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 마음
* * *
하늘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족들을 본 신재호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조민성을 바라봤다.
“이거 어쩌나. 하르마게돈을 막는다는 계획이 실패했군?”
“아직 실패를 논하긴 이르지.”
신재호의 도발적인 비꼼에 맞서듯 조민성도 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신재호를 향해 푸른 선들을 쏘아냈다.
자신에게 날아온 마법들을 무력화하며 신재호는 칠격에게 고전하고 있는 마인들을 보고 얼른 상황을 정리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 마인들이 몰살당해 방주까지 마족들이 들어온다면 자신은 안전하겠지만. 자신이 세워놓은 유토피아 계획이 무너질 수 있었다.
눈앞의 조민성은 어리긴 하지만 그 재능은 확실한 놈이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몸에 도배한 유물덕에. 계속해서 무력화를 사용해 공격을 파훼시켜도. 마력이 바닥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일부러 칠격이 마인들을 전부 정리하고 자신을 도우러 올 때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듯이, 다른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푸른 선으로만 견제하는듯한 모습에 신재호는 이를 깨물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조민성을 도발할 생각을 했다.
능력은 확실하나, 아직 나이가 어리다. 전투 경험도 감정의 통제도 쉽지 않을 나이. 자신도 그 나이였을 때가 있었고, 조민성을 도발할 확실한 카드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 엄마를 똑 닮았구나.”
그 말에 조민성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리는 것을 본 신재호는 미소를 숨기고, 말을 이어갔다.
“네 엄마와 네가 생일 파티에 납치되었다는 뉴스를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내 딸아이도 너를 걱정하느라 며칠을 울다 잠들었지.”
신재호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는 듯. 조민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눈은 먼 곳을 향했다.
“울고 있는 딸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주며 집을 나와, 그 길로 납치한 네 엄마를 때려죽일 때가 가장 즐거웠지.”
신재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폭주하듯 수백 갈래로 갈라진 푸른 선들이 신재호를 향해 쇄도했다. ‘분노’라는 감정이 공격에 담긴 듯한 폭력적인 마력의 운용이었다.
조민성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폭주하며 푸른색의 파동이 파티장을 휩쓸었다. 그 여파에 몇몇 마인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였다.
“그래도 내 덕에 질질 짜던 애새끼가 엄마의 시체를 보고 살인귀로 각성하게 됐으니. 어찌 보면 내가 네 스승이나 다름없지.”
신재호가 도발의 말을 내뱉을 때마다. 조민성의 마력이 감정에 반응하듯 걷잡을 수 없이 몸에서 퍼져 나왔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감정을 냉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마법사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력을 뿜어내는 모습에 신재호는 조민성이 역시 아직은 애송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영역 안으로 조민성이 들어올 수 있게 마지막 도발을 던졌다.
“내가 어떻게 너와 네 엄마를 납치하라고 사주한 줄 아나? 네가 아린이에게 준 생일파티 초대 카드 덕분이지. 그때 너는 후계자도 아니었고 단순한 애새끼였기에, 네 아빠한테 좋은 경고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
조민성의 마력이 폭주를 넘어 아지랑이처럼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호흡을 한 번 할 시간에 수백 개의 푸른 선들이 신재호를 향해 날아갔다.
거대한 폭격처럼 신재호를 향해 쏟아진 푸른 선들이 주먹질 한 번에 무력화되며 사라지자, 푸른 선을 양팔에 휘감은 조민성이 신재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걸렸다!’
이성을 잃고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조민성의 모습에 신재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오른팔에 모든 마력을 응축하여 내질렀다.
우드득!
신재호의 무력화 능력이 담긴 손이 날아오는 푸른 선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그대로 갑옷과 가슴을 뚫고 조민성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피를 토하며 아직도 분노에 찬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조민성의 모습에 신재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역시 아직 애새끼군.”
손을 쥐어 그대로 심장을 터트렸다. 빠르게 생기가 사라지는 조민성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신재호가 가슴에 박힌 팔을 빼내려 할 때. 돌연 조민성이 의수가 그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의수는 유물이나 마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기계였을 뿐. 그렇기에 신재호의 무력화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팔을 붙잡힌 신재호가 이것이 함정임을 깨닫고, 황급히 마력을 퍼트려 전신에 무력화의 능력을 사용해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신재호에게 닿은 것은 어떠한 마법이나 검이 아닌, 죽어가던 조민성이 붙잡은 멱살이었다.
“알고 있었어. 씨발놈아.”
무엇을…? 이라는 생각이 신재호의 머릿속에 스칠 때, 신재호의 등 뒤. 배경에서 동화된 채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인식]의 범위 밖에서 조민성의 신호를 기다리던 일리아가 모습을 드러내 음속의 일격을 가했다.
신살(??)의 기운이 담긴 일격이 종이를 베듯, 무력화의 마력을 전신에 내뿜던 것이 무색하게 신재호의 머리를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용사라는 이름의 위명을 가진 영웅의 죽음치고는 허무했으나, 이 또한 조민성의 설계였음을 신재호는 마지막까지 알지 못했다.
머리를 잃은 신재호의 몸을 밀쳐낸 조민성은 꿰뚫린 가슴을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심장을 잃었지만, 몸 안에 미리 마력을 퍼트려 곧장 정신을 잃거나, 죽지는 않았다.
“이 미친 새끼…. 진짜….”
일리아는 피투성이가 된 조민성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이 미친 책사는 신재호가 신살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게 자기 심장을 꿰뚫도록 미리 계획했다.
처음 신재호를 암살할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자기 심장을 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남자들의 허세라고만 생각했다. 그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한다는 의미 정도로만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 미친놈은 자신의 계획대로 분노에 빠진 척 연기하며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신재호의 전투방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역으로 자신을 미끼로 삼은 것이다.
처음 칠격과 거래를 하자 했을 때는 조민성이 단순한 미친놈인 줄로만 알았다. 자신이 광기에 빠졌다고 착각하는 중2병 걸린 재벌집 도련님 같은 캐릭터라고 여겼다.
하지만 우시오의 능력으로 조민성의 기억을 확인한 일리아는 그 뒤로 조민성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뛰었고, 자꾸 시선이 가게 되고, 자신이 멋대로 오해한 것을 후회했다.
잘생긴 외모, 플라틴이라는 배경에 지옥 같은 삶을 살던 자신과 달리 천국의 삶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놓고, 미친놈처럼 사는 게 우스워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일리아 자신과 같이 조민성은 충분히 지옥 같은 삶을 살았으니까.
납치된 채. 누군가 자신과 엄마를 구해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 나이대의 상상속의 영웅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던 꼬마는 납치범의 요구를 거절한 아버지에게 버려졌고, 그 엄마는 신재호의 손에 얻어맞아 죽었다.
폭력으로 얼굴이 뭉개진 채 자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르며 죽어가던 엄마를 보던 조민성은 푸른 마나를 깨우치고, 납치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죽이는 ‘살인귀’가 된 기억을 봤을 때. 일리아는 동질감과 함께 하나의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의 이름을 일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암살자가 품어서는 안 될 가장 위험한 감정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러나 이 감정이 일리아와 조민성의 관계를 바꿀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조민성의 마음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이 존재했었으니까.
“이 병신새끼…. 좆 달린 새끼가 고백 한 번 못해보고…. 이런다고 그년이 고마워 할 것이라 생각해?”
물기 어린 일리아의 목소리에 조민성은 쓴웃음을 짓고는 굴러다니던 신재호의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푸른색의 빛이 뿜어지고. 죽은 신재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냈는지 조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 피를 토해내며 일리아의 몸에 기댔다.
“쿨럭, 일리아. 시간이 없어 날 옥상으로….”
“알아 시발아! 조금만 버텨!”
아직 남은 마인들과 싸우고 있는 칠격을 뒤로하고 일리아는 조민성을 안아 든 채 옥상을 향해 달려갔다.
품 안에 안긴 조민성의 온기에 일리아는 이것이 계단을 몇 개씩 뛰어넘는 탓에 생기는 심장의 고동이라고 탓했다.
순식간에 계단을 타고 올라가 옥상 문을 발로 차 부숴낸 일리아가 조민성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체온이 떨어진 듯 어깨를 떠는 조민성의 모습에 일리아는 알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연민, 동정. 그런 것보다 더욱 아픈 감정이었다.
“가지고 있으라 한 거….”
“여깄어.”
일이 시작되기 전에 조민성이 자신에게 맞긴 물건이 있었다. 작은 씨앗 같은 거 하나와 투명한 알사탕 같은 보석.
두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내밀자. 작은 씨앗을 받아든 조민성이 뻥 뚫린 가슴에 씨앗을 집어넣었다. 씨앗은 순식간에 몸속에 뿌리를 내리더니 줄기를 내뿜어 구멍을 막아냈다.
거친 호흡을 내뱉던 조민성이 점점 편안한 호흡을 내뱉자. 설마 심장을 다시 만들어낸 건가 싶어. 기쁜 마음에 일리아가 물었다.
“살, 살 수 있는 거야?”
“아니, 임시방편이야.”
“그, 그런….”
순식간에 치솟았던 기쁨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이런 좆 같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게 일리아로써는 기분이 더러워. 더욱 눈물이 나왔다.
일리아가 들고 있던 보석을 받아든 조민성은 푸른 마나를 보석 안으로 응집시켰다. 보석 안으로 푸른 마나들이 소용돌이치며 빛을 발했다.
“이걸 꼭 김성현에게 전해줘.”
“...그래.”
푸르게 변한 알사탕 모양의 보석을 집어 든 일리아는 입술을 깨물고 조민성을 내려다보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내려 입술을 맞췄다.
언젠가 상상했던 것처럼, 달콤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피의 비릿한 맛과 냄새. 터진 입술 위로 얹은 딱지까지. 일리아에게는 정말로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는 듯한 따스한 온기 하나를 제외하고.
일리아가 입술을 떼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민성은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일리아도 몸을 일으키자. 조민성이 일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조민성의 시선에 얼굴이 빨개진 일리아가 변명하듯 내뱉었다.
“키스 한 번은 하고 죽어야지. 좆 달린 새끼야….”
일리아의 말에 조민성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어깨를 밀어냈다.
“내려가.”
옥상에서 내려간다면 다시는 조민성을 보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일리아의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을 구해야지.”
그 말에 일리아는 눈물을 터트리며 뒤를 돌아 옥상을 내려갔다.
일리아의 뒷모습을 보던 조민성은 더는 시간을 지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하늘을 뒤덮고 있는 마족과 마수들을 바라봤다.
그 앞에 마치 선봉장이라도 되는 듯, 백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도시를 내려다보는 백진희와 시선을 마주친 조민성은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하르마게돈을 막는다. 처음부터 조민성은 그 생각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을 마의 손에서 구할 영웅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 했다. 살인귀라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재능을 질투받으며. 자신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한 자들에게 공격받던 쓰레기가. 세상을 구해야 한다.
조민성은 사람들을 죽이고 이득을 취하는 악인(?人)들을 죽여왔다. 악인의 계획을 부숴낼 때마다 자신이 수많은 피해자들을 없앴다는 생각에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다.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악인을 심판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자기 행동을 남에게 설득하려 하거나,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을 뿐이니까.
“일타바르. 계약이다.”
거대한 크기의 요정왕이 조민성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마나를 각성했을 때. 그 마나에 흥미를 느낀 요정왕이 반강제적으로 조민성과 계약을 맺었다.
조민성은 요정왕을 스승으로 모셨고, 고귀하고 독선적인 요정왕은 푸른 마나를 사용하는 조민성을 유달리 아꼈다.
그 어떤 인간들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과 마력을 가진 인간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붙잡겠다. 계약자.][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알잖아. 얼마나 후회할지. 하지만 이게 내 방식이야 바꿀 생각은 없어.”
[인간에게 죽음은 삶의 마지막 보상이다. 그걸 판다면 넌 영원히 안식을 느끼지 못하고 어둠 속에 빠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정녕 영원토록 후회할 생각인가.]
“부탁할게. 마지막으로 힘을 줘, 스승님.”
피투성이가 된 채 밝은 미소를 짓는 조민성의 모습에 요정왕은 마지막 계약을 이행했다.
심장을 대신해 가슴속에 박아둔 세계수의 씨앗이 요정왕의 마력에 반응하여 폭주한다. 인간이 가진 잠재력의 상한선이 떨어져 나가며 순식간에 육체의 상처가 치유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마나들이 한 곳을 향해 응집하기 시작한다. 세계가 마나를 불러낸다.
조민성의 몸에 장착한 유물들이 그 마나에 반응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력이 조민성의 몸에 응집되며 돔을 향해 푸른 마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푸른 마나의 치솟음에. 조민성을 내려다보던 백진희는 돔에 설치한 자신의 술식의 회로를 바꾸는 조민성의 행동에 순수하게 감탄해버렸다.
세계관 내 최고의 마법 재능을 가졌다는 설정이지만, 단기간에 자신의 마법에 관섭할 정도로 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백 번의 회귀를 한 자신의 마법 능력을 뛰어넘는 ‘신’에 가까운 마력을 뿜어내는 조민성의 모습에 백진희는 갑작스레 나타난 변수에 입술을 짓씹으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거대한 마력이 응집하며, 얼음의 물결이 조민성을 향해 쏟아졌다. 무차별적인 폭격. 빌딩 자체를 무너트리고도 남을 파괴력이 있는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갑작스레 난입한 한 명에 의해 막혔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얼음기둥들이 순식간에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역으로 백진희를 향해 쇄도했다.
거대한 빙벽으로 그 공격을 막아선 백진희가 이를 갈며 또다시 나타난 변수에 분노했다.
“기한신…!”
자신이 장난스레 툭툭 건들며 갖고 놀던 지렁이. 언제든지 밟아 죽일 수 있는 지렁이가 꿈틀대며 신발 위로 올라와 저항했다.
“세뇌의 복수는 해야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조민성을 보호하듯, 공중에 떠올라 자신과 대치하는 기한신의 모습에 불쾌함을 느낀 백진희가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렁이 주제….”
거대한 규모의 빙결 마법이 어떠한 술식도, 영창도 없이 발현된다.
마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본다면 호들갑을 떨고 남았을 정도로. 그것은 한 명의 인간이 수명 안에 도달하기에는 불가능한 경지였다.
새하얀 마력이 대지를 공명하며, 거대한 빌딩 크기의 얼음덩어리가 기한신과 조민성을 향해 날아갔다.
기한신이 마력을 응집해 막아내려 해도, 얼음덩어리의 크기와 위력이 너무나도 강력해 막아낼 수가 없었다.
얼음덩어리에 직격한 기한신의 몸이 흔적도 없이 터져나가고, 차성의 빌딩을 향해 날아가던 얼음덩어리는 조민성이 만들어낸 거대한 푸른 주먹에 통째로 폭발하며 굉음을 냈다.
콰아아아아아앙!!!!
돔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 얼음덩어리가 폭발하며. 돔 안의 세계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것이 어떠한 신호라도 되는 듯. 하늘에 떠 있던 마족들이 급강하여 사냥을 시작했다.
영웅들은 무기를 고쳐잡았다. 자신들이 뚫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알고 있으니까.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는 의지가 있는 자들이 바로 영웅이었으니까.
바닥에 소복이 쌓인 눈 위로 누군가의 뜨거운 피가 쏟아졌다. 거리마다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갓 뜯어낸 인간의 심장을 씹어낸 마족이 기쁨의 함성을 질러댔다.
그 지옥도를 내려보던 백진희는 얼음 검을 만들어 돔의 술식을 바꾸는 조민성을 향해 날아갔다.
푸른 선들이 날아가는 자신을 요격하려 쇄도했지만, 그것들을 모조리 쳐내며 조민성이 서 있는 옥상에 도착한 백진희는 변수를 없애기 위해 곧장 조민성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무언가가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았다.
리치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자신의 방식으로 개조한 기한신은 근처에서 몸을 조종하는 본체가 죽지 않으면 재생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
물론 그 대가로 수명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몇 번의 죽음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내 죽음이 예쁠 거라고 했지? 맞아. 네년이랑 같이 죽을 거거든.”
백진희가 마력을 방출해 기한신의 몸을 얼린 뒤 터트렸다. 조각난 몸이 꿈틀대며 재생하여 백진희의 몸을 붙잡았다.
“이 미친 새끼…!!!”
베어내고, 터트리고, 얼려버려도, 기한신은 끝까지 백진희를 붙잡고 늘어졌다. 결국 순식간에 수십 번이 죽고 나서야 수명을 전부 소모한 기한신은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기한신은 조금이지만 시간을 벌었다. 그 덕에 조민성은 백진희가 만들어낸 거미줄 같은 거대한 회로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냈다.
“겨우 회로를 바꿨다고, 이미 세계선을 뛰어넘은 마족들을 막을 수는 없어.”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미소를 지으며, 신에게 기도하듯 손을 합장했다.
돔이 진동하며 회로가 발동하여 푸른 마나가 돔 안의 세계를 가득 채웠다. 그동안 계획을 알고 있는 칠격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몰랐던 조민성의 계획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땅속에 박아두었던 마석들이 푸른 마나에 반응하여 공명하기 시작했다. 돔의 중심지가 마법의 대상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문 닫을 시간이야.”
조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푸른 섬광이 천지를 밝혔다.
허물어졌던 경계가 다시 복구된다. 뒤틀렸던 세계선이 제자리를 찾자. 이곳에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찾아낸다.
마족들의 주변의 공간이 뒤틀리더니 역행하듯 어둠 속으로 마족들이 빨려 들어갔다.
그 변화를 지켜보던 백진희의 얼굴이 흉악스럽게 일그러지며 마력이 폭주했다. 이미 모든 힘을 다 소모한 조민성은 서 있을 힘조차 남지 않아 무릎을 꿇고, 미소만 지었다.
“엿 먹은 기분이 어때.”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 같던 백진희는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고는 뚜벅뚜벅 조민성을 향해 다가왔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백진희의 얼굴에 흉악스럽게 일그러지던 표정이 사라지더니, 이내 만연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조금 전의 모습은 보여주기 위한 연기였다는 듯이.
“나쁘지 않은 변수였어.”
그 미소에 조민성은 자신의 반항조차 백진희가 계산한 변수임을 깨달았다.
“아린이가 마족들을 잡아먹고 마신이 된다면,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아쉽지만 플랜 A는 큰 흐름에 막혀버렸네?”
“너…. 어디까지…….”
백진희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죽어가는 조민성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가장 중요한 계획을 위해 몇 개의 계획을 드러내놓으면. 그중의 하나가 진짜인 줄 착각하더라. 진짜는 밑바닥에 깔려 있는 데.”
백진희는 조민성을 끌어안았다. 저항할 힘조차 남지 않은 조민성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더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역시 캐릭터의 설정은 극복할 수가 없나 봐. 결국 넌 아린이를 위해 희생하는 운명이었어. 예정대로 아린이는 성현이 곁에서 행복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죽어.”
눈이 감긴다. 어둠이 찾아오며 몸에서 느껴지던 격통이 멀어져간다.
자신의 반항은 무의미했을까? 아니, 아직 백진희는 자신이 숨겨놓은 비수를 눈치 못 챘다.
이미 주사위는 자기 손을 떠났다. 자신은 이제 퇴장할 차례다.
남은 건 살아남은 자들이 해결할 몫이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성아! 나랑 꼭 결혼해야 해! 넌 내 파트너니까!”
짝꿍을 했다고 결혼을 얘기하는 그 멍청한 소꿉친구가 떠올랐다.
아주 예쁜 흑요석의 눈을 가진 그 아이에게 조민성은 항상 부끄러움에 진심을 감추고 이렇게 대답했다.
“싫어! 결혼하자 하면 도망칠 거야!”
그 말을 들은 소꿉친구는 항상 눈물을 흘려댔지만, 마지막에는 꼭 이런 말을 했다.
“그럼 내가 어디에 숨든 찾아낼 거야!”
그렇게 말하며 항상 자신에게 붙어 다니던 멍청이.
자신의 곁에 있으면 불행해지기에, 기억을 지우고 밀어냈던 사람.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시간이 흘러도 추억으로 흘려보내지 못하고 고여있던 사람.
불행하라는 말은 어렸을 적의 버릇처럼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행복하길 바랐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