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불의 날개
* * *
한 달만의 등교여서 그런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보다 더 많아졌음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한 달 동안 밀린 수업 따라잡으려면 힘들겠다."
내가 마석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진희는 언제 화냈냐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끝나고 도서관 가서 공부 좀 해야지."
"내가 도와줄게. 아, 자격시험은 어떻게 한대?"
"오늘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보게."
병결이라 해도 자격시험을 치르지 못했으니, 유급 시험으로 대체 하지 않을까. 앞으로 있을 시험에 대해 걱정하며 진희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 안녕…."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한서아가 있었다.
"응, 안녕…오랜만이네."
한서아와 좋은 추억도 없었고 세뇌가 풀린 뒤, 딱히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한서아가 갑작스레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내게 할 말이 있는 걸까?
다른 반에 들어와서 그런지. 조금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한서아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 왔어."
"응…? 뭐가?"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큼 뭔가를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뜬금없는 고마움에 당황하고 있자 진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픽하는 비웃음 소리를 내며 한서아를 노려봤다.
"그, 동생 도와준 거…덕분에 수술도 잘 끝나고…부모님 공장이랑…병원비도 해결해준 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불안한 듯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한서아는 목소리를 심하게 떨긴 했지만 끝까지 말을 해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진희가 일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기에 그러지 말라고 눈빛을 보냈다.
진희에게 세뇌당해 한서아에게 상처를 준 일 때문에 세뇌에서 풀려 김비서에게 한서아의 동생을 잘 돌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유능하게도 잘 처리한 것 같다. 내 노력은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리 고마워할 필요는 없을 텐데. 조금 당황스러워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허리를 숙이려는 한서아의 팔을 붙잡고 그 행동을 멈춰 세웠다.
"내 잘못에 대한 보상이니까. 너무 고마워할필요 없어. 저번 일에 대한 내 사과라고 생각해줘. 내 오해 때문에 너에게 상처를 줘서 정말로 미안했어."
"아니, 난 이미 잊었는걸…우리 가족의 웃음을 되찾아준 것만으로도…너무 고마워…."
한서아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황급히 나는 작은 키의 한서아를 끌어안아 등을 쓸어내렸다. 참으로 작은 몸. 이 작은 몸으로 김성현에게 공략당해 지옥으로 떨어졌던 원래의 한서아를 떠올리니 조금 동정심이 들었다. 귀여운 여동생 같은 느낌이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울지마. 그리고, 너만 괜찮다면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괜찮아?"
내 말에 몸을 움찔한 한서아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은 건지, 잊은 척을 하는 건지 모르나. 그 고통을 덧씌울 만큼의 보상을 한서아에게 해주고 싶었다.
울먹거리는 한서아를 달래주려 등을 쓸어 내려주고 있을 때. 화장실에 다녀온 성현이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둘이 뭐해?"
성현이의 목소리를 들은 한서아가 화들짝 놀라며 내 품에서 빠져나와 나와 성현이를 바라보더니, 도망치듯 인사도 없이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서아의 이상한 반응에 의아함을 느낄 때, 김성현이 한서아를 강간하려 했던 것이 떠올라 한숨을 내쉬며 김성현을 바라봤다. 지금의 성현이는 전과 많이 변했지만, 잘못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니까.
"너 나쁜 놈이었지."
"...갑자기?"
"한서아에게 나중에 전의 일에 대해 꼭 제대로 사과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앉자. 옆자리에 앉은 성현이는 조금 얼굴을 굳히며 내게 물었다.
"왜? 한서아가 뭐라 했어?"
"아니, 갑자기 생각나서 말 한 거야."
"그래?"
무언가 화난 듯,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아진 성현이의 모습에 조금 의아할 때쯤.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대화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농담하며 조례를 시작한 담임 선생님은 간단한 전달 사항을 전해주다. 나를 보며 물었다.
"신아린, 오래간만에 등교하니까 기분이 어때? 더 쉬고 싶지?"
"아니요. 충분히 쉬었어요."
"그래, 힘들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이따가 점심시간에 잠깐 교무실로 올래? 자격시험에 대해 얘기할 게 있거든."
"네."
공부를 못했는데 곧장 자격시험을 보면 어쩌지. 걱정하며 무심코 옆의 성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턱에 힘을 주고 미간을 좁힌 채 차가운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는 성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왜 기분이 나빠 보이는 걸까. 걱정이 들어 슬쩍, 손을 뻗어 팔을 툭툭 치자. 성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왜?"
"아, 아니야."
왜인지 모르게 그 미소가, 예전에 보았던 백진희의 서늘한 미소와 닮았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
점심을 먹고 교무실 안.
담임 선생님의 자리로 가자, 이미 식사하셨는지 자리에 계셨다.
"음, 혼수상태여서 공부도 못했을 테니 당장 시험은 무리라고 생각해서 2주 뒤에 유급 시험으로 대체하려는 데. 어떻게 생각하니?"
담임 선생님의 배려는 무척이나 고마운 것이어서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대답했다.
"그래, 열심히 준비해라. 힘들면 언제든지 선생님 찾아오고, 몸은 괜찮지?"
"네. 이제 아픈 곳 없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볼게요."
"그래. 수업 잘 들어라."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장에라도 오늘 시험을 치를 줄 알았는데 다행히 2주라는 시간이 생겼다.
성현이도 만점을 받았으니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만점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데 복도를 지나가던 누군가와 몸이 부딪쳤다.
"앗, 죄송합"
"안녕, 파트너."
갑자기 사각에서 사람이 나올 줄 몰랐기에 황급히 사과를 건네며 얼굴을 바라보다,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늑대 같은 야수성을 드러내는 성현이와 다르게 고귀해 보이는 외모를 가진 조민성은 평소처럼 매력 있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너…."
"네가 아니고, 파트너라니까."
장난을 치듯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에 당장에라도 마인화를 해. 조민성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미친놈.
"뻔뻔하게 굴지마. 뭐라고 해도 절대 용서 안 하니까."
"잘못한 게 없는데. 용서받을게 있나."
태평한 모습으로 그리 말하는 조민성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그냥 지나가려던 생각을 지우고 노려보며 말했다.
"성은이를 납치한 거, 일부러 성은이를 죽이게 하려고 나와 한방에 가둔 거. 기억 못 한다고 말 못할 텐데."
"아니지, 성은이를 살려준 것, 너의 본능을 찾아주려 도와준 것이라고 해야지. 해석을 잘하지 못하나 보네."
재밌다는 미소를 짓는 조민성의 모습에 화가 났다. 변명을 지껄이는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걸음을 옮기려 하자. 조민성이 몸으로 앞을 막아섰다.
"꺼져."
차갑게 말하며 조민성을 피해 옆으로 돌아가려 하자. 조민성은 내 팔목을 붙잡고 억지로 잡아 세웠다.
"미친, 이거 안 놔?"
"에이, 난 할 말이 있단 말이야."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잡은 팔목에 힘을 줘, 도망치지 못하게 나를 구석으로 모는 조민성의 행동에 조금 두려움이 느껴졌다.
"전보다 강해진 것 같은데. 마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거야?"
"아니, 난 사람이야. 앞으로도 사람으로 살아갈 거고."
내 대답에 조민성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작게 속삭였다.
"알아. 그래서 네가 살아 있는 거잖아."
"뭐?"
"그럼, 이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는 게 어때."
조민성이 무슨 의미로 그 말을 꺼낸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내 시선을 이해했는지 조민성은 턱을 긁더니,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영웅은 없거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는 조민성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멀리서, 성현이의 외침이 들렸다.
"조민성!!!"
"타이밍 좋게 남자친구가 구해주러 왔나 보네. 근데, 타이밍이 좋았던 것 뿐일까?"
조민성은 달려오는 성현이를 보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이며 잡은 팔목을 놔주고는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달려온 성현이는 나를 등 뒤로 숨기며 조민성에게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듯 분노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꺼져."
"왜들 그리 날 선 반응인지 모르겠네."
"너랑 할 얘기 없으니까 꺼지라고."
조민성은 한숨을 내쉬더니 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성현이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나를 향해 물었다.
"다음에는 웃으면서 보자, 파트너."
내게 장난치듯 손을 흔들고는 조민성은 성현이에게 미소를 지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조민성의 뒷모습을 한참을 노려보던 성현이는 뒤를 돌아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
"응. 괜찮아."
"하, 불안해서 안 되겠어. 앞으로 화장실 갈 때도 같이 다녀야겠어."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지. 장난을 치는 성현이의 모습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그대로 성현이를 끌어안았다.
조민성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웃기게도 조민성이 나에게 무언가를 경고하려고 한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지우고, 성현이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 가디언즈 입단 시험 곧 할 수 있을 거야. 아까 김비서한테 연락이 왔어."
"그래? 고마워 아린아."
기뻐하는 성현이를 보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성현이에게서 느껴지는 체온을 느끼며 이 행복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기한신은 차성 소유의 한 공장에 침입했다.
초월 아카데미를 떠난 기한신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칠격의 정식 멤버가 되어 마지막 번호인 7번의 번호를 부여받았다.
칠격의 멤버가 된 기한신은 자신의 과거사를 밝혔고, 우시오에게 기억을 확인받는 과정을 거쳐 차성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게 되었다.
겉모습은 녹슬고 오래된 폐공장의 모습이었지만,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외관은 위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과 무기를 든 경비원들과 경계 술식이 빼곡하게 그려진 내부의 모습.
그리고, 수 많은 컨테이너의 모습에. 이곳은 공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창고의 모습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보관하는 창고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법이 발현되는 구조식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도 빼곡히 경계 술식이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어차피, 은밀하게 잠입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경계 술식에 걸려 소란이 일어나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경비병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기한신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미리 준비한 술식을 전개해 그대로 허공을 향해 야구공을 던지듯 왼손을 후려갈겼다.
쿠콰과광!!!
거대한 크기의 충격파가 공기 중에 퍼져나가며 기한신을 향해 다가오던 경비병들이 몸의 중심을 잃고 공중으로 날아가 쓰러졌다. 공장 내부에 있던 집기들도 충격파가 만든 바람에 날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크아아악!"
충격파를 직격으로 맞은 경비병들은 양손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귀를 막은 채 쓰러져 고통의 비명만 질러댔다. 몇몇이 쓰러지면서도 총알을 쏴댔지만, 미리 만들어놓은 배리어에 막혀 튕겨 나갔다.
기한신의 경비병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 천장에서 위장의 술식을 사용해 숨어 있던 상비 영웅이 모습을 기습적으로 둔기를 휘둘러 기한신의 머리를 터트렸다.
"후, 씨발."
머리가 터져나가 바닥에 쓰러진 침입자를 보며, 상비 영웅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찰나.
머리를 잃고 바닥에 쓰러진 기한신의 시체가 상비 영웅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걸 느낀 상비 영웅이 황급히 몸을 빼려 했지만.
살고자 했으면,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 도망쳤어야 했다.
압축기로 몸 전체를 짓누르듯. 공간에 짓눌린 상비 영웅은 주변에 피를 내뿜으며 축구공만한 크기의 구체로 압축되었다.
상비 영웅을 죽인 기한신은 머리를 재생한 뒤,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 하는 경비병들도 모두 구의 형태로 만들어 죽여버렸다.
어깨에 묻은 뇌의 파편들을 털며, 공장 안에 있는 컨테이너에 다가가 손짓 한 번으로 잠겨 있던 문을 열었다.
무얼 보관하고 있는 걸까. 기한신은 가슴 속 가득 차오른 기대감에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컨테이너의 열린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약한 악취에 코를 막으며 기한신은 컨테이너 안을 확인 했다.
그 안에는 죽은 눈을 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똥오줌이 묻어 악취가 나는 사람들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보고는 등을 돌리며 몸을 덜덜 떨어댔다. 그 추악한 모습에 사람의 모습을 한 짐승이 아닌가 기한신은 의심을 했다.
이성을 잃은 미친 사람들처럼 무어라 중얼거리며 괴성을 질러대는 모습에. 도대체 차성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건지 궁금해하며, 다시 컨테이너의 문을 잠갔다.
옆의 컨테이너의 문도 마법으로 뜯어내듯 열어젖혀 안을 확인 했다. 이곳에도 전의 컨테이너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기한신은 계속해서 컨테이너들의 문을 열었다.
사람, 사람.
이곳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이성을 잃은 짐승들밖에 없었다.
마지막 컨테이너까지 확인한 기한신은 왜 차성에서 이 수많은 사람을 컨테이너에 가둬두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생겼다.
그나마, 마지막 컨테이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최근에 들어온 건지 악취가 적었고 아직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기에 대화할 수 있어 보였다.
"살, 살려주세요."
나이 어린 소녀가 힘이 없는지 똥오줌이 가득한 바닥을 기어와 배변이 묻은 손으로 기한신의 바지를 붙잡고 살려달라 빌었다.
"왜 여기에 갇혀 있던 거지?"
"마, 마인이…납치해서 이곳에 가뒀어요."
소녀의 말에 기한신은 차성과 마인이 연관돼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드디어, 차성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얻었다는 생각에 황급히 칠격에 연락을 하려 할 때.
갑자기 대기의 온도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황급히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소녀를 내친 뒤, 몸을 밖으로 빼내자. 거대한 불기둥이 방금까지 기한신이 서 있던 곳을 뚫어버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앙!!!"
컨테이너를 그대로 녹여버릴 정도의 강렬한 불기둥에 컨테이너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불길 속에 고통스러워하며 몸이 오그라들어가는게 보였다.
불타오르는 불기둥에서는 그 어떤 마법 구조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실에 기한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양손에 마력을 모아 대응할 준비를 했다.
마법 구조식도 없이 원소를 다루는 괴물은 마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뭐야, 피했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빨간 머리의 앳된 소녀로 보이는 여자애가 미소를 지으며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인이냐."
기한신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빨간 머리 소녀의 위로 생겨난 거대한 크기의 화염의 화살이 기한신을 꿰뚫으려 쏘아졌다.
그 즉시, 양손에 모아놓은 마력을 이용해 앞의 공간을 비틀어 화살의 궤적을 바꿔내자. 빗겨나간 화살에서 터져 나온 화염이 채찍이 되어 기한신을 구속하려 했다.
공기를 불태우며 다가오는 화염의 채찍에 마력으로 바닥을 들어 올려 막아내며, 빨간 머리의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이 응집하며 만들어진 작은 구체를 내던졌다. 소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을 그대로 흡수하며, 응축된 마력의 구체는 기한신이 손짓과 함께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발이 공장 안을 휘몰아쳤다.
짙은 연기와 함께 고온의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바람이 멎었다.
뜨거운 열기에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에 눈이 따가웠지만, 기한신은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경계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적막이 짙게 깔린 공장 안.
불길에 옷이 타올라 나체가 된 빨간 머리의 소녀는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지. 미소를 지으며 기한신을 노려보았다.
"나쁜 아저씨네."
대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빨간 머리의 소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마력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소녀의 뒤로 악마의 날개처럼 보이는 불의 날개를 보고, 기한신은 소녀의 정체를 깨달았다.
"순현동을 불태운 마인이 불의 날개를 갖고 있다더니, 사실이었나."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기가 진동하며 거대한 충격이 기한신의 몸을 향해 치밀어 들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기한신의 몸이 불타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