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다이달로스
* * *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푸른 선들을 본 백진희는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앞으로 신아린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조민성이 황급히 마력을 거둬들이자. 신아린의 뒤에 몸을 숨긴 채 손으로 신아린의 턱을 붙잡아 자기 말에 맞춰 움직였다.
“나도 죽일 거야 민성아?”
미간을 찌푸린 조민성이 백진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른팔에 푸른 선을 휘감으며 신아린을 피해 백진희의 목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백진희는 계속해서 신아린을 이용해 조민성의 공격을 멈춰 세웠고, 신아린을 공격할 수 없었던 조민성은 마력을 거둬들이는 반동으로 피를 토해냈다.
백진희에게 붙잡힌 신아린을 뺏어내려 의수를 뻗었지만, 어느새 만들어진 얼음 창이 의수를 꿰뚫어 부숴버렸다.
그 틈에 조민성이 만들어낸 푸른 선이 침대를 뚫고 백진희의 등 뒤에서 나타나 몸을 찔렀지만, 예상이라도 한 건지 얼음벽이 나타나 공격을 막았다.
“넌 절대 날 못 이겨 조민성.”
비웃는듯한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침음을 흘렸다. 사실이다. 동귀어진을 각오한다면 모를까. 신아린이 백진희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는 백진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조민성은 거리를 벌려 김성현의 뒤로 물러섰다. 백진희의 공격에 이성을 잃어가는 김성현의 목덜미를 붙잡자. 미친 듯이 투기를 뿜어내며 발광해댔다.
“진정해. 신아린을 구해야지.”
마력을 이용해 감정을 강제로 억누르자 김성현은 발광을 멈추고 거칠게 호흡을 내쉬었다.
“백진희….”
신아린을 붙잡고 있는 백진희에게 김성현은 이를 갈았다.
“지원해줄 테니 틈을 만들어라. 이대로 싸운다면 신아린이 위험해.”
“방법이 있는 거지?”
“그래.”
조민성을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김성현이 주먹에 투기를 감싸자. 푸른 선들이 팔 주변으로 나선 하기 시작했다.
“간다.”
“준비됐다.”
조민성이 마력을 끌어올리고, 김성현의 허벅지에 힘을 줘 뛰쳐나갈 준비를 할 때. 언령이 방안을 울렸다.
“멈춰.”
작은 중얼거림과 다름없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력이 방안의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끄르으윽….”
백진희의 언령을 풀어낸 조민성이 황급히 김성현의 등에 손을 갖다 댔다. 언령으로 인해 멈춰진 심장이 조민성의 마력으로 다시 움직이자. 김성현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김성현의 등에 닿은 손에서 푸른 마력이 흘러나와 전신을 휘감았다.
“언령의 통제는 막았다. 준비됐나?”
대답 없이 주먹을 드는 김성현의 모습에 조민성은 등을 밀어내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린이를 빼앗으려 달려드는 김성현을 우습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백진희가 신아린의 몸을 앞세우며 막아섰다.
백진희의 행동을 예상한 조민성이 벽 안에 숨겨두었던 푸른 선들을 신아린을 붙잡고 있는 팔을 향해 쏘아냈다.
하지만 팔에 푸른 선이 닿기 전에 하얀 배리어가 모습을 드러내 공격을 막아섰다. 푸른 선들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배리어를 두들겼지만, 뚫어낼 수는 없었다.
그 틈에 근접한 김성현이 배리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가, 거대한 반동으로 또다시 몸이 뒤로 튕겨 나가 벽에 부딪쳤다.
“이 씨발 또….“
벽의 파편을 치우며 몸을 일으키는 김성현을 보며 백진희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열려고 할 때. 바로 옆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신아린을 붙잡고 있던 백진희의 팔이 잘려 나갔다.
자기 팔을 잘라낸 은발의 암살자에게 고개를 돌린 백진희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 일리아.”
그 태연한 모습에 일리아는 분노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다시 보라색의 단검을 휘둘렀지만 얼음의 벽이 막아섰다.
“감히 날 조종해?”
“흐응, 세뇌에서 풀려놨나 봐?”
도발하는 듯한 백진희의 비꼬는 목소리에 신살(??)의 형을 갖춘 일격(一?)을 내질렀지만, 백진희의 주변에 나타난 수십 개의 얼음 창이 일리아의 전신을 찔러 들어왔다.
황급히 검을 회수한 일리아는 신아린을 붙잡고 그대로 조민성에게 몸을 내던졌고, 기다리고 있던 조민성이 푸른 선을 만들어내 얼음 창과 공중에서 격돌했다.
얼음 부스러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을 일으킨 김성현은 얼른 신아린에게 다가가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는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바닥을 뒹굴던 잘려 나간 백진희의 팔이 마력으로 공중에 붕 뜨더니 절단면에 달라붙었다. 찬란한 광원이 끝나자. 팔에 이상이 없는지 주먹을 쥐며 백진희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인사들이 너무 과격하잖아.”
허공에서 얼음으로 된 검을 뽑아 든 백진희가 툭 하고 자기 어깨에 검을 올려뒀다.
“자꾸 그러면 죽이고 싶은 데.”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가 방안 모두의 귓전에 맴돌았다. 목 언저리에 얼음을 갖다 댄 듯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살의와 적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어깨 위의 검을 앞으로 내민 백진희는 살기가 담긴 서늘한 음색으로 말했다.
“그럼 3명 중에서 1명만 죽일게”
선심이라도 쓰듯. 그리 말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김성현이 으르렁거릴 때. 일리아가 엄지를 들어 김성현을 가리켰다.
“그럼 나는 이 쓰레기.”
“뭐? 이런 미친년이….”
“나도 찬성이다. 다수결로 김성현을 뽑겠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김성현이 어이없어하며, 투기를 끌어올릴 때 조민성이 손을 들어 김성현을 제지했다.
“하지만 김성현을 죽일 수는 없을 텐데?”
“뭐…? 뭔 소리야 그건 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김성현이 멍청한 소리를 해댔지만, 조민성은 무시한 채 백진희와 시선을 교환했다.
“정답이야.”
씨익 웃음을 지으며, 얼음 검을 공중에 내던져 사라지게 만든 백진희는 갑자기 연극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 곧 연극의 막이 오를 테니. 관람객들은 자리에 앉아 관람 준비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 말하며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을 지으며 입술에 손을 얹고는, 김성현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원하는 게 뭐지?”
백진희가 괜히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조민성이 그리 말하자.
순박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비현실적인 외모에 걸맞게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지만. 조민성에게는 역겹게만 느껴졌다.
“원하는 건 없어. 그냥 심심했던 것 뿐이니까. 아, 내 계획을 망칠 준비는 다 끝났어?”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왜인지 모르게 심장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막이 만들어낸 거대한 연극. 무대 위의 배우들을 조종하면서, 그 예견된 극(?)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달관하듯, 그저 내려다보는 괴물. 진정한 초월자.
그래서 더욱 꺾고 싶었다. 백진희가 꾸며놓은 수많은 계획을 모조리 자기 손으로 망치고 싶었다.
검은 장막을 들춰낸다면 백진희의 본심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을 조민성은 알고 있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김성현이었으니까.
속내를 숨기고 조민성은 태연한 목소리로 답했다.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흐응, 더욱 기대되는 걸.”
밝은 미소를 짓던 백진희는 당장에라도 단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는 일리아와 으르렁거리며 신아린을 등 뒤에 숨긴 채 주먹을 드는 김성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조민성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는 둘을 조민성이 급히 푸른 선으로 제지했다.
위협적으로 주변을 나선 하는 푸른 선의 공간으로 들어온 백진희는 김성현과 일리아가 못 듣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잊지마. 계약의 규칙. 큰 흐름을 완전히 깨버린다면. 내가 회귀해버릴지 몰라.”
“…그래.”
조민성의 대답에 미소를 지은 백진희는 김성현과 일리아의 곁을 지나쳐 방을 빠져나가다, 문을 반쯤 열고서는 몸을 돌려 신아린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어.”
즐거운 듯 눈을 빛내며 신아린을 가리키고 있던 손가락을 조민성에게 옮겼다.
“잘 해결해봐. 다이달로스”
그 한마디를 남기고 방을 나가는 백진희의 뒷모습을 조민성은 한참을 노려봤다.
***
백진희가 사라진 방안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조민성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고, 일리아는 칠격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 둘을 바라보던 김성현은 신아린을 품에 안은 채.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칠격은 아린이를 납치하려 했던 전적이 있었고. 조민성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놈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플라틴의 본사로 가자. 이곳보다는 안전할 거다.”
조민성의 말에 김성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대로 이곳은 위험했지만, 플라틴의 본사로 가는 것이 더 위험할지도 몰랐다.
“하나만 묻자.”
김성현의 말에 조민성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했다.
“너 아린이를 좋아하냐?”
칠격과 백진희에게서 아린이를 구한 일.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조민성이 그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한 조민성이라면 오히려 아린이가 죽어가는 걸 흥미롭게 지켜보는 미친놈이었으니까.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왜 아린이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는데?”
그 말에 통화를 하던 일리아가 고개를 돌려 김성현을 바라보며 경멸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쓰레기새끼.”
일리아의 말에 무어라 대꾸하려는 김성현에게 조민성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네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구나.”
“난 제정신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냐고 따지는 것이?”
조민성이 서늘한 목소리로 되묻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좁힌 채 김성현은 머리를 긁어댔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하지만 아린이는 내 것이니까…. 내 소유인데 왜 네가 멋대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점점 숨이 거칠어지는 김성현의 모습에 조민성은 분노로 뻐근해진 목덜미를 부여잡았다.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거겠지.”
그 혼잣말에 통화를 끝낸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리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조민성은 김성현의 품안에 있던 신아린을 일라이에게 떠넘기고, 곧장 턱을 주먹으로 후려갈겼다.
고개가 돌아간 김성현이 다시 고개를 제자리로 돌렸을 때는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이성을 잃고 분노에 빠져 투기를 줄줄 흘리며 김성현은 조민성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공격을 피한 조민성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일단 넌 좀 맞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