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 운명
* * *
세계선을 향해 걷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보고 싶었던 친구들, 부모님이 이 너머에서 한성진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곳에서 신아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김성현, 아레아. 그리고 친구가 된 한서아, 유지아, 토우코, 레이나. 임유모와 차기사님까지.
어느 쪽이든 내게는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었으나, 내게 가장 사랑한 사람은 한 명이었다.
비록 그 사랑이 정해진 운명대로 나를 죽인다 해도.
나는 마지막까지 성현이 곁에 있어야 했다.
지옥이라도 같이 떨어지자고 약속한 성현이는 자신의 한 말을 지키려 들것이다.
죽는 것은 당연히 두렵지만…. 성현이의 남은 삶이 절망과 후회로 가득하길 원하진 않았다.
내 몫까지 열심히 살아 행복한 삶을 살다가.
시간이 멈춰 기다리고 있는 나를 먼 훗날 찾아와. 그동안 행복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말 해줘야 했다.
세계선에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알 수 없는 힘이 내 몸을 붙잡아 멈춰 세웠다.
[돌아와라.]
[이곳을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가족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나는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무언가 나를 끌어당겼다.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닌, 눈알이 박혀있는 살덩어리.
그것을 확인한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이 세계선이 아니라. 심상 속을 기어오르던 혼돈임을 깨달았다.
세계선에서 보았던 익숙한 내 방이 사라지고.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거대한 미궁의 문이 보였다.
문의 틈 사이로 촉수를 뻗어 나를 붙잡고 있는 그것이 틈으로 나를 직시했다.
[혼돈]이 머릿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저항의 의지가 사라지며, 속수무책으로 촉수에 끌려갔다.
백진희의 함정대로 나는 [혼돈]에 잠식되는 걸까…?
그 순간, 푸른 섬광이 터져 나와 내 몸에 감싸던 촉수들을 터트려냈다.
촉수의 속박에서 벗어나자 [혼돈]이 사라졌다. 틈 사이로 더 많은 촉수가 빠져나와 다시 나를 붙잡으려 했지만. 촉수보다 많은 숫자의 푸른 선들이 그것들을 터트려냈다.
“이건…?”
푸른 마나 살인귀라는 악명에서 푸른 선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의 마법.
그제야 나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안녕, 파트너.”
밝은 웃음을 지으며 조민성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너…. 어떻게 여길…?
놀란 내가 그리 묻자. 조민성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여긴 네 심상이 만들어낸 곳이니까. 기억 안 나? 금제 속에서 왔었던 카페잖아.”
조민성의 말에 기시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직접 가본 적이 없어 애매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것이 선명하게 변했다.
고급스러운 유럽디자인의 카페. 넓은 크기와 수많은 테이블.
이곳은 금제 속에서 존재했던 카페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네 심상을 확인했을 때, 내 일부를 네 심상에 남겨뒀어.”
“이럴 때…?”
“네가 백진희에게 속아 다시 길을 잃을까. 걱정되었으니까.”
조민성은 푸른 선을 이용해 나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고는 푸른 선을 이용해 열려 있던 미궁의 문을 닫아버렸다.
“아린아.”
따스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는 조민성의 목소리에 낯부끄러워져,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나는 신아린이 아니야. 한성진이지….”
내 말에 조민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관점]이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야. 내 눈에는 네가 아린이로만 보여.”
조민성의 말에 뒷머리를 긁던 나는 갑자기 머리가 길어진 것이 느껴졌다. 조민성의 말처럼 정말로 한성진에서 신아린으로 돌아왔다.
“백진희가 말한 결말은 아마도 사실일 거야. 네 힘은 세계를 멸망시키고도 충분할 정도니까. 김성현에게 죽는다 해도 돌아갈 생각이야?”
조민성의 말에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그래도 꼭 성현이에게 전해줄 말이 있어.”
그 말에 조민성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널 믿은 게 처음으로 내가 후회하지 않은 일이야.”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조민성의 행동에 가슴 속에서 감정이 치솟았다.
“넌 정말 바보야….”
“알아, 미안해. 네게 솔직하지 못하고 도망쳐서.”
“…사과하지 마. 너는 내게 너무나도 과분했으니까.”
그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내가 무릎을 꿇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감정을 억누르자. 조민성은 미소 지으며, 내 볼을 꼬집고는 말했다.
“전에 공장에서 나와 있었던 일, 기억나?”
“당연히 기억하지…. 어떻게 잊겠어?”
그때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성은이를 내가 잡아먹을까 무서워. 스스로 사지를 절단해서 한 달 동안 혼수에 빠지기도 했으니까.
“너는 그때 마족의 본능을 이겨냈어. 마족이 아닌 사람으로 죽기를 택했지.”
소중한 사람을 상처 주기 싫었으니까.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행동했다.
“세계를 멸망시킬 네가 사라져야 이 모든 게 끝난다면. 너라면 그 큰 흐름을 바꿔낼 수 있을 거야.”
“어, 어떻게…?”
“원래 공략당해 히로인이 돼야 했을 소니아가 죽어도 흐름에 이상이 없던 것처럼. 네가 죽는 게 아니라 세계를 멸망시킬 힘만 없어진다면 흐름이 역행하여 세계가 회귀하는 일은 없을 거야.”
조민성의 말에 [생존 이해력]이 폭발적으로 발동되었다.
백진희가 말한 결말은 세계를 멸망시킬 내가 성현이의 손에 죽어 세계를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공장에서처럼 스스로 내 힘을 [파훼]한다면…?
세계를 멸망시킬 힘이 사라졌으니 큰 흐름에 영향이 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멸망하지 않고 멀쩡할 것이고, 나도 죽지 않고 평범하게 성현이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조민성은 여기까지 예상한 걸까?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면서. 마지막까지 내게 도움을 주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민성이에게 미안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관계였으니까.
“고마워 민성아…. 정말로, 너한테 너무나도 많은 걸 빚졌어.”
“괜찮아. 아쉬운 쪽이 손해 보는 거지.”
툭툭 내 머리를 두드리며, 그리 말하는 민성이에게 나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네가 구한 세상을 구할게. 그리고 어떻게서든 너를 되살릴 거야.”
내 말에 민성이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 대답했다.
“죽은 사람은 잊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야지. 네가 성현이에게 해줄 말이 그거 아니었어?”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내가 성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민성이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나도 너랑 마찬가지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 그래도 난 너처럼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민성이는 내 뒤로 돌아가, 내 어깨를 밀어줬다.
“방법을 알았으니, 얼른 돌아가. 남자친구가 기다리겠다.”
마지막까지 따스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민성이를 뒤돌아볼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밖으로 나가려 카페의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외쳤다.
“어떻게서든 빚 갚을 거야. 약속해!”
그리 말하며,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크윽!”
신음을 흘리며 알펜시아가 양다리를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혼돈의 가면을 쓴 신아린을 상대하려 칠격과 함께 협공했지만, 파툴가의 마법 장갑조차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서든 틈을 만들어내야 해!”
마왕처럼 무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결국 세상을 구하려면 주먹이 아닌 자지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툴가의 마법 장갑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지를 박을 틈을 만들어낸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방출되는 마기 때문에 접근도 힘들었는데. 심지어 공격 자체를 [파훼] 시켜버렸다.
“내가 동귀어진해서 틈을 만들게.”
곁으로 다가온 신한림이 결연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신아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그 방법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것이 통한다는 보장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미 페리스와 우시오는 목숨을 잃었다. 신아린은 오오누마의 결계 자체를 파훼하며 그대로 둘의 목을 베어냈다.
입술을 깨물고, 투기를 끌어 올렸다. 아린이를 공략한 다음 마왕처럼 심장에서 마석을 뽑아내는 게…. 정말 이 소설의 결말이었을까.
마음 한편으로는 이것도 백진희의 거짓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간다!”
기회를 엿보던 신한림이 일리아의 공격을 받아 등을 보인 신아린에게 달려들었다.
패도를 가득 담은 검이 검은빛을 뿜어내며, 신아린에게 쇄도했지만.
순식간에 몸을 비튼 신아린이 공격을 [파훼]하고는 신한림을 베어가려다 갑작스레 몸을 멈췄다.
마비 독이라도 걸린 것처럼 잠시 멈춰선 모습에 황급히 재차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마기에 몸이 공중으로 튕겨 나갔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아린에게 접근했지만, 마기가 폭풍처럼 터져 나오며 더 이상의 접근 할 수가 없었다.
유일한 기회를 놓친 것에 절망하는 내 귀로.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아….”
신한림을 공격하던 모습 그대로 굳어진 채. 멈춰선 신아린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아린이…?”
방금 날 부른 건 백진희가 아니라 분명 아린이었다. 설마 아직 그 몸 안에 사라지지 않고 아린이가 남아있는 걸까?
“가…면을…벗겨….”
힘겹게 짜낸 작은 목소리가 내게 닿았다. 자기 얼굴에 있는 가면을 벗겨달라고 말한 것 같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멈춰 있던 아린이의 몸이 움직였다. 마기가 터져 나오며, 공간이 우그러졌다.
“가면을 벗겨야 해! 도와줘!!!”
내 외침에 날아갔던 신한림이 모든 힘을 쏟아내며 일격을 가했다.
“멸악일섬(??一?)!”
우그러진 공간 자체를 베어내며, 마기를 뚫고 신아린의 몸을 베어냈다.
접근을 막던 마기의 폭풍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나는 아린이에게 달려갔다.
백진희의 함정이 아니다. 나를 부른 건 분명히 아린이었다.
가면을 벗겨달라는 말을 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하며, 나는 마기를 뚫어내고 가까스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가면과 얼굴의 경계가 없었다. 마치 가면이 살이라도 된 것처럼 동화되어 벗긴다는 행위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가면 자체를 뜯어내 버리자는 생각에 가면에 손을 갖다 대자. 순식간에 [혼돈]이 손끝을 잠식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격통. 몸의 통증이 아니라 영혼 자체가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투기를 쏟아내며 양팔을 가면 안에 쑤셔 넣었다.
팔이 검게 썩어들어가며, 가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손끝에 붙잡힌 무언가를 나는 억지로 끄집어 당겼다.
“끄아아아아악!!!”
팔뚝까지 [혼돈]에 잠식되어, 당장에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무언가 손끝에서 뜯겨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힘을 주자. 갑자기 신아린이 검을 든 손을 움직였다.
가면에 양팔을 박고 있어 내게 다가오는 검을 막을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자.
캉!
어느새 나타난 일리아가 단검으로 신아린의 검을 막으며 소리쳤다.
“빨리해 씹새꺄!!!”
일리아의 외침에 눈을 뜬 나는 가면을 잡아 뜯으며, 소리쳤다.
“정신차려 신아린!!!”
우드드드드득!
가면이 뜯기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해서 힘을 주고 있을 때. 신아린이 비어있는 손으로 검을 막고 있던 일리아를 집어 던지고는 내 목을 붙잡았다.
“반드시 복수.”
아주 짙은 원망이 담긴 목소리가 가면 너머로 들려왔다.
우드드드드득!!!
또다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검을 든 손이 움직였다.
더는 검을 막아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정말 죽겠구나 생각했는데.
검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었다.
내 목을 붙잡고 있던 팔을 스스로 잘라낸 다음, 그대로 검을 자기 심장 안에 쑤셔 넣었다.
마기가 터져 나오며, 검게 물든 팔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양팔을 잃고 뒤로 쓰러진 내 눈에 가면 속으로 마력과 마기들이 모이는 것이 보였다.
잘려 나간 팔을 재생시킨 아린이는 심장에 박힌 검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소리가 사라졌다.
대기를 비틀어버리는 광풍이 내는 풍압에 주변의 나무들과 바닥의 먼지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님에도, 소리조차 [파훼] 되고 있었다.
가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피를 뿜어내며 벗어나려 촉수 같은 것을 밖으로 내밀다가 사라졌다.
검은 마기가 대기를 찢어발기듯이 솟구쳤다. 하늘을 가린 구름을 [파훼]하며, 태양이 가려지며 잠시 일식이 찾아왔다.
가면에 응축되어 강렬한 기운을 내뿜던 마기와 마력이 [파훼] 되며, 가면이 사라졌다.
심장에 박힌 검을 뽑음과 동시에 아린이의 몸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가슴에서 핏물을 쏟아내면서도, 백진희는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나를 떼어냈어도, 결말은 바뀌지 않아.”
그리 말하며 피를 토해낸 백진희는 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네게 복수를 했”
촤아악!
내게 무어라 저주를 퍼붓던 백진희의 머리가 아린이의 검에 목이 잘려 나가 피를 뿜어내며,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백진희를 죽인 아린이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나를 돌아봤다.
“아린이 맞지…?”
“맞아.”
고저도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대답에 기뻐 다가가려다. 내게 검을 내민 아린이의 행동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 내 안에 [혼돈]의 힘이 남아 있어. 이대로면 다시 내 심상에서 기어올라 나를 침식하려 들 거야.”
그 말에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정해진 소설의 결말대로 아린이는 내 손에 죽어야 하는 걸까.
인간은 신이 정한 운명을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결국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지금 내 안에 있는 엄청난 힘이 전부 [이해]되었어. 나는 세계의 모든 것을 [파훼]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리 말하며 아린이는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를 베어내자 잘려 나간 공간 속 칠흑 같은 어둠이 눈에 들어왔다.
“내 힘을 [파훼]하면 세상을 멸할 힘이 사라지는 것이니 영또플의 이야기는 끝날 거야.”
희망적인 말에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린이가 죽지 않고 내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상관없었다.
“백진희가 내 심상 안에 만들어 놓은 [미궁]에 갇힌 기어오르는 혼돈을 [파훼]할 거야. 그게 성공한다면 네 곁에 있을 수 있어….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이게 마지막이니까.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
나는 설명을 하는 틈을 타. 아린이에게 다가가 몸을 끌어안았다.
내게 무어라 말을 하려던 아린이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랐는지 말을 멈추고 잠시 말없이 안겨 있다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럴 시간 없단 말이야. 네게 남길 말이 얼마나 많은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린이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린이의 따스한 온기와 기분 좋은 냄새를 느끼며, 나는 아린이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였다.
“필요 없어. 넌 반드시 내 곁에 돌아올 거니까. 내 곁에서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게. 이제 너랑 내가 쓸 새로운 이야기니까.”
품속에서 아린이가 얼굴을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눈물을 흘려 윗입술의 경계가 빨갛게 변한 모습이 평소처럼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살짝 입맞춤했다.
“사랑해 아린아.”
“…나도 사랑해 성현아.”
그리 말하고는 나를 마지막으로 꼭 끌어안은 뒤, 내게서 벗어난 아린이는 칠흑 같은 어둠의 앞에 섰다.
“…그럼 나 돌아올 동안 우리 아이 이름이나 생각하고 있어. 숙제야.”
살짝 고개를 돌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한 아린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잘 다녀와 아린아.”
아린이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나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신한림을 들쳐 업었다.
배경과 동화되어 숨어 있던 일리아도 나타나. 잘려 나간 알펜시아의 팔과 함께 알펜시아를 업고서는 나를 따라왔다.
“아이 이름은…. 남자면 시우, 여자면 시아가 좋겠지?”
행복한 고민을 하며, 나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오오누마의 결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