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아레아의 하루
* * *
아레아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온 것이 가장 컸고, 다시 만난 여주인은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에 감동하였는지. 만나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꼭 끌어안아 줬다.
심지어 휴대폰이랑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사라며 카드까지 빌려준 여주인의 씀씀이에 아레아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역시 마족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어!
신나서 최신형 휴대폰이랑 게임용으로 비싼 노트북. 침대에 누워서 감상할 용도로 제일 비싼 태블릿까지 샀다.
여주인이 비어있는 방을 살라고 내줘서, 거기다가 짐들을 풀어놓고.
감사 인사를 하려 여주인의 방문을 두드리자. 한참 뒤에야 조금 문을 열고 여주인이 잔뜩 상기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 아레아 왜에엣…?”
왜인지 모르게 물기 어린 목소리에 의아함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나 이거 샀어! 이쁘지! 여주인한테 고맙다고 말하려고!”
차성의 최신형 Z시리즈를 보여주며, 자랑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느껴져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어디서 맡은 냄새였더라…? 무언가 기분 좋은 냄새인데!?
“으, 응….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이잇…흐읏….”
“엥? 여주인 어디 아파? 약 사다 줄까!”
얼굴도 빨갛게 변하고, 눈도 조금 풀려 물기 어려 있는 게 감기라도 걸린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목숨값으로 평생 놀고 먹어야 하는데! 여주인이 아프면 안 돼!!!
“으응…? 아, 아니. 운동하고 있, 읏…. 저, 저녁은 먹었어?”
“아직 안 먹었어! 맛있는 거 먹을 거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여주인을 바라보자,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언가를 참는듯한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와 뜨거운 열기가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게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나 보다.
“왜 그래? 화장실 가고 싶어?”
“아, 으응…. 미, 미안. 나는 속이…. 흐읏, 흐… 속이 꽉…차, 차서 저녁은 괜찮아. 카드 준 걸로 혼자서 돈가스 사 먹고 피시방 가서 놀다…와아앗….”
“엣! 진짜! 피시방 가도 돼?”
입술을 깨물고 고개만 끄덕이는 여주인에게 아레아는 감동하여 양손을 깍지를 끼고 애교를 부렸다.
“역시 여주인은 달라! 주인은 맨날 용돈도 안 주고! 청소하라고 구박만 하고! 드럽게 맨날 발 만지던 손으로 코 파는 건 자기”
쿵!
무언가 문을 때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커진 눈으로 여주인을 바라봤다.
당황한 여주인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뜨거운 열기가 담긴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운, 운동기구가 갑자기 쓰러졌어…. 괜, 괜찮으니까 이제 돈가스 먹으러 얼, 얼른…. 가, 가봐….”
“알았어! 혹시 모르니까 포장해올까!”
“아, 아니야! 어, 어르은…. 가봐…흐, 흐읏… 제발….”
애원하는 듯한 여주인의 말에 아레아는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이 엄청 급한가 보네. 하긴 똥 마려운데 누가 붙잡고 있으면 그것만큼 화나는 것도 없지!
“그럼 갔다 올게!”
“응, 응…!! 재, 재밌게 놀다 와~”
그 말을 끝으로 황급히 문을 닫는 여주인의 모습에 급하긴 했나보다 생각하며, 택시를 타고 일본식 돈가스집을 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간만에 피시방에 갔다.
주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아이디 비밀번호는 외워두고 있었다. 다행히 가입한 피시방이었는지. 20시간의 충전 시간까지 있었다.
“배도 불렀겠다. 간만에 게임이나 할까!”
익숙하게 주인의 아이디로 게임에 접속하자. 곧장 알람 창이 하나 떴다.
[귀하의 계정 찹쌀뷰지토우코는(은) 욕설로 30일 정지되었습니다.]
[욕설 내용]
찹쌀뷰지토우코:***년아 빼라고
절대네토시킴:개***그걸 처 빼네 사람임?
찹쌀뷰지토우코:***아 그걸 들어가는 게 ***이지
절대네토시킴:응 맞딜했으면 2명 다 땄음
찹쌀뷰지토우코:***ㄴ
절대네토시킴:ㅋㅋ 할 말 없으니 바로 욕 박는 수준 ㅋㅋㅋ
찹쌀뷰지토우코:도구***는 왜 주제를 모름?
절대네토시킴:응 니보다는 잘알아~
찹쌀뷰지토우코:***야 전번까든가
절대네토시킴:역시~ MS답게 빠꾸없이 전번 까라하죠?
찹쌀뷰지토우코:***쫄려서 전번도 못까는 ***가 ㅋㅋㅋㅋ
절대네토시킴:응~느그 토우코 지금 내 책상 밑에서 내꺼 빨아주는 중~
찹쌀뷰지토우코:ㅋㅋ 찐따네 ㄹㅇ 실제로는 내 책상 밑에 있죠?
절대네토시킴:응~ 네토 시켰어~
찹쌀뷰지토우코:네 다음 전용 *집 하나 없는 찐따쉑 ㅋㅋㅋ
그것들을 보자니, 괜스레 아레아는 눈물이 났다.
돌아왔구나 주인…!
각성한 이후부터 어울리지 않게 스윗한 모습을 보여줘서 미친 거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보니 예전의 주인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매우 뿌듯했다.
“근데 토우코는 누구야. AV배우인가?”
콧구멍을 쑤시며 다른 계정으로 접속하니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접속이 되었다.
“물많은지아짱? 아이디를 왤캐 병신 같이 바꿔놨어.”
자신이 없는 동안 성욕이 자라난 걸까?
별생각 없이 간만의 게임을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아레아의 어깨를 톡톡 쳤다.
“저…. 다이아 원딜인데 같이 하실래요? 버스 태워줄게요.”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와 게임을 하던 아레아는 슬쩍 고개를 돌려 빠르게 외모를 평가한 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혼자 할래요.”
아레아의 차가운 목소리에 남자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얼마 못 가 로그아웃을 하고 도망치듯 피시방을 빠져나갔다.
“으딜 망둥이같이 생긴넘이~ 예쁜 건 알아가지고~”
재밌게 연패를 박고 3시간이 지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온 아레아는 다시 여주인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언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뚝 하고 끊기더니, 문이 조금 열리고 그 틈으로 여주인이 얼굴만 내밀었다.
땀에 푹 젖어 뺨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채, 거친 숨을 내쉬며 여주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흐응, 흥…아레아 왜에에에엣…하으….”
“만두 사 왔는데 같이 먹을랭?”
방금 산 만두가 든 봉투를 휙휙 휘두르자. 여주인은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갑자기 무언가 투두두둑 하는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 복도의 창문을 바라봤지만, 비가 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열린 문틈으로 아까 맡았던 냄새가 더욱더 강하게 흘러나왔다. 여주인의 땀냄새인가? 에어컨이라도 틀지. 달궈진 열기가 문틈 사이로 훅하고 새어 나왔다.
“흐으…괜, 괜찮으니까…. 방에서 푹…쉬어….”
“헤! 그럼 만두 먹고 좀 쉬다가 간만에 여주인이랑 같이 놀까!”
“그, 그래! 30분…하으, 하읏…아, 아니잇…. 한, 한 시간 뒤에 같이 놀자…아직 운, 운동중이거든….”
다이어트라도 하는 걸까. 땀으로 범벅되어 축 젖어 있는 여주인은 몸을 떠는 건지 문틀을 붙잡고 있는 손이 쉼 없이 떨려댔다.
“운동 너무 많이 하면 힘들어! 쉬엄쉬엄해!”
“응…그으읏…괜, 괜찮아…기분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여주인은 황급히 문을 닫았다. 같이 만두를 먹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운동중이었구나. 어쩔 수 없이 혼자 다 먹어야지!
신나하며 아레아는 만두가 담긴 봉지를 휭휭 휘두르며 방으로 돌아갔다.
***
오래간만에 밀렸던 커뮤니티 글들을 보며 시간을 때우던 아레아는 놀기로 약속한 시각이 흐르자. 여주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나오는 사람은 어째서인지 주인이었다.
“엥? 주인이 왜 여기서 나와?”
“어…? 잠, 잠깐 들렸어.”
머리도 푹 젖어있는 게 금방 샤워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라 아레아가 도끼눈을 뜨고 바라봤다.
“근데 왜 씻은 것 같은 모습이지!”
“아, 훈련 끝나고 바로 와서 그런가 보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당황한 모습에 장난기가 샘솟았다.
“흐음~? 그른가?”
“그래 인마. 넌 왜 아린이 방에 왔어?”
“당연히 같이 놀려고! 그리고 오래간만에 같이 잠도 자”
쾅!
열려있던 문을 거칠게 닫은 주인이 매서운 눈으로 내려보며 물었다.
“같이 잔다고?”
“어엉…? 여주인이 나 기분 좋다고 몇 번 껴안고 잤으니까?”
주인의 미간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보며 아레아는 눈을 굴렸다.
“이제부터 안돼 금지야.”
“엥! 왜 금지야! 여주인이 좋아하는 건데!”
“어딜 사내새끼가 여자 침대에 들어가려 해!”
“마령화하면 상관없잖아!”
“그래도 안 돼!”
갑자기 행패를 부리는 주인에 아레아는 자신을 막는 손길을 마령화로 피하고 여주인의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여주인!!! 주인이 나 괴롭혀!”
침대에 앉아 있던 여주인은 출렁거리며 달려든 몸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왜?”
“갑자기 같이 여주인이랑 자지 말래! 성격 왜 저래!”
그 말에 여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몽글거리는 몸을 마사지하듯 꾹꾹 눌렀다.
“안돼. 이제부터 같이 자지 마.”
“그런게 어딨어! 여주인이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여주인은 나랑 자고 싶지!?”
기대감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자. 여주인은 난처한 기색으로 볼을 긁었다.
“으음…. 성현이가 그렇게 말하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안 아레아.”
무언가 불알을 툭 치고 지나간 느낌이었다. 이런게 배신감일까. 자신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이리 순종적인 여주인이라니!!!
“들었지? 그러니까 곱게 나와라.”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주인은 품속에서 아레아를 끄집어내 방 밖으로 내던졌다.
“배신이야!!!”
큰 충격을 받은 아레아는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다신 주인이랑 얘기안해!’
침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했던 다짐은 다음 날 소갈비 사준다는 주인의 말에 무너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