 기준대로라면,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일세, 고로 포상은 포상이라는 말일세.”

“알겠습니다.”

“받아 들여줘서 다행이네, 허허헛, 혹시나 못 받아 들인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참이었지, 하하하하핫!”

“그, 그렇습니가 하하…”

“그리고 이 이야기 말고 하나 더 자네에게 지시, 아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네.”

지금까지 보다 한층 더 진지한 사내를 보고 한스는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저는 언제라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음, 그런가, 그럼 이제부터 나를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해도 괜찮겠구만.”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을…,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미천한 제가 어찌 주인님의 존함을 가벼이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상단의 중책을 맡고 있는 자가 언제까지나 다른 자들과 차이가 없어서는 모범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했네만, 혹여 다른 이유라도 있는겐가?”

특별한 이유도, 명분도 없었던 한스는 폐에서 대답을 짜내는 듯한 괴로움을 피력하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좋네, 앞으로도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만 해주게.”

한스가 사내의 말에 알겠다고, 잔뜩 힘을 준 목소리로 대답 했다, 상단주는 다시금 자신이 꾸려나가고 있는 이 조그만 상단에서 지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 아니 마리우스님, 그 두가지를 알리기 위해서 저를 부른건지요?”

“그럴리가 있겠나, 상단에서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다망한 자네를 일부러 이 자리에 불러 시간을 허비시킬 정도로 우리들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니까 말야.”

한스에게 마리우스라고 불린 사내는, 각종 품목이 기재된 서류 위에 편지 한장을 얹어 한스에게 밀었다, 그에게서 받은 서류에 눈길을 비춘 한스가 말했다.

“추가 발주입니까, 주…, 아니 마리우스님.”

“자네 말대로 라네, 어떻게 생각하나?”

한스는 혹여, 자신이 놓친 문장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편지와 발주서를 살펴봤다,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의 껄끄러운 느낌은 곧 확증이 됐다.

“마리우스님과 제가 일전에 염려 했던 부분이 아무래도 진짜였나 봅니다.”

“그런가, 설마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안 그래도 산적 토벌을 온다는 놈들 때문에 신경 쓸 것이 한, 두개가 아닌 이런 때에 저질러 주다니, 아니 이런 때라서 오히려 다행이겠군.”

“주인님 말씀대로 지금이라서 다행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마리우스는 마른 목을 적시기 위해, 책상 위에 놓인 잔에 담겨있던, 다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킨 후, 입맛을 다셨다.

“그래, 놈들과 예전에 맺은 불합리한 계약의 뒷처리, 그리고 어쩌면 놈들을 먹어 치워 우리들의 세를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물론 이 놈들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일 정도로 멍청하다면, 이라는 가정이 적중한다면 말이야.”

“또 하나, 제가 예상하기로는 놈들의 끈을 이용해서 먼 곳으로 진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멍청한 것을 보니 이제는 추측이 아니라 거의 확정에 가깝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말일세…”

“물론입니다, 마리우스님,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천천히 진행하겠습니다.”

하나를 말하면 둘을 깨닫는, 아들과 같은 청년, 한스를 보고 마리우스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곧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내며 말했다.

“자네가 하는 일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겠네.”

“맡겨만 주십쇼.”

“하지만 여차하는 사태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나는 나대로 이 지방을 수탈하기 위해서 열심히 진군 중인 놈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지, 수고하게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마리우스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스는 방을 빠져나갔다, 마리우스는, 그대로 바뻐지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존을 부르고,

서류를 확인했다, 한편 밖으로 나온 한스는 지금이야말로, 그 동안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머릿속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작업을 하며, 이쪽의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도 예측과 대응도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차에 물품을 한창 상차 중인 곳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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