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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52화 (152/160)

〈 152화 〉 멸악

* * *

백진희가 완전히 공략당하여 성현이를 배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백진희가 성현이에게 공략당하는 것이 원래의 목표긴 했지만…. 조금 전 내 목을 베었을 때. 나를 공격해놓고서는 내 목의 출혈을 잡아준 건 백진희였으니까.

자신을 공략하는 상황을 일부러 유도해낸 듯한 느낌이 들어. 나는 이것조차 계획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추궁한다 해도 백진희에게서 진실을 들을 수는 없었고, 성현이는 이미 백진희와 함께 나를 위해 마왕을 공략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현이는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주고 난 뒤. 비밀의 방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칠격과 하렘의 멤버들이 모여 넓은 방이 조금은 꽉 차게 느껴졌다.

다들 비밀의 방이 신기한지 이곳저곳 둘러보는 것이 백진희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좁힌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백진희와 함께 마왕성을 침입한다는 건가?”

신한림의 질문에 성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응. 백진희는 이제 믿을 수 있으니까. 마왕을 공략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칠격과 나 백진희 이렇게 마왕성을 향하고. 남은 사람들은 아린이와 함께 있어 줘. 혹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긴장하고.”

성현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서아는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고 나를 지켜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일단 휴식을 취하고 몸상태가 최상이 되면, 그때 스노 글로브를 이용할 거야.”

“알았어. 우린 아지트로 돌아가서 준비하지.”

그리 말한 신한림은 칠격을 이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성현이를 제외하고 여자들만 남자 묘한 분위기가 방안을 감돌았다.

백진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들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일이 끝나면 백진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 분위기를 깬 건 한서아였다. 갑작스러운 그 말에 성현이는 당황하며 백진희를 한번 보더니, 대답했다.

“마왕을 공략하는 걸 최대한 도와준다면…. 그동안 했었던 잘못들을 용서해줘도 되지 않을까?”

성현이의 말에 한서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백진희를 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우리한테 사과하는 게 어때? 너 때문에 힘들었던 게 한둘이 아니거든.”

사실 한서아는 백진희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왜인지 모르게 백진희는 한서아에게 큰 적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세뇌하여 같이 고문하며, 바늘로 엉덩이를 찌르는 등. 한서아에게 악감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과할게. 한서아는 빼고.”

그 말에 한서아와 백진희 사이의 분위기가 서늘하게 변했다.

한서아에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백진희가 이상하게 느껴져 나는 물어봤다.

“왜 한서아를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내 물음을 무시하려던 백진희는 자신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성현이가 바라보자.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한서아라는 캐릭터는 내 여동생을 모티브로 만든 거니까.”

“뭐…?”

그럼 한서아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동생과 같아서 인 걸까?”

“여동생이랑 사이가 안 좋았어?”

“내가 연재하는 게 야설이라는 것을 부모님에게 고자질해서 소설을 연중하게 만든 장본인이거든. 그래서 이렇게 소설에 빙의하게 된 이유기도 하고.”

“그,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한서아가 억울해하며 외치자, 백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 올렸다.

“맞아. 너랑은 상관없는데 똑같은 얼굴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솟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인걸?”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성현이가 중재하여 둘을 떼어놓았다.

“일단 모든 일이 끝나면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다들 아린이를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지키겠다는 결심이 담긴 시선을 내게 보내 조금 부끄러워졌다.

다음 날. 성현이와 칠격, 백진희는 비밀의 방에서 스노 글로브로 들어갔다.

모두에게 한 번씩 입맞춤을 해준 뒤. 마지막으로 내게 입맞춤을 하며, “갔다 올게.”라고 작게 속삭이는 성현이의 모습에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조심히 다녀와.”라고 대답했다.

빛이 사라지고, 성현이가 사라지자. 다들 시간을 때우려 챙겨온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보며 각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성현이를 따라가려다가 목적지가 마왕성임을 알고 내 품으로 도망친 아레아의 출렁거리는 몸을 만지작거리며, 성현이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

조민성이 넘겨준 신재호의 기억을 따라 우리는 마왕성에 침투했다.

몇십 년 전의 구조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이미 한 번 침입을 당한 성이 방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다행히 복잡하게 설계된 경비 마법을 백진희가 미리 발견하여 모조리 없애 들키지 않고 마왕성 내부로 잠입에 성공했다.

“마왕을 공략하는 동안 칠격은 마왕을 구하려는 마족을 막아서면 돼.”

백진희의 말에 신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마왕이 있는 옥좌로 가는 복도를 지키고 있는 마족을 한 명이 맡아야 해. 그건 신한림에게 맡기고 나머지는 옥좌로 향하자.”

내게 그리 말하는 백진희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째서? 그냥 다 같이 힘 합쳐 죽이고 마왕을 공략하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언제 아린이의 몸에 빙의할지 모르는데. 빠르게 공략하는 게 좋아. 그리고 신한림 혼자서도 충분히 마족을 상대할 수 있잖아…. 거기에 그 마족이라면 신한림은 혼자 싸우고 싶어 할걸?”

“무슨 말이지?”

대화를 듣고 있던 신한림이 궁금해하며 묻자. 백진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신한림의 떡밥을 풀려고 일부러 마왕의 간부 하나를 수문장으로 설정해놨거든.”

“어떤 마족인데? 네가 설정했으면 알 거 아니야.”

내 질문에 백진희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칭찬해달라는 듯이 답했다.

“마인 소니아의 주인이자. 신한림의 부모를 죽이고 고추와 얼굴을 뜯어낸 마족. 맞아 서큐버스 퀸인 라제스야.”

백진희의 말이 끝나자. 시간이 얼어붙은 듯.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너…. 방금 뭐라고….”

“원래 여기서 소니아가 자신의 옛 주인 라제스를 만나서 싸우다가 신한림의 도움을 받아 라제스를 처리하는 이야기였지만, 소니아는 죽었으니 그냥 신한림이 혼자 죽이면 될 것 같아!”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해맑은 목소리로 말하는 백진희에게 일리아가 이를 갈며 말했다.

“이 씨발년이…. 미쳤나.”

일리아의 말을 무시하며 나를 바라보는 백진희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일리아를 막아섰다.

“진정해. 우리는 지금 마왕성에 침입한 상태야.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그치만 저 시발년이 말하는 게….”

턱­

일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신한림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어냈다.

“진정해. 일이 끝나고 따져도 될 일이니까. 내가 라제스를 맡을 동안 너희들은 마왕을 맡아. 김성현이 마왕을 공략하는 동안 지켜내는 게 너희들 임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에서 벗어나면 안 돼.”

“…알았어.”

순식간에 상황을 통제해낸 신한림은 과연 리더다웠다. 내가 슬쩍 엄지를 치켜세우자. 신한림도 엄지를 세웠다.

“라제스와 싸우면 소란이 생길 거야. 최대한 빨리 공략해서 마왕성에서 벗어나자.”

“응, 대장. 게임 깔아놨으니까 끝나고 깨러 가자고.”

알펜시아의 대답에 신한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앞서 나갔다.

옥좌로 향하는 길. 백진희의 말처럼 소니아를 닮은 음란한 몸을 가진 여자가 검은색 하트모양의 꼬리를 흔들다. 신한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 어떻게 여길?”

그 말에 대답하듯, 신한림이 가면을 벗어 소니아의 얼굴을 보이자. 라제스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네 놈은…!”

“가라!”

라제스에게 몸을 던지며 신한림이 소리쳤다. 거대한 문을 밀고 들어가자.

거대한 크기의 옥자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여인은 옥좌의 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에 축복이라도 받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린이와 같이 흑요석을 박아놓은 듯한 빛나는 검은 눈. 아름다움이란 것을 쏟아 넣은 듯한 신이 빚은 예술품 같은 외모.

아린이와 닮았으면서도 상상처럼 더욱 성숙한 몸매와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남자를 유혹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범접할 수 없는 왕의 존재감을 선연히 내뿜으며, 느긋한 모습으로 옥좌에서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침입자구나…? 백마녀, 네가 나를 배신한 건가…?”

목소리에 담긴 마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집중해 김성현.”

백진희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투기를 끌어모았다.

내 이상형에 가까운 건 아린이였지만, 그보다 더욱 성숙한 매력을 뿜어내는 아린이의 어머니는 이상형 그 자체였다.

가슴이 성욕으로 쿵쿵 뛰었다. 세상을 구하고 장모님을 따먹는다…!

***

소니아의 권능은 라제스에게서 얻은 것이었기에, 신한림과 라세스의 공방은 방어를 도외시하며 서로의 향해 공격을 퍼붓는 상황이었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가한 공격을 반사하며, 재생을 반복했지만, 권능의 원주인은 이겨낼 수 없는지. 점점 신한림의 상처가 늘어났다.

“겨우 내 종복에게 얻은 능력으로 나를 이겨내려 한 거야?”

“닥쳐라.”

신한림의 검에 패도의 기운이 치솟았다.

팔을 들어 검을 막은 라제스때문에 신한림의 팔도 잘려 나갔다.

떨어진 팔을 붙잡아 다시 붙인 뒤, 신한림은 라제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라제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신한림은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마족이 라제스임을 확신했다.

부모님을 자신의 앞에서 억지로 관계를 맺게 시키고는 그대로 부모님의 머리를 터트려 죽이고는.

자기 성기를 손으로 뜯어내고 얼굴이 귀엽다며 보관한다고 얼굴 가죽을 뜯어낸 그 괴물의 모습과 똑같았으니까.

단순히 마인이라고만 생각하여 닥치는 데로 마인들을 잡아 죽였는데. 마인이 아니라 마족이었다니….

마족은 분명 인간계에 나타나지 못했을 텐데…?

그 의문에 신한림은 라제스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나를 기억하나?”

목을 쳐내며 그렇게 말하자, 채찍으로 팔을 뜯어낸 라제스가 몸을 재생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을 내가 어떻게 기억하겠어?”

“19년 전에. 내 부모님을 죽이고 얼굴 가죽을 뜯어간 게 기억이 안 나나?”

그 말에 라제스가 공격을 멈추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너 그때 걔구나!”

라제스의 반응에 자신이 찾던 괴물이 맞다는 것을 깨달은 신한림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머, 이렇게 늠름하게 성장할 줄은 전혀 몰랐네~?”

“어떻게 마족이 인간계에 넘어온 거지?”

“응? 내가? 무슨 소리야 난 인간계에 넘어간 적 없는데?”

라제스의 말에 모순을 느낀 신한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럼 그때 부모님을 죽인 건 어떻게­”

“그거 너잖아??”

“뭐…?”

“내가 마인을 통해 네 꿈속에서 너를 조종하긴 했지만, 부모님을 죽인 것도 스스로 얼굴 가죽을 뜯어낸 것도 전부 네가 한 행동이잖아?”

라제스의 말에 신한림이 표정이 굳어졌다.

“기억 안 나? 매일 밤 엄마를 생각하며 자위하다가 네 꿈에 나타난 나를 보고 엄마라고 착각해 욕정을 뱉어내던 게?”

“엄마를 여자로 사랑하고 아빠에게 질투를 느끼다. 결국 둘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질투 나서 죽였잖아? 물론 내가 부모님을 죽이게 조종한 거긴 하지만 너도 마음 한편으로 원했던 거잖아?”

“그리고는 자기 얼굴이 증오하던 아빠의 얼굴과 닮았다는 것에 미쳐서 얼굴 가죽을 뜯어내고, 엄마에게 욕정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자지를 손으로 뜯어냈던 것도…. 전부 네가 한 거잖아?”

“난 그냥 네 음습한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준 것 뿐….”

즐거운 듯이 말하던 라제스에게 패도적인 일섬(一?)이 가해져 목이 떨어졌다.

“하아, 말하는데 목을 자르는 게 어딨어!”

“그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너는 그곳에 실존해 있었어. 어떻게 그런 거지?”

라제스는 거짓을 말했다. 목소리에 담긴 마력으로 신한림에게 헛된 망상을 집어넣으려 했었지만, 마의 유혹은 신한림에게 통하지 않았다.

신한림의 질문에 라제스는 대답할 필요는 없었지만, 상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도발하기 위해 대답했다.

“그냥 내 특수한 능력이야. 마인의 몸에 잠시 빙의해 짧은 시간 동안 현신하는 능력.”

“그렇군…. 그럼 왜 우리 가족에게 그런 짓을 한 거지.”

그 말에 라제스가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웃는 소리가 들려서.”

“…뭐?”

“지나가는데 창문 밖으로 웃는 소리가 들려서 죽였어.”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라제스의 모습에 신한림의 몸에서 통제하지 못한 마력이 흘러나왔다.

“겨우… 그런 이유였나.”

“마족은 원래 변덕이 심하거든. 그리고 자유롭고 즉흥적이어야 모든 게 즐거운 법이야. 난 그 날밤 충분히 즐겼는데. 넌 아니었어?”

싱글거리며 웃는 라제스를 보며, 신한림은 온몸에 패도의 기운을 둘렀다.

“너를 멸(?)하겠다. 악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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