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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81화 (81/160)

〈 81화 〉 훈련

* * *

누군가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에는 아주 좋은 주제 거리였다.

특히, 그 변화가 주위 모두를 놀라게 할 정도로 큰 변화일시. 아예 대놓고 당사자 앞에서 들으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기도 한다.

지금 교실이 소란스러운 이유도 그와 마찬가지. 바뀐 김성현의 외모에 놀라 하며 어느샌가 김성현을 중심으로 모여 저마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으니까.

몇몇 조민성을 좋아하며 따라다니던 여자들의 눈이 묘한 눈빛으로 변한걸 보아. 김성현의 [첫인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 능력이 적용된 것 같다.

나는 김성현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무리에서 떨어져 백진희와 함께 있었다.

김성현의 주변에 몰려든 여자들을 보며 백진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질투나?"

"전혀."

지금의 김성현은 나에게는 타인일 뿐. 질투 같은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단지, 내 자리까지 몰려든 여자들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었다.

"저녁에 훈련장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훈련해줄게."

"응."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 거야. 기한신때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

백진희의 경고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안일하게 살아왔던 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백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내려 내 왼손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 기아스는 확실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니까."

맥락 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백진희는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

"훈련하다가 능력을 각성하는 경우도 꽤 된다. 성현이도 노력 끝에 스스로 능력을 각성했다더라. 짜식 각성한 번 잘했네! 나 젋었을 적이랑 똑같아!"

담임의 농담에 교실 가득 웃음소리가 울렸다.

김성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만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백진희가 해결해 준거겠지. 담임을 세뇌한 걸까 교장을 세뇌한 걸까.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김성현을 돌아보고 있던 조민성과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즐겁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기분이 불쾌해 미간을 좁히자. 양손의 검지를 들어 자기 이마 양옆에 갖다 대. 뿔난 사람 같은 모습을 하기에.

뭐 하는 걸까. 한심하게 쳐다보는데 갑자기 손이 튀어나와 내 시야를 가렸다.

"괜찮아 아린아?"

"...뭐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성현의 모습에 오히려 의아한 건 나였다.

"조민성이 너 노려봤잖아. 조심해 미친놈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부드럽게 잡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나는 손을 빼고 몸을 움츠렸다.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 김성현에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안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멋대로 만지지 마."

모르는 사람이 나를 만진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 들어 정색하며 말하자. 김성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해했다.

수업이 모두 끝날 동안 우린 어색함을 유지하며 서로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린아,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갑자기 들려오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성현의 모습이 보였다.

창문에서 흘러나온 햇빛이 닿은 그 조각 같은 얼굴에 김성현을 훔쳐보던 몇몇 여자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빠. 훈련해야 해."

"증명할 시간 준다 했잖아."

김성현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약속을 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백진희와 훈련을 하기로 이미 약속을 한터라.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의외로 백진희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구해주셨다.

"김성현. 너 신체 재측정해야 한다더라. 30분 뒤에 5층의 측정실로 잊지 말고 꼭 가라."

"아, 네. 미안, 아린아. 갑자기 일이 생겼네…. 나중에라도 볼까?"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김성현의 모습에 오히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괜찮으니까. 다음에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자. 백진희가 여느 때처럼 자연스레 팔짱을 껴왔다.

"그래, 내일 데이트하면 되잖아. 오늘은 나랑 같이 훈련하기로 했으니까 아쉽지만 참아."

"아, 너랑 같이 훈련하는 거야? 그럼 뭐. 괜찮지."

김성현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뭐가 괜찮아? 내 옆의 백진희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교실에서 가장 위험한 게 지금 내 팔짱을 끼고 있는 백진희인데.

안심하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해맑게 웃는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심스러운 김성현의 모습에 짜증이나 일부러 인사하는 김성현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백진희와 교실을 나갔다.

***

개인 훈련장 안.

훈련 카드를 사용하지는 않으려는지. 넓은 검술 도장 같은 디자인의 개인 훈련장에서 백진희와 만났다.

"아린아. 오늘 할 훈련은 네가 잊은 능력을 다시 일깨우는 거야."

"능력?"

"응. 마인화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일단은 그전에 레이나를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줄게."

어젯밤 나에게 선물이라며 주려고 했던 리치 레이나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꺼내든 백진희는 내게 조금 물러서라 말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백진희의 손에 닿은 베슬이 작은 떨림을 보이며 진동하다. 참았던 것이 터져나가듯 엄청난 속도로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 연기 속에서 거대한 가슴을 출렁거리며 나타난 짙은 보라색의 머리를 가진 미녀는. 도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뭐야. 엄청나게 약하잖아?"

나를 향해 손을 들자. 그 주변으로 마나로 만들어진 검은 화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레이나가 나에게 주는 위압감, 살기에 몸을 움직여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두려움을 읽었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레이나가 손을 움직이려 할 때.

금방에라도 쏘아질 것 같던 검은 화살이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레이나가 나를 바라보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게 보였다.

"레이나. 허락 없이 까불면 안 되지."

"주, 주인님."

백진희가 쥐고 있던 베슬에 하얗게 서리가 끼기 시작하자. 레이나는 몸을 오들오들 떨며 곧장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응. 벌 받고 싶지 않으면은 말 잘 들어야 해?"

"네, 넷!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백진희가 두렵다는 듯이 레이나는 몸을 크게 떨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럴 때마다 엄청나게 출렁거리는 가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자, 아린아. 레이나한테서 미인화에 대해 배우는 거야. 나는 마인화에 대한 도움은 줄 수 없으니까. 레이나에게 배우도록 해."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한 백진희는 시선을 돌려 레이나를 바라보며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안에 아린이 마인화 못 시키면 나 화낼 거야."

"어, 어떻게서든 하겠습니다!"

"응~ 기대할게."

서리가 낀 베슬을 들고 훈련장의 끝에 놓인 의자에 앉은 백진희는 관람이라도 하려는지. 다리를 꼬고 바라봤다.

"후…. 너, 오늘 마인화 못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백진희를 두려워하던 모습을 지우고 순식간에 나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레이나의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 나한테 화풀이야…?

짜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내게 다가온 레이나는 갑자기 내 뺨에 자기 손을 갖다 댔다. 그 행동에 놀라 나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빼자.

짜악­!

뺨이 얼얼했다. 짜증 난 표정으로 미간을 좁힌 레이나는 다시 내 뺨에 손을 갖다 댔고 또 뺨을 맞을까. 가만히 있자. 등허리에서부터 무언가 발끝으로 흩고 지나가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 번만 설명할게. 마인화는 각자가 가진 의념(??)을 형상화하는 능력이야. 계약한 마족의 능력을 바탕이지만. 마인마다 각자 능력이 제각기인 이유도 사람마다 가진 의념이 다르기 때문이야. 자, 네가 가진 의념을 설명해봐."

"의념이 뭔데…?"

내 물음에 무척이나 당황한 레이나는 나를 한참을 바라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의념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니지…?"

"모르는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이 커진 레이나는 입술을 깨물고는 죽일 듯 나를 노려봤다.

"네가 그러고도 마인이야! 의념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인화를…."

멀리서 의자에 앉아있던 백진희가 "흐응."하는 소리를 내자 소리를 질러대던 레이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줄어들었다.

"그냥 네가 가진 의지에 이미지를 투영해. 그러면 마인화가 될 거야. 이해했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가진 의지라는 게 도대체 뭘까.

"이해 못 해도 돼. 몸으로 깨달으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며 내 뺨에 올린 손에 힘을 주며 노려보던 레이나는 조금씩 얼굴이 굳어가더니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안 통하는 거지?"

무언가를 나한테 하려 했던 걸까. 나도 당황스러워 레이나를 빤히 바라보자. 화가 났는지 입술을 깨물며 양손으로 내 뺨을 움켜쥐듯 잡고는 힘을 주었다.

집중하는 듯 미간을 좁히며 나를 노려보던 레이나가 점점 손에 힘을 주어 내 양 볼을 꼬집었다.

"아, 아파! 왜 꼬집는 건데!"

"이, 이게 왜…."

양 볼을 꼬집던 손을 내치자. 레이나는 당황하며 자기 손만 내려다보았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걸까 멀뚱멀뚱 레이나만 바라보고 있자.

의자에 앉아있던 백진희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아린아. 요정왕의 팔찌 풀어. 그것 때문에 레이나의 마법이 안 통하잖아."

"아."

백진희의 말에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왼손에 찬 요정왕의 팔찌는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해로운 마법을 방어해주는 유물.

레이나의 마법이 통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나보다.

내게 손을 내미는 백진희의 모습에 불안함을 감추고 손목에 낀 팔찌를 건네주자.

다시 레이나가 내 뺨에 손을 갖다 댔다.

뺨을 통해 무언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마력인가…?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 다니는듯한 느낌에 조금씩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흐읏…. 이거…. 느낌이…."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원래 이런 느낌이 나는 게 맞는 건가?

"집중하고 의념에 집중해! 떠올리란 말이야!"

레이나의 말에 필사적으로 아무거나 떠올렸다. 다람쥐, 김성현, 백진희, 떡볶이….

내 몸 안을 헤집는 마력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갔다.

"집중해!"

여기서 얼마나 더 집중하라는 거야. 덥고 짜증 나. 땀 때문에 찝찝해.

필사적으로 마음속에서 뛰쳐나가려는 [분노]를 붙들어 매며 견뎌냈다.

5분, 10분. 온몸을 간지럽히는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의념인지 뭔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을 때. 레이나의 짜증 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인화 하라고 이 멍청아. 생각을 해!!!!"

아 씨발.

죽여버릴까.

그렇게 생각하자.

내 오른손에는 본적 없는 검은 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레이나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검으로 시선을 내렸다.

무의식중에 나는 그대로 검을 올려 레이나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캉­!

검을 내려친 나조차도 놀랄 강한 일격(一?). 레이나의 목을 향해 내리친 검을 어느새 다가온 백진희가 얼음검으로 막아섰다.

"잘했어 아린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백진희의 얼굴에 의문이 들 때쯤 전원 코드를 뽑은 기계처럼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

재측정이 끝나고 심리상담 선생님과 상담까지 끝나자. 벌써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아린이는 아직 훈련 중일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훈련장으로 옮겼다.

훈련장 앞에 비치된 모니터에 이름을 찾아봤지만 이미 훈련이 끝난 건지 아린이의 이름은 없어 아쉬워하며 몸을 돌리다.

누군가를 등에 안고 있는 백진희의 모습이 보여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아린이 보러왔어?"

"응. 근데 누구야…?"

백진희의 목을 꼭 끌어안고 등에 안겨있는 흑발의 어린아이. 고개를 들어서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백진희의 등에 얼굴을 파묻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아린이를 닮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기에. 이런 딸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 정도였다.

"아, 누구냐면~"

"으헤으아앙!!!"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황급히 백진희의 입을 막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다시 보니. 아린이가 어렸다면 딱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 닮았다.

앙증맞은 입술에 흑요석 같은 검은 눈. 부끄러워하며 고양이처럼 눈매가 삐죽 올라가 경계하는 표정까지.

아린이를 똑 닮은 외모에 여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내가 알기로 아린이는 외동이니. 친척인 걸까?

부끄러운지 얼른 가자며 백진희의 목을 잡고 흔드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 아, 혹시 아린이는 방으로 돌아갔어?"

"아린이? 이 근처에 있을걸~? 잘 찾아봐~ 생각보다 근처에 있을걸?"

"아 그래? 고마워 찾아볼게."

그 말에 고마워하자 왜인지 모르게 백진희는 풋­하는 소리와 함께 웃어댔고. 뒤에 있는 귀여운 여자애는 연신 몸을 꿈틀대며 자리에서 벗어나자고 몸으로 표현했다.

귀엽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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