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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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성이 주관하는 파티. 하나하나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들과 영웅 협회, 정부에서 높은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가족들은 다른 층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오직 이곳만이 진짜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모인 파티였다.
그들 모두 차성과 계약을 하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였고. 오늘의 파티가 어떤 의미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파티의 이름이 ‘방주’라는 것과 자신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파티의 열기를 더하는 이유였다.
참여자 대부분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 사람도 우리 편이었어?’라고 놀라 하며, 소속감을 느껴 친근한 대화를 나눴다.
그도 그럴 게, 세상을 구한다는 가디언즈에 소속된 영웅들도, 남들에게 천사라는 칭찬을 받는 수백억의 기부자도. ‘방주’에 올라탔다는 것이 자신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조차 신재호가 노린 것이기도 했다. 천사든 영웅이든, 가족이 있는 자라면 재앙에서 빗겨나가고 싶어 했으니까.
땡땡땡
연주가 멈추고 유리잔을 때리는 피치 높은 소리에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의 시선이 단상의 남자에게 모였다.
나이가 들었지만, 당당함을 잃지 않은 미중년. 한때는 세계가 그를 ‘용사’라고 불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재앙을 피해 차성이란 방주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신재호의 목소리에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시선을 끌며, 말에 집중하게 된다. 그것이 신재호의 매력인지, 사업가로서 갈고닦은 능력인지는 모르나.
파티에 있던 사람들은 신재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이 차성의 품 안에 있다는 것에 안도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고 하르마게돈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막을 수 있는 재앙이라면 모두 힘을 합쳐 막는 게 옳으나. 천재지변을 사람의 작은 손으로 막을 수는 없는 법. 재앙이 휩쓸고 간 황폐해진 땅을 우리는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이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자들이라면 오늘이 어떤 날인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평범한 하루일 뿐이었으니까.
이 파티에 참석한 자들이 죄책감을 가진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는 사람들, 친구, 동료들에게 ‘오늘 밤이 지나면 당신들은 죽을 거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재앙이 다가오니 도망치라는 경고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방주에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고, 하르마게돈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욕을 먹어가며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죽을 사람들인데. 굳이 시한부 선고를 내려 남은 시간을 공포에 빠지게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인류의 희망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을 이끌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인부들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자식을 낳을 것이고. 그 자식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상향에서 행복과 안전을 보장받을 것입니다.”
신재호가 와인이 담긴 유리잔을 높이 들었다. 그 행동을 따라 사람들이 머리 위로 높이 잔을 들었다.
“세계를 구할 영웅들이여! 살아남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들은 자축했다. 생존을 선택받은 것이 기뻐서. 자기 가족들을 지킬 수 있어서.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잔에 담긴 와인들이 비워지고, 파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밤은 어두워지기보다는 자주색으로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웨에에에에엥!
경계 경보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평범한 주말을 보내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근처 대피소나 집으로 들어가 문을 꼭 잠그고 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플라틴이 만들어낸 마인 방어 시스템인. 거대한 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돔이 도시를 감쌌다. 멀리서 본다면 스노 글로브 안의 작은 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파티는 경계 경보음이 울리자. 오히려 더욱더 분위기가 타오르듯 뜨거워졌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니까. 자신들은 이미 방주에 올라타 안전했으니까.
와인과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면 되었으니까. 생존의 기쁨을 감추지 못한 자들이 일면식도 없는 자들과 건배하며, 덕담을 나누며. 광기를 공유했다.
“빌어먹을 세상이야. 그렇지?”
파티의 구석.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파스타 면을 포크로 괴롭히던 조민성이 일리아에게 말했다.
“그래, 미친 세상이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남을 희생하는 쓰레기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장이 뒤틀리는 느낌이라 일리아는 이를 갈았다.
“시작하자.”
조민성의 말에 일리아가 배경에 동화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일리아를 ‘인식’할 수 없다.
조민성은 구석에서 벗어나 신재호를 향해 걸었다.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은 조민성의 얼굴을 보고 자신들을 위해 방주를 건설한 어린 천재를 칭찬하려 어깨를 두드리거나, 말을 걸어왔지만. 조민성은 그저 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신재호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아, 조민성. 어디에 있었나 찾고 있었는데.”
신재호가 와인이 담긴 잔을 건넸지만, 조민성은 받아들지 않았다. 자신의 호의를 받지 않는 것에 신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신재호, 너는 악인(?人)이다.”
갑작스러운 조민성의 말에 신재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즐거웠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마를 긁적이던 신재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는 조민성을 노려봤다.
“맞다. 나는 악인이지. 하지만 그 악행에 동참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비웃음이 담긴 신재호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웃어댔다.
“맞아. 나는 영웅이 아니지. 오히려 악인에 가까운 쓰레기이자. 괴물, 미친놈이란 말이 더 어울려.”
조민성의 자조 섞인 말에 신재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자랑을 하려고 그리 무게를 잡은 건가?”
“아니, 이 빌어먹을 세상을 구할 생각이다.”
조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푸른 선들이 나타나 몸을 휘감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의 시선이 단상에 몰렸다. 신재호는 조민성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미소만 지었다.
푸른 선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조민성은 매우 이상한 모습이었다.
10개의 손가락에 전부 반지를 끼고, 거대한 왕관과 망토. 나무색의 갑옷,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의수. 한쪽 눈에 낀 황금의 의안과 목이 무겁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목걸이, 겹겹이 차 놓은 팔찌, 귀 전체를 덮을 정도의 귀걸이들까지.
마치 졸부가 백화점에 가. 그동안 억눌러왔던 소비 욕구를 해소해. 명품으로 과하게 치장한 듯한 모습에 사람들의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파티를 즐겁게 하려고 저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영웅 경력이 있거나, 유물에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에 놀라 숨을 쉬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조민성의 과도한 치장 품들은 모두 유물들이었다. 수십 개. 아니, 수 백 개가 될지도 모르는 유물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조민성은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에 푸른 선들을 나선 했으니까.
“신재호, 너는 용사이면서 마왕을 죽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왕을 여자로 만들어 강간하고 자식을 낳게 했지.”
조민성의 말에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몇십 년 전 비밀이 밝혀진다는 것에 흥미로운 눈을 빛내는 사람도 있었다.
“마인과 손을 잡고 사람들을 헤치고. 마왕과 자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새로운 마왕으로 만들기 위해. 하르마게돈을 계획했다.”
조민성의 말에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하르마게돈이 천재지변이 아니라 신재호가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그 재앙에 한 손을 거든것이 되니까.
신재호는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하르마게돈을 막고. 이 빌어먹을 세상을 네 놈들에게 구하겠다고.”
조민성의 주변의 공간이 아지랑이로 일그러지더니, 푸른 선들이 신재호를 향해 쇄도했다.
그 행동에 신재호는 미소를 지으며, 그저 팔을 뻗어 자신에게 쇄도하는 푸른 선들을 건드렸다.
그저 닿기만 했을 뿐인데. [무력화]되어 마력이 공중으로 흩어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신재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각자 무기들을 꺼내 들어 조민성을 겨눴다.
“그리고 네 대가리에서 찾아야 할 정보가 있거든.”
푸른 선들이 주변 사람들의 몸을 터트려 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한번 신재호를 향해 쇄도했다.
***
간만에 성현이와 단둘이 있자. 묘한 분위기에 빠진 우리는 마치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서로를 격렬하게 탐했다.
성현이는 내 몸 구석구석을 탐했고. 나는 행복해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거의 2주 만에 하는 섹스였기에, 어느 때보다 격렬했고, 황홀했으며. 서로를 받아주었다.
뜨거운 열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땀에 젖어 성현이의 몸 위에 올라타 숨을 고르고 있자. 성현이의 거친 심장 소리가 들려와 괜히 웃음이 나왔다.
“힘들었나 봐?”
“너 힘들까 봐 쉬고 있는 건데? 바로 또 할까?”
그리 말하며 내 엉덩이를 꽉 붙잡고, 아직 발기가 풀리지 않은 자지를 질구에 갖다 댔다.
“장, 장난이야!”
기다렸다는 듯이 섹스를 하려 하는 성현이의 모습에 잠시 잊고 있었던 성현이의 정력이 떠올랐다.
한 번을 하면 현자 타임을 갖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욕에 불이 붙어 미친 듯이 박아대는 괴물….
“그보다, 다른 애들이랑은 연락했어?”
“응, 내일 오래간만에 다 같이 모이기로 했어. 그동안 연락 안 돼서 다들 많이 걱정했나 봐.”
그렇긴 하겠지. 연락도 없이 남자친구가 잠수타버린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 걱정이 드는 게 당연한 거니까.
“제대로 설명해. 그리고 확실히 사과하고.”
섹스를 하기 전에 나와 성현이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조금 격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게 돼버렸다.
성현이는 그동안 내게 잘못했던 것들을 사과하면서. 한서아를 시켜 나를 괴롭힌 것도 고백했다. 그 대가로 옆구리를 세게 꼬집어줬다.
성현이는 솔직하게 내게 숨겨왔던 감정을 털어놨다. 다른 여자들에게도 이제 진심인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렘을 건설했으면 당연히 남자답게 책임을 져야지.
나는 그동안 속여왔던 것과 공략 능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사과 먼저 하라고 조언했다.
“응, 약속할게. 그리고 미안해 아린아. 너 하나만 사랑하지 못해서.”
“또 그 얘기야? 괜찮다니까. 나 혼자서 네 사랑을 감당하기에는 힘들어.”
“고마워, 이해해줘서.”
“흐읏, 고, 고맙다면서 왜 갑자기 넣는….”
갑작스레 질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지에 식어가던 몸이 다시 뜨거워졌다.
내 반응에 성현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엉덩이를 꽉 붙잡고 허리를 들어 자지를 깊숙이 쑤셔 넣고는 작게 속삭였다.
“착한 아이에게 주는 보상이야.”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흘리고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성현이를 내려봤다.
“그럼, 말이야.”
내 장난기 섞인 목소리를 들은 성현이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안 좋은 버릇이 물들었나 보다. 저 표정을 보는 게 왜 이리 기분이 좋은 걸까.
“보상으로 아가방에 성현이 아기씨 가득 채워줄래?”
자궁이 있는 아랫배를 톡톡 치면서, 장난스레 그리 말하자. 성현이의 표정이 변했다.
목표를 발견한 맹수의 눈빛과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자지를 꾹 조였다.
이거 실수한 거 같은데….
엉덩이를 꽉 움켜쥔 성현이는 이를 으드득 갈며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오늘 안에 무조건 임신 시켜줄게.”
임신 선언과 함께 성현이는 거칠게 허리를 올려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