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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략 플래그가 세워졌다-73화 (73/160)

〈 73화 〉 허락

* * *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아린이에게 조금이라도 자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커피를 마시면 괜찮을 거라고 하기에.

간만에 차기사님의 차를 타고 초월역 근처의 카페로 갔다.

백진희와 무슨 말을 했는지 조금 궁금해 보이는 눈치기에 백진희가 여행 갈 수 있는 곳을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내일 바다로 여행을 가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묻자.

아린이는 조금 고민하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성은이랑 가족분들도 같이 가는 게 어때?"

"어?"

"여행이니까. 이번 기회에 가족분들이랑도 제대로 뵙고. 성은이랑도 조금 더 친하게­"

"성은이 바빠."

내 예상과 다르게 대화가 흘러가 황급히 아린이의 말을 끊었다.

"성은이 바쁘다고? 아직 4살 아니야?"

"요즘 조기교육이 얼마나 빡센데. 내년에 유치원 들어가서 잘 적응하려면 미리미리 준비할게 한 둘이 아니거든."

의아해하는 아린이의 말에 황급히 둘러대었다.

"그러면 어머니랑­"

"엄마는 바다 안 좋아해. 산 좋아해 산. 내일 아빠랑 산 갈걸?"

내 대답에 무언가 눈치챘는지 커피를 마시고는 입꼬리를 늘리며 나를 도발하듯 요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흐응, 나랑 단둘이 가고 싶은 건 아니고?"

그 목소리에 묻은 색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맞아. 너랑 여행 가고 싶어. 1박 2일로."

"...어?"

내 말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아린이는 당황한 나머지 커피를 마시려던 동작 그대로 멈춰.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실 백진희가 나한테 준 거. 1박 2일 허니문 패키지 여행권이야."

"허, 허니문…?"

내 말을 이해했는지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 계속해서 커피를 마셨다가 자리에 두고. 다시 커피를 들어 마시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응. 가자. 여행. 단둘이서."

던져버렸다. 아린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겁이 났지만. 남자답게 질러버렸다.

용기를 내 던진 직구에 얻어맞은 아린이는 한참이나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심장이 떨어진 듯한 통증과 함께 짙은 후회감이 찾아왔다. 씨발…. 틀린 건가. 조금 에둘러 말해야 했을까.

후회하고 있을 때. 부끄러운 목소리로 아린이가 내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행 준비해야하니까…. 살 것도 있고…. 먼저 일어날게."

누군가 뺨이라도 때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내가 들은 말이 진짜인가 싶어. 멍하니 아린이를 바라보자.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내리깔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여, 여행 가는 거야? 진짜로?"

내 간절한 물음에 답하듯 아린이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아린이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뜨거운 체온과 향기로운 체취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뛸 수가 있나?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아린이에게 속삭였다.

"허니문 패키지인 거 알지?"

"...응."

동시에 침 삼키는 소리가 겹쳐 들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나 진짜 기숙사 가서 움직이지도 않고 내일을 위해 에너지 모아놓을 거야. 내일 기대해."

"뭐, 뭐래…. 나 살 것 있으니까 먼저 갈게."

부끄러워하며 품에서 벗어나려는 아린이의 모습에 더욱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 먹을 거랑 이런 거는 다 준비 돼 있으니 굳이 살 필요 없어."

"아니야 그런 거…."

"그럼 딱히 살 거 없지 않나? 칫솔이랑 이런 거 사게? 아마 비치돼있을걸 펜션 안에 구비돼있을 텐데."

뭐, 일회용품 이런 거 살려는 건가? 싶어 궁금함에 아린이를 바라보자.

아린이는 엄청나게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속, 속옷 사러…. 아무튼, 갈게. 이따 연락해!"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나를 밀치고 카페를 나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기쁨의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는 사레가 들릴 때까지 웃으며 주먹을 휘두르다. 결국, 알바생에게 혼이 났다.

***

아린이가 아직 돌아오지 않는 방. 이제는 자기 집인 것처럼 맨날 이곳에서 뒹굴고 있는 비골과 간만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역시, 나의 능력이 이제야 빛을 발한 건가."

"뭐,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흐흐흐."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웃음에 비골도 마주 웃으며 갑자기 의상을 변경했다. 고스로리풍에서 새끈한 오피스룩으로.

그래봤자 남자 놈이라 가슴이 평평해 별로 꼴리지는 않았지만.

"자, 학생. 자리에 앉으세요."

"뭔 상황극이냐 갑자기?"

안경도 만들 수 있는지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을 찬 비골이 한 손으로 안경을 살짝 올리면서 나를 노려봤다.

"완벽한 첫 경험을 보낼 수 있는 강의 신청한 거 맞죠?"

"아니, 시발 네가 뭘 안다고 선생인 척 굴어?"

내 말에 비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얄미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주인의 정신적인 처녀는 내가 먼저 뚫­"

요즘 음기를 많이 흡수해서 그런가. 곧장 던진 티슈 곽을 고갯짓으로 피하며 비웃는 모습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 선생님을 못 믿다니. 증거를 보여줘야겠군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내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내가 즐겨하던 커뮤니티를 보여줬다.

"뭐야 이거?"

내 아이디로 작성된 글에 추천이 수백 개가 박혀 있었다. 나는 이런 글을 적은 기억이 전혀 없는데?

심지어 닉네임도 [이세계 애무 마스터]로 바뀌어있었다.

"아니, 시발 새벽마다 휴대폰으로 뭔 지랄하나 했더니."

"어허! 내 섹스팁에 사람들이 박은 추천이 안 보이느냐!"

비골의 말에 다시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확실히. 추천과 찬양 댓글이 엄청났다.

조금…. 신뢰가 갈지도?

"자,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주인이라면 분명 눈이 돌아가서 분위기도 잡지 않고 대뜸 자지를 들이밀 것 같으니. 이 교육은 짐승 같은 성욕을 가진 동정에게 완벽한 교육이 될 거예요."

솔직히 그럴 것 같았다. 얼마나 참아왔는데….

"야릇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아주 천천히~ 초콜릿을 혀로 녹이듯 애간장을 태우면서 부드럽게~ 슬로우~ 이게 제일 기본이야 알았어요?"

"네. 선생님!"

내 힘찬 대답에 비골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초월의 교복으로 다시 의상을 바꿔입었다.

"아무래도 한 번 테스트를 해봐야겠어. 주인은 멍청해서 믿음이 안 가."

"아니 시발. 이리도 내가 신뢰가 없나?"

"신뢰? 그런 말랑말랑한 게 우리 사이에 남아있든가~?"

이 녀석 인터넷만 보더니 조금 잘 받아친다. 친구가 적은 나한테는 꽤 괜찮을지도?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내 질문에 비골은 묘한 미소와 함께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를 여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대할지 대충 설명해 봐."

"너 상황극 엄청 좋아하는구나."

"섹스는 상황극이야~ 이래서 동정은~"

비골의 말에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며 나오며 씻은 척 수건으로 닦자. 비골이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손을 엑스자로 교차했다.

"틀렸어."

"뭐가! 뭘 벌써 틀려! 말도 안 꺼냈는데. 이거 억까네 진짜."

"머리는 나와서 말리는 게 아니라 안에서 말린 뒤 머리를 정리하고 나와야지. 거울도 안 볼 정도로 외모에 자신이 있을 리가 없을 텐­"

씨발 기습으로 던진 수건도 피하다니. 짜증이 난다. 저 건방진 머리에 세게 꿀밤 한대만 때려줄 사람 어디 없을까.

"자, 일단은 먼저 씻은 거는 아주 좋은 선택이야."

"어…? 그런가."

"무조건 남자가 먼저 씻고 나오는 게 국룰이야."

"어디의 국룰이냐 그건?"

"아잇! 주인 잘 들어. 여자는 씻는데 오래 걸린단 말이야. 심지어 머리 말리는데 몇십 분이 걸리는데 남자가 나중에 씻으면 젖은 머리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어째? 그리고 여자는 씻고 나와서 딱 바디워시 냄새가 났을 때 덮쳐야 맛있어."

괜찮은 논리다. 이제 막 씻고 나와 촉촉한 여자를 벗기는 게 더욱 좋긴 하겠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아레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물었다.

"그다음은? 씻고 나서 벗은 채로 아니면 가운 입은 채로?"

"가운도 있나…?"

"하, 끝났네! 끝났어. 여기서부터 동정인 게 딱 드러나는 거거든."

패고 싶다는 욕망을 꾹 참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데?"

내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비골은 또다시 가운을 입은 모습으로 의상을 갈아입었다.

"무조건 가운을 입어야 분위기도 살고 경계를 낮출 수 있어. 대뜸 상대방의 나체를 보는 거는 분위기를 해할 위기도 있고 처음일 때는 무조건 슬로우리 오케이? 아껴준다는 듯이 해줘야 한다고. 묘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내게 다가온 비골이 유혹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대로 키스하면서 슬금슬금 손을 올려서~ 서로를 아끼든 터치하다가~"

"내 몸에 손대면 죽여버린다."

"웁스. 실수~"

슬쩍 내 가슴을 만지려는 비골에게 경고하자 능글맞게 넘어가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서로를 달구다가 슬쩍 손을 내려서 가운의 끈을 풀어주는 거야. 그러면은 상대방도 눈치챌 거고! 여기서 나만의 킥! 절대 스스로 자기 가운 끈을 풀지 않는 것! 무조건 상대방이 풀게끔 해야 해."

"...이유는?"

"상대방도 나를 원한다는 걸 확인해야 하고. 상대방도 하고 싶어서 스스로 상대의 끈을 푼 거니까 일종의 정신적인 허락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돼."

황급히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집어 메모장을 켰다.

이 자식 그 많은 추천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조금 많이 꿀팁이잖아?

"훗. 이렇게 상대가 가운을 벗­"

요염한 포즈로 가운의 끈을 풀어 노출하려는 비골을 막으려 황급히 던질 걸 찾다가 그냥 손에 든 휴대폰을 던지자 피하지 않고 캐치볼 하듯 내 휴대폰을 받았다.

"어째 반응이 점점 빨라지는 것 같다?"

"마족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거참 시발. 다음으로 넘어가! 휴대폰은 내놓고."

의자에 앉자 원래의 고스로리로 돌아온 비골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아플 거라는 두려움과 긴장에 빠진 여주인을 위해서는 무조건 느긋하게. 아, 이 여자를 내 손가락만으로 절정으로 보내야겠다 싶을 정도로 느긋한 손길로 긴장한 여주인을 풀어주는 게 아주 중요해. 소중하단 듯이 만져주면서 엉덩이를 스치듯 쓰다듬다가 열망 어린 시선으로 소중하단 듯이 아껴주면서 만져주다가 아주 부드럽게 혀를 휘감는 키스를 하면은 여주인은 항상 애액이 쏟아지니까 부드럽게 키스하면서…. 뭐야, 그 표정은?"

비골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쓰라리게 이 느낌은….

"아니 시발…아린이를 NTR한 남자가 내 앞에서 경험담을 자랑하는 기분이라 많이 좆같은데?"

아니 정말로. 비골 이 녀석은 아린이의 꿈속에 들어가 몇 번이나 아린이의 처녀를 뚫었으니까…. 나보다 아린이의 몸에 대해 더 잘 안 다는 게 묘한 굴욕감이 느껴졌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비골은 눈치 빠르게 나를 위로했다.

"훗, 그래도 완벽한 섹스를 위한 팁을 얻어 왔으니 기분 풀어. 여주인은 특히, 키스와 귓바퀴를 핥는 것을 가장 좋아하니까 잊지 말고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대부분의 성감대가 민감해서 오히려 크게 자극하면 아파해서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무조건 슬로우! 부드럽게 슬로우~ 오케이? 알아들었어요. 학생?"

"넵, 선생님!"

내 대답에 비골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콘돔 낄 줄 알지?"

"어…? 아니, 당연히 처음이니까 노콘으로…."

쾅!

박력 있게 테이블을 손으로 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어허! 여주인을 위해서라면 콘돔을 끼려는 의지라도 보여야지!. 물론, 첫 경험을 생으로 하고 싶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여주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무조건 콘돔을 찬다고 생각해. 정 콘돔을 끼기 싫으면은 여주인에게 `처음은 생으로 하다가 중간에 콘돔 낄 게`라고 설득이라도 하든가. 긴장하고 있는 여주인을 풀어줄 생각이 무조건 1순위여야 해!"

비골의 말에 노콘성현이라는 칭호는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넘겨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제일 중요한 거! 쭈글쭈글한 팬티 말고 빳빳한 새 속옷을 입어야 해. 그래야 분위기를 유지 할 수 있어."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하나 사놨지. CK로다가."

서로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묘한 동료애가 생겼다.

계약하길 후회했었는데. 이 녀석 여간 유용한 게 아니야.

"오케이! 그럼 다시 처음부터 테스트해 보자!"

"우효!"

학구열이 불탄다!

*

"아니, 바보야. 여기서 끈을 풀지 말고 조금 더 등을 쓰다듬으라니까?"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가운의 끈을 풀려 하자 비골이 화를 냈다.

"이, 이렇게? 아니 언제까지 달구기만 해."

등을 쓰다듬는척하자. 비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더 달궈야지! 그래. 그러다가 엉덩이 쪽으로 슬며시 내려­ 어? 여주인!"

비골의 말에 나도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린이는 쇼핑 팩을 든 채 무척이나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해?"

그 목소리에 담긴 위압감에 내 목에 팔을 두르던 비골이 조용히 팔을 내렸다. 나도 황급히 비골의 등에 갖다 댔던 손을 떼고 붙어있던 몸을 떼며 말했다.

"...오해야 아린아."

그 오해가 풀리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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