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계획
* * *
하루에도 수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초월역. 또다시 수많은 사람이 지하철에서 쏟아져나와 저마다의 길을 향했다.
혼잡한 에스컬레이터와 역안 가득한 사람들의 복잡한 모습을 보며 조민성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다시 초월역 주변에 마나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마인의 테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초월역에 테러가 일어날 거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정보 하나 때문에. 오늘 하루 동안 죽치고 앉아 자신을 흘깃흘깃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저, 저기. 혹시 연락처 좀…."
"아. 죄송합니다. 아직 학생이라서요."
"앗! 죄, 죄송합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귀찮은 여자들의 관심들을 거절하고 의자에 등을 기대. 지루함을 곱씹을 때. 아주 작은 마나의 파동이 흩뿌려놓은 마나사이에 느껴졌다.
파동이 느껴진 곳은 스크린도어 안 터널. 구석까지 걸어가 마나를 이용해 문을 열자. 경고음이 울리기에 곧장 부숴버리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선로라서 그런가. 무척이나 습하고 후덥지근했지만. 파동이 느껴진 곳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마치 거대한 냉장고 안에 들어온 것처럼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걸음이 멈춘 곳에는 머리가 분리된 마인이 눈도 감지 못한 채 얼음 속에 갇혀 죽어 있었다.
"호오, 특이한 마법 구조네. 고대 마법인가?"
지루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흥미가 생겼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기둥에 몸을 기댄 백진희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콰앙!!
곧장 만들어낸 푸른 선이 굉음과 함께 백진희를 기둥째 터트려버렸다. 하지만, 이 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민성의 뒤편에서 마법식이 발휘되었으니까.
"흐응, 곧장 공격하다니. 손버릇이 나쁘네."
순식간에 조민성의 뒤를 잡은 백진희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조민성도 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호승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양 손바닥 안에 푸른 마나가 자연스레 그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찰나.
스크린도어를 억지로 연 탓에 경보가 울려서인지 터널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멍청하게도 자신들이 사지(死?)에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불청객을 내쫓을 생각만 하고 있는 듯 했다.
이대로 터널과 함께 백진희를 묻어버릴까 조민성이 방법을 고민할 때쯤. 백진희는 묘한 미소와 함께 목소리에 마나를 담았다.
"심상결계(心???)"
그 언령이 터널을 울리는 순간. 조민성과 백진희는 터널에서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침입자를 찾기 위해 터널 안으로 들어온 경비 영웅들은 얼음 속에 갇힌 마인의 시체를 발견하자 사색이 되어 급히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
어둠 속에서 형광등만이 어두운 터널을 밝혀주었지만. 지금 조민성과 백진희가 있는 공간은 태양이 밝게 빛나 눈 덮인 초원에 빛을 반사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언령으로 마법식을 대신하다니. 거기에 심상결계라…정말 나랑 동갑인가 의심스럽네."
조민성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너 같은 천재도 질투를 하나 보네?"
"질투라. 그런가?"
그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민성은 그저 웃었다.
"걱정하지 마. 널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조소하며 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안심하고 저지를 수 있겠네."
조민성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푸른 선이 그 주변을 나선(??) 하기 시작했다.
조민성의 머리위로 푸른 선들이 모여 거대한 마력 덩어리인 푸른 구체를 만들어내어 주변 공기를 위압스럽게 짓눌렀다.
"결계와 함께 사라져라. 마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있던 백진희에게 거대한 낙뢰가 내리쳤다.
콰아아앙!
거대한 소음. 공간 전체를 거대하게 울리는 강력한 타격은 파공음을 일으켜 바닥에 쌓인 눈을 흩뿌리기에 충분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도 백진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결계식을 구축해 낙뢰의 피해를 감쇄했다.
그러나, 이 또한 조민성은 예측했기에. 곧장 백진희의 몸을 향해 땅속에서 솟아 나온 푸른 선이 쇄도했지만.
몸에 닿기 전 백진희는 백안을 빛내며 순식간에 푸른 선의 구조를 이해하고 술식의 회로를 바꿔버렸다.
조민성의 연계는 백진희의 능력 앞에 허무스러운 결과를 낳으며 실패로 돌아갔다.
"괴물이구나."
백진희의 능력에 감탄하며 조민성이 말했다.
"진짜 괴물에게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야."
씨익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백진희의 모습에 조민성은 뱀 같은 웃음을 지우고 미간을 좁혔다.
또다시 백진희를 향해 허공에서 푸른 선이 만들어졌다. 이번 공격은 파훼하지 못했는지 황급히 백진희는 몸을 움직여 자신을 속박하려는 푸른 선을 피했다.
백진희는 곧장 손을 합장한 뒤. 손바닥을 벌려 손가락으로 작은 삼각형을 만들었다.
심상결계가 흔들리며 백진희를 노리고 쏘아져 나가던 푸른 선이 조민성의 뒤에서 나타나 황급히 마법의 술식을 끊어냈다.
조민성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백진희는 심상결계를 이용하여 결계안의 공간의 구조 자체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바꿔버렸다. 그 결과, 백진희를 향하던 푸른 선이 공간의 변화로 인해.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그 사이에 술식의 회로구조를 바꿔. 공격하는 괴물이 나한테 괴물이라 한 거야?"
비웃는듯한 목소리에 조민성이 입꼬리를 길게 늘이자. 백진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법으로는 안 되겠어."
"포기인가?"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아쉬운 소리를 했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상대를 만났는데. 벌써 싸움을 포기하려는 걸까. 억지로라도 싸움을 하게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양손에 푸른 마나를 모으자.
서늘한 목소리가 조민성의 귀에 들려왔다.
"아직은 내가 마법에 미숙해서…널 죽일 것 같거든."
그 목소리에 담긴 거대한 마력의 흐름에 조민성은 저 말이 허세가 아님을 알아챘다. 백진희가 손을 옆으로 뻗자. 허공에서 무언가 얼어붙더니 덩치를 늘려 검의 모양이 만들어져 손에 쥐어졌다.
"그래. 너는 원래 검사였지."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적인 재능조차 눈앞의 백발의 마녀에게는 부가적인 능력일 뿐. 자신이 알아본 바로 그녀는 본래 `검사`였다.
백진희가 왼손을 들어 허공에 무언가 술식을 발동하자. 중력이 뒤바뀐 듯 조민성의 몸이 곧장 하늘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땅에 박아넣은 푸른 선이 곧장 하늘로 추락하는 조민성의 육체를 붙잡았다. 공중에 뜬 채 수십 개의 푸른 선을 만들어 주변을 나선 하자.
거대한 빙결의 길이 허공에 만들어지며 조민성에게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선명한 검강(??)을 띄고 있는 얼음 검이 조민성에게 일섬(一?)을 가했다.
조민성은 그 즉시 푸른 선들을 겹겹이 겹쳐내어 방어막을 구축하였지만.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나로 만들어진 푸른 선들이 얼어붙으며 갈라졌다.
콰아아앙!
방어막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조민성이 황급히 땅에 박아놓은 푸른 선으로 자기 몸을 당겨 공격을 회피하자. 또다시 중력이 바뀌어 조민성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푸른 선으로 몸을 보호한 조민성의 위로 백진희는 백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강렬한 검풍의 일참(一?)을 그려내며 검을 내려찍었다.
쿠구구구궁!!!
땅속 깊은 곳에 박아놓았던 푸른 선들이 나선을 그리며 술식을 전개했다.
거대한 크기의 푸른 불꽃에 휩싸인 소환체가 백진희의 몸만 한 크기의 주먹을 내지르자. 고막을 찢는듯한 파공음과 함께 푸른 불꽃을 감싼 주먹이 하얀 검풍과 맞닿았다.
쿠콰콰콰쾅!!!
공간을 찢어버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대지가 갈라지며 그 위에 있던 눈들이 허공을 맴돌며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았다.
백진희의 일격을 막은 대가인지. 소환체는 술식 자체가 파괴되어 더는 부릴 수가 없었다.
조민성은 상대를 얕보지 않았다. S급 영웅과의 전투에서도 느끼지못한 강한 생존본능이 백진희를 인지한 순간부터 경계심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백진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조민성은 그 즉시 양손에 거대한 마나를 집중시켰다.
푸른 선들이 조민성의 근처로 거대한 크기의 술식을 실시간으로 그려내며 다가올 공격에 대비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한 순간. 조민성은 자신의 머리위로 드리워지는 거대한 크기의 그림자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초원을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크기의 빙룡. 푸른 눈을 빛내며 차가운 숨을 대지를 향해 크게 내뱉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들이 비처럼 무수히 쏟아져 내려오자. 조민성은 준비한 술식을 발동하였다.
양손에 모인 푸른 마나는 거대한 푸른 구체를 만들었고 푸른 구체는 그 몸뚱이를 벌려 꽃이 개화하듯 구체가 벌려지더니 아주 작은 구체들이 꽃씨처럼 공중에 비산해 폭발하기 시작했다.
쉼 없이 푸른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은 구체들은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켜 하늘 전체를 푸른 마나로 물들였다. 거대한 마법 술식의 전개의 반동으로 조민성은 입안을 가득 채우는 피를 내뱉었다.
턱
조민성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려다. 자기 어깨에 올라온 얼음 검을 확인하고는 술식의 전개를 멈추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백진희는 이미 조민성의 뒤를 점한 상태였다.
완패(完?).
이것이 목숨을 건 결투였다면 이미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하아."
조민성은 처음으로 느낀 벽에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하지 마. 아직 너는 여물지 않았으니까."
위로라도 건네듯 조민성의 어깨에서 검을 뗀 백진희가 몸을 돌린 조민성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할 거지?"
"...대단하네."
순수한 감탄이었다. 하늘 위에 차가운 숨결을 내뱉던 빙룡은 눈속임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조차 하나의 공격이었을 뿐. 그것을 막지 않았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진희는 그것을 조민성이 막을 것으로 예측하여 미리 다음 수를 연계한 거고.
"네 마법이 대인용 마법이 아니었다면 나도 힘들었을걸?"
"마법사에게 그런 게 변명이 될 순 없으니까."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미간을 구기며 대답했다. 자신의 주로 쓰는 마법은 대부분이 대인 마법. 광역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형태기에 1:1의 상황에서는 부적합하다. 그 단점을 자신도 알고 있어 전투 중에 자신에게 근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언제든지 접근한 상대에게 대응할 수 있도록. 버릇처럼 경보 술식을 주변에 새겨놓았다.
하지만, 백진희는 그 경보 술식의 회로를 바꿔버리는 걸로 자신의 방심을 유도했다.
완패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자 추한 변명일 뿐. 그런 자들의 모습을 많이 봐왔기에 조민성은 완패를 인정하고 순순히 술식의 전개를 멈춘 것이다.
"그래서, 내 몫을 가로채고 나를 심상결계 속으로 데려온 이유는 뭐야?"
그 말에 백진희는 들고 있던 얼음 검을 공중에 던져 없애버린 후. 심상결계를 조작하여 어느 테이블 앞으로 조민성과 함께 이동하였다.
상자 안에서 흰 봉을 꺼내는 백진희의 모습에 조민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 그거…."
"맞아. 트페레밧의 봉."
싱글거리며 웃는 백진희의 모습에 조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누가 그리 플라틴의 보안을 뚫고 금고의 유물을 털어가나 했더니.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의심받았는지 설명해줄까? 조금 억울해서 말이야."
"네 재능이 뛰어나서 오해를 받은 거지 뭐. 좋게 생각해줘. 아무튼, 잘 안다니까 설명은 필요 없겠네?"
백진희는 트페레밧을 쥔 채 파란 보석이 박힌 쪽을 내밀었다.
"내게 보여주고 싶은 기억이라도 있는 거야?"
"응."
"정체를 숨긴 흑막이 자신의 기억을 보여준다라. 미친놈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제안이네."
조민성의 말에 백진희는 미소를 지으며 유혹이라도 하듯. 봉을 흔들었다.
"보여줄게. 이 세계의 종말."
백진희의 말에 조민성은 뱀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트페레밧의 봉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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