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소중한 것을 지키는 힘
* * *
아린이와 손을 잡고 붉은 실을 따라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손을 잡고 걷는 게 왜 이리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괜스레 손에 땀이나 찝찝하게 느껴질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말없이 길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공간이 바뀌었다. 자리에 앉으라는 듯, 덩그러니 놓여있는 식탁의 비어있는 의자에 앉자. 미궁과 어울리지 않는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불백이 어느새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불백집….”
아린이와 몇 번 간 적이 있는 추억이 깃든 맛집이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로 파스타집이 아니라 불백집을 가도 되는 건가 고민했던 게 떠올라 미소를 짓자.
아린이가 겁도 없이 젓가락을 들어 불백을 집어 들기에 황급히 제지했다.
“잠, 잠깐. 음식에 독이라도 들어있으면 어쩌려고?”
“음, 몰라!”
해맑게 대답하고는 입에 쏙 고기를 집어넣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바라보고 있자. 작은 입을 우물거리던 아린이는 작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옆에 있던 상추를 집었다.
고기와 파채, 양념을 집어넣던 아린이가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뒤돌아보라고 말하기에,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자.
주먹만 한 크기의 쌈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아니, 이거 안 들어갈 것 같은데….”
“내가 싸준 건데!”
그 말에 별수 없이. 불안한 눈으로 크게 입을 벌려 쌈을 받아먹었다.
마늘을 왕창 넣은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맛있기만 했다.
“무언가를 넣은척하면서 아무 짓도 안 하는 이중 트릭!”
가슴을 쭉 내밀며 자랑하는 듯한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한테 아주 못된 것만 배웠네.”
그리 말하자, 예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쌈을 만드는 아린이의 모습에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혼자 미궁을 걸을 때는 아린이에게 준 상처와 고통의 기억들이 주는 감정에 죄책감과 자괴감이 가득했다면.
아린이를 만나. 같이 발걸음을 맞춰 미궁을 걸을 때는. 아린이와 함께 했던 소중했던 소소한 일상의 기억들이 주는 행복에 너무나도 행복했고, 고마웠고. 미안했다.
잊고 있었다. 보폭이 달라 신경을 쓰지 않으면 혼자 앞서가던 것도.
평소처럼 밥을 먹으면 아린이가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도.
볼에 뽀뽀하면 입술에 화장이 묻어 아린이가 하얗게 변한 입술을 놀리며 틴트를 들이대는 것도.
길을 걷다 예쁜 꽃과 멋있는 것들을 볼 때마다 서로의 휴대폰에 상대방을 찍어 소중히 간직하던 그 감정도.
언제부턴가. 그 소소한 일상이 주던 행복에 무감각해지고. 손을 잡고 같은 곳을 향해 보폭을 맞춰 걸어간다는 기쁨을 망각해버렸다.
아린이와 몸을 섞는 쾌감만 쫓던 날들보다, 더욱 기억에 남고 행복하던 건. 이토록 소소한 일상이었는데.
“아. 해봐!”
“킁, 이번엔 마늘 넣은 거 봤어.”
코를 훌쩍이며 대답하자. 아린이는 입술을 내밀더니, 내 입에 억지로 쌈을 갖다 댔다.
“벌칙이야 먹어!”
“무슨 벌칙?”
“또 울려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입을 살짝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안에 욱여넣은 아린이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씹을 때마다 느껴지는 생마늘의 느낌에 콧속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야! 마늘을 무슨….”
“마늘 때문에 운 거야.”
그 맥락 없는 말에 입을 우물거리던 것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아린이가 턱을 괴며 말했다.
“이제 나 때문에 울지 말라고.”
입안이 주먹만 한 쌈 때문에 꽉 차서 그럴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입만 우물거렸다. 허벅지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울보.”
그 말이 괜히 부끄러워서 아무렇지 않은 척 눈물 자국을 소매로 닦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마늘이 너무 많았어.”
식탁에 올려놓은 손에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던 아린이는 흑요석의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사랑하는 만큼 넣었어.”
자기가 말해놓고. 새하얀 피부 위로 발그레한 홍조를 일으키며 부끄러움을 참는 모습에 참고 있던 장난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가득 지으며, 마늘이 담긴 그릇을 집어. 아린이의 눈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더 사랑하니까. 더 많이 넣어줘야겠다.”
“난 마늘 싫어!”
“아니야, 기억이 없어서 그렇지. 너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야. 기본적으로 마늘 5개는 넣었어.”
“거짓말하지 마!”
“마늘 10개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내 손에서 마늘 그릇을 뺏으려 손을 뻗는 아린이와 그것을 피하려 높이 그릇을 들며 장난을 치는 나.
이해력이 제멋대로 발동되었다. 이곳은 아린이의 심상이 만들어낸 미궁. 힘들었던 기억과 지우고 싶었던 기억을 내가 마주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은 아린이가 꿈꾸던 나와의 행복한 일상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장난을 치며. 즐겁게 지내는 것.
아린이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감정이 여실히 느껴져. 아린이와 일상을 보내는 게 아닌. 섹스에만 몰두하던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이 차올랐다.
섹스가 사랑의 전부가 아닌데. 나는 섹스만으로 아린이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다. 섹스로 사랑을 증명하려 했고, 섹스로 사랑의 여부를 판단하려 했다.
어쩜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을까. 아린이의 소중함을. 일상에서 주는 행복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기어코 내 손에서 마늘 그릇을 빼앗은 아린이에게 절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아린아. 이런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말에 쌈에 마늘을 쏟아붓고 있던 아린이가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어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눈에는 점점 물기가 고이기 시작했다. 물기가 가득한 아린이의 눈동자에는 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마늘 그릇을 내려놓은 아린이가 손을 뻗어 내 볼을 어루만지더니, 대뜸 멱살을 붙잡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나쁜 놈아.”
그런 말을 하며, 아린이는 내게 입맞춤을 했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 입술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마음속에 부서진 부정적인 감정의 파편들이 녹아내린다.
서로의 숨결이 뒤섞이며 전해지는 애정에 심장의 고동이 같아졌다.
입술을 뗀 아린이는 감았던 눈을 뜨고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물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성현이…?”
아린이의 혼란스러운 눈빛에서 기억이 돌아왔음을 [이해]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린이를 보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왕자님의 키스가 정답이었나 보네.”
짝!
아린이가 내 뺨을 때렸다. 당연히 내게 화낼 이유가 충분했고. 나는 어떤한 변명도 없이 사과해야 하는 처지였으니. 손을 피할 수 있음에도 가만히 있었다.
얼얼한 통증이 느껴지는 볼을 만지자. 흑요석 같은 예쁜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린이는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쁜 놈아….”
그 원망 어린 목소리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에 바닥이 무너져 깊은 절망 속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말해야 했다. 모두 다 내 잘못이었고, 너는 단지 나 때문에 아파야 했던 피해자라고. 미안하다고.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나를 미워할 자격이 너에게는 충분하다고.
목구멍이 열기로 뜨거웠다. 가슴이 터질 듯 아파져 오고, 절망감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미안해…. 내가 너한테 정말로 못할”
“왜 이제 왔어.”
내 죄책감 어린 말을 잘라내는 아린이의 그 말에 나는 모든 게 얼어붙었다. 거칠게 뛰던 심장도, 터질 것 같던 머리도. 모두 멈춘 채. 그저 멍청하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기다렸잖아.”
눈물 젖은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원망은 없었다. 내가 가득 담긴 흑요석의 눈동자에는 오직, 그리움이라는 감정밖에 없었다.
아린이가 내 품에 몸을 던지듯 안겨왔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체온과 중독성 있는 향긋한 향기. 부드러운 피부의 감촉이 그 어떤 질책보다 더욱 나를 아프게 했다.
이것이 거짓일까 두려운 마음에 나는 내 품에 안긴 아린이를 놓지 않으려 더 깊이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방울진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왜 아직도 너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그렇게 상처 주고, 힘들게 한 장본인을 그립다는 듯이 바라보며, 안겨 오는 것일까. 나에게는 너를 위로해줄 자격조차 없는데.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아린이의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싶었어.”
아린이의 그 말에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만 흘리며 아린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슴에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절절한 감정이 깃든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는…?”
내 눈치를 보는듯한 아린이의 모습에 툭 하고 내 안에 억눌러 놨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보고 싶었어……. 너무나도 많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흐려진 시야로 내 말에 기쁜 미소를 짓는 아린이의 모습에 나는 깨달았다. 공략도에 연연하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던 건지.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게 얼마나 멍청했던 건지. 나를 바라보는 그 눈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나는 이미 아린이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었다. 단지 내가 그것을 의심했을 뿐.
아린이의 턱을 잡고 입술을 맞췄다. 어느 때보다 달콤했고, 따스했다.
한참을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던 우리의 귀에 무언가 벽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본능적으로 직감이 들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품 안에 안겨있던 아린이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어온다…기어온다…혼돈….”
두려운지 이빨까지 딱딱소리를 내며 턱을 떨어대는 아린이의 모습에 황급히 어깨를 잡고 흔들어대자. 정신을 차린 아린이가 소리쳤다.
“도망쳐야 해!!!”
자리를 박차고 아린이의 팔을 잡고 바닥에 놓인 붉은 실을 따라 달렸다.
“뒤돌지 말고 달려!”
무서운 속도로 다다닥 소리를 내며 그것이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따라잡힌다는 생각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아린이만이라도 이 미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했다.
“붉은 실을 따라서 계속 달려!”
그렇게 외치고 나는 아린이가 미궁을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았다.
내 행동에 놀란 아린이가 황급히 걸음을 멈추고 내게 소리 질렀다.
“김성현!!! 미쳤어? 얼른 와!!!”
“가라고!”
주먹을 들어 투기를 끌어모았다. 아린이가 도망칠 때까지만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했다.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다잡고 있을 떄. 어째서인지 내 옆에 아린이가 서 있었다.
“야, 너 지금”
“무엇이든 같이 싸우기로 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아린이가 허공에서 검을 만들어냈다. 두려워하면서도 내 곁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린이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그건….”
“네가 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널 소중하게 생각해. 내가 어떻게 널 두고 가겠어.”
아린이의 말에 무언가 꾹 하고 내 마음을 누르는 것 같았다. 그래. 도망치지 말자. 지옥으로 떨어진다 해도 우린 함께 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살점 덩어리들이 흉악하게 모여있는 듯한 괴물. 살덩어리에 박혀 있는 수많은 눈알들이 아린이를 직시하며 기다란 팔을 휘둘렀다.
본능적으로 주먹을 내질러 아린이를 향하던 팔을 쳐내고 살덩어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눈알들이 터지며 핏물이 튀어. 시야가 가려진 틈으로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아린이가 베어냈다.
팔이 잘려 나간 그것이 순식간에 팔을 재생시키고는 굉음과 함께 미궁의 벽들을 부숴대며 무식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을 인지하고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공격을 피한 뒤. 투기를 담은 주먹을 내질러 턱으로 추정되는 곳을 강타했다.
콰지지직!
수박이 터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박살 난 그것이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그에에에엑!”
순식간에 머리를 재생하고는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는 그것에게 아린이가 달려들어 일격을 가했다.
가슴이 검에 크게 벌어짐과 동시에 촉수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아린이의 팔다리를 붙잡았다.
촉수에 붙잡힌 곳이 살이 타는 듯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올라와. 황급히 아린이에게 다가가 촉수를 뜯어내었다.
“괜찮아?”
“으, 응…. 괜찮아.”
말은 그렇게 했어도 아린이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단순한 속박이 아니었는지. 검게 타버린 듯한 아린이의 손목에 입술을 짓씹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들끓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조차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그대로 몸을 돌려 그것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을 담은 주먹이 몸에 닿을 때마다 살점들이 터져나가고 재생하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아린이를 향해 접근하는 그것의 행동에 점점 분노가 치솟았다.
투기가 치솟으며, 마력과 합쳐졌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미궁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나를 무시하고 아린이에게 접근하던 것을 멈추고는. 몸에서 촉수들을 내뿜어 나를 공격 했다.
마력을 담은 주먹으로 촉수들을 쳐냈다. 염산에 녹듯 타들어 가는 주먹을 재생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휘둘렀다.
촉수의 수가 조금씩 더 늘어나며, 주먹에서 벗어나 몸에 닿는 횟수가 늘어났다.
촉수에 닿아 갈비뼈가 드러나며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아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촉수 몇 개들이 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등 뒤에 있던 아린이를 향해 쇄도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황급히 아린이의 앞으로 달려가 쇄도하던 촉수를 쳐냈다.하지만 만신창이의 몸 상태여서 따라잡지 못한 몇 개의 촉수가 아린이를 공격했다.
뒤늦게 아린이를 감싸던 촉수를 손으로 찢어버리고, 아린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숨기려 입술을 깨물고 있는 아린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팔다리 곳곳에 촉수의 흔적이 남아 살이 녹아버린 모습에 머릿속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러자, 몸속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온몸의 혈관 속 피가 소용돌이치며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엄청난 힘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전신에서 투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너무나도 강력한 투기에 이것을 몰아내지 않으면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오른 주먹을 뒤로 당긴 뒤. 촉수를 뿜어내고 있는 녀석에게 그저 주먹을 내질렀다.
투기가 발산되며 촉수들이 터져나갔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녀석의 본체에 투기가 닿았다.
투드득
살점이 터져나가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려왔다.
터져나간 육체의 재생을 반복했지만. 투기에 갈기갈기 찢겨나가 육체 자체가 소멸하였다.
몸 안을 감돌던 투기가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투신의 가호]가 내게 힘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투신의 가호를 사용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것이 떠올랐다.
주먹을 수천 번을 휘두르고 마인과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도 변화가 없기에.
단순히 자가 치유 능력과 투기를 내뿜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금 전. 정체 모를 살덩이를 없앤 그 힘이 진정한 [투신의 가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용법이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자연스레 깨달았다.
생각에서 벗어나 황급히 쓰러져 있는 아린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촉수에게 당한 상처를 자가 치유한 나와는 다르게 아린이의 팔다리는 독에 중독된 듯. 검게 변해 점점 그 부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다다다닥!
걱정스레 아린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또다시 어둠 속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이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 황급히 안아 들었다.
“조금만 버텨 아린아. 금방 나갈 수 있어.”
의식을 잃어가는 아린이의 모습에 입술을 깨물고. 붉은 실을 따라 출구를 향해 무작정 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