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악몽
* * *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저건 성은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여동생이자. 4살의 어린아이.
죽이면 안 돼 죽이면 안 돼
뇌까리며 나를 통제했다.
내 안에서 울리는 거대한 고동이 점점 그 몸집을 키워갔다. 이성이라는 목줄이 거대해지는 몸집에 금방에라도 터져나갈 듯 삐거덕거렸다.
원시적인 욕구가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식욕.
나는 느끼고 있다. 내 앞에 있는 성은이의 존재를, 그 심장박동을.
느껴진다. 숨길 수 없는 공포와 살 내음. 두려움이 깔린 숨결
천하일미를 눈 앞에 둔 걸신들린 사람처럼. 나는 피와 침을 바닥에 흘려대며 식욕을 느꼈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에. 나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중력을 느끼며 절망에 휩싸였다.
바닥을 손으로 긁어댔다. 손톱이 부러지며 머릿속을 채우는 식욕을 조금이나마 고통으로 억눌렀다.
다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서려 했다. 당장에라도 허리에 준 힘을 풀면. 목줄이 풀린 사냥개처럼 달려들어 목덜미에 이빨을 들이밀 수 있다.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참아야 해.
더는, 더는, 더는
"내일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내 머릿속을 울리는 거대한 울림 속 아주 작게. 성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팠다.
이성을 짓누르며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본능이라는 감정 사이로 아주 작은 감정이 소리 질렀다.
`포기하면 그냥 끝나는 거야.`
언젠가 들었던 진희의 목소리가 거대한 고동 속에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뜯겨나간 이성에 의지가 달라붙는다. 마지막 남은 이성의 조각이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떠올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찢겨나간듯한 심장이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몸은 의지로 억지로 틀어막혀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고통의 한계점을 넘어버린 육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온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참았다. 참아야 했다.
"눈…감아…성은아…."
무너져가는 이성 속에서 내 의지는 하나의 이미지를 투영했다. 의지를 향해 뻗은 고통의 가시들에 찢겨나가면서도.
결국, 그 의지는 형상화되어.
의념(??)이 되었다.
시야가 다시 높아지고.
오른손에 묵직한 검의 무게가 느껴진다.
망설임 없이. 아니, 망설일 시간조차 남지 않았다.
거대한 고동이 내 마지막 의지를 집어삼키기 전에.
오른팔을 휘둘렀다.
내 몸을 향해 일섬(一?)이 그어진다.
당장에라도 목을 잡아 뜯으려는 왼팔을 시작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두 다리가 허물처럼 잘려 나간다.
이제는 뜯겨나갈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의지는.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인간성(人??)을 의념으로 승화해내며 사라졌다.
내가 만들어낸 피의 웅덩이 속에 익사하면서.
잘려 나간 내 왼팔을 어두워져 가는 시야로 바라봤다.
커플링에 각인된 히아신스의 무늬가 피에 젖어 붉게 보였다.
주마등처럼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히아신스는 색깔별로 꽃말이 다른 거 알아?"
수업 도중에 갑자기 딴소리하기에. 김성현의 시골 똥강아지 같은 눈을 한심스럽게 바라보자.
김성현은 눈치 없이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의 눈치를 피해 작게 속삭였다.
"내가 준 보라색은 영원한 사랑. 흰색은 사랑에서 오는 행복. 파란색은 사랑하는 행복 노란색은 용기와 승부. 분홍색은 유희래. 그러면 여기서 문제~! 빨간색은 무슨 꽃말일까요?""몰라.""에이, 노력도 안 하고 포기하면 어떻게 해. 맞춰봐 상 줄게."
수업은 들을 생각이 없는지. 끝까지 칭얼대는 김성현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대충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다.
"정열적인 사랑?""땡! 정답은~ 내 마음에 당신의 사랑이 머물러있다.""뭐야 그게. 지어낸 거 아니야? 다른 꽃말이랑 안 어울리잖아."
내 의심에 김성현은 혼이 난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제 또 꺾어온 건지 붉은색의 히아신스를 건네는 김성현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김성현은 내 표정을 읽고는 작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꽃 줬으니까. 이제 내 사랑이 네 마음에 머물러있는 거야. 잊지 마! 보라색도 줬으니까. 영원한 사랑이 네 마음에 머물러 있는 거야!"
희미해지는 의식을 가득 채운.
끝없는 식욕과 절망이 만들어낸 고통. 범람하는 감정들 사이로.
나는 아직 불씨가 남은 작은 감정을 찾아냈다.
짓이기며 부서지고 갈라지며 뜯겨나갔음에도.
그 말대로.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말이 맞았어 성현아.
***
식사를 끝내고 부모님과 함께 호텔 방에 들어왔다.
휴대폰이 배터리가 방전되어 충전기에 꽂고 의자에 앉아 새로운 뉴스가 없나 확인하려는데. 돌연, 왼쪽 새끼손가락에서 붉은 실이 빛을 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당황해 곁에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자. 붉은 실이 보이지 않는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린이와 관련된 일인 걸까?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한 뒤. 붉은 실을 따라 밖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별생각 없이 붉은 실을 따라가자.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회사원 같은 사람의 팔에 붉은실이 감겨 있었다.
왜 아린이가 아닌 남자한테 붉은 실이 감겨 있는 건가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남자는 전화가 왔는지 휴대폰을 들어 통화를 했다.
설마 저 남자랑 운명으로 엮이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슬쩍 훔쳐보고 있을 때.
남자의 입에서 나와선 안 될 말이 들려왔다.
"누구신데 아린이 아가씨 휴대폰을 갖고 계신 겁니까? 예? 아가씨가 위험하다고요?"
나는 다급하게 남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았다.
"누, 누구…."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마주 보며 물었다.
"신아린. 얘기한 거 맞죠."
"아. 김성현씨 맞죠? 아린이 아가씨 남자친구…."
"방금. 신아린 얘기한 거 맞냐고요. 차성 후계자 신아린."
"아. 네, 아니. 아린이 아가씨 번호가 맞는데 다른 사람이 받…."
답답한 마음에 남자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었다.
"여보세요. 전화 한 사람 누굽니까?"
[주, 주인!! 왜 전화를 안 받아!]
"비골? 네가 왜…."
[여주인 목숨이 위험해!!! 조민성이 죽이려 한다고!!]
그 목소리 뒤로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황급히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린이 위험해요. 지금 조민성이 아린이 죽이려 하고 있어요."
"예? 아니, 조민성이라면 플라틴 후계자인데…. 갑자기 왜."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유가 뭐가 됐든 일단 구하고 봐야지. 여보세요. 비골 거기 어디야."
[사, 사진 보낼게!]
다급히 휴대폰의 진동에 화면을 확인하자. 울고 있는 성은이의 사진이 보였다.
"이, 이게 뭐야."
다시 확인해봐도 성은이가 맞다. 동생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멍청한 오빠는 아니니까.
성은이의 뺨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고 황급히 남자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당장 여기로 사람 보내요. 아린이 다치기 전에."
"아…상비 영웅은 생존자 탐색 때문에 지금 다 여기 모였는데…."
"경찰에 신고라도 하든가! 차성이라며. 돈도 처 많으면서 후계자 보호하는 경호도 없어? 영웅 협회에 연락해서 가디언즈라도 보내라고 하든가!"
그 멍청한 소리에 어이가 없어 소리를 질렀다. 후계자를 보호하는 비밀 경호도 없는 건가.
"근처로 이동할 수 있는 포탈 있는데. 거기로 이동해서 가면은…."
남자의 말에 곧장 포탈로 이동했다. 호텔에 남아 있던 차성 소속의 상비 영웅들과 함께 포탈을 타고 넘어가. 곧장 차를 타고 주소가 적힌 곳으로 이동했다.
"아니…근데 여기는 공장가는 길인데…."
"공장이요?"
"아, 그 저희 소유의 폐공장입니다. 별거 아니에요."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린이와 성은이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어두운 산속을 밝히며 공장 앞으로 차가 멈췄다. 황급히 문을 열고 나오자. 고스로리 트윈테일의 모습을 한 비골이 울면서 달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원망하듯 바라보는 모습에 변명할 시간도 없었다.
"아린이는!"
"안에서 막 비명 들리고 난리 났었어!"
황급히 공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린아!! 성은아!"
뒤따라온 상비 영웅들도 주변을 둘러보며 아린이를 찾기 위해 수색했다.
밝게 빛나는 붉은 실을 따라 달려가 어느 문을 열자.
시야에 보이는 건 붉게 뿌려진 붉은색의 피와 저 멀리 구석에 쭈그려 눈을 손으로 가리고 울고 있는 성은이의 모습이 보였다.
성은이의 모습에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걸음을 옮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액체에 무심코 고개를 내렸다.
누군가 가슴을 열어 심장을 뜯어간 느낌이었다. 이성이라는 것을 누군가 망치로 박살 낸 것처럼.
멍청한 상태로 걸음을 옮기자. 피 웅덩이가 내가 걷고 있음을 소리 내 알려주었다.
걸음을 멈추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꿇어졌다.
시야가 뿌옇게 변하더니. 가슴 안쪽에서 감정이 망치질하며 밖으로 나오려 했다.
"아린아."
"아린아."
"신아린."
이름을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악몽이다.
내 머리가 만들어낸 지독한 악몽이다.
언제나처럼 나를 보며 귀찮다는 듯 바라보며 흑요석 같은 눈을 빛내던 아린이인데.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을 리가 없다.
손을 들어 아린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치우자.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아린이의 피부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누군가가 나를 밀쳤다. 중심을 잃고 피 웅덩이에 쓰러졌다.
눈앞으로 잘린 팔이 보였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된 손가락에는 내 손에 있는 것과 같은 히아신스가 각인된 반지가 있었다.
"아니야…."
눈앞의 현실에 내가 쓰러져 있는 곳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독한 악몽일 텐데.
현실일 리가 없는 데도.
어찌 이리 가슴이 아픈 걸까.
내 손끝의 붉은 실은 잘린 팔에 연결되어 있었다.
정말로 지독한 악몽이다.
깨야 한다. 이건 악몽이니까. 이런 모습의 아린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악몽에서 깨기 위해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바닥에 고인 피가 얼굴에 튀었다.
다시 머리를 박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흔들렸다.
세상이 흔들렸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이건 악몽이다.
바닥에 머리를 있는 힘껏 박았음에도 이마의 고통보다 가슴을 찢어버리는 듯한 통증이 더욱 아팠다.
다시 머리를 땅에 박으려 고개를 들자. 누군가 어깨를 붙잡고 소리 질렀다.
안 들려
짜악!
누군가 뺨을 때렸다. 고개가 돌아가며 이마를 타고 흐르던 피가 눈에 들어와 눈물과 섞여 시야가 붉게 변했다.
"그만해 주인! 정신 차려!!"
"비…골?"
"여주인 아직 안 죽었어! 정신 차리라고!!"
내 멱살을 붙잡고 울어대는 비골의 모습에 참으로 지독한 악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골이 또다시 내 뺨을 쳤다. 먹먹해진 귓가로 윙윙거리던 소리가 조금씩 주파수를 찾은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포션이라도 부어!"
"지금 상태에서 포션 부으면 곧장 죽을 거예요!"
"병원은!"
"지금 치료안하면 병원 가기도 전에 죽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 지금 응급처치 멈추면 바로 죽을 거예요!"
"마석. 마석이 필요해! 얼마나 버틸 수 있어. 5분만. 5분만 참으면 내가 구해올 테니까."
"불가능해요!"
주변의 소란스러움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물을 흘리며 내 멱살을 흔들던 비골은 나를 보며 소리쳤다.
"여주인 죽게 놔둘 거야!!!"
울고 있는 비골의 모습이 너무나 간절해 보여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비골이 내게 이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는데.
이 정도로 내가 상상력이 있었나.
"주인. 제발 정신 차려. 여주인 살려야지."
"어떻게…?"
내 멍청한 물음에 비골은 멱살을 잡은 손을 올려 내 뺨을 붙잡고 말했다.
"마석이 있으면 여주인 구할 수 있대."
"근데 마석이 없잖아."
내 대답에 비골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 가슴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여기 하나 있잖아."
"...뭐?"
"잊었어? 나도 마족인 거."
눈물을 흘리며 자기 가슴을 두드리는 비골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 얼마나 지독한 악몽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친구를 죽이라니.
"악몽이 이리 지독할 수가 있나."
악몽인 것을 알면서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꿈속의 감정은 현실적인 듯.
나는 심장을 찢어내려는 감정의 칼날에 고통을 느끼며 비골을 바라봤다.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 비골의 눈에도 나와 마찬가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악몽이니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서로 위해 할 수 없으니까. 내가 하면 돼."
"뭘."
"걱정하지 마 주인. 마족도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가지 않겠어?"
눈물을 흘리며 농담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고마웠어. 할 말이 무척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까."
비골이 얼굴을 가까이해 입술을 맞대었다.
게이 새끼.
꿈에서도 내 똥꼬를 노리는 걸까. 역시 악몽이 맞다.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인 것처럼 입맞춤을 하는 비골의 행동은.
역겹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이대로 우리의 우정이 끝날것처럼.
그런 슬픈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무척이나 이상했으니까.
"행복해야 해. 김성현."
그 말과 함께 비골은 자기 심장에 손을 찔러넣었다.
뜨거운 피가 얼굴에 튄다. 고통스러워하는 비골의 모습에 악몽임을 알면서도. 나는 두려움에 그 행동을 멈추려 비골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마."
"주인 다음에는 더 재밌게 놀자."
"비골."
"가져가…."
"아레아!"
아레아는 가슴을 찔렀던 손을 꺼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청푸른색의 트윈테일 머리를 흔들며 아주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주인. 내 이름 기억하고 있었"
검은 재가 되듯 먼지가 되어 사라진 아레아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손을 뻗어 허공을 떠도는 검은 재를 만지자. 검은 눈이라도 되는지 손끝에서 사라졌다.
아레아가 잡아준 손에 남은 온기.
그 손바닥에 남은 보석같이 밝게 빛나는 마석을 멍하니 바라보자.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린 아가씨를 살려야 해요."
나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유쾌하면서 슬픈 듯한 이상한 감정에. 울음과 웃음이 섞인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있던 마석을 건네주었다.
이제는 재조차 남지 않은 아레아의 흔적을 멍하니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서 울고 있는 성은이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팔로 눈을 가리고 울고 있는 성은이에게 작게 속삭였다.
"성은아. 오빠 왔어."
내 말에 성은이는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오빠 아니야!"
"맞아. 성현이 오빠.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몰래 신었더니 조금 많이 바뀌었는데. 그래도 성은이 오빠 맞아."
"거짓말!"
"오빠가 성은이 생일에 미미 사준 거 기억나?"
"...응."
"다음 생일에 미미 짝꿍도 사주겠다고 약속한 거는?"
"기억나…."
"성은이가 저번에 침대에 오줌싸고 장롱에 이불 넣어놓았을 때…."
"말하지 마!"
부끄러운지 소리를 지른 성은이는 울먹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성현 오빠 맞지?"
"맞아."
내 대답에 기다렸다는 듯 품 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성은이를 끌어안아. 등을 쓸어내렸다.
너무 지독한 악몽이라. 하나 정도는 양보해 준걸까.
내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성은이의 따듯한 체온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무릎을 꿇고.
성은이를 안은 채.
나는 악몽이 깰 때까지 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