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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99화 (99/160)

〈 99화 〉 이용

* * *

2주 뒤에 있을 유급 시험을 대비하러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성현이는 가디언즈 입단시험을 준비하려 훈련을 하기로 했고, 진희는 따로 일이 있다고 내일부터 같이 공부하자 해서 오늘은 혼자 도서관으로 향했다.

혹시 또 조민성과 복도에서 마주칠까 일부러 사람이 많은 복도로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서 놀랐으나, 조민성에 비해 워낙 키가 작아 헷갈리지는 않았다.

작은 키, 성현이와 같은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한서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오므렸다.

"그, 안녕…."

"응, 안녕."

내게 또 할 말이 있는 걸까? 내 앞을 막아섰지만, 막상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더니,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독서실 가는 거야?"

"응, 자격시험을 못 치러서 대신해서 유급 시험이 있거든. 그것 때문에 공부하러 가."

친하게 지내자고 말해서 그런 걸까. 불안해하면서도 나에게 말을 걸어준 한서아의 행동이 고마워, 조금 길게 대답해주자. 조금은 불안이 가셨는지 내 말에 답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이, 이거…초콜릿이야. 어제 내가 직접 만들었어…. 공부하다가 당 떨어지면 먹을래…?"

직접 포장했는지,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포장지로 감싼 작은 초콜릿 상자를 내미는 한서아의 모습에 충동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한서아는 학교에서 가장 키가 작기도 했고,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이목구비로 예쁘기까지 했다. 그런 한서아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힌 채 초콜릿을 내미는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내가 거절할까 봐 초콜릿을 든 손을 작게 떠는 모습에 웃으면서 초콜릿을 받아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응! 꼭 먹어줘."

무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서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때, 누군가 뒤에서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초콜릿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성현이가 차가운 얼굴로 초콜릿을 내려보고 있었다.

"성현아?"

훈련한다고 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갑자기 나타난 성현이에 당황스러워 할 때 성현이가 나에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췄다. 항상 따뜻함이 담겨있던 갈색의 눈이 오늘은 얼음장같이 차갑게 느껴졌다.

"잠깐만, 한서아랑 둘이 얘기 좀 할게."

화가 난 듯, 평소의 따뜻한 목소리와 다르게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성현이는 고개를 돌려 불안한 눈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한서아를 노려봤다. 둘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내가 나설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한서아에게 인사를 하고 조금 불편한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써 신경 쓰지 않은 척,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집중이 잘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성현이가 한서아에게 사과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한서아도 무언가 잘못을 들킨 사람처럼 불안한 표정이었다.

조금 뒤에 성현이가 내 앞자리에 앉았다. 아까 보았던 서늘한 모습이 아닌, 평소 내게 보여주던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성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얘기 잘 끝났어?"

"응.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니까."

"한서아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조금 불안해하며 그렇게 묻자. 성현이는 입꼬리를 올려 예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전에 일도 사과해서 잘 풀렸으니까."

"그래? 다행이네."

묻고 싶은 게 더 있었지만, 괜히 집착하는 것 같아 보일까. 마지못해 수긍했다.

"근데, 훈련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 응, 잠깐 시간 남아서 얼굴 보려고 온 거야."

성현이의 말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를 올리며 바라보자. 성현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일 가이언즈 입단시험 치르면 앞으로 바빠져서 얼굴 볼 시간도 없을 텐데. 데이트 많이 못해도 괜찮겠어?"

"응. 나도 유급 시험 준비해야 하니까. 이번 입단시험에 한 번에 붙었으면 좋겠다. 응원할게."

"기회 줬으니까 잡아야지. 고마워 아린아, 부탁 들어줘서."

"누구 부탁인데 안 들어 주겠어."

그렇게 말하며 성현이를 보며 웃고 있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성현이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기니.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사이의 공간으로 나를 향해 원망이 가득한 무서운 시선을 보내는 한서아의 모습이 보였다.

한서아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명백한 적의에 당황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자. 성현이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보다 뒤를 돌아 한서아를 발견하고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공부하고 있어 아린아. 내가 해결할게."

그렇게 말하고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책장 뒤에 숨어 있던 한서아의 팔목을 끌고 도서관 밖으로 나가는 성현이의 모습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한서아와 싸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어 뒤따라 도서관을 빠져나왔지만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디로 간 걸까, 복도를 돌아다니며 둘이 갔을 만한 곳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도서관의 복도의 끝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자. 한서아를 앞에 둔 성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어라 서로를 향해 말하는 모습에 싸움을 말리려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들려오는 성현이의 목소리에 그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사랑해, 서아야."

너무나도 익숙한 말투,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사랑을 속삭여주던 성현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이번엔 내가 아니었다. 잘 못 들은 게 아닌 걸 알면서도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머릿속으로 부정하고 있을 때, 성현이는 한서아를 안고서는 허리를 숙여 입술을 맞대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한다.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었음에도 헛것이라도 본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 머리를 세게 걷어찬 듯 뇌가 흔들린 듯한 멍한 상태로 도서관으로 돌아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뭐지, 꿈인 걸까. 볼을 꼬집자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 왼손에 찬 요정왕의 팔찌를 확인했다. 세뇌와 환각은 아니다. 그럼, 방금 있었던 일은 진짜인 건가. 부정하고 싶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 오늘 성현이는 내게 사랑을 속삭였고, 나는 진심으로 행복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게 거짓이라고?

또다시 머릿속에 성현이와 한서아가 입술을 맞대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속에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를 [이해]하던 머리도 멍청하게 변한 건지. 멍한 눈으로 공책을 내려보며 감정의 범람을 느끼고 있을 때.

성현이가 돌아왔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내 뒤로 와. 부드러운 손길로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성현이를 바라봤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내 안에 있던 감정 중 하나가 박살이 나는 게 느껴졌다.

"...얘기 잘 끝났어?"

"응, 오해가 있었나 봐. 공부는 잘돼 가고 있어?"

슬쩍, 나를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이는 성현이의 모습에 뒷목을 바늘로 긁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내가 위험할 때마다 느껴지던 감각. 그 감각을 성현이에게서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을 누군가 손으로 쥐어짜듯 옥죄는 통증이 느껴졌다.

"응, 열심히 하고 있었어…."

"그래, 나 이제 훈련 가볼게. 끝나고 연락할 테니 같이 저녁 먹자."

속삭이듯 말하며 성현이는 고개를 빼내 짧은 나와 짧은 입맞춤을 했다.

여전히 부드러웠고 따뜻한 입맞춤이었지만, 행복에 빠르게 뛰던 심장에서. 오늘은 찢겨나간듯한 통증만이 느껴졌다.

***

한서아가 아린이를 죽이려 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서아의 상태창에서 아린이를 죽이려는 욕구를 확인한 이후였다. 황급히 훈련장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아린이에게 달려갔다. 도서관으로 가는 복도에서 한서아와 아린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초콜릿을 건네며 꼭 먹으라는 말을 하는 한서아의 모습에 황급히 아린이의 손에서 그것을 뺏었다. 내 얼굴을 본 한서아의 얼굴에서 드러난 실망감에 이 초콜릿 안에 아린이를 죽이려 독을 넣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서아의 목구멍에 초콜릿을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잠깐만, 한서아랑 둘이 얘기 좀 할게."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조금 눈치를 보던 아린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서아와 인사를 하고 도서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린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한서아를 보며 독이 든걸 모른 척 초콜릿의 포장지를 뜯었다.

"수제 초콜릿이야?"

"으, 응..아린이 퇴원 기념 선물로 주려고…."

"내가 먹어도 돼? 나도 초콜릿 좋아하거든."

대답 없이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한서아는 내가 초콜릿을 꺼내자, 치마를 움켜쥐며 눈치를 보더니. 초콜릿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려 하자 황급히 내 손을 쳐냈다.

"먹, 먹지 마!"

땅에 떨어진 초콜릿을 내려다보다 한서아를 바라보니, 한서아는 내 손에서 초콜릿을 뺏으며 무어라 변명을 했다.

"너 주려고 만든 거 아니니까…. 성현이 거는 따로 예쁘게 만들어줄게."

아린이를 해하려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서아를 죽여야 할 이유는 충분했으나, 한서아를 공략해 얻은 [성실함]이라는 재능 때문에 가디언즈의 시험 전까지 살려두기로 했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가디언즈에 입단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한서아를 안았으니까. 한순간의 감정으로 닦아놓은 길을 돌아가려는 멍청한 짓은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이따가 훈련 끝나고 잠깐 볼까?"

"으, 응…그럴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워하는 한서아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기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성현아, 우리…주말에 데이트­"

"서아야."

"으, 응…."

"말했잖아, 내 여자친구는 아린이 하나라고. 너도 알고 시작한 관계잖아. 우리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자."

눈물을 글썽거리며 입술을 오물거리는 한서아의 모습은 남이 봤을 때는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애처로웠지만, 나는 이 모습 또한 한서아의 연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약한 척 상대에게 동정을 끌어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한서아의 무기. 그러나, 짜증스러운 감정 밖에 못 느끼는 나에게는 추잡해 보이는 짓거리였다.

"갈게, 이따가 보자."

사람이 많이 다니는 복도라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 한서아를 지나쳐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안에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마치 모래 속에 이질적으로 툭 하나 떨어져 있는 진주를 보는 듯 홀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아린이의 모습을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린이의 앞자리에 앉자, 흑요석 같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는 모습에 문득 입맞춤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객처럼, 다른 사람에게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이리도 쉽게 느끼게 해주는 아린이는 내 감정의 오아시스나 다름없었으니.

"얘기 잘 끝났어?"

"응.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니까."

"한서아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불안했는지 나를 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앞니로 깨무는 모습이 불안감을 숨기려할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임을 아린이는 알고 있을까. 알고서도 하는 행동이라면 그녀는 서큐버스의 자질을 타고난 것이다. 한서아의 저질스러운 동정을 유발하는 행동보다, 이 작은 행동이 더 내 마음을 흔들게 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전에 일도 사과해서 잘 풀렸으니까."

"그래? 다행이네."

조금 불안감이 가신 표정을 짓는 아린이의 모습에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 훈련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 응, 잠깐 시간 남아서 얼굴 보려고 온 거야."

내 대답에 기분이 좋은지,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입꼬리를 올리는 아린이의 모습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일 가디언즈 입단시험 치르면 앞으로 바빠져서 얼굴 볼 시간도 없을 수 있으니까. 데이트 많이 못해도 괜찮겠어?"

"응. 나도 유급 시험 준비해야 하니까. 이번 입단시험에 한 번에 붙었으면 좋겠다. 응원할게."

"기회 줬으니까 잡아야지. 고마워 아린아, 부탁 들어줘서."

"누구 부탁인데 안 들어 주겠어."

그렇게 말하며, 예쁜 웃음을 짓는 아린이의 모습에 설렘이 느껴졌다. 매일 보면서도 매일 같은 사람에게 반할 수가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오늘 밤도 곱게는 보내지 않을 생각으로 아린이에게 능글맞은 장난을 하려는데. 무언가를 본 듯 당황한 표정으로 몸을 움찔하는 모습에 조민성이라도 본 건가 의아해하며 아린이의 시선을 따라 몸을 뒤로 돌자.

책장 사이의 공간으로 아린이를 노려보는 한서아의 두 눈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흘러나왔다.

이 미친년.

선 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하, 공부하고 있어 아린아. 내가 해결할게."

아린이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황급히 한서아의 팔목을 붙잡고 도서관 밖을 빠져나왔다. 끌려가기 싫은지 발을 구르는 모습에 짜증이나 팔목을 부 슬듯 쥐자, 아픈 듯 눈물을 흘리기에 사람이 없는 복도의 끝으로 향했다.

눈물을 흘리는 한서아를 벽으로 던지듯 밀친 뒤, 머리를 긁으며 짜증을 담아 말했다.

"한서아. 선 넘지 말라고 방금 말했지."

"성, 성현아…그치만…."

"아, 씨발 진짜."

욕과 함께 한서아를 노려보자. 내가 화가 난 것을 깨달았는지 한서아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나도 모르게…잘못했어…용서해줘 앞으로 안 그럴게…."

"됐어. 앞으로 안 볼 건데 용서할 필요가 왜 있어."

내 말에 충격을 받은 지. 눈이 커진 한서아는 내 발목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미, 미안해…흐으흑…난 그, 그냥…질투가 나서…."

"일어나."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서아에게 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아야, 네가 원한 거잖아. 내가 아린이랑 사귀고 있는 거 알고 있다고, 상관없다며 섹파라도 괜찮다고 나 설득한거 너 아니야?"

"으, 응 맞아…괜찮아…내가 성현이 좋아하니까…. 그냥 잠깐 정신이 나갔어 미안해…용서해줘…."

동정심이라도 자극하려는 지, 울먹거리며 매달리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그럼, 질투도 하지 마. 말했잖아 내 1순위는 아린이라고. 그게 불만이면… 그만하자. 나도 더 이상 너한테 상처주기 싫어."

"안 돼! 나…너 없으면 안되는 거 알잖아. 응? 미안해 성현아…나 오늘 너랑 하려고 관장도 다 하고 밥도 안 먹고 기다렸단 말이야…나 진짜 너 없으면 안 돼…."

애원하듯 말하던 한서아는 치마를 들친 뒤, 팬티를 젖혀 내게 보여줬다.

"봐…나 네 명령대로 딜도랑 플러그도 항상 끼고 있어…응? 나 당장 여기서 뒤로도 할 수있어 성현아…. 그만큼 널 사랑해. 응? 용서해 줘…. 부탁이야."

"내 명령 때문에 그러는 거였어? 그럼 이제 안 해도 돼."

"아, 아니야! 내가 원해서 한 거야. 정말이야…. 난 변태니까. 응, 나 변태니까 성현이랑 언제든지 섹스하려고 원해서 그런 거야…내 잘못이야 미안해."

고민이 들었다. 내 앞에 있을 때는 이렇게 통제가 잘되는데, 눈에서 벗어나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서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마를 만지며 고민하고 있자, 그때까지 팬티를 젖혀놓고 있던 한서아는 힘을 주어 보지 안에 넣어놓은 딜도를 밀어내 손으로 붙잡아 반 정도 꺼냈다.

"이거 보여…? 성현이가 나한테 사준 딜도잖아…나 항상 끼고 있어…나 정말 너 좋아해 성현아…너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애액으로 푹 젖은 딜도를 보고 한숨을 내쉬며, 누군가 이 모습을 볼까 딜도를 잡고 있던 손을 치운 뒤. 다시 보지 안으로 보이지 않게 쑤셔 넣고 치마를 내려줬다.

"하흐응…. 지, 지금 할래 성현아?"

"기다려. 아린이랑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한서아가 다시 신아린에게 헛짓을 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교육해야 했다. 손에 묻은 애액을 한서아의 머리에 닦고 뒤를 돌려 하자 한서아가 내 손을 붙잡았다.

"사, 사랑한다고 말해줘!"

"뭐?"

"사랑한다고 한 번만 말해줘 성현아…부탁이야."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애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서아를 위해서 평소처럼 미소를 지으며 한서아에게 말했다.

"부탁 안 해도 언제든 말해줄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사랑해, 서아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서아가 다시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려 하기에 허리를 굽혀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그만 울어. 너 우는 모습 더는 보기 싫어."

"…흐읏…흑…으,응 안 울게."

울음을 참는 모습이 역겨웠지만,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한서아에게 작게 속삭였다.

"강당 화장실로 먼저 가 있어."

"아, 알았어…."

기대감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한서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짜증과 분노를 한숨으로 잠재우고 아린이가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아린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아린이를 내려다보자.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는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아린이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얘기 잘 끝났어?"

"응, 오해가 있었나 봐. 공부는 잘돼 가고 있어?"

"응, 열심히 하고 있었어…."

"그래, 나 이제 훈련 가볼게. 끝나고 연락할 테니 같이 저녁 먹자."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자. 아린이는 몸을 살짝 움찔했다.

그 반응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한서아가 기다리고 있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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