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흉중
* * *
수업이 끝나고 나는 곧장 백진희와 훈련장으로 향했다. 성현이는 그런 내가 못마땅한지, 차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죄책감만 더해졌을 뿐 내 결심을 흔들지는 못했다.
백진희가 내 훈련을 도와주려는 방법은 간단했다.
실전과 같은 위험성을 가진 대련의 반복.
훈련의 목적은 내게 부족한 실전의 경험을 쌓아주기 위함이었고, 백진희는 모르지만. 금제 안에 잠들어 있던 내 과거의 경험을 내 것으로 소화하기 위함도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진검을 사용한 대련은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금지였지만, 백진희가 세뇌한 건지. 우리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대련장을 대여할 수 있었다.
내 결심을 확인하려는 듯,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검을 휘두르는 백진희 덕에 온몸의 피투성이가 된 채. 마인화의 재생능력으로 가까스로 버텼다.
[초고속]의 능력을 웃도는 속도로 나와 검을 맞댄 백진희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몇 번이나 내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훈련이었기에 그 칼이 내 목을 완전히 베지는 않았으나, 마인화가 아니었다면 훈련장에 피를 쏟아내며 쓰러질 정도의 상처는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젯밤에 각성한 [생존 본능]과 [이해력]이 합쳐진 능력으로 기억 속에 있던 `실전 감각`을 이해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여 백진희가 놀랄 정도로 가파른 성장을 했다.
물론 두 합 만에 목에 검이 닿는 것에서 여섯 번 만에 닿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지만. 한 시간의 성과로는 무척이나 대단한 것이라 백진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에 적신 수건으로 대련장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흘린 피를 닦아내 주며 칭찬을 건넸다.
"역시, 아린이는 재능이 있어. 내 라이벌이라는 설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나 봐."
그렇게 말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백진희에게 나는 굳이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껴 고개만 끄덕였다.
"아니면, 어젯밤 위로가 도움이 된 걸까?"
서늘한 손길로 내 목덜미를 쓰다듬는 백진희의 손길에 소름이 돋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응. 많은 도움이 됐어. 그리고 네가 잘 가르치는 것도 있으니까."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부드러운 손길로 내 몸을 쓸어내리던 백진희는 속삭이듯 되뇌었다.
"강해질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새하얀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나는 무심코 어젯밤 일이 떠올랐다.
그래, 나를 향해 흉중을 품고 있는 백진희를 꾸며진 속내로 속아 넘겼던 어젯밤을.
***
처음엔 진심이었다. 사람의 본성은 어디로 가지 않는지, 나는 처음으로 강렬하게 느낀 죽음의 공포에 이성이 마비되어 백진희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노력과 책임을 남에게 미루던 나의 이기적인 본성이 절박한 상황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달라붙어 어리광을 부리듯 칭얼대던 나를 위로하듯. 부드러운 키스를 한 진희가 나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진심으로 의지하고 싶었다.
"약속했잖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그 말에 생존 본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당장 도망치라고, 거미줄에 몸을 내던지지 말라고. 본능이 온갖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생존본능]은 공포와 두려움에 이성을 잃어가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내 [이해력]과 합쳐졌다.
그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에서 이뤄진 [생존 이해력]은 나를 논리로 설득해, 이성을 되찾게 했다.
공포와 두려움, 흥분과 안도감으로 가득 차 있던 멍청한 머릿속을 비집으며, 이성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생존 이해력이] 추론을 시작했다.
죽었던 기한신이 살아있다. 그렇다면, 시체를 처리했다던 백진희의 말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한신은 백진희와 한 편인 것일까.
기한신을 이용해 나를 체벌하여 성현이와 나를 기아스로 엮을 함정을 파놓은 백진희가. 기한신의 죽음을 위장해, 세뇌한 채로 칠격에 넣은 것이라면?
거기서 더 나아가 칠격 전부를 세뇌하고 있다면? 가능성이 있었다. 학교의 도서관 사서까지 세뇌한 백진희라면, 오늘의 습격도 칠격을 세뇌한 백진희의 계획일 수 있다.
단 한 번도 이 늦은 밤에 내 방에 찾아온 적 없는 백진희가 내가 습격당한 날에 `우연히` 방문했을 확률보다. 흉중을 숨기고 나를 찾아왔다는 게 더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미친 듯이 발동하는 [이해력]이 무언가 의문점을 남겼다. 그럼, 조민성은 무엇일까.
칠격에게 납치당할 뻔한 나를 구한 조민성은 도대체 누구 편인 걸까. 상황을 다시 생각할수록 그 의도가 분간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조민성의 난입으로 계획이 일그러져 당황한 칠격의 모습은 절대로 연기가 아니었다. 조민성의 개입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으니까.
백진희의 편이었다면 조민성이 칠격의 일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민성은 내 편일까.
아니면, 조민성의 말대로 남의 계획을 부수고 싶어서 우연히 나를 도와 준걸까?
조민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 쌓여갔다. 생각할 수록 조민성의 행동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테니글로라는 벌레의 독으로 나를 중독시키고, 내 본능을 끌어내려 죽기 직전까지 고문했던 `싸이코` 조민성과.
백진희의 세뇌를 눈치채고, 요정왕의 팔찌로 세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마인의 테러를 막고 칠격에게서 나를 구해준 `파트너` 조민성.
정말로 `남의 계획을 부수고 싶은 악취미`가 만들어낸 변덕 탓에 나를 도와 준걸까.
마인이 플라틴의 본사를 습격해 아버지와 임원이 모두 죽어, 절대 권력을 손에 쥔 게 우연이었을까.
금제 속의 신아린이 내게 조민성에 대해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조민성은 네 파트너가 □□□□□"
신아린은 조민성에게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무엇을 이해했던 것일까.
문득 조민성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성현이 동생을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말이야.""구했다고…?""그럼, 내가 안 구했으면 그대로 마인의 공격에 죽었을 텐데?"
정말로 조민성이 말 그대로 성은이를 구해준 것이라면? 지금 생각해보면 조민성이 굳이 성은이를 납치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를 공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미끼라고 치기에는, 성은이를 굳이 납치하지 않아도 조민성의 마법 능력이라면 혼란스러웠던 그 날. 남들의 시선을 피해 나를 납치할 수 있었을 텐데.
마인의 테러를 알고 있었냐는 내 질문에 알고 있었다는 대답을 하던 것도 떠올랐다.
"요점을 잘 짚네. 알고 있었지.""어떻게?""비밀."
비밀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 비밀을 안다면 조민성이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미친 듯이 발동하던 이해력이 한 가지를 떠올리며, 찰나의 추론을 멈췄다.
조민성은 백진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수백 수 천에 달하는 계책과 모략을 꾸미는 광기의 책사.
백진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조민성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편이라고 정하는 것보다. 조민성이라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생각하는 게 지금은 더 나을지도 몰랐다.
[생존 이해력]이 만들어낸 찰나의 순간이 끝나고.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진희의 모습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해]되었다.
진희를 놓칠까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어깨에 얼굴을 파묻어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알았지?"
그 달콤한 유혹에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수풀에 떨어진 듯한 소름이 올라왔다. [생존 본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백진희는 나를 다시 한번 원하는 데로 조종하려, 위로라는 핑계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분노와 배신감이 치솟았지만, 아랫입술을 깨물고 참아냈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음을 경험으로 깨달았으니까.
냉정하게 판단하면, 지금의 나는 백진희를 이길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백진희의 말을 부정하거나 거절할 시, 백진희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몰랐다.
[생존 이해력]이 다시 한번 발동되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내게 이득을 가져오며. 백진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방법.
나를 조종하려는 백진희에게 속아 넘어가는 척. 역으로 백진희를 내 성장에 이용하는 것.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말처럼.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백진희의 곁에 있어야 했다.
나는 떨림을 감추고 물기 젖은 목소리로, 애원하듯 대답했다.
"그럴게."
백진희가 가장 원하는 행동을 했다. 무기력을 보여주며, 내 목숨줄을 스스로 손에 건네주는 것.
내 대답이 정답이었는지, 자기 어깨에 파묻은 내 얼굴을 떼어낸 뒤. 보상으로 다시 달콤한 입맞춤을 건네는 백진희의 모습에 나는 긴장으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성현이는 다른 여자랑 있나 보네?""응….""아린이는 위로가 필요한데 말이야."
그 말에 대답할 시간도 없이 진희는 또다시 내 턱을 당겨 입술을 덮쳐왔다. 혀가 얽힐 때마다 뇌가 달궈지는 느낌이었다. 열기가 치솟은 몸은 매일 같이 느꼈던 자극과는 다른 쾌락에 더욱 흥분했다.
항상 백진희에게 끌려다니던 내가, 이번에는 백진희를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속여 넘기고 있다. 성취감과 비슷한 처음으로 느껴보는 묘한 쾌락이 느껴졌다. 내 의도를 들키지 않을까 긴장된 육체 탓에 본능적으로 감았던 눈을 떠, 진희의 새하얀 눈동자를 응시하자, 그 눈빛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열기로 가득했다.
키스를 멈추고, 진희는 쾌락으로 녹아버린 나를 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은 내가 위로해줄까?"
그 말에 대답하듯, 나는 진희의 몸에 달라붙어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백진희를 꼭 끌어안아 내 표정을 숨겼다.
백진희를 처음으로 속였다는 생각에 기쁨의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
그 뒤로는 내가 연기할 것이 없었다.
그저, [이해]한대로 백진희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됐으니까. 내 모든 걸 맡긴다는 듯이. 백진희가 없으면 안 된다는 듯이 몸을 밀착하며, 매달리고 애원하며 애무의 손길이 주는 쾌락을 온전히 느끼면 됐으니까.
나를 씻겨준 백진희는 능숙하게 나를 침대로 끌고 가, 내 몸의 곳곳을 애무했다. 연인을 품듯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껴주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이끌었다.
허벅지를 쓰다듬던 희고 긴 손가락이 질구에 닿자, 조금 놀라 다리를 오므렸다가. 백진희의 시선에 다리를 벌리자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균열을 따라 애액에 젖은 손가락을 쓸어올려 클리를 자극했다.
"흐으읏…하으응…흐응…."
자연스레 입 밖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혼자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성현이에게 애무 당할 때와도 달랐다. 같은 여자라서 여자의 몸에 더욱 잘 아는 것일까. 성현이와 마찬가지로 백진희의 손놀림은 매우 능숙했다.
목줄을 채워 절정으로 끌고 가게 만드는 거친 성현이와는 다르게. 느리지만 스스로 절정으로 향하도록 섬세하고 부드럽게 온기로 이끄는듯한 애무는. 발정이라도 난 것처럼 애액을 줄줄 흘리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말 딱 좋은 타이밍에 키스하여, 혀를 얽히며 질구를 자극하는 손길은 내 작은 경계심마저 녹여버려. 내 머릿속을 음란한 쾌락으로 채워버렸다.
"흐으응…흐읏…흐응…."
부드럽게 질 내로 백진희의 손가락이 삽입되자 내 안을 파고드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스팟부분의 질 주름을 부드럽게 누른 뒤, 작게 손가락 끝으로 진동을 주자. 내 안을 채우던 쾌락이 조금씩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애액을 긁어내려는 듯, 갈고리를 만들어 안을 휘젓는 손길에 음란한 물소리가 끊임없이 방 안을 채웠다.
찔꺽찔꺽찌걱찌걱
"하으,하으응…흐읏…아핫, 아흐으응…!!"
질내를 휘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클리를 빠르게 자극하는 손길에. 그전까지 느린 손길에 적응하던 쾌감이 갑작스러운 질주에 억지로 끌려가 순식간에 절정에 도달했다. 애액을 뿜어내며 손가락을 꾹 조이자 질 안에 있는 손가락을 들어, 내 허리를 들어 올린 백진희는 그대로 클리에 혀를 갖다 댔다.
"하으윽, 하응…잠, 잠깐…흐아아앙…."
질 안을 휘젓던 손가락을 놓치지 않으려 꾹꾹 쪼이며, 클리를 빨아들이는 혀가 주는 쾌락에 머리가 새하얗게 불타버렸다. 팔다리를 마구 움직이며, 저항했지만 강한 힘으로 나를 놓지 않는 백진희는 질 안에 손가락을 추가로 집어넣고 질 안에서 클리가 있는 부분을 들어 올려, 발기해 포피가 벗겨진 클리가 더욱 혀에 휘감길 수 있도록 했다.
온몸의 신경이 클리에 모인 듯한 기분에 혀가 휘감길 때마다, 척추를 타고 기분 좋은 소름이 쉼 없이 올라왔다. 발가락을 요동치며, 침대 시트를 내 주변으로 모으며 쾌락에 저항했지만.
머릿속에 차오르는 행복감에 저항의 의지를 잃고 그대로 조수를 내뿜자. 그제야 입을 떼고는 부드럽게 내게 키스를 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민감해진 유두를 부드러운 손길로 자극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황급히 손을 들어서 막으려 했다.
더는 백진희가 내 몸을 애무하게 놔둔다면, 내 목적도 잊고 쾌락에만 빠질 것 같았으니까.
"위로가 됐어?"
예쁜 미소와 함께 새하얀 눈이 호선을 그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그 뒤에 숨겨진 치명적인 독이 있음을 이제는 알기에. 그 모습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응. 충분해. 더 하면 내일 수업 못 들 것 같아서…."
다행히 절정으로 녹아버린 내 얼굴 덕에 설득력이 있었는지, 백진희는 부드러운 입맞춤과 함께 내 옆자리에 누웠다.
흥분됐던 몸과 쾌락으로 움찔움찔했던 몸이 조금씩 진정돼가는 것을 느낄 때. 백진희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널 해칠까 봐 겁나?"
다정함 속에 담긴 칼날에 내 몸에 남아 있던 쾌락이 순식간에 증발하고, 긴장으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부터 백진희에게 끌려다니는 척을 하며. 내게 원하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응…."
최대한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며, 쾌락으로 글썽거리던 눈물을 억지로 힘을 줘 흘러내리자. 부드러운 손길로 눈물을 닦아주며 백진희가 말했다.
"아무도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강해지면 되잖아."
"어떻게…?"
"마석. 꾸준히 마석을 흡수하면 너는 S급의 마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럼 S급의 영웅이라도 너를 섣불리 건들 수 없을 거야."
백진희의 말에 나는 온몸이 떨려왔다. 내 예상이 맞았다. 백진희는 내가 마석을 흡수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도 S급의 마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내 아버지인 신재호도 내가 성장하기를 원한다. 백진희와 신재호가 내가 S급이 되길 원하는 건. 혹시 내가 마왕이 되길 원해서일까?
신재호는 내가 마왕이 돼, 세계를 지배하길 원한다면. 백진희는 내게 어떤 걸 원하는 걸까.
영또플의 마지막 히로인이자, 마지막 빌런인 내가 마왕이 되어.
예정대로 성현이의 손에 공략당하기를 원하는 걸까.
"시험 끝나면, 나랑 같이 마인 사냥하러 다니자. 마인에게 마석을 흡수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야지."
"응…. 근데 따로 부탁할 게 있어."
마석을 흡수하는 게 백진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최대한 뒤로 미뤄야 했다.
그렇다면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야 백진희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
"무슨 부탁?"
내가 부탁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백진희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내가 실전 경험이 없어서, 막상 싸울 때 겁이 나서 실력을 발휘 못 하거든…. 그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백진희에게 성장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간을 끌어 마석이 아니라도 내가 성장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검술 훈련이었다.
"흐응, 좋아. 연습 100번보다 실전 1번이 더 효과적인 법이니까. 실전과 같은 대련으로 혼자 마인을 사냥할 수 있도록 성장시켜줄게."
내 예상대로 백진희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만족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칭찬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계략이 성공했다는 안도감에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칠격과 싸우느라 마인화로 힘을 뺀 것도 있었고, 백진희의 일방적인 애무로 연속 절정해 피곤한 것도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버틴 것도 대단한 것이었다.
"…졸려."
결국, 피로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의식의 끝에서. 백진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미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