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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110화 (110/160)

〈 110화 〉 생존

* * *

"이제는 인사도 안 받아주나?"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짓는 조민성을 무시하며, 나는 조민성과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날 도와주는 거야?"

정황상 칠격에게 납치당하는 나를 조민성이 구해주는 모습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조민성이 나를 구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내 물음에 조민성은 웃긴 농담이라도 들었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남의 계획을 부수는 게 취미라."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오오누마와 일리아를 향해 푸른 선들을 화살처럼 쏘아냈다.

화살처럼 쏘아진 푸른 선들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자, 일리아가 그 앞으로 몸을 내던지더니 마력이 실린 단검을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 막아섰다.

콰과광­!

일리아의 칼날에 닿은 푸른 선이 폭발하며 주변에 피해를 확산시키려 했지만, 오오누마가 작은 결계를 만들어 폭발의 위력을 감소시켜버렸다.

가까스로 힘을 끌어올려 폭발을 막은 오오누마는 거친 숨을 내쉬며, 일리아와 함께 조민성을 경계했다.

아카데미생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민성은 이미 온전한 한 명의 영웅. 그 자체였으니.

오오누마와 일리아의 근처 땅바닥에서 푸른 선들이 솟구치더니 위협이라도 하듯 그 주변을 빠르게 나선 하며 긴 푸른색의 흔적을 남겼다.

"칠격이랑 거래를 하고 싶은데 말이야."

"거래 말인가?"

거래라는 말에 오오누마의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다. 칠격의 재력을 담당하는 오오누마는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노인네였으니까.

플라틴의 회장이 된 조민성이 거래를 하고 싶다 하니. 당연히 오오누마로써는 흥미가 생긴 것이다.

그런 오오누마와 다르게 자신들의 임무를 방해받은 것에 화가 났는지. 일리아는 화난 표정으로 단검을 내밀며 빈정거렸다.

"우리 일을 방해하고 거래를 하고 싶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될 게 뭐 있나? 마음 같아선 너희 다 죽여버리고 싶은 거 참아주는 건데. 그 정도는 양보해야지."

그 말과 함께 나선 하던 푸른 선이 오오누마와 일리아의 주변을 위협하듯 좁혀오자. 오오누마가 다급하게 일리아에게 소리쳤다.

"어허! 여기는 어른에게 맡기고 조용히 있거라!!!"

오오누마의 말에 일리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를 갈더니 단검을 내렸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도 죽은 척 그만하고 이만 일어나시죠?"

조민성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할 때. 머리가 날아간 기한신이 갑자기 상체를 일으켰다. 뇌가 터져나갔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구역질이 올라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빠르군."

머리가 터져나갔음에도 들려오는 기한신의 목소리에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기한신을 바라봤다. 포션이라도 부은것처럼 머리가 급속도로 재생하는 모습에 기한신도 나와 같은 마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인일리는 없다. 마인을 혐오하는 칠격에서 마인을 멤버로 받아줬을 리가 없으니.

"당신들은 눈치가 없나 보네."

그 말과 동시에 내 앞의 바닥에서 푸른 선이 튀어나와 나에게 날아오던 무언가를 막아냈다.

콰와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어났다. 뿌연 시야 속으로 푸른 선들이 어디론가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를 향해 또다시 무언가 날아오다 푸른 선에 막혀 터져나갔다.

"기한신 멈춰! 멋대로 행동하지 마라!"

오오누마의 말에 구체를 쏘아내던 기한신이 공격을 멈췄다.

언제든지 조민성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 구체를 만들어 놓고 있는 기한신과 뒤를 노리고 단검을 움켜쥐고 있는 일리아의 모습에 긴장이 들었다.

조민성이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세계 최강의 마법사가 될 잠재력을 가졌다 해도. 그건 말 그대로 잠재력일 뿐 현재 능력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걱정을 할 때 내 귓가에 문득, 사막의 바람처럼 건조하며 겨울의 바람처럼 서늘한 음성이 스며들어왔다.

"그냥 다 죽여버릴까."

칼날이 숨겨진 듯한 목소리에 담긴 끈적한 살의를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느꼈다.

진심으로 조민성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일지 고민하고 있다.

조민성의 말에 나도 온몸에 소름이 올랐다. 끈적한 살의를 뿜어내며 뱀 같은 미소를 짓는 조민성의 모습은 악명대로 살인귀의 모습 같아 보였으니까.

말 한마디에 전장에 긴장이 짙게 깔렸다. 나도 반동을 생각하지 않고 의념을 집중해 마인화를 할 준비를 끝마쳤다.

조민성이 변덕으로 날 구한 것처럼, 다시 변덕스럽게 나를 죽여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우리가 싸울 필요가 있을까."

갑자기 기한신이 말했다. 중재라도 하려는 듯, 구체를 없애고 양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현했다.

"우린 신아린만 데려가면 된다. 거래는 따로 얘기하면 되는 거고."

그 말에 조민성은 그저 비웃었다.

"신아린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굳이 말을 해야 하나?"

미간을 좁히며 답하는 기한신에게 조민성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주변을 짓누르는듯한 실기를 비산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면 죽인다."

기한신을 바라보며 칼날 같은 살기를 내뿜었지만, 그 말의 대상은 기한신이 아닌 배경과 동화되려던 일리아를 향한 말이었다.

조민성을 공격하려던 것을 들킨 일리아가 입술을 깨물며 단검을 허리춤에 찬 칼집에 집어넣자. 공기를 억누르며 비산하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묻지. 신아린을 데려가려는 이유는?"

"차성이 마인을 이용해 사람들을 납치하고 죽이고 있으니까."

분노에 찬 기한신의 목소리에 나는 내 `갈증`을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차성이 만들어내고 있는 `공장`을 막아내기 위해서 신아린을 납치하려 했다."

"공장?"

기한신의 말에 나는 무심코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내 말을 들은 기한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모른 척 하는 건가?"

"아니. 내 파트너는 정말로 공장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걸?"

조민성의 말에 기한신은 나에게 의심이 짙은 투로 물었다.

"정말로 공장에 대해 몰랐나?"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정확히 공장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내 `갈증`과 연관돼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기한신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차성이 만들어낸 공장은 사람들을 납치해 강제로 마인으로 만든 뒤, 심장을 갈라 마석을 채취하는 곳이다."

그 말에 나는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고? 애초에 마인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마족과 계약하여 그 피를 마신 사람이 마인이 되는 것이지. 공장처럼 무차별적으로 마인을 찍어낼 수 없는 것이다.

내 눈빛에 담긴 불신을 읽었는지. 기한신은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공장 안의 컨테이너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감금되어 있었다. 마인의 테러로 실종되거나 사망 처리된 사람들이 사실은 차성의 공장 안에 갇혀 마인이 돼가고 있던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순연동을 불태운 마인의 테러에서 사라진 실종자들이 마인이 된 채 그곳에 있더군."

"개소리 하지 마…."

기한신의 설명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자. 기한신이 무어라 내게 말을 하려 했지만, 조민성이 손을 들어 막아섰다.

"자, 자 됐고. 나는 칠격과 거래할 게 있으니까. 파트너는 기숙사로 돌아가."

"뭐? 잠깐! 방금 설명 못 들었어? 차성은 마인이랑 결탁했다니까!"

일리아가 끼어들었다. 나를 이대로 놓아주려는 조민성의 행동에 화가 났는지. 화난 새처럼 눈을 좁히며 따졌다.

"그 차성이랑 결탁한 건 나라는 걸 모르나?"

조민성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대답하자. 일리아가 이를 갈며 단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차성이 마인이랑 결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네?"

일리아의 온몸에 예기가 깃들었다. 살기와 뒤얽힌 마력이 주변으로 발산했다.

칠격중에서도 마인을 극도로 혐오하는 일리아답게 조민성의 말에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일리아의 눈썹이 적의로 꿈틀거렸다.

"대답해."

그 물음에 조민성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역시, 대화가 안 통하는 놈들이야. 그렇지?"

그 말과 함께 강렬한 적의를 내뿜으며 단검을 뽑아 순식간에 조민성의 뒤로 다가온 일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선연한 살의가 바로 뒤에 근접했음에도 조민성은 뱀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며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말했다.

"심상결계(心???)"

백진희의 언령과 비슷한 종류의 목소리에 섬광이 찾아와 순간 시각을 잃어버렸다. 그림자의 잔영이 짙게 남아 연신 눈을 깜빡거리자 그제야 잃어버렸던 시각이 돌아왔다.

섬광이 사라진 내 시야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한신과 조민성이 만들어낸 전투의 흔적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환상을 보았던 걸까.

아니, 환상이 아니다. 내 교복에는 일리아의 공격에 복부가 베여 내장을 밖으로 드러냈던 흔적이 질척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털썩.

온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 했던 조민성이 오늘은 나를 구했다.

그것이 단순한 변덕이거나 칠격이 세운 계획을 망치려는 심술일지는 모르나.

조민성 덕분에 칠격의 사냥에서 살아남았다.

안 그래도 몸에 힘이 풀린 상태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감정이 차오르자.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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