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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원상 복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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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는 것이 무의미 할 정도로 많이 걸려있는 유화들, 의미 없이 장식된 금장, 북부의 기후를 전혀 고려치 않은 크나큰 유리창,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공예품들로 가득 찬 대리석의 복도를 한 남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이냐!”
모든 것은 목적지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성질 급하게 출발한 자신의 탓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답한 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 하나 대답해 줄리가 없는 혼잣말을 하고 계속해서 달려나가던 남자는 돌연 묘한 기척을 감지하였다,
그는 대충 오른손에 들고 다니던 검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도록 고쳐 잡고는 벽에 등을 딱 붙이고 조심스럽게 잰 걸음으로 이동하였다.
“아!”
모퉁이를 벗어나자 마자 검을 휘두르려고 했던 사내는 벽 건너에서 기척을 내던 주인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검을 든 손을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였었군, 중위.”
“그러게요, 적병이 아니라 안타까우신 것 같네요 대장님?”
“미안하네, 고의가….”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아군의, 그것도 부대장의 손에 비명횡사 한 불운한 장교로써 기록 될 뻔한 절호의 기회였었지만요.”
“으음…”
“맛있는 음식과 술로 가득 찬 연회면 되겠네요.”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자신의 부하인 중위의 의도를 깨달은 사내는 그녀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답을 하였다.
“이제, 제가 이 왕성을 하염없이 헤매고 있는 당신을 찾아온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요.”
“그 분을 찾은건가?”
“물론이죠.”
“그럼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주게, 안달나게 하지 말고 말야.”
중위는 품에서 왕성의 대략적인 지도를 꺼내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내에게 설명했다, 그녀가 말을 시작하기 전,
중위의 안색을 흘끗 살펴본 남자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한 탓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번 전투가 일단락 되면 부대원들에게 제대로 된 휴가를 주어 지친 몸과 마음에 활기를 불어넣게 해줘야겠다고 다짐하며 사내는 목표의 위치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수고했네 중위, 연회 때 무얼 먹고 마실지 생각하며 쉬도록 하게.”
“제 걱정보다는, 임무에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네요.”
남자는 부드럽게 웃고는 힘 없이 서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목표가 있을 장소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선발대로써 적병 제압 임무를 수행 중이던 휘하 병사들과 합류하여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예상보다 적병의 숫자가 적은 것 같군.”
“슬슬 막바지니 병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너무나도 잘 풀려가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며,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자 이미 숨이 끊어진 적국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한발 늦은 모양입니다.”
“대장님, 우리 공적이 줄어들게 생겼습니다.”
“그래, 서둘러야겠어.”
시체들에 남은 상처가 유난히도 낯이 익은 남자는 더욱 강해지는 불안감과 더불어 심장고동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 분인가?’
“이런 썅, 문이 잠겼습니다!”
“내부 상황 확인을 서둘러라!”
사내의 부하가 열쇠 구멍을 통해서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자 움직이는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귀를 기울여 어떤 소리라도 감지하면 보고하라고 닥달했으나, 돌아온 것은 적막 뿐이라는 보고였다.
“크으, 빨리 문을 열어라!”
첫번째로 이 성에 돌입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너무 수월하게 진행 된 탓일까,
수 많은 생각들이 끓는 물 위에 피어나는 거품과도 같이 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였고, 오만가지 감정이 섞여서 진흙탕을 이루었다.
“열렸습니다 대장님!”
“다섯명은 나를 따라와라, 나머지는 경계!”
“알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의중을 파악한 장교에게 지휘권을 이양하고 건장한 병사 몇이 달려들어도 버거워 할 정도로 육중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 사내에게 으레 봐왔던 광경이지만 이 곳에서 만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마지 바랬던 상황이 눈에 비춰졌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냐?”
“씨발, 낸들 알겠냐?”
곳곳에 널부러진 시체, 그리고 또 시체, 어디 성한 곳 하나 없는 시체들,
적국의 왕성이기는 하지만 시신과는 한 없이 머나먼 장소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자 전투의 베테랑인 사내의 부하들도 충격을 금하지 못하고 입만 벌린채 눈동자만 움직일 뿐이었다,
곧 남자는 특정 계급의 누군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화려한 장식의 의자 옆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하고는 쏜 살과도 같이 달렸다.
“공주님!”
백옥 같던 피부는 계속 된 출혈 때문인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시신들처럼 말이다,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흉부가 미세하게나마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반신을 안아 일으키자 여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될까 싶어서 그 때 모셔올까 했었는데…”
“아아…”
전신에 무수히 새겨진 창상, 그리고 치명적인…, 곧 여인의 두 눈이 열리고 아직 힘을 잃지 않은 강한 눈빛이 사내에게 향했다.
“하아, 큭…, 한스, 그렇게 바랬건만 이제서야 그대가 와줬군, 그렇다는 것은…”
“말을 아껴주십시오, 치료를 끝내고 회포를 풀어도 늦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위생병!”
한스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던 공주는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미소를 짓고,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한스, 그대는, 그대는 옛날 그대로야, 나는…, 그대, 그대들에게 공주라고 불리기 어렵게 됐거늘… 큭!”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신께서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공주님입니다, 저를 포함한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자들도 같은 생각이니, 부디 그런 말씀은 삼가해주십시오.”
“지,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서둘러라!”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위생병은,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피시술자인 공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들의 얼굴을 아로새기려는 듯이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선왕께서도 공주님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그래…, 아바마마께서…, 한스 그 아이는 어디 있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 못한 한스가 미처 되묻기도 전에 구석에 있던 가구 근처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놔, 놓으라고!, 더러운 침략자 주제에 누구한테 손을 대는거야!”
“대장님, 여기 거수자가 있습니다.”
보나마나 왕궁에 근무하는 자,
혹은 다른 왕족임에 틀림 없다고 단정 짓고 고개를 돌린 한스의 머리에 번개가 떨어진 것과 맞먹을 정도의 충격이 발생하고,
눈 앞이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옛날, 장교 임관식을 위하여 왕궁에 방문 했을 때의 그 모습 그 대로 이 자리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님!”
완강히 저항함에도 불구하고 건장한 병사 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던소녀는,
쓰러진 공주의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자신을 옭아매던 손길을 뿌리치고 한스의 팔에 기대어 있는 그녀의 곁으로 달려왔다.
“한스, 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대에게 부탁… 컥, 이 아이를 왕국…”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십쇼, 지금은 단지 공주님 자신의 몸에만 신경쓰십쇼!”
공주의 상태가 좀처럼 호전 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스는 위생병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회복술 도구를 한계 직전까지 사용하는 부하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래 한스, 그대 말대로 해서 틀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
점점 빛을 잃고 탁해져가는 그녀의 눈빛을 본 소녀가 목청껏 부르짖었다.
“어, 어머님, 어머님!”
“딸아, 이제부터는 이 어미 대신에 그가…, 크헉!”
“저는 어머님만 계시면 어디에 간다 해도 상관 없어요, 그러니 어머님 제발 힘을 내세요!”
“나는…, 조금 피곤하구나, 잠깐 눈 좀… 붙이고, 그 다음에… 하자꾸나.”
한스는 다급한 눈으로 위생병을 바라보았다,
다른 방법은 있을런지, 한 줌의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며 바라보았지만,
그런 희망은,
이미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개씨발, 말도 안돼.”
“한스…”
목소리를 낼 기력조차 남지 않아 입만 뻐끔거렸지만,
그는 공주가 남은 기운을 짜내어 자신에게 전하고자 한 바를 간파하였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오래 전
무뚝뚝한 장교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즐거워 했던 때의 미소를 얼굴에 띄운 그녀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깊은 잠에 들었다.
“어머님, 거짓말이죠? 제발 정신차리세요, 제발, 아아아아!”
“대장님, 이 이상 머무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신이 가진 권한을 넘어서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을 다시금 상기한 한스는 전사한 그녀 만큼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분발중인 부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공주와 판박이인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컥!”
“이 쓰레기 놈들, 네 녀석들이 침략만 안 했어도 어머님은 지금도 살아 계셨을텐데!”
“대장님!”
자신의 복부에 꽂혀 있는 흔히 봐왔고, 익숙한 형태의 장검을 보고도 한스는 여전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영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 자신의 볼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는 상황을 인지하기가 무섭게 여자아이의 몸 또한 지면을 향해 허물어지는 것을 한스는 보았다,
지금 도대체 어떤 사태가 자신에게 벌어졌는지 머릿속에서 정리하려고 하던 그를 곧, 어둠이 부드럽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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