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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42화 (142/160)

〈 142화 〉 Harmagedōn

* * *

조민성의 머리 위에 나타난 마력으로 만들어진 푸른 구체에서 끊임없이 푸른 선들이 하나 같이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며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마력들이 격돌하며 생긴 거대한 충격파에 조민성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앙!

굉음에 휩싸인 파티장은 이미 소란에 빠져. 도망치는 자들, 맞서 싸우는 자들, 몸이 터져 죽어가는 자들로 혼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방주’에 올라탄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거들먹거리던 자들의 얼굴에는 그와 상반된 죽음의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워, 조민성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겨우 혼자서.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푸른 선들을 무력화하며 신재호가 뻐근해진 목덜미를 붙잡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때까지 혼란에 빠진 파티장을 정리하려던 자들이 결국 정리를 포기하고 신재호의 곁에 섰다.

“파티를 엉망으로 망친 대가를 받아야지.”

붉은 머리를 한 소녀와 거대한 크기의 남자가 눈을 빛내더니 동시에 조민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한 열기와 함께 머리를 터트리려 다가오는 화염의 채찍을 푸른 선으로 막아내며 곧장 황소처럼 자신에게 돌진하는 남자에게 마력을 담은 주먹을 휘갈겼다.

거대한 파공음과 함께 주먹에 담긴 마력이 폭발하며 돌진하던 남자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예리엘, 시간 끌지 말고 죽여라.”

신재호의 말에 예리엘 이라고 불린 붉은 머리의 마인이 이를 갈더니 채찍을 없애고는 온몸에 시뻘건 불길을 피워냈다.

후끈해진 열기에 조민성이 예리엘에게 푸른 선들을 나선 하여, 몸을 꿰뚫으려 했지만, 소녀의 등 뒤로 나타난 불의 날개가 푸른 선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카펫의 바닥이 타오르며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검은 연기 속으로 몸을 숨긴 예리엘이 폭발하는 듯한 마력을 담아낸 불덩이를 기습적으로 조민성에게 날렸다.

연기를 뚫고 순식간에 조민성의 얼굴 앞으로 다가온 불덩이를 피하지 않고 그저 직시했다.

맹렬한 기세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것처럼 쇄도하던 불덩이가 거짓말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였다.

“뭐, 뭐야!”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하는 예리엘에게 조민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오른쪽 눈에 박힌 황금의 의안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라의 눈앞에서 네 능력은 소용없다.”

열과 빛의 원천이며, 불꽃을 지배하는 라의 능력을 갖춘 [라의 눈(Eye of Ra)]. 계약으로 잃은 눈을 대신해 수천억의 가치가 있는 유물을 조민성은 의안으로 사용했다.

물론 신의 유물을 사용한 대가로 수명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지만, 조민성에게 오늘 이후의 수명은 필요 없었기에. 오히려 만족스러운 사용료였다.

라의 눈에 담긴 힘을 알아봤는지. 예리엘이 으드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며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분하지만 자신이 조민성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예리엘을 대신해 마력이 담긴 주먹질에 벽으로 날아가 박혔던 남자가 몸을 일으켜. 또다시 조민성을 향해 격렬한 기세로 돌진했다.

푸른 선으로 돌진을 막으려 했으나, 남자는 온몸이 흑철로 변해 있었다. 마력에 저항하는 흑철의 특성을 믿고. 조민성의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이 모조리 맞아가며 돌진해 그 속도를 이용해 조민성의 몸을 터트리려 어깨를 들이밀었다.

맹렬한 기세로 황소처럼 우직하게 푸른 선들을 뚫고 돌진하던 것이 우습게도 조민성의 앞에 도달하기 전에 푸른 선을 이용해 돌진의 경로를 예측해 바닥을 뚫어버렸다.

그 결과 남자는 돌진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꺼져버린 땅바닥 속으로 허무하게 추락해버렸다.

“둘 다 마인이군.”

순식간에 마인 두 명을 제압한 조민성이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툭 던진 말에 신재호는 피식 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역시 플라틴인가. 이 정도로 쉽게 둘을 제압하다니. 죽이기에는 아쉬운 재능이야.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용서해줄 의향은 있다만?”

“나는 당신이 무릎 꿇는다고 해도 용서해 줄 생각 없어. 그대로 목을 베어버릴 거야.”

“건방진 새끼. 이래서 내가 너희 집안을 싫어하는 거야.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들. 겨우 마인 두 명이 끝이라고 생각했나?”

신재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파티장 안에 사람으로 위장해 숨어있던 마인들이 본 모습을 드러내며 거리를 좁히며 조민성을 향해 다가왔다.

“마인이 몇이든 상관 없다.”

“호오, 자신감인가?”

주변의 마인들을 보고도 태연한 표정의 조민성의 모습에 신재호가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자. 조민성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대답했다.

“아니, 내가 상대할 건 너밖에 없으니까.”

조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티장을 빠져나가려던 사람들이 공중에 붕 뜨며 괴상한 소리와 함께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맞아. 벌레 청소는 전문 업체가 나서야 하는 법이거든!”

파티장을 빠져나가려던 한 권력자의 목뼈를 부서트리며 옥색의 가면을 쓰고 있는 신한림이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옥색의 우는 듯한 가면을 본 신재호는 그것이 소문으로 듣던 마인사냥집단. 칠격임을 눈치챘다.

“칠격을 고용했나 보군.”

“마(?)를 멸하기 위해서.”

조민성의 대답에 신재호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이해가 안 가는 군. 우릴 위해서 사람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돔까지 만들어 사냥감들을 몰아넣어 놓고서는. 어째서 적으로 돌아선 거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아니, 처음부터 난 네 계획을 부숴버릴 생각밖에 없었어.”

조민성의 말에 신재호는 고개를 저으며, 비릿한 웃음과 함께 주먹을 쥐었다.

“그렇군, 내가 손잡은 게 검은 머리 짐승이었어. 한데….”

거대한 마력이 폭주하듯 신재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치솟는 마력이 거대한 위압감을 주는 아우라가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한때는 ‘용사’였던 나를 너희들 정도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그 말과 동시에 신재호가 어마무시한 속도와 탄력으로 조민성을 향해 내달렸다. 그것이 어떤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거리를 좁히던 마인들도 동시에 칠격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숨을 대가로 자신들의 생존을 축하하던 파티의 장은. 피와 마력, 그리고 죽음으로 얼룩진 수라의 장으로 변했다.

***

웨에에에엥!

경계 경보음이 울리자. 주말의 늦은 밤을 즐기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대피소와 집으로 도망쳤다.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은 마인의 습격을 대비해 출동한 영웅들과 몇몇 겁 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C급 치안 유지 영웅인 임재섭은 경계 경보음이 들리자. 곧장 자신이 담당하던 대피소의 문을 열어 사람들을 안으로 집어넣고,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대피소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자줏빛으로 변한 하늘과 붉게 보이는 보름달이 사람이 없어진 거리의 풍경을 더욱 삭막하게 만들어냈다.

이제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한 임재섭이 몸을 돌려 대피소로 돌아가려 할 때. 그 눈에 백발의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소녀가 보였다.

지금 상황이 실제가 아닌 장난이라고 생각하는지. 즐겁다는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는 소녀의 모습에 임재섭은 황급히 소리를 질렀다.

“어이! 당장 대피해! 실제상황이라고!!!”

그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듣지 않는 것인지 “흥흥~”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던 소녀는 새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날개도 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백발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임재섭은 두 눈을 끔벅거리며, 멍청한 헛소리를 내뱉었다.

“천, 천사인가!?”

그런 오해를 품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외모를 가진 소녀. 아니, 백진희는 계약대로 조민성이 만들어낸 거대한 사냥터의 중심지에 도달해 공중에 떠올라 도시 밑을 내려다보았다.

곧 재가되어 불타버릴 도시가 너무나도 예뻐 보여 잠시, 백안에 도시의 풍경을 기억이라도 하듯 담아냈다.

“너희들에게 주는 천벌이야.”

맑은 미소를 지으며, 백진희는 혼잣말하고는 자기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중에서 양팔을 넓게 뻗자. 새하얀 마력이 팔을 통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에 각인한 룬문자들이 이날을 위해 비축해두었던 마력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결계에 백진희의 새하얀 마력이 뻗어가기 시작했다. 회로 위에 또 다른 회로를 추가하고, 술식을 비틀어낸다.

돔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마석들이 만들어낸 응집된 마력을 이용해 거대한 크기의 술식을 담아낸다.

일반인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돔에 거대한 회로가 그려진다. 대지가 진동하며, 백진희의 하얀 마력이 얼어붙어 때아닌 눈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 이상 현상에 불안함을 느낀 동물들이 돔에서 벗어나려 돔을 향해 몸을 내던지다 온몸이 바스러져 버렸다.

바깥에서 이 상황을 관측하던 자들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스노 글로브].

거대한 돔에 갇힌 도시에 내리는 하얀 눈이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돔을 구성하던 마석의 마력과 백진희의 마력이 만나 거대한 크기로 응집되었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진 듯, 자줏빛 하늘의 공간이 찢어지며 깊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뉘어 있던 세계가 겹친다. 인간계와 마계의 절대적인 경계가 허물어지며, 세계선이 뒤틀린다.

거리에서 전투를 준비 중이던 영웅들도, 수라의 장으로 바뀐 파티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자들도, 사랑을 속삭이며 서로를 탐하던 연인도.

천지를 밝히는 거대한 섬광에 모두 시선을 빼앗겼다.

번개가 번쩍거리고 난 뒤, 요란한 천둥이 치는 것처럼.

섬광이 끝난 하늘에는 공간을 뒤틀고 빠져나온 마족들이 있었다. 수 세기 동안 일족이 염원하던 꿈이 이뤄진 것에 대한 기쁨의 함성이 돔 안을 가득 채웠다.

백진희는 자신을 경악스럽게 올려다보는 사람들과 등 뒤에서 느껴지는 함성, 죽음과 파괴를 기다리는 삭막한 도시를 내려다보자.

오르가즘에 도달한 듯 뇌가 떨리는 듯한 쾌감이 들었다. 수백 번을 회귀한 끝에 만들어낸 계획이 드디어 첫걸음을 뗐다.

“하르마게돈.”

선과 악이 맞붙는 전쟁터. 파괴, 대전쟁, 재앙. 같은 다양한 뜻을 가진 단어.

그러나, 백진희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하나였다.

“종말.”

자기 손으로 이야기의 모든 것을 끝내버릴 종말이라는 단어만이. 백진희의 [염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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