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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46화 (146/160)

〈 146화 〉 복귀!

* * *

백진희의 충격적인 정체에 정신을 차릴 시간도 주지 않고 조민성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신아린은 소설의 독자였고 백진희는 작가였어.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백진희가 무수한 회귀를 반복할 때 갑자기 신아린이 소설에 빙의해버린 거야. 그래서 백진희는 여태까지 반복했던 것들을 모조리 없애고 갑작스레 나타난 변수를 이용하는 게 지금의 회차야.”

그렇다면 백진희는 어째서 내 행복을 원했던 걸까. 자기 소설에 빙의했으면서 어째서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내 행복을 바라는 걸까?

“백진희는 무언가 계획을 꾸미고 있어. 이 소설의 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임에도 어째서인지 끝을 보지 않고 계속해서 회귀하고 있어.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라서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설마 백진희는 [큰 흐름]에 저항하여 자신이 원하는 끝이 나올 때까지 회귀하는 것일까?

“잘 들어 김성현. 이제부터 네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알려줄 테니.”

조민성의 말에 성현이는 침을 삼키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아린이 공략당한 것으로 [큰 흐름]이 흘러가 백진희가 회귀할 방법은 주인공이 죽어 억지력으로 인해 [큰 흐름]을 지키려고 입학식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아카데미에서 자퇴하거나 퇴학당했을 때 입학식으로 회귀하는 이유도 그것 중에 하나였다.

내가 아카데미에서 벗어난다면 최후의 빌런이자 히로인이 사라져 결말에 영향이 갔으니까.

“김성현. 너는 칠격의 도움을 받아 죽지 않고 백진희를 공략해야 해. 백진희의 본심을 알아내는 것과 마왕성으로 가는 스노 글로브를 얻어내야 해.”

“마왕성…?”

“신아린의 엄마는 마왕이야. 하르마게돈은 백진희가 마족과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였고. 백진희는 언젠가 신아린에게 재앙의 그릇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 마석을 흡수하여 점점 강해진 신아린을 완벽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전쟁터인 하르마게돈을 계획한 거야. 신아린은 마족들과 싸워 마석을 흡수해 더욱 강해질 테고, 그 결과 단단해진 그릇에 마왕이 빙의하여 악신이 될 수 있겠지.”

조민성의 희생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인화를 사용해 마족들과 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잠식하려 하던 건 내 몸을 차지하려던 엄마였던 걸까…?

“나는 신재호의 머릿속을 뒤져 정보를 얻었어. 신재호는 예전 ‘용사’ 시절에 파티와 함께 마왕 성에 침투해 마왕을 여자로 만들어 약하게 만들어 강간한 뒤. 자신의 곁에 두었어.”

강간으로 낳은 자식이었다고…? 그것도 원래 남자였던 마왕에게서…? 조민성의 말대로 신재호는 진짜 미친 새끼였다.

“신아린을 낳은 마왕은 마석을 흡수하지 않고 버티다 결국 쇠약해져 죽게 돼버렸어. 의심이 많은 신재호는 죽음이 위장이 아닐까. 몸을 불태우고 가루를 모아 성수에 담가버렸지. 하지만 그 노력에도 마왕은 부활했고 마계에서 힘을 기르고 있어. 자식의 육체를 통해 이 세계를 지배하려 하겠지.”

입술을 짓씹고 있자, 성현이가 내 손을 붙잡아줬다.

“백진희를 공략하여 마왕성으로 가는 스노 글로브를 찾아. 칠격과 함께 마왕 성에 침투해 마왕이 신아린에게 빙의하기 전 마왕을 공략해야 해. 재앙인 마왕을 이길 수 있는 건 오직 어떤 여자든 공략할 수 있는 너밖에 없어.”

조민성의 추측에 나와 성현이는 설득되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여자를 공략하는 능력을 갖춘 이유가 그 어떤 영웅도 이기지 못하는 재앙을 오직 주인공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클리셰느낌이었으니까.

내가 아는 영또플의 작가라면 분명 이것을 계획하고 김성현의 능력을 만들어냈겠지.

이제야 왜 백진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또플의 마지막 히로인이자. 마지막 빌런이라는 설정.

나를 공략함으로써 세상을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

즉, 나는 성현이에게 공략당하는 히로인이자, 시간이 지나 마왕이 내 몸에 빙의하여 빌런이 되는 거겠지.

김성현은 그런 나를 다시 한번 공략하여 세상을 구하는 것일 테고.

그럼 왜 굳이 마왕 성에 침투해야 하는 걸까. 내게 빙의한 마왕을 성현이가 공략하면 되지 않을까? 혹시 내가 빙의하게 된다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돼서 그런 건 아닐까?

“신재호에게서 얻은 마왕성과 마왕에 관한 정보를 전해줄게.”

조민성이 자신이 밟고 있던 성현이의 손에 작은 손을 갖다 댔다. 푸른 마나가 연기처럼 일렁이더니 성현이의 손바닥으로 흡수되는 게 눈에 보였다.

정보의 전달이 끝났는지 성현이의 손바닥에서 손을 뗀 조민성의 모습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공장에 대해 알게 된 후. 나는 아린이를 의심했었어. 자신의 성장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닌가. 사람이길 포기하고 마인으로 살아가는 걸 택한 게 아닐까.”

그 말을 하는 조민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신재호가 공장을 가동하려 순현동을 테러할 때 네 동생을 구출하고 아린이를 테스트하기로 했어.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말이야. 그래서 강제로 ‘갈증’을 유발하고 네 동생과 한방에 가뒀어.”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조민성을 원망하고 성은이에게 식욕을 느끼는 것에 절망하던 그 날.

“만약 아린이가 네 동생을 죽이려 했다면 나는 아린이를 죽였을 거야. 하지만 아린이는 본능을 이겨냈고, 사람으로 죽는 것을 택했어. 그래서 난 아린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했어.”

조민성의 말에 성현이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기 동생을 위험에 빠트리는 조민성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겠지.

“아린이를 치유하려 했더니 갑자기 네가 사람들을 끌고 나타나서 놀랐어. 그래서 몸을 숨기고 관찰했지. 네가 절망에 빠져 자해하는 것도, 주변에 몸을 숨기고 돌아다니던 인큐버스가 희생하는 것까지 모두 지켜봤어.”

“아레아….”

그날 목숨을 잃은 아레아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성현이의 목소리는 가라앉아있었다.

“그래서 조금 믿음이 갔어. 너라면 아린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

“겨우 테스트 때문에 내 친구를 잃게 만든 거야…?”

허무한 목소리로 성현이는 마른세수를 했다. 화를 내야 할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조민성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신아린의 기억을 봤을 때. 정말로 네가 그 인큐버스가 죽었다고 생각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스러웠어. 내가 알기로는 정령과 마령은 계약자가 살아있으면 완전 소멸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거든. 그래서 스스로 심장을 찔러 마석을 꺼내려 할 때 나서지 않은 것도 시간이 흘러 계약자가 재소환하면 된다고 생각해서였는 데…. 넌 그 방법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 오오누마에게 술식을 알려줬어. 오오누마에게 말하면 재소환을 도와줄 거야.”

“아레아가…. 살 수 있다고?”

“내가 잘못한 거니 선물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조금 없어졌으면 좋겠네.”

성현이는 아레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져가는 조민성을 바라봤다.

“죽은 사람이 부탁 하나 할게. 아린이에게도 전해줘.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

그 말을 끝으로 조민성은 푸른 연기로 변해 사라져버렸다.

“아린아 나….”

“응. 얼른 가봐.”

아레아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말에 아까부터 다리를 떨며 초조해하던 성현이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어서 고개를 끄덕여주자. 성현이는 나를 한 번 꼭 안아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성현이가 나가고 침묵만이 남은 방 안에서 나는 조민성의 마지막 부탁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며,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럴게 민성아.”

마지막까지 자신을 생각해준 사람을 위해. 그 부탁을 꼭 들어줄 것이다.

***

“자, 여기 마법진을 그려놨으니. 손을 갖다 대고 마력을 방출하면 될 거다.”

오오누마의 말에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바닥의 마법진에 손을 갖다 댔다.

정말 아레아를 구할 수 있을까. 떨리는 가슴으로 마력을 방출했다.

밝은 빛이 흘러나와 잠시 눈을 감자. 무언가 뭉클거리는 것이 손에서 느껴졌다.

아주 익숙한 감각. 씻을 때마다 만지는 그것과 비슷한 촉감에 괜스레 눈물이 차올랐다.

감은 눈을 뜨자. 내 눈에 보이는 건 아주 익숙한 검은 먼지가 모인 듯한 슬라임이 꿀렁거리며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레아…?”

“...”

“아레아!!!”

“아잇! 누가 자는데 시끄럽게….”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불안해져 소리치자 그제야 눈을 뜨며 짜증을 내던 아레아는 동글동글해진 눈으로 나를 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주, 주인…?”

“그래, 아레아. 나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레아는 그제야 펑펑 눈물을 흘려댔다.

아레아의 반응에 괜히 코끝이 찡해져 코를 훔쳤다.

“짜식, 반갑­”

“아이고, 씨발!!! 결국 내가 지옥에 왔구나!”

나를 보더니, 땅바닥에 몸을 구르며 한탄하는 모습에 머리가 멍해졌다.

“뭐?”

“마족도 착한 일을 하면 천국 간다더니 개뻥이구나. 개씨발!”

갑작스럽게 욕을 내뱉으며 한탄하는 아레아에 순식간에 감동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출렁거리는 몸을 내려치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는 걸.

“내가 얼마나 잘못했다고 주인이랑 같은 지옥이야! 지옥은 등급제 같은 것도 없어!? 나는 그래도 저 사람 정도는 아니었다고!!!”

참자. 아린이를 위해 죽었다가 되살아난 동료인데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데스 나오라고 해! 염라 나오라고 해! 이게 말이 되냐고!!!”

“아가리 해라, 진짜니까.”

내 말에 아레아는 훌쩍거리며 물었다.

“주인은 그래서 왜 죽었어? 여주인한테 맞아 죽었어? 아니면 바람피우다가 칼이라도 맞았나?”

“내가 죽은 게 아니라 너 되살아 났다고. 계약자 살아있으면 계약 끝날 때까지 소멸 안 되는 거 알고 그런 거지?”

그 말에 훌쩍이며 몸을 출렁이던 아레아가 몸을 멈추고 눈을 굴리더니 연기와 함께 고스로리 트윈테일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진, 진짜야?”

놀라워하며 내게 묻는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다.

“아니, 진짜 몰랐어?”

“아잇, 진짜 몰랐어! 내가 그걸 어케알어!”

“네가 마령인데 왜 나한테 물어?”

“나도 계약은 아다였단 말이야!”

귀여운 척 허리에 양손을 얹고 입술을 삐죽이는 모습에 간만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아무튼, 살아 돌아온 거 축하해.”

그 말에 아레아는 장난을 멈추고는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더니 대뜸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얌마, 뭐­”

“나는 주인이랑 마지막인 줄로만 알았어….”

눈물을 흘리는 아레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나도 그랬어. 돌아와 줘서 고맙다 아레아.”

“흑, 흐윽…. 다음에는 더 재밌게 놀자고 약속한 건 기억하지?”

“그래, 안 잊었어.”

“나랑 놀아줘야 해!”

“닥친 일만 해결하면 마음껏 놀아줄게.”

“진, 진짜?! 주인 최고!!!”

다시 내 허리를 휘감으며 몸을 비비는 아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감동적인 해후를 나누었다.

*

분위기에 휩쓸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깨달았다. 아린이에게로 돌아가는 택시 안.

서로 감성에 젖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우리는 마지막에 키스했던 게 떠올라 무척이나 어색해졌다.

나는 여장남자 새끼와 키스했다는 것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고, 아레아는 왜인지 모르게 그 뒤로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좆같은 표정으로 “주, 주인님”이라고 말을 떨어대어 더욱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매우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택시를 타고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레아가 내 허벅지를 조심스레 톡톡­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 터치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삼켜내야했다.

“왜…?”

“오늘 밤에 주인님이랑 재밌는 놀이를 하나 싶어서….”

얼굴을 붉히며 그런 좆같은 말을 하는 아레아에게 나도 모르게 머리가 아파 붙잡고 있던 이마에서 손을 떼. 주먹으로 머리를 찍으려 했지만.

위해를 가해선 안 된다는 계약 때문인지 힘이 풀려 턱­ 하고 손이 내 계획과 다르게 아레아의 머리에 얹어졌다.

“에­ 에엣~?! 기사님이 있는데 벌써부터 스킨쉽을…?!”

개지랄하는 아레아덕에 더는 같은 공간의 공기를 마셨다가는 토할 것 같아.

결국 택시에서 내려 아린이의 집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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