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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34화 (134/160)

〈 134화 〉 λαβρινθο

* * *

"자. 방학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다들 이번 주까지만 열심히 하자. 백진희랑 신아린. 김성현은 오늘도 결석이야? 삼총사끼리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건가?"

담임 선생님의 말에 조민성은 무심코 몸을 돌려 비어있는 신아린의 자리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신아린을 본 지 3일이 지났다. 백진희는 아직 결계 속을 헤매고 있으니. 김성현의 곁에 있으라는 조언을 듣고 야반도주라도 한 걸까.

어디로 도망친다 해도 결국 백진희가 돌아온다면 아카데미로 돌아와야 할 텐데.

부질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앞으로 있을 계획을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김성현 걔 요즘 신아린 방에서 안 나온다던데?"

"진짜?"

"진짜야. 첨보는 여자들도 신아린 방으로 가던데?"

쓰잘머리 없는 대화였다. 그 둘이 방에서 무얼 하건 자신과는 상관없었으니까.

수업이 끝난 후. 교실 밖을 나오자.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민성…”

“뭐야. 수업 끝나고 등교하는 거야? 양아치네.”

조민성의 말에 김성현은 얼굴을 굳히며. 엄지를 들어 뒤로 손짓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조민성은 장난을 지우고 김성현을 따라 본관의 뒤뜰로 나갔다.

“무슨 일 있­”

콰아아앙!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본능적으로 푸른 선으로 막아내자 굉음이 터졌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도 없이 곧장 반대편 주먹을 휘두르는 탓에. 마력을 끌어올려 맞서 싸웠다.

투박하고 무식한 공격을 가볍게 회피하고, 푸른 선을 이용해 김성현을 속박하자.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속박을 풀어냈다.

김성현은 곧장 주먹에 투기를 담아 달려들었지만, 조민성은 왼팔에 낀 의수로 턱을 갈겼다.

뇌가 흔들리는 고통에도 김성현은 무식하게 주먹을 내리찍었다.

이미 김성현이 공격할 것을 예측한 조민성은 김성현의 몸을 푸른 선으로 휘감은 뒤. 마력을 담아 있는 힘껏 복부를 강타했다.

“컥!”

토막 난 숨을 내뱉으며. 무릎을 꿇은 김성현에게 푸른 선들이 쇄도하며 온몸을 빠짐없이 속박했다.

그런데도 계속 팔을 휘두르려는 김성현의 탓에 조민성은 한 번 더 턱을 후려갈겼다.

“무슨 짓이야?”

“크흑, 이 씨발…!”

짜악­!

마력을 이용해 공기의 흐름을 어그러트려 터져나간 공기로 김성현의 뺨을 갈기자. 더욱 발광했다.

“대화할 정신이 아닌가 보군.”

고개를 저으며. 뒤를 돌아 플라틴으로 향하려던 조민성의 뒤로 김성현의 외침이 들려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이 씨발새끼야!!! 아린이에게 무슨 짓 했어! 무슨 짓 했냐고!!!”

“…뭐?”

“아린이에게 무슨 짓­”

조민성의 주변 공기가 마력으로 짓눌렸다. 김성현을 속박하던 푸른 선들이 온몸을 터트려버릴 정도로 강하게 몸을 압박했다.

“돌려내. 아린이 돌려내!!!”

온몸이 비틀리면서도 발작을 멈추지 않는 김성현의 모습에 조민성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

발광하던 김성현을 쉼 없이 구타해 이성을 되찾게 했다.

그 뒤. 김성현을 따라 신아린의 방으로 간 조민성은 침대에 앉아 있는 신아린의 모습을 보고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아주 오래전. 그날 보았던 신아린의 얼굴이 겹쳐졌다.

“미안해 민성아….”

조민성은 고개를 휘저었다.

겹친 기억이 흐트러지고. 빛과 생기 하나 없는 흑요석같이 예쁜 눈동자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신아린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초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감정 없는 인형의 삶을 살던 신아린의 모습과 똑같았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아린이한테 무슨 짓 했어!”

또다시 발광하는 김성현을 마력으로 제압해 바닥에 쓰러트린 뒤. 푸른 선으로 속박시켰다.

침대에 다가가자. 신아린의 얼굴이 조민성에게 향했다. 의지로 행한 것이 아닌. 단순한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신아린.”

침대에 걸터앉아 신아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흑요석 같은 검은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팔에 푸른 선을 휘감아. 신아린의 관자놀이에 손을 갖다 대자. 바닥에 쓰러져있던 김성현이 무어라 말하며 발작하기에 입까지 틀어막았다.

푸른 마나가 찬란한 섬광을 내며, 신아린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신아린의 심상(心?)이 어둠 속에 파묻혔다. 아무리 찬란한 빛을 내뿜어도. 그 어둠은 빛마저 흡수해버렸다.

그런데도 조민성은 포기하지 않고 마나를 쏟아부어 신아린의 심상 속을 파고들었다. 무엇이라도 남아있는 흔적이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이 김성현을 향한 두려움과 배신감이라는 것을 깨닫자. 조민성의 머릿속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마력이 들끓었다. 감정의 통제를 벗어난 마력이 기숙사 전체를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기숙사의 기둥과 벽에 쩍­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김성현이 손짓 한 번에 조민성의 앞으로 끌어올려졌다.

“무슨 짓을 했지.”

격노한 탓에 조민성의 얼굴에 혈관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온몸을 으스러트리듯 압박하는 푸른 선에 김성현은 저항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아니라 네가 그런 거잖아!”

“똑바로 말해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린이랑 호텔에서 네가 한 짓!”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지친 신아린을 쉬게 했을 뿐.”

“거짓말하지 마! 아린이의 상태창이 사라졌어. 네가 개수작 부린 거잖아! 돌려내. 돌려내라고!!!”

그 말 같지도 않은 억지에 분노한 조민성이 김성현에게 다가가 시선을 마주했다. 갈색의 눈동자와 시선을 교환한 조민성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각성 전. 김성현은 눈에 거슬리는 버러지였다. 성욕으로 신아린을 탐했으며. 열패감의 덩어리였다.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질투했으며 시기하여 신아린을 뺏길까 두려워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그 눈에서 ‘애정’을 잃어버린 적은 없었다. 그것이 성욕, 소유욕이 만들어낸 애정일지라도. 신아린에게 보내는 애정은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조민성의 육안에 보이는 김성현의 눈빛에는 소유욕과 질투, 시기 같은 추잡한 것들만 있을 뿐.

애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의 분노만 있을 뿐.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충동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신아린이 기억 속에 있던 영또플의 김성현과 지금의 모습은 위화감이 있었다.

그 이질적인 느낌에 조민성은 푸른 선을 휘감은 오른손으로 김성현의 심상을 엿보려 했으나. 무언가가 틀어막고 있었다.

틀어막고 있는 틈새로 기시감이 드는 마력이 느껴졌다. 신아린을 세뇌했을 때. 백진희가 사용하던 마법 구조에 사용되던 마력과 같았다.

“너. 백진희와 무슨 짓을 한 거냐.”

“뭐…?”

“네게 백진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세뇌는 불가능할 텐데. 어째서 네 머릿속에서 백진희의 마력이 느껴지는 거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김성현이 세뇌당하고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백진희가 김성현에게 무언가를 했다. 하르마게돈을 대비해 김성현에게도 보험을 들어놓은 걸까.

“신아린을 구하고 싶으면. 입 닥치고 이성을 되찾아라. 흥분해서는 아무것도 안 돼.”

조민성의 말에 김성현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심호흡을 했다.

“백진희가 네게 무언가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나?”

“없어…”

“그럼 네게 유물이나 영약 같은걸 준 적이 있나?”

“그런 적 없…”

무언가 생각났는지. 말을 멈춘 김성현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예전에… 기한신과 싸울 때 백진희가 하나 준 거 먹은 적 있어.”

“뭐지?”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

김성현의 말에 조민성이 턱을 쓰다듬으며 미노타우로스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 작게 김성현이 말을 이어갔다.

“…고환.”

“뭐?”

“미노타우로스의 고환을 먹었다고!”

김성현의 외침에 조민성의 머릿속에 무언가 퍼즐이 맞춰진다. 신아린의 기억 속에 있던 붉은 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 백진희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기억들.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짜 맞춰졌다. 신아린과 김성현을 붉은 실로 묶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함정이었군.”

쨍그랑

조민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창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김성현의 뒤편의 공간이 깨져나갔다.

깨져나간 공간 속 어둠 속에서 선명한 백발이 조민성의 눈에 들어왔다.

“안녕?”

그늘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와 함께 백진희가 인사를 건넸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백진희는 자연스레 신아린의 앉아 있는 침대로 다가가 부드럽게 뺨을 쓰다듬었다.

“흐응, 이렇게 잘 익을 줄이야. 전혀 생각 못 했는데. 고생했어 김성현.”

“뭐…? 무슨 개소리야?”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한 김성현의 모습에 조민성은 한숨을 내쉬고 김성현의 속박을 풀었다.

“그래도 아린이는 감정 있을 때가 갖고 놀기 좋았는데 말이야.”

신아린의 뺨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장난스레 말하는 백진희에게. 김성현이 씩씩대며 다가가다 허공에서 생겨난 얼음 창에 무릎이 꿰뚫렸다.

“끄윽…이 씨발! 무슨 짓이야!”

“쉿. 인형 놀이 할 때는 건드리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아린이의 손을 들어 자해하듯 스스로 얼굴을 툭툭 치게 하는 모습에 김성현이 분노에 찬 얼굴로 몸을 일으켜 백진희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김성현의 주먹이 백진희에게 닿기 전. 김성현의 몸이 허공을 날아가더니 벽에 부딪쳤다.

조민성은 그런 김성현을 무시하고. 푸른 선을 주변에 만들어내 나선 시킨 뒤. 백진희에게 말했다.

“그 손 놓지.”

“어머, 질투하는 거야?”

보란 듯이 신아린의 팔을 잡고 휙휙 대는 백진희의 모습에 조민성은 심장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분노는 오히려 침착함을 만들어내는 감정이었으니까.

“네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아린이랑 너는 이뤄질 수 없는 설정인 거 알잖아?”

그 말에 폭발하듯 나선 하던 푸른 선들이 백진희를 향해 쇄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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